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귀한 선물
박순(본명 박준식) junsik03@hanmail.net
화초도 주인을 보면 웃는다. 그들의 미소에 화초를 바라보는 시간이 즐겁고 혹시라도 물을 줄 시간을 잊거나 지나치면 미안하기도 하다. 나는 약초를 넣어서 끓인 물을 식수로 사용하는데 그 물을 약수터에서 떠온 자연수와 희석해서 화초에도 준다.
바지 주머니에 들어 있던 핸드폰이 카톡! 하는 소리로 나의 무관심을 깨운다. 누가 보낸 카톡일까? 화초에 물을 주던 손을 멈추고 핸드폰을 꺼내서 들여다본다. 오늘 오전 9시에서 10시 사이에 택배가 있을 거라는 문자다. ‘택배? 무슨 택배지? 나는 택배 시킨 일이 없는데?’
순간 보이스 피싱이 아닐까 해서 정신이 번쩍 든다. 날로 진화하고 교묘해지는 보이스 피싱 수법에 하루에도 수십 명씩 피해자가 생기는 현실이다. 나의 핸드폰에도 구매한 물건을 오늘 발송한다느니, 범죄에 연루되었으니 결백을 소명하기 위해서는 3천만 원을 보내라는 문자가 검사의 직인이 찍힌 공소장과 함께 오기도 한다. ‘걱정되는 세상’이라는 비관적인 우려나, 모르는 사람의 문자나 전화는 의심부터 하는 조심성이, 사회에 대한 지나친 불신 같아서 비애가 느껴지기도 하지만, 며칠 전 옆집 아주머니가 당한 일을 생각하면 모르는 사람을 경계하는 내가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다.
그 아주머니는 대학을 졸업한 엘리트인데 어느 날 ‘엄마? 나 새봄(딸)이야! 교통사고가 나서 병원에 입원 해 있어.’라고 문자가 왔다는 것이다. 이런 문자를 받고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을 부모가 없다. 그래도 그 아주머니는 정신을 가다듬고 ‘네 핸드폰이 아닌데 무슨 말이냐?’하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저쪽에서는, 사고 날 때 핸드폰까지 날아가서 다른 사람 꺼 빌려서 연락하는 중이라고 하며 ‘수술이 급하대! 골든 타임을 놓치면 위험하다고 하니까 2천만 원을 입금해 주고 빨리 병원으로 와요!’하더라는 것이다. 골든 타임을 놓치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아는 아주머니는 병원 계좌라고 하는 낯선 번호로 2천만 원을 입금해 주고 병원으로 달려갔다고 한다.
나는 오늘 배달될 예정이라는 택배회사 이름을 다시 보았다. ○○통운으로 우리가 흔히 이용하는 신용 있는 택배회사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달리 어찌할 방법이 없어서 ‘나는 택배시킨 사실이 없습니다.’라는 문자를 입력한 후 캡처해 놓고 그 일에 대해서는 잊어버렸다.
점심때였다. 외출하려고 현관문을 여는데 뭔가가 문에 걸렸다. 문 뒤를 보니 정말 택배가 와 있었다. 나는 발신인 이름을 살펴 보았다. 순간 아하! 하는 탄성과 함께 내 입이 미소로 벌어졌다. ‘이○철’, 초등학교 동창회장이다. 이렇게 멀리 있는 나를 생각하며 선물까지 보내주시다니, 후덕하게 생긴 종친회장의 동그란 얼굴이 눈앞에 그려진다.
그는 원래 정이 많으면서도 공명정대한 분이어서 많은 사람에게 존경받는 분이다. 애향심도 남달라서 공직 생활을 고향에서 하고 퇴직해서는 새마을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가난하고 무질서한 마을을 가꾸는 일에 힘을 쏟고 있다. 그분이 공직에 있을 때 마을에 공업단지가 들어섰고 새마을과 관련된 일을 할 때는 마을이 시로 승격되기도 했다.
