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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인지맥은 금북정맥이 칠장산에서 서남진하여 칠현산, 덕성산, 서운산, 성거산(579.1봉)을 넘어 걸마고개에 이르기 200미터 전에 서쪽으로 가지를 쳐 경부고속도로와 1번국도를 건너선 천안시 북부시가지를 지나서 노태산(141봉)과 천안 제3, 4공단을 지난다. 금산을 넘어 영인산(363.9봉)을 일군후 입암산(207.4봉)에서 서해에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44.8 Km(실거리54km)의 산줄기를 말한다. 영인지맥 고도표 어느듯 2016년 한해도 20여일 남았습니다. 금북정맥 라인에서 가지친 산줄기중에 영인지맥은 만뢰지맥,봉수지맥,석문지맥에 이어 네번째 답사길이 되겠습니다. 예정된 지맥 한바리를 위하여 출발시간을 점춰 봅니다. 이번에 실시되는 영인지맥은 초반 20km까지는 시내구간이 대부분이고 볼꺼리도 제한적이라 이구간을 야간에 진행하면 좋겠다 판단되어 토요일 오후시간 동서울 터미널에서 천안행 버스에 오름니다. 함께 할 송선배님은 천안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했기에 짧은시간 이나마 눈을 붙이고나니 천안터미널에 도착, 얼마후 송선배님도 도착 하시고.. 각원사까지는 버스로 이동하려 했으나 짧은거리라 편한대로 택시로 들머리에 도착하니 오후 3시30분이 되었군요. 주차장에서 행장을 꾸리고 각원사 경내를 가로질러 분기점으로 올라갑니다. 각원사 대웅보전각원사 대웅보전(覺願寺 大雄寶殿)은 34개의 주춧돌이 놓여 있으며, 100여만 재의 목재가 투입된 외 9포, 내 20포의 정면 7칸, 측면 4칸의 국내 목조 건물이다. 겹처마에 팔작 지붕이며, 사분합의 쌍여닫이문이다. 대웅전으로서는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법당이다. 1985년 11월 대웅보전에 모실 삼존불을 조성하였고, 1992년 9월 대웅보전 기공식이 거행되었다. 1993년 6월 대웅보전 상량식이 거행되었으며, 1996년 10월 대웅보전이 완공되었다. 태조산 자락에 자리한 각원사는 1975년에 경해법인이 창건했다. 경내에는 천하 최대의 좌불상으로 유명한 청동좌불상(청동대불)이 봉안되어 있는데, 높이 15m, 무게가 60톤에 달한다. 이 불상은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온 겨레의 염원을 불교도의 심신에서 아미타불로 조성한 것으로 각원사의 상징인 청동좌불상(청동대좌불) - 1975년 4월에 만들기 시작하여 1977년 5월에 완성된 것으로 불상의 정체는 서방정토의 주인인 아미타불이다. 예전 금북정맥때 이곳으로 내려온 곳이라 낮설지 않았고 등로가 편안해서 쉽게 오름니다. 분기점에 오후 4시 즈음에 도착해 마련한 분기점 표찰을 걸어놓고 인정사진을 박고 출발 합니다. 쌀쌀한 기온탓에 물도 안먹히고 산행하기 최적의 날씨입니다. 연암재와 국민은행 연수원이 내려다 보이고.. 좌측 성거산과 지맥분기점이 조망됩니다. 국토정보 지리원에 나오지않는 망향봉이란 표석을 지나 급좌틀해서 진행합니다. 일몰시간 등로가 황홀합니다. 무네미 고개를 지납니다. 밭뚝 가에는 똘감이 주렁주렁 달려있고... 23번 도로에 내려섭니다. 길 우측에는 큰 교회가 보이고.. 굴다리 아래에서 무단황단 합니다. 단국대학교 병원을 좌측에 끼고 돕니다 직진해서 큰매산에 올랐다가 다시 빽해서 우측으로 진행 합니다. 큰매산 정상부 전경입니다. 천안터널 앞에서 다시 무단횡단 합니다 자동차가 너무많이 지나가서 정말 조심해야 했습니다. 노태산 입구까지 시내길을 지나갑니다. 저녁도 사서먹고 여유롭게 진행합니다. 노태산은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성성동과 두정동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x141.2m로 천안 시가지의 북쪽에 위치합니다. 노태산에서 내려다 본 야경입니다. 천안시 시가지가 엄청 크게 보였습니다. 공단지역을 쉼없이 지나갑니다. 강모산이라고도 불리우는 고도 185.7봉을 지나고.. 용와산 삼각점 (238.6m) 용와산 삼각점 군도를 가로질러 진행하고.. 정상적으로 진해하면 녹색 휀스를 마주하게 됩니다. 전봇대 사이로 울타리문이 열리고.. 바로 건너도 마찬가지 울타리를 넘어 휀스 밖으로 진행해야 합니다. 연암산 정자와 봉수대를 둘러봅니다. 봉수대에서 송주봉님 역기가 일품입니다. 대동여지도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연암산 봉수대가 나오며 남쪽으로 천안군 대학산 봉수와 북쪽으로 직산현의 망해산 봉수와 응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조선지형도에 음봉면 중앙에 연암산이 한자를 달리해 표기되어 있다.
