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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사도 바울은 A.D. 65-68년 경 두 차례의 로마 투옥 기간 사이에, 디모데에게 첫 번째 서신을 기록했다. 디모데전서는 6장, 113절,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서 2,244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디모데는 설교자로 부름 받은 젊은이로 결국 에베소에 있는 교회의 목사가 된다. 그는 바울의 회심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행 16:1-3). 바울은 그에 대하여 자신의 아들로 언급했는데, 이는 '믿음 안에서...아들'을 언급하는 것이다(딤전 1:2). 바울은 그의 영적 아버지였다(고전 4:15).
현대 미국 기독교의 위대한 신비 중 하나는, 기독교 내에 소위 '유명인들'이라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 십중팔구가 '디모데', 곧 그 유명인들이 개인적으로 양육시켰고 그들의 설교와 생활 방식, 습관을 따르고 있는 젊은이 같은 아들을 두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1900년 이후로, 미국에서는 그리스도인 '유명인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의 아들들에게는 어떤 사역을 하라고 부르시지도 않았음에도, 자기 아들들에게 그들의 사역을 위임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다만 '아버지'가 아들에게 그 사역을 물려받으라고 부를 뿐이다. 그런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일이다.
그 유명인들은 건물, 학교, 재산, 은행계좌에 사로잡힌 나머지, '젊은이들을 양성하는 일'을 중단하고 말았다. 바울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그의 디모데들을 가르쳤고 그들에게 사역하는 방법을 보여 주었다(딤전 1:16; 4:15,16, 딤후 1:8; 2:2, 빌 4:9, 고전 11:1).
디모데에게 쓴 이 두 권의 서신은 "무서운 디모데 서신"(terrible Timothy)라 불릴 만 한데, 그도 그럴 것이 디모데전후서 이 두권의 책은 믿음에서 "떠나고"(딤전 4:1), 믿음을 "부인하고"(딤전 5:8), 그들의 믿음을 "버리고"(딤전 5:12), 그들의 믿음으로부터 "미혹되고"(딤전 6:10), 믿음에 관해서는 벗어나고(딤전 6:21), 믿음을 뒤엎고(딤후 2:18), 믿음에 관해서는 버림받은(딤후 3:8) 그리스도인들에게 총을 겨누고 있기 떄문이다.
<디모데전서 1장>
2 믿음 안에서 나의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부터 은혜와 자비와 평강이 있을지어다.
3 내가 마케도니아로 가면서 너로 하여금 에베소에 머무르라고 권면한 것은 네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그들로 다른 교리를 가르치지 못하게 하고
4 꾸며 낸 이야기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경건한 세움보다는 오히려 의문을 일으킴이라.
5 이제, 계명의 목적은 순수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가식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
6 어떤 사람들은 이런 것들에서 벗어나서 헛된 언쟁에 빠져
7 율법 선생이 되고자 하나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해하지 못하느니라.
8 그러나 사람이 율법을 합법적으로만 사용하면 율법이 선한 것인 줄 아노라.
9 알 것은 이것이니, 율법은 의로운 사람을 위하여 제정된 것이 아니라, 불법자들과, 순종하지 않는 자들과, 경건치 않은 자들과, 죄인들과, 거룩하지 않은 자들과, 속된 자들과, 아비를 죽이는 자들과, 어미를 죽이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10 음행하는 자들과, 남자로 자신을 더럽히는 자들과, 유괴하는 자들과, 거짓말하는 자들과, 거짓되이 맹세하는 자들과 그 밖에 건전한 교리에 역행하는 것들을 위함이니
11 이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복음에 따른 것이며, 이 복음은 내게 맡겨진 것이라.
12 나는 내게 능력 주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감사하노니, 이는 그분께서 나를 신실하게 여기셔서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라.
13 전에는 내가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요, 박해하는 자요, 중상하는 자였으나 오히려 자비를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하였을 때 모르고 행하였음이라.
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더불어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15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는 이 말씀은 신실하며, 온전히 받아들이기에 합당하도다. 죄인들 중에서 내가 우두머리라.
16 그러나 내가 자비를 입은 것은 이 때문이니, 곧 먼저 내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전한 오래 참으심을 보여 주셔서 후에 그를 믿고 영생을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17 이제 영원하신 왕, 썩지 아니하시고, 보이지 아니하시고, 홀로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18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너에게 부탁하노니, 전에 너에게 주어진 예언들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19 믿음과 선한 양심을 붙들라. 어떤 사람들은 믿음에 대한 선한 양심을 내던지므로 파선하였느니라.
