|
존 스튜어트 밀
그가 아버지 제임스 밀로부터 받은 학대에 가까운 교육은 유명하다. 그 교육을 통해 밀은 아버지의 죽음을 바라면서도 그런 자신에 죄의식을 느끼는 양가감정, 합리주의자로부터 낭만주의자로의 개종 등의 격동을 겪어야 했다. 밀의 경제학 방법론에 대해 논하는 <정치경제원리>는 합리주의와 낭만주의 사이에서 그가 겪은 지적 고뇌의 산물이었다. 그는 여기서 아버지로부터 배운 합리주의적 연역 사고, 방황으로부터 배운 낭만주의적 귀납 사고를 모두 활용한다.
밀은 자유방임 사상과 정부 개입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했다. 과세에 대해 그는 동력 감소와 탈세 비리를 근거로 비례세를 옹호했다. 그러나 결과의 평등보다는 기회의 균등을 강조한 그는 상속세에 대해선 그것이 자신의 노력이 아니기에 공공선의 제한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밀은 플라톤적 인간상을 믿었고, 물질적 여건이 마련된 상황에서 인간은 더 고귀한 가치를 추구할 것이라 생각했다. 이러한 미래를 꿈꿨던 밀 이후로, 마르크스를 제외하곤 정치와 경제 등 많은 학문에 정통한 학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르크스
생전에는 명성 없었다. 대학교 시절 방탕했으며, 아버지를 좋아했고 어머니의 장례식엔 참석조차 하지 않았다.
언론인 마르크스 : 그는 박사 학위를 딴 후 사회비판적 언론행위를 했으며, 이후 국가에 의해 제지 당한 후 방탕한 생활을 하며 자본주의를 연구한다.
유물주의 역사가 : 그는 헤겔의 변증법적 방법론에 유물론적 사고를 더했다. 그는 상부구조와 하부구조 개념을 확립하고, 하부구조의 동적 성향과 상부구조의 정적 성향을 바탕으로 지배 계급이 사회 변화에 대항해 상부구조를 지키려 할 때 혁명이 일어난다고 얘기했다.
마르크스는 상속비와 엥겔스의 지원 등으로 중하층의 경제 수준일 때에도 아이들의 예술 교육 등에 많은 돈을 투자했으며 하녀를 임신시켰다. 평생 자신을 탓한 적 없지만 자식의 죽음에는 자신을 탓했다.
자본과 자본주의의 몰락 :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대해 트루먼 카포티는 '저술도 아니고 남의 글을 타이핑 해 놓았다'라고 했다. <자본론>에서 마르크스는 '상품의 가치는 노동량에 의해 결정-노동자는 자신이 상품 생산에 기여한 만큼 받음-따라서 어떤 상품의 가치는 노동자가 받는 임금과 동일'의 논리를 제시한다(노동 가치설). 하지만 노동만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논리에는 다음과 같은 허점이 있다. 지배계급의 생산수단 소유, 산업 예비군의 존재로 잉여가치는 창출되고, 그것은 노동계급을 우롱한 자본가들의 것이다.
마르크스는 또한 다음 네 가지의 경향성을 근거로 자본주의의 운명을 파멸로 규정했다. - 자본가들의 끝없는 탐욕과 노둥자 착취(무한 경쟁), 경제력 집중(대기업), 경기 침체 및 공황(노동자와 소비자의 등가성), 산업 예비군,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의 궁핍화(소외현상).
마르크스 곱씹어 보기 : 물질적 운동을 우연적인 것으로 그린 마르크스는 또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기업가 정신 및 상상력 등의 정신을 너무 간과 하였다. 그가 예언한 바와 달리 많은 노동자들은 풍족해 졌다(+주식을 통한 중간계급 대두). 또한 현대 경제학이 마르크스를 보는 시선은 케인스가 '자본론에 대한 제 감정은 코란에 대하 제 감정과 같습니다'라고 말한 바를 통해 알 수 있으며, 마르크스의 뒤를 이은 급진 경제학파는 단 한번도 제대로 된 승리를 하지 못했다.
마셜
쿠르노, 폰튀넨, 고센 등이 10년 먼저 한계주의 창립하고, 마셜은 가장 탁월하게 경제학에 도입하였다. 그는 오늘날 미시경제학을 지배하고 있는 한계 전통을 수립했고, 케인즈와 피구 등 저명한 경제학자들을 다수 양산했다. 19c 말 번성한 한계주의 경제사상의 본질은 점진적으로 증가하는 움직임에 초점을 둔다는 것이다.