그녀는 이곳을 지키는 장수와 사랑에 빠졌는데 오랑캐가 다시 쳐들어오자 그 장수도 오랑캐와 싸우다가 전사하고 말았다. 적장의 침실봉사를 자원하여 마침내 적장을 암살하였으나 처녀도 역시 살해되고 말았다.
그 무덤에서 제비 한 쌍이 나와 이 바위에 둥지를 틀었으므로 그 바위를 제비바위라 부르게 되었으며 산 이름도 연암산이 되었다고 한다. 연암산은 충청남도 아산시의 음몽면 소동리와 동암리 등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292.7m입니다. 연암산 통신 안테나 약수터표지판이 붙어있는 안부를 지나고.. 3번군도(대동로)를 건넙니다. 휀스를 잡고 오르고.. 신설도로 절개지를 로프를 잡고 내려섭니다. 동물 이동통로입니다. 너무 가파르게 만들어놔서 사람도 다니기 힘든길 짐승들이 갈 수 있으런지 의문입니다. 곧이어 둔덕산에 도착합니다. 별 특징없는 야산입니다. 음봉 배수지가 있는 어르목고개 삼각점봉 고도 222.8m 국사봉 높이와 같아서 누가 착각하고 매직으로 쓰놨군요 한번 떨어졌다 다시 치고 오르면 국사봉이 나옵니다. 국사봉 222.8m ▲ 어라산 갈림봉 남쪽으로 0.8km 떨어진곳에 어라산(x123.6m)있음 어라산 아래 이충무공 산소가 있습니다. 이충무공묘(李忠武公墓)는 사적 제112호로써 충남 아산시 음봉면에 있는 노량해전(露粱海戰)에서 이 충무공이 전사하자 남해 고금도(古今島)에 모셨다가
금성산(錦城山)으로 이장했다가 1614년 현재의 어라산(於羅山)에 안장되었으며 묘역은 9,583㎡이며 묘 1기 외에 비석 1기,
상석(床石) 1기, 장명등 1쌍, 석상(石像) 1쌍이 보존되어 있다. 이정표 어라산400m는 잘못된 표기임. 갈림길 지나고 170봉을 넘서서면 성내고개가 나옵니다. 성내고개 철사다리.. 금산==국토지리 정보원 지도상에는 거대한 고압전주 공사가 한창 진행중 이였고 금산이라는 표시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시 쉼터가있는 봉을 지나고.. 자연바위 전망대가 있는 투구봉 입니다. 32번 송전철탑 공사중 널려있는 전기자재 초소봉을 지나고.. 철탑공사로 정상부를 거의 파먹은 삼각점봉(286.1m) 삼각점이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었습니다. 다시 29번 철탑을 지나고 배티고개 도로를 지납니다. 628번도로 배티고개 39번도로 아산지하통로를 지납니다. 영인산 제2매표소가있는 등로를 지나고.. 여명이 밝아오는 순간입니다. 갈림길에서 상투봉을 다녀옵니다. 이곳에서 일출을 보기위해 30여분 기다렸는데 춥기도 하고.. 일출을 보기위해 사람들이 올라오기 시작하더군요. 곡교천을 끼고 너른 들판을 이루고있는 멋진땅 입니다. 닫지봉과 영인산 정상부 그리고 깃대봉 모두가 조망되니다. 오래 기다리다 그냥 뒤돌아 나와서 깃대봉으로 오름니다. 억새숲 사이로 일출을 맞이합니다. 영광의탑 입니다. 깃대봉의 조망은 정말 일품입니다. 지나온 마루금이 그림처럼 보이고.. 깃대봉 넘어 (좌)아산대교가 (우)영인지가 조망됩니다. 아산의 진산 영인산(靈仁山·363.6m)은 영인면과 염치읍, 인주면에 걸쳐 있는 충남의 명산이다.
