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23(금)mbc여성시대 1부 양희은,서경석입니다[1].m4a
목욕탕에서
이내빈
손주 녀석과 블록놀이를 하고 있는데 녀석이 뜬금없이 목욕탕을 가잔다. 이마에 송글송글 맺혀있는 땀방울을 닦아주며 “갑자기 목욕탕은 왜 가?” “가자. 할아버지 목욕탕 응.” 퉁명스런 표정으로 내 손을 잡아끈다. 나는 아직 녀석과 단 둘이 목욕탕에 가본일이 없다. 녀석은 다짜고짜 구두를 들이밀며 발을 동동거린다. 신발을 신고 따라 나섰지만 영 내키지 않았다. 왜냐하면 녀석의 장난기를 잘 알고 있는 터라 공중목욕탕에서 벌어질 민망한 상황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녀석의 성화를 이길 수 없어 마지못해 승낙을 하고 목욕탕으로 가는 장도에 올랐다.
녀석은 앞장을 서며 길을 모르는 나를 안내 한다. “할아버지 이쪽이야” 녀석은 제법 익숙한 듯 내 손을 잡아끈다. 씩씩하고 활기찬 폼이 아주 신이 나 있다. 녀석은 올해 여섯 살이고 유치원에 다닌다. 가끔 할아버지 때문에 유치원에 안 간다고 떼를 쓰기도 하는 녀석이다. 할아버지 자고 가라고 구두를 숨기는 녀석의 욕심을 잘아는 며느리는 눈치빠르게 양보를 하기도 한다.
목욕탕 입구를 들어서며 카운터의 아주머니와 자연스레 인사를 나눈다. “은우 자주 와 봤어?.” “응 아빠랑 몇 번.” 락카 룸에 들어서자 머뭇거림없이 옷을 벗고 키를 채운다. 동작이 빠른 녀석은 손목에 키를 걸면서 할아버지를 빤이 쳐다보며 “구두는 여기에 넣는 거야”하며 참견을 한다. 손주 녀석과 알몸으로 목욕을 한다는 게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탕속으로 들어 갔고 녀석은 득의 만만했다. 그때부터 목욕탕은 녀석의 독무대였다. 온 냉탕을 왕복하는가 하면 살금살금 다가와 나의 귀를 잡아 당기고는 숨는 척 하다가 들키면 아쉽다는 듯 깔깔대며 웃어댄다. 목욕탕엔 대여섯 명의 성인들이 조용히 온욕을 즐기고 있는 터라 녀석의 행동으로 인하여 혹 방해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러웠고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단단히 타일러 놓고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해놓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부터 녀석의 장난기는 여지없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탕속에선 물싸움을 하자고 달려 들며 물을 튀기기 시작했다. 그나마 사람들은 녀석의 행동을 빙그레한 웃음으로 보아넘기는 듯 녀석의 장난에 귀엽다는 듯 동조하는 이도 있었다. 이에 자신을 얻은 녀석은 그 다음 부터가 문제였다. 살금살금 내게 다가와 냉탕에서 퍼온 찬물을 끼얹고는 깔깔대며 도망치는 것이었다. 녀석은 장난치는 재미에 푹 빠져 있는 것 같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폐가 된다고 타일렀지만 녀석의 안중에는 이미 목욕탕은 놀이터가 되어 있었다. 장난질이 너무 심해져 정색을 하고 혼을 냈더니 녀석의 표정이 금새 달라지며 계면쩍은 듯 내 목을 잡고 빙빙돌기 시작한다.
“은우야 할아버지 등 좀 밀어다오.” 잡고 있던 내 목을 놓으며 녀석은 흔쾌히 물을 퍼 부으며 쬐끄만 손으로 나의 등을 긁어댄다. 녀석의 고사리 같은 손이 접촉되는 순간 이만볼트의 전기에 감전된 듯 전신은 진동으로 진저리 쳐진다. 녀석을 번쩍들어 안아주니 자지러질 듯 깔깔댄다.
“할아버지 재밌었어.” “응 할아버진 너무너무 재미 있었단다. 다음에 또 오자.” “응 할아버지 다음에 꼭 같이 오자. 알았지.” 손가락을 걸며 다짐하는 녀석의 눈망울이 깊고 아늑하다. 아이스바를 먹으며 앞장서 걸어가는 녀석의 모습은 앙증맞고 즐거움으로 가득 차있다. 4월의 햇살이 말간 연록색 이파리에서 화려하게 부서지고 형언할 수 없는 행복감이 안개처람 나를 감싸 안는다.
첫댓글 손자사랑이 넘쳐나는 수필 감상 잘했습니다.^^ 손자가 어른이 되면 온탕처럼 뜨끈한 추억에 시원한 미소를 짓겠지요. 사랑이 콸콸 솟아나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집니다. 고맙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주와 목욕탕에 함께 갈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요즘은 할아버지와 함께 추억을 만들기가 여간해서는 쉽지 않잖아요 참으로 행복하고 정경운 풍경입니다. 송현님께서는 다복하게 사시는것 같아요
사랑 뚝뚝 떨어지는 한 편의 수필이 전염병처럼 번져 사람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덥히게 할 것 같아요
가을일 다 마친 친정 엄마 모시고 목간에 가서 등을 시원하게 밀어들이고 싶게 하는 수필 잘 감상하고 돌아갑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
분신 같은 손자를 볼 때면 저 속에 나의 뭔가가 쪼끔이라도 들어앉아 있을턴데..
하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친해지려면 그 사람과 목욕탕에 가라고 하는데요?
더욱더 핏줄의 농도가 진해졌겠어요.
그 녀석의 장난기가 정말 도를 넘는 거 같습니다.
혹시 시인님의 어린시절은 아닌지 모르겠네요.
시인님의 행복감이 오래오래 머물러 있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