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전주가맥원조] 튀김닭발원조 "영동슈퍼"가맥-28년전통
 
 
 
 
 

회원 알림

 

회원 알림

다음
 
  • 방문
  • 가입
    1. 채호준
    2. zerh1
    3. 인천 김종희
    4. skyhi
    5. 용기
    1. 마음좋은사람
    2. nmg67
    3. 마징가투
    4. 유지승
    5. 더방이
 
카페 게시글
전주여행 스크랩 [전주데이트하기좋은곳] 전주데이트하기좋은곳 연인과걸으면 좋을 전주 수목원
튀김닭발원조 영동슈퍼가맥 추천 0 조회 121 12.08.24 15:2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한국도로공사가 운영하는 <전주수목원>은 호남고속도로 전주나들목 바로 옆에 위치해 있으며 이전에는 '고속도로 공사 구간'의 조경수목과 잔디를 재배 공급하는 일을 하다가 1983년부터 수목원과 자연학습장을 마련해 일반인도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곳이다. 화창한 어린이날을 맞아 많은 가족들이 모여 휴식을 취하거나 점심을 먹는 모습에서 시민의 사랑을 받는 장소임을 알 수 있었다.

이곳 수목원은 전주 수목원 안 '잡초원' 앞에서6만여 평의 땅에 수목과 잔디 묘포장, 자연학습원, 목본류, 초본류 등 2,000여 종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이중 "약초원; 암석원; 남부수종원; 죽림원; 잡초원; 무궁화원; 장미원; 염료식물원; 일반식물원" 등 9개의 전문 수목원을 아이들과 함께 찬찬히 둘러보면 자연학습의 장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아이들과 함께 수목원 입구 왼편의 "잡초원"과 "무궁화원"으로 먼저 가 보았다. 우리나라 산과 들, 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260여종의 초본성 식물인 잡초를 한자리에 모아둔 "잡초원"은 반듯 반듯한 공간에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떳떳이 자리하고 있어 독특한 느낌을 준다. 잡초원 바로 옆에는 "무궁화원"이 있다. 8~10월경에 꽃이 피는 관계로 65종에 달하는 다양한 무궁화를 직접 볼 수 없어 아쉬웠다.

이 외에도 1,600여종의 수목과 초본식물이 있는 "일반수목원"과 전국의 산에 자생하는 약초 400여종을 모아둔 "약초원", 50여종의 다양한 대나무를 볼 수 있는 "죽림원", 남부와 섬 지역에서 자라는 160여종의 식물이 전시되어있는 "남부수종원", 조경과 덩굴장미 76종이 있는 "장미원", 초등교과서에 등장하는 식물 100여종을 키워 학습의 장으로 제공하는 "교재원"등이 있다. <전주수목원>안의 여러 전문식물원들은 뚜렷한 구분 없이 곳곳에 심어진 나무와 풀들 속에 어우러져 딱딱함보다는 산책로나 쉼터 같은 기분을 준다.

이들 수목원 중 아이들이 좋아했던 곳은 전주 수목원 안 '습지원'에서"암석원"과 "습지원"이다. "암석원"은 절벽아래에 웅덩이를 만들고 물고기를 넣어두어 눈길을 끌었는데 작은 폭포를 연상시키는 아기자기한 암벽 위에는 작은 오솔길을 따라 고산지역이나 암석 주변에 자라는 식물 160여종의 식물을 심어놓아 즐거운 구경거리가 되었다. 어디로 가는 길이지? 하는 궁금증을 만들어주어 아이들이 좋아했다.

1,000여 평의 습지를 만들어 80여종의 수생식물을 볼 수 있도록 한 "습지원"은 물을 좋아하는 아이들의 발길을 끌었는데 징검다리를 건너며 소금쟁이가 돌아다니는 것을 구경하기도 하고 화려한 수생식물 앞에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바로 옆에 마련된 작은 정자와 함께 물이 주는 친근감은 식물원이란 개념을 떠나 작은 정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오는 길 수풀 위에 떨어진 매실을 아이들이 주워 나에게 보여주었는데 자그맣고 보송보송한 초록의 감촉이 풋풋했다.