산세가 험준하지만 사람이 전혀 다치지 않고, 산꼭대기에 우물이 있어서 가뭄이 들 때 기우제를 지내면 매우 영험하기에 ‘영인’이란 이름을 얻었다.
또한 아산의 지명을 낳은 것도 영인산이다.
영인산 기슭에 어금니 형상의 어금니바위(부처바위)가 있는데, 아산(牙山)의 ‘어금니 아(牙)’자가 이 바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괴석이 신기한 부처를 이루어 3년 동안 다섯 원(사또)을 갈려 보냈다’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어금니바위’는 아산의 자존심 같은 존재로 추측된다.
영인산은 아산만은 물론 경기도 최남단 지역까지 훤히 굽어볼 수 있는 지형적 특징 때문에 우리 역사의 아픔을 온몸으로 견뎠다.
청일전쟁 때 일본군과 전쟁을 벌이기 위해 바다를 건너온 청나라 군사들이 아산만 갯벌로 상륙하는 광경을 지켜봤고, 6·25 전쟁 때에도 남북의 치열한 전투가 있었으며 미군이 37년 동안 주둔하면서 민간인 출입을 금지했었다.
그래서 영인산을 생각하면 서해를 바라보며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있는 모습이 떠올라 안쓰럽다.
하지만 1980년 말 미군 부대가 이전한 뒤 자연휴양림이 조성되면서 아산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628번도로를 지나고 곧바로 마루금을 따르면 염소,사슴 사육장이 나오는데 크게 휀스가 설치되어 있어 미리 우회를 하던가 해야합니다. 사육장으로 곧바로 진행 하려면 집 뒤 사육장 옆으로 철문을 열고 올라가 적당한 지점에서 울타리를 넘어야 합니다. 입암산 가는길... 진다리고개 방향이 반대로 설치된 이정목 입암산 우회로.. 입암정 정자 조금 떨어진 삼각점봉 천주교 묘지공원 예수·마리아·요셉의 가정을 형상화한 조각상입니다.
공세리성당은 1895년 6월에 설립되었고 이름은 조선시대 충청도 서남부에서 거둔 조세를 보관하였던 공세창에서 유래합니다. 드라마나 영화,CF 등의 배경지로도 자주 등장하는 곳입니다. 공세리성당[ 貢稅里聖堂]1895년 6월양촌성당(陽村本堂, 구합덕성당의 전신)에서 분리 창설되었으며, 공세리란 명칭은 조선시대 충청도 서남부의 조세를 보관하던 공세창(貢稅倉)이 있었던 데서 유래한다. 충청도 내포(內浦) 지역에 위치한 공세리 일대는 한국 천주교회 창설기에 이미 ‘내포의 사도’라고 불리던 이존창(李存昌)에 의해 복음이 전래되었다. 이 후 박해기를 거치면서도 신앙을 보존하던 이 지역은 신앙의 자유를 얻은 뒤에는 양촌본당의 관할 아래 있다가 1895년 6월드비즈(Devise, 成一論) 신부가 공세리로 부임하면서 본당이 설립되었다.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드비즈 신부는 이미 매입한 10칸 정도의 기와집을 개조하여 성당으로 꾸몄고, 1897년 6월에는 다시 3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공세창이 있던 일대를 매입한 다음, 1899년 그 자리에 성당과 사제관을 건립하였다. 또 1905년에는 조성학당(1927년 폐쇄)을 세워 교육 사업에도 앞장서 공세리 발전에 기여하였다. 한편 1920년대 들어 신자수가 증가하자 기존의 성당으로는 늘어나는 신자들을 다 수용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드비즈 신부는 자신이 직접 설계하고 중국인 기술자들을 지휘 감독하여 1922년 9월에 현재의 고딕 양식의 서양식 성당과 사제관을 완공하였다. 