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과 속이 다른 사람을 표현할 때에 우리는 과일을 예로 들어 말하는 경우가 많다. 우파처럼 보이는 사람이 진보적 정치의식을 가지고 있으면 수박 같다고 말하고 반대로 좌파적 주장을 많이 하는 사람이 부르주아적 생활태도를 보이면 사과 같다고 말한다. 직장이나 여러 커뮤니티를 통해 홍콩 현지인들을 많이 접해 본 외국인들은 홍콩인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그들은 홍콩사람들이 바나나 같다고 말한다. 겉은 아시아인의 생김새인데 의식구조는 서구적이라는 말이다. 아편전쟁 이후로 영국의 지배를 받아왔으며 영국이 이식한 정치경제 시스템 속에서 150여년간 생활한 사람들이기에 서양인 같은 의식구조를 가졌다고 해서 특별히 이상할 것은 없다. 그렇지만 같은 피부색을 가지고 있고 생김새도 비슷하여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가 실제 생활 속에서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면 당황하게 되며 그 때서야 홍콩인의 의식구조를 떠올리게 된다.
홍콩에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가장 놀라웠던 점은 홍콩인 직장인들이 나이에 대하여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직급이 높은 직원이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을 것이라는 추측은 자주 빗나갔으며, 자기 윗사람으로 대여섯살에서 심지어 열 살 이상 나이 어린 상사가 와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실제로 그런 경우가 신경 쓰여서 괜찮냐고 슬쩍 물어보면 무엇이 문제냐는 반응이었다. 하기는 회사에서 상호 직책을 부르는 일이 전혀 없는 문화이며 상대방을 영어식 이름만으로 호칭하니까 당장 표면적으로 부딪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나이 어린 상사의 업무지시를 받고 보고해야 하는 상황이 거슬릴 수도 있는데 홍콩 직장인들은 아무런 거리낌이 없단다. 광동어가 구어체이고 윗사람에 대한 경어가 없는 언어이기 때문에 사회생활에서도 나이의 장벽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지내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홍나이와 더불어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젠더 갈등인데 홍콩사람들은 다른 나라에서의 성차별 이슈를 의아스럽게 생각한다. 업무적 도움이 필요해서 정부 부처를 방문하여 담당자를 만나보면 조직 책임자가 여성인 경우가 허다하며 회사의 주요부서에서도 여성이 더 액티브하게 조직을 지휘하는 경우가 아주 흔하다. 오히려 홍콩에서는 여성이 더 활동적이고 도전적이며 남성들이 다소 기가 꺾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중화권 여성들이 드세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로 “홍콩여자 세 명이 대만여자 한 명을 못 이기고, 대만여자 세명이 상해여자 한 명을 못 이긴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그렇지만 이 말은 상해여자 세명이 홍콩여자 한 명을 이기지 못한다고 끝을 맺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오래 전, 홍콩 온 지 얼마 안되어 목격한 장면은 3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아파트 단지에 화단이 있고 그 옆에 벤치와 그늘막이 있었는데 거기에 출근 중인 것으로 보이는 젊은 부부가 서서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여자는 칼칼한 고음으로 소리를 지르고 남자는 무슨 변명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녀가 남자의 뺨을 후려지는 것이 아닌가. 얻어 맞는 것으로 보아 분명 남자가 잘못을 저지른 모양이겠지만 아침 출근 길이고 보는 사람들도 있는 아파트 화단에서의 사고는 충격적이었다.
명분을 중시하는 한중일 삼국의 정서에 비추어 실리에 방점을 찍는 홍콩인들의 의식 구조는 확실히 서구적이다. 예를 들어 함께 일하던 직원이 회사를 떠나서 창업을 하고, 아직 경제적 여력이 안되어 회사운영에 필요한 시설을 빌려 써야 할 경우 이전 회사에 부탁하면 대개가 그 협업을 받아들인다. 자기와 함께 일하던 직원이 독립한다고 하여도 괘씸하게 생각하거나 명분에 집착하여 미래의 경쟁자에게 뭣하러 편의를 봐주느냐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가 시설을 빌려주지 않으면 다른 사업자가 시설을 빌려줄 것이기 때문에 적당한 사용료만 합의되면 실리를 쫓아 기꺼이 임차를 허락한다. 같은 맥락에서 홍콩인들은 창업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동업도 잘하며, 동업자들은 대개 직급과 사업 기여도에 매이지 않고 동일하게 디렉터(Director, 董事) 명함을 내미는 경우가 빈번하다. 디렉터는 홍콩에서 이사회 멤버를 의미한다. 물론 투자금이나 사업 기여도에 따라 회사 지분을 다르게 나누겠지만 적어도 직급이나 직책에 집착하지는 않는다. 실용적 사고는 일반 직원들의 경우에도 특이한 형태로 나타난다. 첫째로 직원들은 직위에 별 관심을 두지 않으며 월급 액수에 더 신경을 쓴다. 직위가 높으면 책임이 많아지기 때문에 승진에는 큰 욕심을 보이지 않지만 임금 인상에는 아주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둘째로 직원들은 급여인상에 대해 회사측에 매달리지 않는다. 인상된 급여가 기대보다 낮으면 소리 소문 없이 다른 회사의 입사 면접을 보고 합격하면 조용히 떠난다. 이 때 상급 관리자가 아차 싶어서 떠나는 직원을 붙들고 급여 인상을 제안해도 이미 버스는 떠났다고 봐야 한다.