경제학과의 운명적인 만남 : 그는 어린 시절 공부를 강제하는 아버지가 못하는 수학을 도피처로 사용했으며, 형이상학에 몰두했다가 가난을 없애기 위해 경제학을 탐독하며 성직자가 되라는 아버지에 거역했다. 논문의 첫장과 마지막 장만 보고 중간을 매꾸는 놀이를 하는 등 그는 괴짜였다.
점진적 접근 방식 : 그의 사상은 늙은 개처럼 격동적이지 않다. 그는 고전파 경제학자들이 사용했던 뉴턴의 과학적 접근 방식이 아니라, 진화론적 접근 방식을 추구 했다(18c엔 불변성의 수리물리학 번성, 19c엔 유기적 생물학이 관심). 그의 <경제학 원리>는 도덕적 설교, 일반인 대상이라는 특징이 있는데, 그는 평생 경제학의 실천성을 강조하고 수학을 자제했다. 이 책의 표현에 따르면 '그는 밀과 마찬가지로 엄격한 경제학 법칙을 수립하고자 하는 경제학계의 오래된 덫에 걸려들지 않았다.'
장기와 단기라는 경제학적 시간 : 그는 울타리 분석 체계(다른 조건이 같다면 요인들 별로 집중 분석)를 고안해 냈다. 그에게 단기의 개념은 요거트 수요 증가에 따라 직원을 늘리는 기간, 장기의 개념은 공장 구조를 바꾸는 기간이다. 기존 경제학자들은 기업 규모 증가가 이윤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얘기했지만, 마셜은 규모에 따른 수확 체증의 원인으로 내부 경제와 외부 경제를 들었다. 그에게 있어 기업은 발전 뿐만 아니라 유지 하는데 있어서도 많은 능력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주주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더 과감한 목마르고 배고픈 기업이 뚱뚱하고 게으른 기업을 잠식해 들어간다. 그는 몸집이 큰 것을 좋게만 보지 않은 것이다.
한계적 소비자 : 마셜은 가치가 효용에 의해 결정되는지(수요 중심) 생산비용에 의해 결정되는지(공급 중심)의 문제 사이에서 한계주의를 사용해 둘을 종합하여 매 상황을 분석했다. 그의 <경제학 원리>는 모든 개인의 합리성을 전제하지 않음으로,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기업은 망한다고 얘기한다. 또한 마셜은 인간은 물질을 재배열할 뿐 창조할 수 없고 자본가들의 수입은 기다림에 대한 보상이라며 노동가치설을 반박한다. 노동가치설에 따르면 이자 등은 설명하기 힘든 것이다.
베블런과 갤브레이스
경제학의 역사는 거시적으로 고전파-신고전파(마셜)-구제도학파(베블런)-신제도학파(갤브레이스)로 나뉜다. 제도학파들의 주요 업적은 과거의 이론들에 대한 대대적인 비판이다.
베블런은 마셜의 수요법칙(가격 하락시 수요 증가)과 노동자들은 일 자체를 위해서 일하진 않는다는 신고전파 경제학의 두 기둥을 강타했다. 학생들에게 무례했던 그는 <유한계급론>에서 유행과 같은 외부적 요인들이 쾌락과 고통을 계산하는 개인의 판단에 관여한다고 말하며 신고전파 모델의 오류를 지적한다. 유한계급의 허세는 이렇듯 현시적 여가와 현시적 소비를 자처한다. 마셜의 수요법칙을 따르지 않는 일부의 상품, 베블런제는 소비자의 수요가 상품의 효용 뿐 아니라 다른 소비자가 기꺼이 지불할 것이라 생각하는 가격, 예상되는 현시적 가격에 의해 좌우된다.
베블런은 마르크스와는 다르게 경영자와 엔지니어를 대립관계로 상정했다. 경영자는 참된 생산을 할 수 있는 엔지니어를 이기성과 단기적 시선으로 억압한다. 또한 인간의 창조적 욕구는 현시적 소비가 횡행하며 방해받는다. 그는 마르크스의 혁명처럼 향후 엔지니어가 경영자들을 내쫓을 것이라 예언했는데, 엔지니어와 경영자를 명확히 구분한 것이 폐단이 되어 이제는 설득력을 잃은 상태다.