20 그들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는데 내가 그들을 사탄에게 내어준 것은, 그들로 하나님을 모독하지 못하도록 배우게 하려는 것이라.
2 믿음 안에서 나의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부터 은혜와 자비와 평강이 있을지어다.
3 내가 마케도니아로 가면서 너로 하여금 에베소에 머무르라고 권면한 것은 네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그들로 다른 교리를 가르치지 못하게 하고
4 꾸며 낸 이야기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경건한 세움보다는 오히려 의문을 일으킴이라.
1절, 이 구절은 딤후 1:1, 롬 1:1, 딛 1:1과 비교해 봐야 하는데 바울의 사도 직분은 세 가지에 의해 확립되었습니다. 1. 하나님의 뜻(딤후 1:1), 2.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딛 1:1), 3. 하나님의 부르심(롬 1:1). 이 구절에서는 한 가지가 더 추가되는데 그의 사도직은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에 의한 것입니다. 디모데전서에서 '명령'이 추가된 이유는 이 서신서가 그리스도인들에게 '명령들'을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복된 소망이신(딛 2:13)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말합니다. 자신이 구원받기를 추측하거나 기대하는 소망이 아니라 부활에 대한 확고한 소망입니다(롬 8:24, 요일 3:1-3, 히 6:19).
2절, '믿음 안에서 나의 아들 된 디모데'라는 표현은 바울이 디모데를 영적인 아들로 여긴다는 뜻인데 구령자들에게 있어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한 사람들은 영적인 자녀들이고 그 자녀들이 또 누군가를 거듭나게 하면 영적인 손자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증손자들도 생겨납니다.
이는 너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명의 스승을 가졌을지라도 아비들은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내가 너희를 낳 았음이라(고전 4:15).
3절, 바울은 '건전한 교리'가 아닌 다른 교리가 있다고 하는데 건전한 교리(딤전 1:10, 딤후 4:3, 딛 1:9; 2:1)를 가르치는 것은 바울이나 디모데 같은 목회자들에게는 필수 사항입니다. 아무리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감동적인 설교를 할 수 있는 재능을 가졌다 해도 '건전한 교리'를 가르치지 않으면 목사로서 자격 미달입니다.
성경을 기록한 첫번째 목적은 구속사를 알려주기 위함이거나 하나님의 사랑을 알려주려는 목적이 아닌 교리였습니다(딤후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훈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
4절, 바울이 경고하는 '다른 교리'는 이 시대에 '율법을 구원받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할때 사람에게 일어나는 결과는 7-10절 사이에 나옵니다.
'꾸며 낸 이야기'는 디모데전서 4:7에 나오는 불경스럽고 늙은 부녀자들에게서 나온 "꾸며낸 이야기"를 말합니다(딤후 4:4). 디도서 1:14에서는 "유대인들의 꾸며낸 이야기"라고 말하는데 "연옥"이나 "행위 구원" 같은 카톨릭 교리는 구원받지 못한 유대인들의 전통에서 나왔습니다(탈무드, 미쉬나, 게마라, 카발라).
"끝없는 족보"는 다음 네 가지에 해당합니다.
1. 유대인 조상에 대한 랍비들의 끝없는 토론들(딛 1:14, 사람들의 계명).
2. 신화에 등장하는 그리스 영지주의의 신들 계보.
3. 여러 출판물에 나오는 교황들의 목록.
4. "침례 받지 않은 죄인들"에 관한 몰몬교에서 수집한 총괄적 명단들.
'경건한 세움'은 믿음을 통해 이루어지며 꾸며 낸 이야기는 "의문"만 일으킬 뿐입니다.
5 이제, 계명의 목적은 순수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가식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
6 어떤 사람들은 이런 것들에서 벗어나서 헛된 언쟁에 빠져
7 율법 선생이 되고자 하나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해하지 못하느니라.
8 그러나 사람이 율법을 합법적으로만 사용하면 율법이 선한 것인 줄 아노라.
