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줌이 찔끔
글 · 그림 요시타케 신스케
옮김 유문조
오줌이 찔끔 샜어.
오줌을 누기 전이나 누고 난 뒤에, 맨날 찔끔 새서, 맨날 엄마한테 혼나.
찔끔이니까.
바지를 입으면 아무도 몰라.
게다가 조금 지나면 금방 말라.
엄마한테 들키면 또 혼나니까 마를 때까지 밖에 나가야지.
내가 오줌이 찔끔 샜다는 걸 겉으로 봐서는 아무도 모를 거야.
나처럼 오줌이 찔끔 새서 곤란한 사람이 또 있지 않을까?
저기, 아저씨.
응?
아저씨도 실은 오줌이 찔끔 새지 않나요?
바지 벗고 팬티 한번 보여 주세요.
너, 뭐야. 버릇없이.
화를 내며 가 버렸어.
팬티를 보여 주지 않는 건 역시 오줌이 찔끔 샜기 때문일 거야.
모두 몰래 감추고 있지만, 세상에는 나처럼 오줌이 새는 사람이 틀림없이 많이 있을 거야.
앗, 저 아이 뭔가 곤란한 얼굴인데.
혹시, 오줌이 찔끔 샜나?
너, 혹시 오줌 찔끔 샜니?
으으응. 아냐. 옷에 붙은 이게 까끌까끌해서 불편해.
아, 아니었구나.
앗, 저 아이도 뭔가 곤란한 모양이야.
있잖아, 혹시 너도 오줌 찔끔 샜어?
아니. 계속 다시 신어도 양말이 자꾸 벗겨져서 불편해.
그래―
앗, 너는!? 너, 오줌 찔끔 새지 않았어?
아냐, 시금치가 이에 껴서 안 빠지지 뭐야.
아―――
실은 나도 짝꿍이 있었어. 오줌이 찔끔 새는 짝꿍.
우리는 늘 같이 놀았고, 짝꿍은 언제나 내 마음을 알아줬어.
일부러 그런 거 아니잖아― 응― 응―
근데, 요전에 멀리 이사를 가 버렸어.
짝꿍이 없으니 외로워. 이제 오줌이 찔끔 새는 아이는 나뿐인 건가…….
하늘은 이렇게 파란데. 나는 오줌이 찔끔 새고.
바다는 이렇게 넓은데. 나는 오줌이 찔끔 새고.
…… 다 말랐나?
…… 조금만 더.
앗! 너는? 너. 오줌 찔끔 샜지!?
아니야. 겉옷을 입었는데 속의 소매가 말려 올라갔어.
아―――. 그거 알지.
너지! 너야말로 오줌 찔끔 샜지!
아니거든. 콧구멍 속에 코딱지가 달랑달랑 달라붙어서 안 나오잖아.
아~~~~~
흥! 흥! 흥!
그렇구나――
겉으로 보면 알 수 없지만, 모두 자기만 느끼는 곤란한 게 하나씩 있구나.
같은 걸로 곤란해 하는 사람이 꽤 있을 것 같은데 별로 없네.
끼―익, 끼―익, 끼―익, 끼―익,
와, 다 말랐다! 다녀왔습니다. 쉬 쉬. 촐촐촐촐…… 으차.
어. 앗!? 또!? 으악――
후―
우리 손자, 왜 그래?
아, 할아버지. 난 언제까지 오줌이 찔끔 샐까…….
아하하하!
괜찮아, 괜찮아! 찔끔 샌 거잖아! 바지 입으면 아무도 몰라! 게다가 조금 있으면 마르잖아! 그리고…… 실은 할아버지도 오줌이 찔끔 샌단다!
어!? 할아버지도!?
고맙소
2020. 04. 백란주
사랑은 일러두기 가르침이 아니라 스며들기 익힘인 것 같다.
아버지가 훌쩍인다. 손등으로 눈물을 훔친다. 나도 덩달아 운다.
