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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장례(葬禮)
유족위로예배
성경은 인생과 죽음을 무엇이라고 말할까요?
인생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인생은 하나님으로부터 와서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인생은 하나님이 주신 복을 누리며 하나님께 감사하면 사는 것입니다.
죽음은 인생을 마치고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죽음은 이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앞으로 가는 것입니다.
죽음은 성도에게는 이제 승천하여 안식하는 것입니다.
1. 인생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전도서 2:24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
수고한 보람으로 먹고 마시며 즐기는 일만큼 사람에게 좋은 일은 없다. 내가 보기에 물론 이것은 하느님께서 손수 내리시는 것이다. (공동번역 성경)
전도서 3:12~13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전도서 5:18~19
사람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에서 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보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그것이 그의 몫이로다
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2.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전도서 7:13~14
하느님께서 이루어놓으신 것을 보아라. 하느님께서 구부려놓으신 것을 펼 사람이 어디 있는가?
일이 잘되거든 행복을 누려라. 일이 틀려가거든 이 모든 것이 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인 줄 알아라. 아무도 한 치 앞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아라(공동번역 성경)
전도서 11:9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3. 죽음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28 – 예수님의 말씀
나는 아버지께로부터 나와서 세상에 왔다가 이제 세상을 떠나 다시 아버지께 돌아간다.
고린도전서 1: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빌립보서 1:21~23 – 사도 바울의 고백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요한복음 16:16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나를 다시 보게 될 것이다."(공동번역성경)
요한복음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고 노태두 집사님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이 세상에 오셔서
지난 73년의 인생을 사시면서
부모, 가족, 형제들과 자녀, 친지들과 이웃에게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셨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 곁에서
우리와 함께 인생의 복락을 누리시다가
이제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셨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하늘에는 예수님도 계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라 하늘에 올라가셨습니다.
우리는 승천하신 고 노태두 집사님의 영원한 안식을 믿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 우리도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장례(葬禮)2-입관예배
입관예배는 입관을 마치고 고인과의 이별을 아쉬워하고 슬퍼하는 유족을 위로하면서 함께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인생과 죽음을 다시 정리합니다:
인생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인생은 하나님이 주신 복락을 누리며 사는 축복입니다.
인생은 하나님으로부터 와서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우리는 하늘로부터 와서 다시 하늘로 올라갑니다.
그러므로 고인은 지금 승천하여 예수님과 함께 계십니다.
이제, 가장 가치 있는 삶, 후회 없는 삶을 어떻게 살 수 있는가 생각해 봅시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한번뿐입니다. 다시 태어나는 윤회사상은 불교의 세계관입니다. 설령 내가 다른 누군가로 다시 태어난다 한들 그것은 지금의 나와는 다릅니다. 만약 같다면 나는 전생에 무엇이었겠습니까?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사람들만이 자신이 누구인지 혼동하며 살아갑니다. 온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은 지금의 자신은 오직 하나인 유일한 존재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살아갑니다. 그처럼 인생은 오직 한번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봅시다:
마태복음 16: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천하보다 소중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가치 있는 삶이었노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온 세상에는 수많은 생물이 살고 죽습니다. 이 땅에는 수많은 꽃들이 피고 집니다. 그 중에 어느 꽃이 가장 가치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수많은 인생이 있는데 그 중에 어떤 인생이 가장 가치 있는 삶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분명히 말합니다: ‘나는 헛되게 살았다!’ 또 말합니다: ‘나는 여한이 없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성경을 통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만약 인생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면, 인생이라는 선물을 주신 하나님의 뜻이 있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 있다고 성경은 일깨워줍니다:
미가 6:6~8, 공동번역 성경
“높이 계시는 하느님 야훼께 예배를 드리려면,
무엇을 가지고 나가면 됩니까?
번제를 가지고 나가야 합니까? 송아지를 가지고 나가야 합니까?
숫양 몇 천 마리 바치면 야훼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거역하기만 하던 죄를 벗으려면,
맏아들이라도 바쳐야 합니까?
이 죽을 죄를 벗으려면, 이 몸에서 난 자식이라도 바쳐야 합니까?”
이 사람아, 야훼께서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무엇을 원하시는지 들어서 알지 않느냐?
정의를 실천하는 일, 기꺼이 은덕에 보답하는 일
조심스레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일,
그 일밖에 무엇이 더 있겠느냐?