9 알 것은 이것이니, 율법은 의로운 사람을 위하여 제정된 것이 아니라, 불법자들과, 순종하지 않는 자들과, 경건치 않은 자들과, 죄인들과, 거룩하지 않은 자들과, 속된 자들과, 아비를 죽이는 자들과, 어미를 죽이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10 음행하는 자들과, 남자로 자신을 더럽히는 자들과, 유괴하는 자들과, 거짓말하는 자들과, 거짓되이 맹세하는 자들과 그 밖에 건전한 교리에 역행하는 것들을 위함이니
11 이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복음에 따른 것이며, 이 복음은 내게 맡겨진 것이라.
5절, 계명의 목적은 '사랑'인데 이 구절과 요일 3:23에서 신약성도에게 있어 계명의 목적은 동일하게 "사랑"입니다. 변개된 영어 성경들은 "계명"을 명령 등으로 번역해서 이것이 단지 바울이 디모데에게 개인적으로 준 명령으로 잘못 인식시켰습니다. 한글개역의 경우에는 "교훈"으로 변개시켰습니다.
변개자들이 그렇게 한 이유는 본문의 헬라어(파르앙겔리아)가 요한일서의 헬라어(엔톨레)와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라(요일 3:23).
6절, 어떤 사람들은 이 세 가지로부터 벗어나서('순수한 마음', '선한 양심', 가식 없는 믿음') 마음은 오염되었고(마 12:35), 양심은 화인 맞았으며(딤전 4:1-2), 믿음은 저버렸습니다.
7절, '율법 선생'은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명하신 선생들인데 레위인들입니다(스 7:1-6). 구원받는 수단으로서의 율법은 폐기되었습니다(고후 3장). 율법을 구원의 수단으로 주장하는 안식교도 같은 자들은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주장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율법의 목적은 죄를 밝혀내는 것이고(롬 7:7-9), 죄를 깨달은 사람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것이었습니다(갈 3:24). 율법의 의는 그리스도인 '안에서' 성취되는 것이지 그리스도인에 '의해서'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8절,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율법이 합법적으로 사용되는 때는 죄들을 지적하고 구원받은 사람들이 나쁜 짓을 계속 하면 율법의 정죄를 열매로 거둔다는 경고를 할때입니다. 또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도덕적 기준으로서 율법을 사용해서 죄들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율법을 불법적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구원받은 사람들이 구원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서 율법을 지키라고 요구하는 안식교도들 같은 경우입니다.
9-10절, '불법자들'은 법과는 상관없이 살아가는 사람들, 마피아나 조폭, 갱들입니다. 이들은 율법 바깥에 있는 자들입니다.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성경을 읽으면서 순종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율법을 읽으면서 범하는 자들입니다.
'경건치 않은 자들'은 그 행실이 하나님과 일치하지 않는 자들입니다(유 15, 18).
'죄인들과'는 구약적 기준의 '사악한 자들'을 말하는데 공공연히 극도로 사악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합니다(눅 7:39, 요 9:25,31). 도덕적이지 않은 죄인들의 모습입니다.
'거룩하지 않은 자들과 속된 자들과', 하나님이나 성경, 영적인 것에 관심이 전혀 없는 사람들입니다.
'아비를 죽이는 자들과, 어미를 죽이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세 종류의 살인인데 부모나 혹은 싫어하는 누구든 죽이는 살인자들입니다.
'음행하는 자들과', 정기적으로 매춘부들과 어울리는 사람(눅 15장의 탕자)입니다.
'남자로 자신을 더럽히는 자들과', 남자 동성연애자들을 말하는데 자연의 섭리를 어기는 죄인들입니다.
'유괴하는 자들과', 사람을 훔쳐서 파는 행위는 금지되어 있습니다(출 21:16). 그러나 노예를 합법적으로 살 수는 있으며(출 21:2) 이미 팔린 노예는 그 상태에서(고전 7:21-24) 주인을 섬겨야 합니다.
'거짓말하는 자들과', 성경을 변개하며 더 좋게 만들었다고 거짓말하는 자들입니다.
'거짓되이 맹세하는 자들과', 로마카톨릭과 예수회는 세상 법정에서 맹세하고도 조직을 위해서라면 거짓 증언할 수 있게 사제들에게 허용하고 있습니다.
'그 밖에 건전한 교리에 역행하는 것들'은 믿음과 신조에 대한 교리들을 말할 뿐 아니라 믿음의 실행에서 경건도 포함합니다(딤전 6:3).
