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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니의 등반을 조용히 지켜보고있는 또 다른 사나이들이 있었다. 부산 합동대 토왕폭 등반에 젊음을 태워온 그들은 10개월 가까이 준비하고 훈련하였다. 76년 8월1일 부터 한달간 토왕골주위의 선녀봉,노적봉,토왕성상단의 우벽 등을 오르며,토왕을 노리고있었다. 그들은 동대로 부터 얻은 모래내 재품의 바르트훅을 여러개 만들고,몇가지 장비를 고안하였다. 애숭이와 토왕77이 그것이다, 강창호(엑셀시오),이정희(청봉) 씨를 중심으로 배종순,김원겸,한성진(엑셀시오) 김문식,이종양,권경업(부산크라이머스) 이정호 씨 등 부산의 젊은이들이 손을 잡았다. 1월8일 설악에 도착한 합동대는 다음날 토왕의 상황이 크로니가 등반중이고 동국대는 대기중이고 에코팀은 암벽등반을 하고있다는것을 알고,비룡폭위에 캠프를치고 소토왕골등에서 훈련하며 11일저녁 토왕폭 상단에 반짝이는 불빛을 보았다 도깨비 불 같은, 시집간 처녀의 첫날 밤인가,부산의 산 사나이들은 까닭모를 안타까움이 가슴에 내려않았다. 크로니의 랜턴빛이다,아니다 별빛이다 라며 잠못이루는 하루를 보냈었다. 12일 새벽 토왕골에서 누군가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 아침, 토왕은 아무일 없었다는듯이 다시 선녀봉 너머로 얼굴을 내 밀었다.토왕으로 달려갔다, 하단만 재등하고 돌아서는 동국대팀을 만났다 마음에 품었던 여인을 두고 돌아서는 쓸쓸한 뒷모습을 보았다. 초등 재등에 개의치않았던 부산팀은 13일부터 등반을 시작했다. 이날 동굴을거쳐 권경업 배종순대원이 동대 테라스까지 진출했다. 다음날 권경업, 배종순 대원이 유마르로 테라스까지 진출하여 시원스레 등반하여 나갔다,하지만 토왕은 그들을 쉽게 놓아주지않았다. 테라스에서 20여m 를 나아간 권대원의 왼손의 아이스액스가 두동난 것이다,남은것은 오른손의 포레스트 아이스햄머와 타격용 햄머뿐이다.밑에서 보고있던 강대장이 급히 지시를 내렸다 우측 릿지를 통하여 아이스햄머를 지원하라고, 그러나 그것은 빨라도 30분이상 걸린다. 불안한 상태로 빙벽에서 30분이상 머문다는것은 또다른 위험을 부를수있다. 권대원은 그냥 오르기로 하였다 햄머 한개로, 그는 개구리처럼 움츠렸다가 일어서면서 잽싸게 두손으로 위로 찍었다. 오히려 및에서 보는 사람들이 더 불안한 상태였다, 그렇게 그는 하단을 완료하고 B C로 돌아온 대원들은 구조활동 까지 별려야 하였다,구경온 사람이 실족 의식을 잃는 바람에 부상자를 후송하여야 하였다 피곤한 몸으로. 16,17일은 휴식, 18,19일은 중단에 캠프를 설치하고 20일 상단으로 진입하였다. 이종양,김문식,권경업대원이 21,22일 시도한 우측 루트를 버리고 23일 김원겸,김문식대원이 가운데루트로 60m나 올라 오후 4시에 하강.24일은 상단의 2/3 지점 동굴까지 진출한후 하강하였다. 25일 08시10분 상단 출발점을 떠난 두 김대원은 오후 4시5분 상단을 완전히 올라섰다. 두사람은 마지막 테라스에 크로니에서 철수하지못한 주 자일이 카라비너로 연결된채 얼음 깊숙히 정상까지 연결된것을 볼수 있었다. 며칠전 토왕의 첫 순결을 내며 입은 상흔같은, 이로서 토왕의 재등은 깨끗이 이루어졌다. 하단이 1박2일,상단이 4박5일 합계 1주일 하단을 처음시작한지 12박 13일간 이었다. 확보용으로 15번,등반용으로 48번의 하켄을 사용한 등반의 결과였다. 부산 합동대 완등의 하객인지,등반을 마친 1월25일 두사람의 산사나이들이 토왕골로 찾아 들었다,서울 마운틴빌라 소속의 두사람은 말없이 토왕폭을 바라보다가 돌아섰다. 그들은 언젠가는 다시 돌아오리라......왜냐하면 토왕폭이 그들을 부르기 때문이리라...... 토왕폭은 그점에서는 한번도 실패 한적이 없다 혼 까지도 부른다. 토왕폭이 있는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