그의 이름을 어려워하는 자에게 앞길이 열린다.
1. 정의를 실천하는 일
이것은 진실하고 참되게 사는 것입니다. 욕심에 굴복하면 진실을 버리고 거짓말을 하여 공동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무리수를 두게 됩니다. 하나님이 책임져 주실 것을 믿을 때 우리는 진실할 수 있습니다. 진실하고 참되게 살아가는 사람은 당당할 수 있습니다. 숨길 필요가 없는 당당한 인생을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2. 기꺼이 은덕에 보답하는 일
내가 이렇게 은혜를 입었으니 나도 은혜를 베풀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지금까지 은덕을 입고 살아왔으니 나도 내 뒤에 오는 이들을 이끌어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많이 받았으니 나도 나누며 살아야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누며 베푸는 따뜻한 인생을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3. 조심스럽게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일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 앞에서 조심스럽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집안에 웃어른이 계시니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존중하듯이 하나님 앞에서 조심스럽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안하무인으로 사람을 무시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나는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이 이 세상에 보내신 사람임을 기억하고 사는 사람은 이웃에게 덕을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은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것입니다. 서로 믿고 신뢰하는 세상은 이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어려워하며 조심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 위에 세워집니다.
결론:
한번뿐인 소중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인생이라는 선물을 주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갑시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세 가지입니다. 정의를 실천하는 삶입니다. 즉, 참되고 진실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은덕에 보답하고자 감사하는 마음으로 베풀고 사는 것입니다. 세 번째, 조심스럽게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삶에는 후회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으면서도 아깝지 않다고 여길 것입니다. 우리의 남은 인생이 이처럼 가치 있는 삶으로 빛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끝>.
그리스도인의 장례(葬禮)3-발인예배
발인(發靷)은 고인의 시신을 빈소에서 장지로 옮기는 장례절차입니다. 그 동안 정든 가족과 고향을 떠나는 자리이기에 발인식을 영결식(永訣式)이라고도 부릅니다. 영원한 이별을 고하는 자리라는 말입니다. 장례식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의식이 바로 이 발인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발인을 앞두고 우리의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여 장례식을 정중하고 의미있게 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1. 고인과 이별하여 슬퍼하는 유족에게
저는 앞서 두 차례의 장례식 예배를 통해서 성경이 말하는 인생과 죽음에 대해서 소개해 드렸습니다. 장례식장이 아니면 좀처럼 생각해 볼 수 없는 주제이기도 하고, 유족에게 위로와 희망을 드리고 싶은 마음에 드린 메시지였습니다.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와서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인생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렇게 한 평생 복락을 누리며 살다가 하나님이 계신 하늘로 올라갑니다. 하늘에는 예수님도 계셔서 우리를 두 팔 벌려 맞아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출생으로 시작하여 죽음, 그리고 승천으로 인생을 마칩니다. 고 노태두 집사님도 73년의 인생을 사시다가 지금은 승천하여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가셔서 주님의 품 안에서 안식하고 계실 것입니다.
인생이 이처럼 하나님의 선물일진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아간다면 그 삶은 가치 있고 빛나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어제 입관예배 때 살펴본 바와 같이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참되고 따뜻하고 겸손하게 사는 것입니다. 서로에게 진실하고, 받은 은혜에 대하여 감사하면서 덕을 베풀고, 서로 존중하면서 살아간다면 그 삶은 하나님께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이제 잠시 후에는 고인을 모신 관을 메고 이 빈소를 떠날 것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는 고인과 이 세상에서 영영 이별할 것입니다. 유족에게는 가슴이 미어지고 슬픔이 밀려오는 시간입니다. 더 잘해드리지 못한 아쉬움과 더 이상 얼굴을 뵐 수 없고 손을 잡을 수 없다는 안타까움으로 슬픔이 마음에 가득해지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 하나님의 약속을 들으면서 위로와 소망을 찾기를 바랍니다.
2. 내세에 대한 기독교의 가르침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현세(現世)라고 하면, 우리가 죽은 후에 맞이하는 세상은 내세(來世)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죽음을 통해 현세에서 내세로 들어갑니다. 사람이 하늘에서 와서 다시 하늘로 올라가므로 죽음 이후에 사람은 승천(昇天)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승천하여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 앞에서 안식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떻게 될까요? 성경을 통해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성경말씀을 따라 내세를 믿는 신자들은 희망을 가지고 있으므로 가족과 사별하는 슬픔 속에서도 너무 슬퍼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신자들에게 어떤 희망이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부활의 희망입니다.