아버지는 자꾸만 나이를 감해간다. 어느 날은 아이가 되어있다. 아버지의 기억은 일곱 살이다. 상복을 입었는데 울지 못했다. 집 앞에 줄을 선 사람들이 많았고 어머니와 다섯 살 , 두 살 동생….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살아갈 일이 얼마나 힘들지를 알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아버지의 손목 안쪽에 ‘인’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내게 뜻을 물었다. 막연히 나는 어질 인이라 느꼈다. 평상시 아버지의 성품이 그렇기 때문이다. 철이 들어 못 견디게 힘들 때 참아야 한다, 참아야 한다며 먹물을 넣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삶은 참는 것에서 출발했다.
속엣말을 웬만해서는 하지 않는다. 좋은 것은 좋은 대로 조금 속상한 것은 속상한대로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며 아버지는 삭히는 편이다. 아버지의 화법과 행동은 늘 따뜻하고 평온하기 때문에 우리는 당신의 시간을 잊고 지낼 때가 많았다.
그런데 요즘에는 당신 가슴에 응어리진 실타래를 풀어낸다. 엄마가 실 끝을 잡았을 경우 가끔씩 아버지는 실 풀기를 멈출 때가 있다. 아버지의 일곱 살 보다 강한 엄마의 ‘유복자’ 카드가 던져질 때 당신은 멈칫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 실타래를 풀 때는 아버지 이야기만 들어주라고 해도 엄마는 또 엄마의 속내를 그 속에 얹는다. 실이 엉켜버린다.
내가 실타래 끝을 잡았다. 아버지의 일곱 살, 군대 간 이야기, 공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 하루 종일 있어도 말 한마디 하지 않는다는 엄마의 불만은 거짓부렁처럼 아버지의 응어리가 풀어진다.
술을 또 한 잔 따른다. 우울증과 알콜중독증.
마흔 넘어서 술을 배웠다는 아버지는 술이 없으면 잠들지 못한다. 아침, 저녁 구분 없이 술을 따른다. ‘이렇게 세월이 가버릴 줄 몰랐다’는 마음을 안주 삼아. 산처럼 느껴지던 아버지는 모든 것이 야위어 간다. 체력도, 생각도, 마음도.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의 건강을 말했더니 우울증, 알콜중독증으로 병원에 입원까지 했던 자신의 아버지를 그려낸다. 알콜중독의 폭력성으로 인해 입원을 시켰지만 그 또한 자식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결국은 집으로 모셨다고 했다. 그렇게 아버지와 미운 정으로 투닥거리다 아버지를 보내고 화해하지 못했던 미운 그리움을 내게 전한다.
오줌이 찔끔!
살아가면서 우리가 느끼는 각자만의 고민, 말 못할 이야기가 누군가도 겪고 있는 일이라 위로될 때 그 고민은 더 이상 고민도 비밀도 되지 않을 때가 있다.
바지에 오줌을 찔끔 한 아이 눈에 보이는 타인들의 고민 기준은 자신처럼 바지에 오줌을 찔끔거렸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친구들의 고민은 너무도 다양했다. 내 손톱 밑에 박힌 가시가 제일 아프다고 했듯이 나의 고민과 마주했을 때 나의 일이 가장 크게 느껴지기도 한다. 타인이 겪는 고통이나 상황은 현실이 아닌 상상의 일이 되기 때문이다. 나의 기준으로 상대의 일을 사소한 일로 치부하는 성급한 오류를 범하는 이유일지 모른다. 타인의 감정을 고통을 헤아리고 이해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옷 상표의 까끌거림, 소매가 올라간 일, 코딱지가 안 나오는 일… 그 아이에게는 고민일 수 있다. 무조건 사소한 일이라고 할 수 없다. 아무것도 아닌 듯한 그 일이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는 해결하지 못하는 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내부의 힘이, 외부의 힘이 부족해서든지 경험이 부족해서든지 처음 겪는 곤란함은 또한 힘들 수밖에 없다.