이 후 9대 주임 이인하(李寅夏) 신부는 1958년 초에 강당을 신축하였고, 1971년 1월에는 13대 주임 김동욱(金東旭) 신부가 성당을 증축하고 별관을 완공하였다. 멋지게 지어진 성당을 똑따기 카메라로 찍기에는 아까운 그림입니다. 일몰전 출발해서 야간에 많은 거리를 지나버렸고 다음날 정오경 산행이 종료되니 왠지 허전한 느낌입니다. 영인산에서 많은 시간을 지체하며 주변조망의 아름다움을 즐겼으며 이번 지맥에는 지난 팔음지맥 원샷종주에 비하면 반도 안되는 체력이 소모되었고 금북정맥에서 분기한 지맥이 군데군데 겨우 명맥이 유지됨에 안타까웠고 더이상 맥이 훼손되지 말고 오래오래 산줄기가 보호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함께 걸어주신 송주봉선배님과 실거리 55km의 산줄기를 무탈하게 종주를 마치게 되어 기분 좋습니다. 이로써 또하나의 지맥을 완주합니다. 2016.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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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가장 높은산이 영인산(363.9) 실거리 55km 몸풀만하니 산행이 종료되었나보네요
두분 이제는 이정도 난이도와 거리는 무박으로 진행하여도 될듯 한데요
산행후기 잘보고 갑니다.
이번 사진은 웬지 여유롭고 멋집니다.
둘을 다 얻으려는가,
하늘을 올려보면 땅을 못보고
땅을 내려보면 하늘을 못보네.
욕심을 따르자니 양심이 울고
양심을 따르자니 욕심이 훼방 놓네.
돈을 얻으면 진리를 잃고
진리를 좇으면 돈이 안 보이네.
튼실한 열매를 맺기 위해
봄 나무는 꽃을 일찍이 버리는가.
내가 두 길 가운데서 헷갈리며
살아온 까닭을 알겠네.
-차영섭 -
보라님 안녕하세요
세월의 흐름을 실감합니다.이제 한해도 저물어가는 12월중순
자신의 모습을 진지하게 성찰해 보려는
노력만큼은 어떤 순간에도 포기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맥산행..시작은 낮선 길을 헤매는 것과 같지만
두렵고 설레는 일이기도 합니다.
도전없는 삶은 별 재미없는 삶이 아닐까요
와
하루밤새
그렇게 멀리 가셨어요?
쉬엄쉬엄 가세요
수고하셨읍니다!
금북지맥 라인에는 지맥이 10여개가 그려져 있군요.
금북기맥을 비롯해
원샷으로 만뢰.영인.봉수.석문을 돌아봤습니다.
남은건..전월,칠갑.성주.원진.고산.망월이 남았군요.
한여름 빡씬구간 하느라 엄청 애로가 있었는데
지금은 기온 조건이 좋아서
무한질주가 즐겁기만 합니다.
매번 산행자료를 추억사진에 남기니
훗날 참고 자료로 사용하시면 좋을듯 싶습니다.
다녀가심 감사합니다.
대단하다는 말 밖에 할말없음 ??으로 두분 대단하십니다
화이팅!----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사랑의 말을
남겨 놓아야 함을 나는 배웠다.
어느 순간이
우리의 마지막 시간이 될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므로...
벙글님 안녕하세요.
아주 오래전 호남정맥부터 함께 했었죠?
그동안 엄청시리 함께 걸었는데
이제는 어쩌다 뵙는 그런시절이 되어버렸군요
건강이 허락 하는한 백두에서 좋은 산님들과
즐거운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멋진오후 되십시요.
두분 힘은 들었겠지만 멋저요.
언젠가는 가야할 지맥 먼저 사진으로 보고... 실행은 나중에..
