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요정(料亭) 문화
요정은 우리나라 1060년대 ~ 180년대 8. 15. 광복전부터 있었던 정권실세들의 요정정치
(밀실정치) 의 요람이였던 유흥음식점 이였다.
1. 오진암 (梧珍庵)
1953년 서울시에 최초로 등록된 식당이자. 박정희정권의 실세였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박성철북한 제2부수상이 7. 4공동성명등을 논의 했던 곳이고, 야인 김두한등 정관계 인사들이
즐겨찿던곳이다.
원래 위치는 집단사창가가 형성되었던 종로3가 익선동에 있었으나, 이 터에 호텔을 짓기로 하고
전통한옥인 오진암 건물을 보존하기 위하여 기와, 대문, 석가래등을 현재 부암동주민센터뒤편에
옮겨 지어서 무계원(武溪園) 이란 이름으로 전통문화공간으로 탈바꿈 했다.
***가는방법 : 3호선 경복궁역 에서 마을버스타고 약10분가서 부암동주민센터정류장에
하차하여 주민센터뒤에 있다.
2. 삼청각 (三淸閣)
자연경관이 병풍처럼 펼처진 북악산 자락의 삼청각은,
1972년 박정희정권시절. 이후락정보부장등이 남북적십자회단, 한일회담등
막후 협상장소로 이용하는등 제4공화국 유신시설 요정정치의 상징이였다.
대지 5,884평에 6채의 한옥으로 구성 되었으며, 그중 별채에 해당하는 청천당은
박정희대통령이 즐겨 찿던장소였다
2001. 10월에 정통문화공연장으로 바뀌어 전통혼례, 약혼식장등으로 이용되고 있다.
위: 삼청각에서 바라본 북악산 숙정문과 성벽
3. 대원각 (大苑閣)
대원각 설립자 故 김영한(金英韓)은 1951년 성북동 청암장을 인수해
제3공화국시절 삼청각등과 함께 밀실정치의 요람이였던 대원각을 운영
해오다가 법정스님의"무소유"를 읽고 감명받아 1997년 당시 대지7,000평
,건물 40동으로 된 당시 시가 1,000억원상당의 대원각을 조계종 송광사에
시주하여 "길상사"로 이름을 바꾸어 송광사서울분원으로 탄생되었다.
법정은 그녀에게 " 길상화 (吉祥花)" 라는 법명을 지어주었다.
대원각 설립자 김영한은 16세에 기생이되어 일제시대에 유명한 시인인 백석
(白石, 본명: 백기행)을 만나 열렬한 연애를 하면서 3년간 동거생활을 하였으나
신분차이로 결혼치 못하고 해방이후 분단이되자 고향이 북한인 백석과 결별하고
대원각을 혼자 운영하면서 富를 엄청 축적하면서도 백석을 그리워 했다.
백석은 김영한을 "자야" 와 " 나타사 " 애칭을 만들어 불렀고 그녀를 위한
"나와나타사와 흰당나귀" 라는 시도 써서 김영한을 그리워했 했다.
비록 신분은 기생 이였으나 백석을 향한 일편단심은 죽는 순간까지 변치 않았다.
평생 백석을 그리워했던 자야는 백석을 그리워하는 마음에 줄담배를 피워 폐암으로
1999년 세상을 떠납니다
그녀가 떠나기 10일전 1000억원 상당의재산을 기부했는데 아깝지 않냐? 란 기자의질문에
자야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1000억 재산이 그 사람 시 한 줄만도 못해"
내가 죽으면 화장해 길상사에 눈 많이 내리는 날 뿌려달라고"
백석은 시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자야’를 등장시켜 전했다.
제목: 나와 나타사와 흰당나귀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백 석 -
4호선 한성대입구역 6번출구로 나와 02번 마을 버스를 타고 약10분 올라가면 길상사정류장이다.
법정스님의 기거 하시던 진영각
법정의 유골일부가 안치된 장소
한국3대 요정인 대원각을 시주한 故김영한(金英韓)보살의 공덕비
매년9월이면 법정이 평소 좋아하던 "꽃무릇" 활짝피어있다.
4. 청운각 (淸雲閣)
피땀으로 번 돈 정승처럼 쓰고 간 요정 ‘청운각’ 설립자
청운각 설립자 우산 故 조차임 여사는 1905년 경북 경산에서 출생하여 30대 젊은 나이에 홀로돼
1945년 해방이 되면서 서울로 상경, 가사도우미로 일하며 하루 한두 끼로 연명하다 노점상 주인의
후원으로 청계천변 우미관 옆에 국밥집을 개점했었다.
1950년 6·25 전쟁으로 또 한번 시련을 겪었으나 종로통에 다시 한식당을 개업해 모은 밑천으로
인왕산 자락에 있는 대저택을 매입, 최고급 전통요리집 ‘ 청운각’을 차렸다.
故 우산(又山) 조차임 여사의 유언에 따라 장학사업과 학술사업을 펼쳐 국가발전에 기여하고자 전
재산을 털어 1968년 우산육영회를 설립했다.
지난 50년 동안 500여명의 서울대 대학원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해온 결과 우산장학금으로 공부를 한 ’ 전영애· 정인섭·박찬욱·김빛내리 등 서울대교수 44명 배출 하였다.
청운각은 요정정치의 전성기 시절 이른바 '요정 3각'으로 불리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청운각에서 1956년 한일회담이 성사되기도 했다.
현재는 철거되어 빈터만 남아 있다.
5. 선운각
성북구 우이동에 1967년에 개장한 선운각은 당대 삼청각, 대원각 과더불어 서울의 3대
요정의 하나로 제3공화국 60~70년대 최고권력층의 밀실정치장소로 전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애첩인 장정이 여사가 운영하였다고 한다.
이 곳에서는 박정희 대통령과 3부 요인이 자주 연회를 가지기도 하였으며 외국 원수들을
접대하던 곳이기도 했답니다.
현재는 우이동종점 북한산등산로 입구 따라 도선사로 올라가는길에 있는 " 할렐루야 기도원"으로
사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