또한 베를런은 노동조합의 경제활동 저해성, 비조합원들의 의사를 무시한 임금 인상 중시 등을 비판했다. 이렇듯 법적, 마셜적 성향의 신제도학파는 거의 모든 제도와 사회적 현상은 경제적 함의가 있다고 선언하며 경제학의 지평을 확대했다. 이와 구제도학파가 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분야는 기업의 소유주와 전문경영인 사이의 불화 관계이다. 전문경영인들이 기업의 몸집만 부풀려 개인적인 목표만 추구하여 소유주들의 감시가 필요하며, 이는 인센티브 제도나 경영인이 주식을 나눠가져 소유주를 겸임하는 등의 제도로 이어진다.
베블런의 가장 저명한 제자는 단연 갤브레이스이다. 그는 인간의 실존과 연결된 욕망이 외부에 의해 조작된다고 판단하며, 진정 내부로부터 나오는 욕망만을 중요한 것으로 보았다. 갤브레이스는 마셜의 한계효용을 허수아비로 치부했는데, 이런 그에게 하이에크는 <의존 효과의 불합리성>에서 비판을 가한다. 하이에크는 갤브레이스에 따르면 문화는 지극히 사소한 것이며, 거짓으로 불필요한 구매를 부추기는 소비재에 대한 판매를 금지하면 그것이 하나의 광고가 될 것이다(의존효과의 모순이 있다). 갤브레이스는 광고가 진실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는 효용성을 간과하고, 광고의 힘을 과대평가했다. 실제로 소비자들은 상품이 좋지 않다면 재구매하지 않을 것이다.
갤브레이스는 구제도학파의 전성기와 후퇴, 신제도학파의 등장을 동시에 목격했으나, 그 자신은 구제도학파에 머물렀다. 신제도학파는 법의 세계를 파고들었다. 다음 네 분야는 경제학자들이 전통 법률 분석에 획기적인 변화를 초래한 부문이다.
과실 : 러니드 핸느는 'P(사고 발생 가능성)L(사고로 인한 피해의 정도)>C(사고 예방 비용)' 일 때 과실 책임이 있다고 보았다. 핸드 판사의 공식은 마셜류의 한계 논리를 법칙화 한 것이며, 이후 이 척도는 개진돼 왔다.
재산 : 코우즈 정리는 판사의 판단이 궁극적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판사의 판단은 그저 누가 권리를 매수하고 판매할지 결정할 뿐이다. 가수의 열성 팬들은 돈을 더 지불하려 하지만, 그의 이웃들은 시끄러워 더 많은 돈을 쓸 수 있다.(이것도 한계논리?) 코우즈는 이 정리를 공해 문제에도 똑같이 적용했다. 이 정리의 전제, 거래 비용없이 손쉽게 돈으로 권리를 거래할 수 있다는 가정이 가장 많은 비판을 받았다. 특히 공해의 경우, 공장과 협상하기 위해 사람들을 모으는 비용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코우즈의 정리는 법적 판결이 개개인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을 분석한 뛰어난 방법이다.
경제학자들은 대도시 임대료 구제법안도 주목했다. 이는 정치가들이 시민들에게 호감을 얻고 기존 임대 주택 세입자들이 혜택을 얻지만, 마셜에 따라 수요는 늘어남에도 공급은 늘어나지 않아 가격 탄력성이 0.2인 장기적 주택공급은 가격이 제한됨에 따라 감소하게 된다.
범죄 : 게리 베커는 검거율과 형량의 경중이란 두 변수가 범죄에서 가장 중요하며, 범죄의 유형에 따라 각기 다르다고 얘기한다. 필자는 이를 바탕으로 부크 홀츠 가설(시간지평의 축소가 범죄를 매력적인 것으로 만듦으로, 금리의 인상을 방치하면 미래에 대한 불신을 키워 범쥐율을 늘린다는 이론)을 세웠다.
비탄력적인 수요 행태의 마약 문제에 대해선 공급보다 수요를 건드려야 한다. 마약 중독자들은 마약의 가격을 상관하지 않기 때문에, 마약 공급을 억제하기 보단 엄격한 형벌을 내리는 편이 나은 것이다.