식물 공부의 어려운 점은 ㅇㅇ과 ㅇㅇ종 이라는 식으로 한 이름 아래 수 십여 종의 꽃과 나무가 있다 보니 평소에도 그 모양새를 나누어 이름짓기 힘든데 꽃이 진 후 초록 잎만 남긴 때엔 더욱 큰 어려움을 느낀다. 이것은 식물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느끼는 공통의 고민이 아닐까싶다. 그래서 조심스러운 곳이 수목원 답사인데 이렇게 여러 번 와보고 관찰하다보면 어느새 이름을 알고 가깝게 느껴질 거란 믿음을 가져본다.

............
전주수목원에서 전주 시내를 가로질러 한참을 가다 보면 경기전과 덕진공원이 나온다. 전주에서 이름이 높은 콩나물국밥집으로 가는 길에 덕진공원과 전주객사의 표지판이 보여 대구답사마당 원장님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덕진공원>은 고려시대부터 조성된 연못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공원으로 여름이면 13,000여 평에 활짝 핀 연꽃이 호수수면의 절반을 덮어 장관을 이루어 전주팔경 중 하나라고 한다. 빠듯한 답사 일정으로 이곳을 함께 들르지 못함을 아쉬워하였다. <전주객사(全州客舍)>는 풍패지관이라는 거대한 현판이 걸린 '주관'과 '서익헌'이 남아있는데 각 고을마다 설치했던 관사로 외국사신이 와서 묵거나 연회를 가진 곳이라고 한다. "객사"는 사신 영접과 함께 임금을 상징하는 전폐를 안치하고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국왕에 대한 예를 행한 곳이며 왕명을 받은 신하가 교지를 전하는 등 행정수반의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이다.

맛있는 점심을 해결한 후 답사버스가 풍남문 앞에 차를 대 주었고 우리는 경기전까지 호남제일성 '풍남문'의 멋진 모습걸어갔다. 경기전 앞의 도로가 공사 중이라 대형버스의 출입을 막았던 것인데 짧은 거리여서 부담은 없었다.

전주부성의 4대문 가운데 남문이었던 <풍남문(豊南門)>은 옹성과 종각, 포루, 문루가 있는 독특한 형태의 문이었다. 문루의 양편에는 "풍남문"과 "호남제1성"이라는 현판이 앞뒤로 걸려있다.

"풍남문"이란 이름은 이곳 전주가 태조 이성계의 관향(貫鄕)으로 중국을 처음 통일했던 한 고조 유방의 고향인 풍패(豊沛)에 빗대어 전주를 풍패향이라 부르게 됐고 전주부성 가운데 남쪽 성문을 풍패향 전주의 남문이란 뜻의 풍남문이 되었다고 한다. 중국 중심 천하관을 가졌던 조선 사대부의 단면을 보는 듯한 이야기다.

"전주성"는 호남 곡창지역을 지키는 전략적 요충지였으므로 이전에도 성이 만들어졌는데 고려 공양왕대에 (1398년) 전주부성과 함께 창건되었다가 시일이 지나면서 석성으로 새롭게 고쳤다. 읍성을 만들면서 동서남북 네 곳에 문루도 함께 세워졌으나 정해년 대화재를 비롯해 여러 어려움을 겪다가 영조44년에 홍낙인에 의해 다시 고쳐지어졌다. 순종대(1907)에는 도시계획에 의해 성곽과 성문이 헐어지고 <풍남문>만 남았고 이후 1978년에 옹성여담쌓기와 치석등을 통해 종각과 포루를 보수 복원하였다고 한다.

<풍남문>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경기전>으로 가는 길에 <전동성당>도 볼 수 있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꼽히는 이 성당은 풍남문의 성을 헐은 돌을 구입해 쌓았다고 하며 1914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불교와 유교를 중심 사상으로 해 성장했던 만큼 불교나 유교와 관련된 건축물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천주교와 기독교 관련 유적지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점점 커져가고 있어 좋은 현상이라고 한다. 종교적으로만 치우쳐진 것을 역사인식에서 새롭게 바라보며 ' 한국 천주교 발생지'와 '순교지', '건축물' 등에 대한 연구도 많아졌으면 하는 기대도 해본다.