수고많이 하셨습니다.
똑같은 산줄기라도
계절다르게 지나가면 보는것도 느낌도 다르고
미처 알지못한 것을 배우게 되는시간 이더군요.
자료를 서로 공유하며 즐거운시간 보내는것이
진정 산객의 도리라 생각합니다.
늘 감사드리며 금장지맥에서 뵙지요.
@본듯한 빠른기간내 이지맥도 답사해야 겠지요
힘내세요~~^
오늘은 문득 사계절이 있는 나라에
살고있다는 것이 참 고마운 하루입니다.
계절의 아름다움에 작은위안 받으실수
있다면 기쁘겠습니다.
오늘도 얼굴에 미소 잃지 마시고,
즐겁게 보내세요^^
차가운 밤공기를 온몸으로 맞으며 또하나의 지맥길을 마감했습니다.
휘황찬란한 천안의 야경을 감상하며 또는 공단의 멋없는 도로를 걸었고 수북히 쌓인 낙엽을 헤치며 밤길을 걸었고...
또하나의 추억을 남기고 다시금 되씹어 보며 이대장에게 감사할 뿐 입니다.
수고하였습니다.
늘 건강한 몸으로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하며
그 느낌에 더욱 행복한 하루입니다.
서로 다른 삶속에서 부엉이처럼 밤길을 밝히며
주말마다 선배님과 쉼없이 걸어봅니다.
송선배님과 저
서로의 인생을 비교해 보면
함수가(=)일치하는 것이
별로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산에서 만큼은 진정 전우가 아닐까요ㅋㅋ
늘 선배님이 계셨어 즐겁고
좀 더 알찬 내용으로 산길을 가도록 하겠습니다.
건강이 제일 이라 했으니
추워지는 날씨 속에 감기조심 하시고
즐겁고 행복한 나날 되시기를 바랍니다.
먼길 밤새 수고많았 습니다.
그동안도 그랬지만,,,
12월이 되니 하루하루가 아쉽고
마음도 바빠집니다...
해 놓은일도 없는데...
시간은 바쁘게만 흐르네요
올 한해는 회장님에게는
참으로 힘들어던 시간이 아니였나
생각합니다.
도솔에서 강추위로 동상을 획득하시고
기왕이면 금상이나 은상이지 하필이면 동상입니까?
동상도 상이라고 우기시면 할 말 없습니다.
늘 동메달을 목에걸고 다녀야 하는 몸이라면
혹한기를 이길 방법을 잘 연구해서
통증없이 즐거운시간을 보냈으면 합니다.
날로 폐활량도 좋아지고
주행능력도 좋아지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늘 그랬지만 가오에 죽고사는 회장님
날마다 힘솟는 그런 행복한 시간이였음
좋겠습니다....힘^^
참. 올만에. 대장님 보는것같네요. 아직도 여전하군요. 부럽습니다. 이제 쉬엄 쉬엄할때도 되지않앗을까. 어째던 지난날들이 되색임되네요. 언제나. 안전산행하시고 행복하세요.
안녕하세요?
광평 선배님과 산행을 안한지도 엄청 오래 되었네요.
요즘은 어디서 무슨 활동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기회 되시면 한번 놀러도 오시구요.
저는 카페에서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자주 카페 찾아주시구요
여유롭고 편안한 저녁 시간이 되시고,
내일은 상당히 추워 진다고 하네요
각별히 건강에 유의하시고
늘 좋은일만 있길 빕니다.
감사합니다.
에이구 이대장님 넘무리하지 마세요 수명단축되요~~
생소한 닉인데요?
누구~~?
공개하기 곤란하믄 문자 010-4738-0710
하여간 들러주셨어 감사합니다.
우와....입이 떡 벌어집니다. 국토를 가로 질러 새벽을 맞이하신 님들, 멋쟁이....잘 보고 갑니다.
온누리 선배님 잘 지내시지요?
어느듯 또 한해가 저물어 갑니다.
요즘은 어디서 활동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기회 되시면 백두사랑에 놀러한번 오십시요.
새해에는 꼭 함께걷는 그런날이 오겠지요?
내내 건강하시고 즐거운 성탄과 연말 보내십시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