법학에 대한 경제학의 침투는 지평 확대의 측면에서 성공적이었지만, 효율성을 추구하는 경제학과 정의를 추구하는 법학이 만나는 것을 곱지 않게 보는 사람들도 있다. 이 논점에 대해 급진주의자들은 효율성은 아마 정의의 가장 일반적인 의미일 것이라 주장(리처드 포스너 법경제학)하고, 온건주의자들은 상법적 판결에선 효율성에 주안점을 두기에 법과 경제는 상부상조할 수 있다고 얘기하거나, 도덕적인 관점을 보다 강조한다.
케인스
케인스는 오만한 천재이다. 케임브리지 시절 '사도들'이란 집단에 가입해 자신의 우월성을 피력하기도 했다. 졸업 후 공무원으로 재직했으나 스승 마셜의 제안으로 다시 대학의 강사로 초청되고, 이때 경제학 원리를 기반으로 고전 경제학적 성향을 띄었다. 세계대전으로 다시 공무원으로 취직했으며, 생전 주식은 이론이 아니라 직감에 의한 것이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주식에서 많은 돈을 벌었다. 카르멘 미란다의 영화를 좋아한 비트겐슈타인과 친구였다.
케인스는 생전에 경제학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는 예술 애호가였고, 변덕스러웠다. 그의 변덕스러움은 그의 사상에서 매 상황마다 다른 판단을 하는 방식으로 나타나고, 결과적으로 뚜렷한 기본 모델의 부재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에 대해 그는 '시장의 특성이 변덕스럽다'는 입장으로 일축했다. 그는 누구보다 학계와 정신의 힘을 믿었으며, 모든 이들이 죽은 학자들의 영향 아래 있다고 생각했다.
대공황으로 케인스는 자유주의의 고전파 경제학을 비판하고 정부 개입을 제창했다. 그는 세이의 법칙이 가계의 저축을 간과했고, 따라서 공황에 대한 해결책은 균형예산에 대한 강박을 버리고 가계와 기업의 수요를 늘리는 것이라 말했다. 고전파 또한 저축을 아예 무시한 건 아니었는데, 고전파는 '저축-금리 인하-기업투자 상승'의 과정을 불러와 균형을 맞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케인스는 가계의 저축(물건 구매 목적)과 기업(투자 목적)은 목적이 다름으로 금리를 매개로 연합하긴 어렵다고 비판했다. 또, 고전파는 임금과 물가는 한몸이라고 말했는데, 케인스는 이 두 요소가 균형을 이루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고 반박했다.
프리드먼의 통화주의(시카고 학파-하버드학파와 함께 신고전파의 양대산맥)
통화주의는 케인스의 이론과 정면 대치하며 수십년간 논쟁을 이어왔고, 그 결과는 현재로선 무승부이다. 통화주의는 케인스의 정부 개입 외에도 경제 시장의 감가속 페달 한 쌍을 추가했다. 케인스는 시장의 호황과 불황에 따른 대처를 의회가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화폐를 가장 중시한 통화주의자들은 FPB가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FRB는 화폐공급량을 통해 경기의 불황과 호황을 조절한다. FRB는 첫째로 지급준비율(은행들이 고객들에게 대출해줄 수 있는 예금의 비율)을 올림으로서 화폐 공급량을 내리고, 내림으로서 공급량을 올린다. 둘째로 FRB가 시중 은행들에 빌려준 자금에 대한 금리(재할인율)을 높임으로서 공급량을 내린다. 셋째로 공채를 판매함으로서 공급량을 내리고, 구매함으로서 공급량을 올린다(FRB의 소유 자산은 화폐 공급량의 일부가 아님).
그들의 이름이 '통화주의'인 까닭은 화폐 공급량이 장기적으론 물가에만 영향을 미칠 뿐이며, 화폐 공급량에 변화가 없다면 정부 지출은 물가나 생산량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주장 때문이다.