11절, 율법은 이상 나열된 이런 자들을 처벌하기 위한 것인데 이것들은 모두 외적인 '바른 행실'의 문제입니다. 즉 율법은 그리스도인의 양심이 아닌 행실을 규제하는 법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건전한 교리는 '올바르게 사는 것'(딛 2:1-7)까지 포함하며 거듭난 사람은 '거짓말쟁이'나 '동성연애자, 살인자, 거짓 맹세하는 자, 속된 자, 불경건한 자, 거룩하지 않은 자, 불법자'로 행동해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 안에 그런 죄들이 남아 있다면 자백하고 회개하여 그 죄들로부터 돌이켜야 육신에 임하는 정죄를 피할 수 있습니다.
12 나는 내게 능력 주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감사하노니, 이는 그분께서 나를 신실하게 여기셔서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라.
13 전에는 내가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요, 박해하는 자요, 중상하는 자였으나 오히려 자비를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하였을 때 모르고 행하였음이라.
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더불어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15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는 이 말씀은 신실하며, 온전히 받아들이기에 합당하도다. 죄인들 중에서 내가 우두머리라.
16 그러나 내가 자비를 입은 것은 이 때문이니, 곧 먼저 내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전한 오래 참으심을 보여 주셔서 후에 그를 믿고 영생을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17 이제 영원하신 왕, 썩지 아니하시고, 보이지 아니하시고, 홀로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12절, '직분을 맡기심이라',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능력을 주시는 것과 불러서 직분을 맡기시는 것은 다릅니다. 바울은 부르심을 받기 위해 사막에서 40일 간 훈련을 받았습니다(갈 1:17). 다른 사도들이 바울을 수용한 것은 그보다 한참 후였습니다(행 9:27). 바울은 유대교에 정통했기에 그가 능력을 받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직분을 맡기신다는 것은 전 생애를 하나님께 처분을 맡기고 풀 타임 사역을 한다는 뜻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설교할 수 있고(행 8:1,4), 그리스도를 증거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지만(행 1:8) 바울처럼 '전도자와 사도와 교사로'(딤후 1:11) 임명받는 것은 아닙니다.
13절, '전에는' 바울이 하나님을 모독했고(행 26:11) 박해했으며 사람들을 해쳤는데 그리스도를 죽인 사람들이 그분의 피를 믿으면 자비를 받는 것처럼 바울도 자비를 받은 것입니다.
15절, '이 말씀은 신실하며'는 세 번 더 나오는데 딤전 4:9, 딤후 2:11, 딛 3:8인데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은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교회를 세우는 것이나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것이 일차적인 목적이 아니라 죄인들을 찾아 구원하는 것이 먼저입니다(눅 19:10).
'내가 우두머리라', 바울은 진정으로 회심한 사람들이 고백하듯이 '자기 부인'을 하는데 구원얻는 회개는 하나님 앞에 자신이 희망없는 죄인으로 살았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사고 방식'은 죄인으로서 자신의 실체를 한번도 정직하게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의 변명인데 그런 자들이 말하는 '사랑'이나 '은혜'는 하나님의 것이 아닙니다.
그때 그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을 거역하여 아버지 앞에 죄를 지었나이다. 나는 더 이상 아들이라고 할 만한 자격 이 없나이다.’라고 하더라(눅 15:21).
16절, '먼저 내 안에서...온전한 오래 참으심을 보여 주셔서'는 바울이 죄인들의 우두머리로서 최초였기 때문에 모든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도 '죄인들의 우두머리'인 바울의 본(pattern)을 따라 구원받아야 한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울 같은 죄인들은 구약에도 아합이나 므낫세로 나오거니와(왕상 18:18; 21:25, 왕하 2:1-9) 바울 이상으로 패역했다가 구원받은 죄인들은 있습니다. 바울이 이후에 믿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본이 된 점은 구원받은 후에 그가 보여 준 오래 참고 인내함입니다. 바울의 회심 이후에 그리스도를 믿고자 하는 사람은 바울이 보여준 것 같은 끈기를 배우고 따라야 합니다.
이는 내가 그를 알고 그의 부활의 능력과 그의 고난의 교제를 알아 그의 죽음의 본을 따르려 함이며(빌 3:10)
이제 내가 너희를 위하여 받는 나의 고난들을 기뻐하고 또 그리스도가 고통받으신 이후에 있는 것을 그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에 채우노라(골 1:24).