.....
태조 이성계의 관향인 전주에 태조의 어진을 모신 곳이 <경기전(慶基殿)>이다. 임금의 초상화인 어진(御眞)제작은 '어진도사감'의 설치와 함께 당대 최고의 화원들이 모여 그렸으며 이 어진을 '진전(眞殿)'이란 곳에 봉안하고 관리하였다고 한다. 한 시대의 창업자인 태조 어진의 중요성은 그 어떤 왕보다 귀히 여겨 당시만 해도 인근 향교에서 나는 글 읽는 소리가 경기전을 어지럽게 한다하여 멀리 옮길 정도였으니 그 권위를 짐작할 수 있다. 태종10년(1410)에 "어용전"이란 이름으로 세워졌다가 세종24년(1442)에 <경기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태조의 영정을 봉안한 "어용전"으로는 개성과 영흥, 전주, 경주, 평양에 각각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네 곳의 어용전이 소실되었고 '경기전' 안에서경기전은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고 한다. 다행히 경기전은 광해군6년(1614)에 복원되었으며 이곳에 모셔진 영정은 고종9년(1872)에 제작된 것을 모사한 것이다.

요즘 경기전은 전주 시민의 공원으로 자리를 잡아 열린 공간으로 휴식처가 되었다고 한다. 평소에도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는데 휴일인 오늘은 풍물놀이가 있어 우리가 경기전을 둘러보는 내내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엄숙과 권위를 벗어버리는 것은 좋았으나 <경기전>이 지닌 뜻을 조금은 존중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하는 문화유산해설사의 말에 공감이 갔다.

경기전 입구의 풍물패를 지나 왼편으로 난 길을 따라 가니 조선 "예종대왕의 태실"을 묻은 태실과 비가 있었다. 완주군 구이면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경기전의 뒤편에는 전주 이씨의 시조 이한 공과 시조비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조경묘"가 있으며 작은 대숲을 지나면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전주사고"가 최근 복원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경기전" 안으로 들어간 우리는 문화유산해설사를 만나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분의 설명으로 무심히 지나칠 수 있었던 작은 건물인 경기전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했다.

어진 전각은 전국에 여섯 군데에 있었으나 전쟁으로 소실되어 유일하게 남은 곳이 이곳 전주 어진이며 이를 모사해 서울에 모셨고 시간이 지나 그림이 오래되어 다시 옮겨 그린 후 진품은 서울에 있으며 이곳엔 모사본이 있다고 한다. <경기전>은 사당기능도 해서 음력 9월 9일과 음력 1월 15일 일년에 두 번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외삼문 안쪽에는 내삼문이 있어 '동입서출(東入西出)'을 의미하는데 동쪽으로 들어가서 서쪽으로 나오며 중앙 길은 영혼이 지나는 자리라 어느 누구도 지날 수 없다고 한다. 조선태조 이성계의 영정(안내책자 사진자료)경기전은 크게 "외삼문"과" 내삼문", "정전"으로 되어있으며 "정전"은 헌(軒)과 익랑(翼廊), 낭무(廊), 담장과 다포계 맞배지붕 형식을 갖춘 건물로 크기는 작지만 그 화려함은 왕실 건축이 가지는 권위를 그대로 살렸다고 한다.

태조 이성계의 어진은 보물 제931호이며 푸른 옷을 입고 있다. 왕은 보통 붉은 옷을 입고 있으나 새로운 왕조를 연 뜻을 기리기 위해 시작을 의미하는 파란색 곤룡포를 입은 모습을 그렸다고 한다. 태조의 영정은 환갑 때 그려진 것이며 다리의 꺾여진 각도에 따라 키를 짐작하는데 무인답게 아주 건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현존하는 어진은 모두 여섯 분으로 영조와 정조, 철종, 고종, 순종, 태조의 어진이 있으며 스스로 황제를 자청한 고종은 황색의 곤룡포를 입었으며 다른 임금은 붉은 옷을 입었다. 경기전 안의 양쪽 회랑에는 세종과 정조, 영조, 고종, 철종의 영정이 마련되어있는데 세종대왕은 위대한 업적을 기려 상상하여 그린 것이며 철종은 무인의 옷을 입고 있어 특이했다. 그 옆에는 조선시대 고관 행차 때 사용되었던 가마인 '가교'와 어진을 말아서 옮겼던 '신연', 임금과 관련된 귀한 물건을 옮기는데 쓰였던 '옥교', 어진 행차때 향을 피우면서 앞서 갔던 '향정'등을 볼 수 있어 좋았다. 평온한 날 이곳에 들어왔다면 아주 경건한 분위기를 느꼈을 것이다.

밖으로 나오니 탁본과 투호, 널뛰기, 팽이치기, 윷놀이 등을 할 수 있는 행사도 있어 민재와 현석, 려경, 병규는 신나게 팽이치기를 해보았다. 경기전을 마지막으로 전주에서의 여행을 마무리하였다.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