통화주의자들은 사람들이 예비적 동기에 의해 돈을 보유하지만, 케인스는 투기적 동기로 보유한다 생각했다. 따라서 케인스의 비판은, 화폐 공급량이 늘어난다 해도 돈을 쌓아두려는 욕구 증가할 것이라는 것이다. 케인스에 따르면 통화 조작이 경제에 변화를 미치기 위해선 그것이 사람들의 소비와 직결돼야 하는데, 사람들은 외려 저축하거나 소비하더라도 금융 자산에 지출하기에 금리를 낮추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케인스는 화폐의 힘을 무시했고, 통화정책은 통화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소비가 아니라 금리와 투자를 통해 작용한다고 보았다. 프리드먼은 이에 프랑코에 기초한 항상소득가설을 토대로 소비는 놀랍도록 일정함을 주장했다. <미국의 통화사>에서 그는 케인스주의자들로부터 대공황의 사례를 훔쳐 그것이 수요의 부족이 아니라 통화 정책의 실패를 보여준다고 역설했다. 또한 통화주의자들은 케인스가 '정부의 재정 지출에 필요한 돈은 어디서 오는가'에 대한 대답을 교묘히 우회했다고 지적(세상에 공짜는 없음)했고 케인스의 승수이론은 이를 간과했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통화주의는 레이건 대통령과 마가렛 대처의 화폐공급량 감축 정책이 단기적으로는 생산량과 물가에 같이 영향을 미치지만 장기적으로는 물가에만 영향을 미친다는 가설의 폐해를 그대로 따르면서 끝내 완전한 승리에 다다르지 못했다.
케인스와 프리드먼의 대립에 관한 흥미로운 점은, 케인스는 초기에 통화주의자였고 프리드먼 초기에 케인스주의자였다는 것이다. 또, 프리드먼은 실질적인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해 특이한 입장을 취했다. 바로 그의 이론에 따라 통화량에 개입할 것이 아니라, 무지를 인정하고 신중하게 행동하라는 애덤스미스적 강령을 제시한 것이다.
ㄴ+V(화폐의 소득 유통 속도) 개념 : gdp를 화폐공급량으로 나누면 화폐량이 1년동안 회전하는 비율인 화폐의 유통 속도(V) 계산됨. 만일 gdp가 36조 달러고 화폐 공급량이 6조 달러면 V는 6이 되고, 이는 화폐가 1년동안 6번 회전함을 의미하고, 사람들이 연간소득 가운데 2개월 치의 금액을 보관한다는 뜻이다.
제임스 뷰캐넌(공공선택학파)
이들은 정치가 하나의 비지니스이며,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과 다르게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한 권력을 추구할 뿐임으로 정부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철저히 경제적으로 분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먼저 특수이익집단(우유 생산자들, 설탕제조자들 등)이 자신들의 분야에 관한 정부의 정책에 갖는 관심은 일반인의 100배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특수이익집단에 돌아갈 이득에 대한 손해를 자신들이 매꿔야 함에도 불구하고 '합리적 무시'를 하게 되는 딜레마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특수 집단의 전문성과 비리적인 관계 때문에 그들을 향한 정책을 펼칠 수 밖에 없는데, 이에 대해 일반 국민은 합리적 무시를 하고, 특수 집단은 규제 제도에 따른 다른 요구를 할 수 있음으로 이런 현상은 강화된다. 공공선택학파는 모든 규제가 기업들에게 이롭고 소비자들에게 해롭기에 순수한 자유방임주의를 해야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고, 공공선을 위한 자비심 많은 정부라는 이상주의를 배척하는 것이다.
관료들은 각종 예산을 늘리고 부서의 크기를 키움으로서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 할 수 있다. 또한 뷰캐넌은 정부의 예산 적자에 따른 국민들의 피해는 간접적이지만, 그에 따른 국민들의 이득은 직접적임으로 정부의 적자를 촉진 할 수 밖에 없다고 얘기한다. 따라서 정부가 예산을 적자로 운영하는 것은 현 세대에게는 환영받을지 몰라도 미래 세대를 무시하는 것이며, 뷰캐넌은 이러한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이는 기대이론학파에 의해 비판받았다.
사회보장제도에 대해선 미국의 수명이 올라가고 베이비붐 세대의 논년화에 의해 많은 문제가 대두될 거라 예상된다. 최근 사회보장제도의 감전성(건드리면 그의 혜택 받는 집단들이 날뜀)이 많이 줄어들었다. 또한 사회보장제도는 많은 부분 모럴 헤저드 문제와 관련돼있다.