홍콩인들과 중국 본토인들의 차이점이 극명하게 들어나는 것은 계약서에 대한 태도이다. 영국의 사법체계는 불문법에 기초하고 있어서 계약법이 매우 중요하다. 성문법에 기초한 우리나라의 경우 상법이나 소비자 보호법에서 갑과 을의 책임이나 권리를 이미 규정하고 있어서 개인간의 계약 내용은 비교적 간단하고 상위법에 저촉되는 계약내용은 법적 구속력을 갖지 못하지만 불문법 체계를 택하고 있는 국가에서는 개인간의 계약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개인간의 계약서는 계약 내용을 아주 세세하게 언급하고 그 분량이 수십 페이지에서 수백 페이지까지 이르기도 한다. 예를 들어 개인 간에 부동산 거래할 경우 정부기관에 거래내역을 등기하지만 그것으로 소유권 이전 효력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최초 해당 아파트를 지을 때 부동산 개발회사가 정부로부터 토지사용권을 확보한 서류부터 아파트 분양 내역을 세세하게 기록한 서류 그리고 그 동안 거쳐간 다수의 소유자들 간의 거래 계약서 원본이 포함된 수백 페이지 상당의 부동산 서류 뭉치를 온전히 가지고 있어야 소유권을 인정받는다. 그런 까닭에 홍콩인들은 계약서의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고 중요한 계약서는 예외 없이 변호사를 선임하여 검토하도록 요청한다. 당연히 계약내용 준수에 철저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계약서 조항에 따라 해결하고자 한다. 그러나 본토인들은 사뭇 다르다. 계약 이행에 문제가 생기면 세부조항은 볼 생각도 하지 않고 실제 상황이 예상과 달라서 발생한 문제이기 때문에 책임질 수 없다고 하거나 상품 하자의 정도가 심각하지 않아서 사용하는데 문제없는데 왜 문제를 삼느냐는 항변하기도 한다. 예전에 제품을 딱딱한 재질의 종이 케이스에 넣어 주기로 했는데 납품 받은 물건은 빳빳한 종이를 두 겹으로 사용해서 만든 것이었다. 미관상 조악하게 보이기도 해서 딱딱한 재질의 케이스로 교체를 요구하니까 지금 작업에 들어가면 납품기일에 맞출 수 없다고 하면서 사용상 문제가 없고 미관상에도 큰 차이가 없는데 그냥 진행하자고 오히려 당당하게 요구하는 경우가 있었다.
홍콩사람들의 독특한 의식구조에 대해서 생각하다 보니 150년 동안의 영국지배가 중국에 새로운 인간형을 창조해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른 아시아인에 비해서도 상당히 서구적이고 중국 본토인에 비해서는 너무 다른 의식구조를 갖고 있다보니 다시 중국으로 귀속되는 것에 대해서 거부감을 갖고 있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중국인들은 수천년 동안 중화사상에 젖어 있어서 그런지 자신이 관련된 일의 시시비비를 가릴 때 지독하게 주관적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즉 자신을 객관화시키는 작업에 익숙하지 않다는 말이다. 이에 비해 서구적 합리성이 몸에 배인 홍콩인들은 타인에 대한 배려와 자신을 객관화하는 능력이 본토는 물론 다른 아시아인에 비해서도 앞서 있다. 이러한 홍콩의 문화와 의식이 형성되기까지는 식민지 이등국민으로서의 갈등과 사회적 고통도 일정 부분 영향을 끼쳤을 것인데 중국의 품으로 돌아가면서 다시한번 의식구조의 변화를 꾀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홍콩의 역사적 격랑이 만만치 않음을 느끼게 된다. 동양과 서양과의 만남이라는 멋진 수식어로 설명되기도 하는 홍콩의 문화와 정체성이 사실은 살아남기 위한 노력 속에서 조개가 상처를 이겨내고 품어낸 진주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2025년 2월 7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