성경에 보면 바울 사도는 가족을 잃고 슬퍼하는 성도들에게 위로와 권면의 글을 편지로 보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13~14
13. 형제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이 이미 죽은 사람들에 대해서 모르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도 희망 없는 사람들처럼 슬퍼하게 될 것입니다.
14. 우리는 예수님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다가 죽은 사람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실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듯이, 예수님을 믿다가 죽은 사람들도 하나님이 예수님과 함께 데리고 오신다는 약속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이 다시 새롭게 되는 때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 때는 우리가 몸으로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하나님은 약속하셨습니다. 그것을 부활(復活)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12일이 있으면 부활절입니다. 우리가 부활절을 기념하는 것은 이 약속과 소망 때문입니다.
계속 바울 사도의 권면을 들어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5:35~38, 42~44
35. 그러면 "죽은 사람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떤 몸으로 살아나느냐?" 하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36. 어리석은 질문입니다. 심은 씨는 죽지 않고서는 살아날 수 없습니다.
37. 여러분이 심는 것은 장차 이루어질 그 몸이 아니라 밀이든 다른 곡식이든 다만 그 씨앗을 심는 것뿐입니다.
38. 몸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뜻대로 지어주시는 것으로 씨앗 하나하나에 각각 알맞은 몸을 주십니다.
42. 죽은 자들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썩을 몸으로 묻히지만 썩지 않는 몸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43. 천한 것으로 묻히지만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약한 자로 묻히지만 강한 자로 다시 살아납니다.
44. 육체적인 몸으로 묻히지만 영적인 몸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육체적인 몸이 있으면 영적인 몸도 있습니다.
3. 출생과 인생, 죽음과 승천, 그리고 귀환
이렇게 보면,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이해합니까? 우리의 출생은 하나님으로부터 났으니 하늘에서 이 땅으로 온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이 선물로 준 것이니 인생 그 자체가 축복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삶을 마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늘로 올라갑니다. 그것을 죽음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죽음 이후의 세상, 곧 내세에 대하여 무엇을 믿습니까?
우리는 죽음 이후에 하늘로 올라가 예수님과 더불어 하나님 앞에서 안식한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쉬는 것입니다. 그리고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이 세상을 다시 새롭게 만드실 때, 예수님과 함께 있던 우리를 데리고 이 세상으로 다시 오실 때를 기다립니다. 그 날에 우리는 새로운 몸으로 일어날 것입니다. 그것을 부활이라고 합니다. 그 때는 다시 병들거나 아프지 않습니다. 그 때는 다시 눈물과 죽음이 없습니다. 그 날에는 우리가 썩지 않는 몸으로 살 것입니다. 강하고 영광스러운 몸으로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쁨이 충만할 것입니다. 그 날에 우리는 영광 가운데서 빛나는 노태두 집사님을 만날 것입니다.
이처럼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출생하여, 인생이라는 선물을 받아 누리며 살다가, 죽음과 함께 승천하여 예수님과 더불어 안식하면서 때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새롭게 된 이 세상으로 돌아옵니다. 다시 돌아오기에 귀환(歸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날에는 우리의 모든 눈물과 아픔이 변하여 기쁨의 노래가 될 것입니다.
발인의 안타까움 속에서 귀환과 재회의 소망을 마음 속에 묵상하면서 슬픔을 이겨나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끝>.
그리스도인의 장례(葬禮)4-화장(火葬)예배
제목: 부활의 소망으로 살자
본문: 고린도전서 15:58
1. 장례예배를 마치며
우리는 지금 고 노태두 집사님의 시신을 모신 관을 하관(下棺)하였습니다. 화장을 통해서 고인의 시신은 유해(遺骸)가 되어 유골함에 담길 것입니다. 관이 화장장의 소각로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볼 때 마음이 아프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삼일장(三日葬)의 마지막 날 지치고 고단한 몸과 마음을 여기까지 버티고 오신 유족들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전함으로 위로를 드리고 싶습니다.