에디오피아 내시나 코넬료, 디모데는 사도 바울처럼 '죄인들의 우두머리'였기에 구원받은 게 아닙니다. 코넬료는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디모데는 악한 세상에 휩쓸리기 전 소년일 때 구원받았습니다. 바울이 회심한 것이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의 믿게 되는 '오직 한 타입'(pattern)이 아니라 이미 믿은 사람들의 본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18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너에게 부탁하노니, 전에 너에게 주어진 예언들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19 믿음과 선한 양심을 붙들라. 어떤 사람들은 믿음에 대한 선한 양심을 내던지므로 파선하였느니라.
20 그들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는데 내가 그들을 사탄에게 내어준 것은, 그들로 하나님을 모독하지 못하도록 배우게 하려는 것이라.
18절, 바울은 '내가 너에게 부탁하노니'라고 하면서 디모데가 섬기는 회중들에게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자비를 얻고자 하면 '바울의 실행'을 따라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부탁한 것은 그의 고난의 본을 따라 성도들이 '오래 참음'을 통해 성령의 열매를 거두라는 말입니다.
바울의 부탁에는 다음 사항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올바른 교리를 가르치는 일(3-4절).
2. 회심자들에게 은혜로 구원받은 목적을 일깨워주는 것(5-6절).
3. 회심자들에게 거짓 교사들이 율법을 왜곡시킬 것이라는 사실을 경고하는 것.
4. 회심자들에게 구원은 은혜로만 받는 것이고 행위로 받는 게 아니라고 일깨워 주는 것(12-15절).
5. 바울을 고난받고 인내하게 부르신 것은 회심자들에게 본으로 보여주시려는 목적이라는 것(16절).
6. 모든 영광은 하나님 한분에게만 속한다는 것.
디모데전서 1장에서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구원받기 위해 무엇을 행하거나 기억하라고 언급하는 구절은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주석가들이 그런 식으로 해석합니다.
'전에 너에게 주어진 예언을 따라'는 목사 안수식(딤전 4:14, 딤후 1:6)을 말합니다. 디모데가 안수받을 때 그를 안수해준 예언의 은사를 가진(고전 12:10) 목사가 디모데가 어떤 사역을 장차 하게 될 것인지 예언했습니다.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에베소서에서는 그리스도의 군사들이 한 군대로서 싸우는 모습으로 묘사되었고(엡 6:10), 이 전쟁은 영적 전쟁이며 성경과 기도로 수행합니다(고후 10:4-5).
19절, '믿음과 선한 양심을 붙들라', 선한 양심은 사역자가 반드시 갖춰야 하는 조건이며(행 23:1) 믿음에 대해 선한 양심을 저버리면 믿음도 파선하게 됩니다.
20절, 초대교회의 배교자 두 명이 나오는데 후메내오는 '무천년주의자'이고 알렉산더는 딤후 4:14의 알렉산더로 추정되지만 확실하지 않습니다. 후메내오의 믿음이 파선된 이유는 첫째 부활을 영적 부활(거듭남)로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말은 종창처럼 퍼져 나갈 것이며 그들 가운데는 후메내오와 필레토가 있느니라.
그들은 진리에 관해서는 정도를 벗어나서 부활이 이미 이루어졌다고 말하여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뒤엎고 있느니라(딤후 2:17-18).
구리세공자 알렉산더가 내게 많은 해를 끼쳤으니, 주께서 그의 행위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라(딤후 4:14).
모든 무천년주의자들은 첫째 부활(계 20:5)에 대해 그것은 '물리적 부활'이 아니며 거듭남을 말하기에 이미 지나갔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이 부활을 에베소서 2:5-6의 영적 부활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교회 안의 아버지의 아내와 음행한 간음자에게 했던 것 같이(고전 5:1-5) 이런 거짓 교사들도 마귀에게 내어줍니다. 이렇게 거듭난 배교자를 사탄에게 넘겨줄 유일한 방법은 기도라는 것입니다. 교회의 회원을 훈계하다가(고전 5:3) 지역 교회에서 쫓아낼 수도 있지만 그것이 한 그리스도인을 사탄에게 넘겨주는 것은 아닙니다. 로마카톨릭은 카톨릭 교회에서 쫓겨나면 마귀에게 넘겨지는 것이고 구원을 잃어버린다고 가르치고 있지만 성경은 그런 교리를 말씀한 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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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생명의말씀 올려주셔서 오늘도 감사 드립니다...
저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