어느 순간 찾아온 아버지의 우울을 나는 무료함으로 읽었다. 하루가 너무 지겹고 길다는 아버지에게 그럼에도 과잉보호처럼 농사짓는 것도 못하게 했다. 아버지의 일상이 무너졌다. 스스로를 잊고 지낼 수 있는 것으로 술을 택했다. 다행히 순한 성품인지라 술을 드시면 주무시기에 그냥 그렇게 받아들였다.
통장적금을 1년으로만 넣는다. 이유가 있다는 말씀…, 자신의 시간을 재단하시는 걸까. 엉켜버린 실타래처럼 아버지께 실 끝을 드렸다. 속에 있는 멍울을 터뜨리라고, 토해내라고. 아직 아버지는 자신을 표현하는데 서툴다. 세상 사람들 대부분 고만고만한 고민을 갖고 사는데 아버지 당신은 당신만 그 고민 속에 갇혀있다. 그래서 아프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비어버리는 시간들이 생겼다. 단톡방에 파란하늘님이 인터넷강의 사이트를 올렸다. 덕분에 노인 심리학, 분노조절상담사 강의를 들었다.
슬픔은 상실감에 대한 정서적인 반응으로 어느 한 경우에 의해 야기되는 하나의 감정이며 우울은 분명한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장기간에 걸쳐 지속되는 불행한 기분이라 한다. 아버지를 우울로 그런 아버지를 보는 나의 감정을 나는 슬픔으로 썼다.
일상생활을 방해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심각하게 2주 이상 매일 대부분의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즐거움과 흥미 그리고 생산적인 활동을 상실한 ‘주요우울장애’, 병원에서 막연히 “우울증입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무엇 때문에, 왜 갑자기’하는 벽에 부딪치는 느낌이었다. 강의를 들으며 아버지의 심리상태를 떠올려 봤다. 주변 친구들이 하나 둘 떠나고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란 정리를 의미하는 느낌이었을 것 같다. 생산적이고 소비적인 능동적 삶이 아니라 수동적인 그 시간이 아버지를 잠식해버린 것이다. 30여명 넘던 갑계의 모임을 정리하던 날, 오줌이 찔끔 새서 함께 바지를 말려도 되는 친구들이 곁에 없으니 그 상실감. 나는 그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나의 관점으로만 바라봤던 아버지에 대한 시선을 거두어 가는 중이다. 아버지의 고민으로만 봤던 욕심스러운 딸의 시선이었다. 세상의 아버지들은 다 노인이 되고 노인이 되었는데 나는 아버지를 ‘노인’의 나이로 보지 않았다. 영원한 나의 슈퍼맨처럼 아버지를 바라봤다. 그래서 아버지의 인지사고력, 판단력, 기억력이 흐려지는 것은 그 나이에 ‘찔끔’거릴 수 있는 사실인데 나는 당신을 우리 사남매의 슈퍼맨으로만 기억하고자 한 것 같다.
작은아이가 외할아버지 생신 선물로 치매예방 퍼즐 맞추기, 플레이콘을 보내왔다. 그림책을 함께 읽고 퍼즐을 맞추고. 엄마 아버지의 놀이선생님이 되고 싶다. 자격증을 내세우며 아버지의 심리상담사가 되고 싶다. 오줌이 찔끔! 아버지 대부분 사람들은 찔끔거려요. 종류만 다를 뿐!
아버지 당신만의 일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들도 겪을 수 있는 일이기에 진정 당신의 실타래를 다시 감아주고 싶다.
“너거가 예쁘게 커줘서 고맙다!”
막내도 쉰이 넘었는데 우리를 보고 예쁘게 커줘서 고맙다 말한다. 나는 아버지 당신이 더 고마운데.
고맙소, 고맙소, 아버지 당신을 만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