그렇다면 케인스는 왜 공공선택학파의 출현과 그들이 지적한 점들을 예견하지 못했을까? 그에 대해 케인스의 성장환경과 엘리트의식, 관료들이 이기심보다 공공선을 중시하며 고상한 동기와 합리성을 갖고 있고 국민들 또한 사탕발린 정치인보다 제대로 된 정치인을 뽑을 것이란 믿음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그의 믿음과는 반대로 정치적 이기심은 정부의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합리적 무시에 의해 공익으로부터 멀어진다. 또한 그는 정치적 보이지 않는 손(결국 국민이 원하는=필요한 정치 추구됨)을 믿었는데, 이러한 점들은 케인스가 정치적 남용 또는 관료주의의 폐혜를 제대로 직시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된다. 하지만 케인스의 경제이론에 대한 비판점과 공공선택이론에 기초한 비판점은 구분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나는 여기에 대공황에 따른 고전 경제학을 타파하고자 하는 강한 동기와 그것을 중심으로 하는 그의 이론이 문제가 된다고 첨언한다. 그는 고전 경제학 타파에 혈안이 돼 있었고, 이후에는 매몰비용처럼 자신의 모든 이론을 부정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기상천외의 세계
현재 주류 경제학은 합리적 기대이론이 이룩한 몇 가지 이론적 성과를 주류 이론에 접목하려는 시도중이다. 주류 경제학이 합리적 기대이론을 무시하지 못하는 이유는 첫째로 그것이 모든 시장의 완전성(균형 찾는데 시간 걸리지 않음)을 주장하며, 둘째로 적응 기대 가설(이전에 야구공이 빗겨갔기에 야구공 여러번 맞고야 위치 옮김)과 다르게 사람들의 합리성(정보 계속 갱신함)을 믿기 때문이다.
주식 시장에 대해 효율적 시장 가설을 믿는다면, 어떤 주식은 절대 과대평가 되고나 과소평가될 수 없고, 동물적 감각이나 타인과 차별화된 정보만이 유의미한 것이다. 이런 투자기법을 학문적으로 기술한 마코위츠(수학과 경제학 접목)는 다른 종목 분야에 투자하는 분산투자를 강조했다. 그와 함께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윌리엄 샤프는 자본자산가격결정모델을 만들고, 베타 계수 개념(시장에 좌우되는 정도)을 창안했다.
이들은 정부가 시장에서 행사할 수 있는 힘의 무력성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정부가 어떤 항공사의 주식을 매입해 주가가 뛰었다면, 사람들은 그 기업이 과대평가 됐다고 평가하고 주식을 팔 것이다.
하지만 합리적 기대이론은 루커스의 비판과, 오직 국민들이 예측할 수 없는 기습 전략만이 효력을 발휘한다는 한계에 마딱뜨린다. 합리적 기대이론의 충격은 기습 전략 추구 뿐만이 아니다. 합리적 기대이론이 옳다면, FRB는 인플레이션을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주류 경제학은 통화 긴축 정책은 처음에는 경기 침체를 야기하지만 뒤늦게 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말하지만, FRB가 화폐 공급량을 0% 수준에서 유지하겠다고 선언하면 기업들은 물가가 자동적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상품의 가격과 임금을 스스로 낮춘다. 즉 그들은 '적응 기대'가 아닌 '합리적 기대'에 의존하기에, 아직 오지도 않은 경기 침체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공공선택학파가 얘기하는 정치인들의 기만은 합리적 기대이론에 따르면 경제 모델을 계속 수정하는 유권자들에 의해 간파당한다. 주류 경제학은 거시 경제 문제에 있어서는 합리적 기대이론을 맹공격하지만, 주식 시장에 있어서는 수긍할 수 밖에 없다. 주식시장은 융통성있고 유동적이기 때문에, 노동자를 자르는 것보다 간단하게 운영되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인 모델의 합리적 기대이론에 대해 1)사람들은 오랜습관(적응 기대)보다는 합리적 기대에 더 의존하는가? 2)비록 그들이 합리적 기대에 의존한다 해도, 그들이 생각한대로 민첩히 행동할 수 있는가? 라는 두 의문이 제기된다. 주류 경제학자들 외에도, 심리학자와 행동경제학 역시 그들이 가진 기본 모델(경제행위자들은 '만족 추구자', '관성 중시', '미래 등한시') 따위를 토대로 이들을 달갑게 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