고 노태두 집사님은 형제들 중에서 따뜻하면서도 말없이 권위를 가지고 장남의 역할을 다하신 분이라고 합니다. 고인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까지 정성껏 섬겨오신 유족들과 친지들의 화목한 모습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고인도 아마 이렇게 화합하는 형제들과 후손들을 보면서 흐뭇해 하시리라 믿습니다.
이번 장례식은 기독교 장례 예식을 따라 진행되었습니다. 고인이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분이었기에 그렇기도 하지만 형제들이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고인과 함께 했던 짧은 시간의 인연을 기억하면서 이 장례식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몇 차례의 메시지를 통해서 기독교 신앙을 가진 분들이 인생과 죽음, 그리고 내세를 어떻게 믿고 소망하는지를 말씀드렸습니다.
기독교 신앙을 믿고 고백하는 우리는 노태두 집사님의 장례식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는 하늘에서 와서 다시 하늘로 올라갑니다. 그러므로 인생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주신 축복의 몫이 있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통해 세상과 이별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우리를 지으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뵐 때 하나님은 우리를 위로하시고 기쁘게 맞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늘에서 예수님을 뵐 것입니다.
그렇게 안식을 누리며 기다리다가 때가 되면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새롭게 된 세상에서 몸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것을 부활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우리는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기독교인들이 믿고 소망하는 부활입니다.
2. 창조신앙과 부활신앙
우리가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그것은 희망입니다. 결코 헛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수고와 헌신, 진실을 지키려는 노력, 덕을 베풀고 자비를 실천하는 삶은 반드시 보답이 있다는 희망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음을 믿는 사람은 또한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심을 믿습니다. 창조신앙을 가진 사람은 또한 부활 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다. 창조신앙을 가지면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고 다르게 이해하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부활 신앙도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을 줍니다.
그러면 창조신앙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창조신앙은 온 세상을 지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는 신앙입니다. 나도 세상의 일부이므로 나를 지으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창조 신앙 속에서 우리는 이 광활한 우주와 오묘한 세상이 하나님의 작품임을 믿고 고백하며 노래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봄날의 화사한 꽃을 보며 놀라워하며 기뻐합니다. 동시에 그것을 만드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인 자연을 잘 관리하고 가꾸는 것이 우리의 소임임을 깨닫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이 세상을 더 아름답고 풍성하게 가꿀 수 있습니다. 자연을 그저 돈벌이의 재료로만 여기는 생각은 창조신앙을 갖지 않은 마음에서 쉽게 자라납니다.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창조를 믿으면서 동시에 몸이 다시 사는 부활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죽음에서 다시 일으켜 살리신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것은 마치 태초에 하나님이 공허하고 혼돈한 땅을 생명으로 충만한 세상으로 창조하신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면 이 세상을 새롭게 고치시고 완성하실 것도 우리는 믿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실 것도 믿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죽은 사람의 부활을 믿을 때 우리의 생활은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됩니다. 진실을 위해 목숨을 잃는 것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억울한 사람을 돕고, 약한 사람을 일으켜주는 것도 하나님의 창조활동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참되고 따뜻하게 살다가 설령 목숨을 잃는다 해도 그것은 결코 헛된 죽음이 아닙니다.
성경을 보니 바울 사도께서는 부활의 소망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마지막으로 이렇게 당부를 합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고린도전서 15:58
예수님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 부활신앙을 가지고 살면 예수님처럼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처럼 우리도 다시 부활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예수님을 다시 살리신 것처럼 우리 몸도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이처럼 부활 신앙은 우리에게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희망과 용기를 줍니다. 그렇게 살다가 우리 몸이 쇠약해지고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다시 살아나는 부활을 믿는다면 우리는 희망을 붙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능히 그렇게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리고 참되고 따뜻하게 살다가 죽은 우리를 하나님이 다시 살리시고 그 날에 크게 칭찬해 주실 것입니다.
3. 맺는 말
이번 장례식을 통해서 우리는 고인을 정성껏 모셨습니다. 그리고 고인의 유해는 괴산호국원으로 갈 것입니다. 나라를 위해 헌신한 고인의 삶을 국가가 기리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인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과 진심을 하나님도 부활의 날에 크게 칭찬하실 것입니다.
우리들도 이런 희망과 기대를 가지고 우리의 삶의 터전으로 나가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언젠가 우리의 유족이 우리의 장례식을 치르는 날 우리의 삶을 기억하며 감사와 존경을 보낼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가문은 길이 빛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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