며칠 전, 종친회장의 승용차를 타고 갈 때다. 강둑에 심어놓은 많은 나무가 가뭄으로 시들시들 죽어가는 게 보였다. 그걸 본 종친회장은 무척 놀라면서 차를 세우고 나무로 다가가더니 마치 병든 어린아이를 돌보듯 상태를 살펴보고는 ‘큰일 났다. 그냥 두면 안 된다.’ 걱정하면서 일일이 폰카로 찍어서 가져가기도 했다. 이토록 마을 주변은 물론 도로에 있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까지 애정을 가지고 돌보는 분이다.
나는 종이상자를 들고 안으로 들어가서 뜯어보았다. 상자 안에는 방금 밭에서 수확한 것처럼 보이는 진한 초록색의 통통한 옥수수가 가득 들어있었다. 고향에서 올라온 옥수수다. 얼른 먹어보고 싶은 나는 그 자리에 앉아서 하나씩 꺼내어 까기 시작했다. 옥수수 껍질을 까보는 일은 50년 만이다. 그렇지만 요령이 손에 배어있는 나는 자주색 수염이 있는 끝부분의 껍질 끝을 양쪽 손으로 잡고 잡아당겼다. 직- 하는 소리와 함께 껍질이 찢어져서 벌어지며 수염이 나오고 인형들이 줄을 맞추어 앉아 있듯 가지런하게 박힌 옥수수 알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랫입술 밑에 붙여보기도 하며 놀던 옥수수수염, 그것은 끓여서 차로 마시면 좋다고 하니까 잘 걷어서 바구니에 담으며 나는 옥수수 껍질을 까고 또 까고 했다. 내 주변은 초록색의 옥수수 껍질이 허물어질 듯 수북이 쌓이고 어린 시절 고향에서 맡았던 풋풋한 풀 내음이 콧속으로 스며들며 가슴을 트이게 해주고 머리를 맑게 해준다. 갑자기 눈물이 울컥 솟았다. 60년대의 가난하던 시절, 저녁 끼니를 때우기 위해서 할머니와 같이 뜰에 앉아 옥수수 까던 일이 생각나서다. 옥수수밖에 드시지를 못하면서도 가족을 위해서 고생만 하시다 멀리 떠나신 할머니.
나는 옥수수 까던 손을 잠시 멈추고 창밖으로 시선을 보내어 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린 시절 뛰어놀던 푸른 초원과 강과 산이 눈앞에 다가와서 광활하게 펼쳐졌고 주역들의 땟물 가득하던 얼굴이 활동사진을 돌려보듯 하나하나 살아나서 머릿속에 그려진다. 우리는 흔히 보릿고개를 말하고 초근목피를 말한다. 나도 소나무의 딱딱한 겉껍질을 낫으로 벗기고 그 속에 들어있는 하얗고 얇은 속껍질을 먹기도 했고 부엌에 있는 물동이에서 물을 한 바가지 떠 마셔서 허기진 배를 채운 다음 친구들이 노는 곳으로 달려가고는 했었다. 점심을 굶고 마루에 누워있는데 뱃가죽이 등에 붙어 있는 것을 본 할머니가 내 배를 하염없이 쓰다듬으면서 ‘이 배를 언제나 부르게 해 주나.’ 하면서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었다.
그렇게 굶주리면서도 그 시절에는 보이스 피싱 같이 스토리가 있는 방법으로 사람을 속여서 서로를 불신하게 만드는 작업은 그 누구도 하지 않았다. 쌀이 있으면 한 움큼씩이라도 이웃과 나누어 먹었고 도시락을 싸 오지 못한 학생이 있으면 한 숟가락씩이라도 나누어주어서 같이 먹었고 참고서가 없는 학생과는 책을 같이 보면서 공부했다.
따돌림이라는 단어는 알지도 못했다. 부잣집 학생이나 가난한 집 학생이나 이마를 맞대고 공부하고 밤이면 다 같이 느티나무 밑에 앉아서 바이런의 시를 읊고, 메기의 추억, 스와니강물 등의 동요를 합창하고, 마당에 멍석을 펴고 누워서 달을 보며 옥토끼의 그림자를 찾아보고 대각선으로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며 탄성을 지르고, 아! 그때 그 얼굴들이 다시금 눈앞에 선하다. 용식이, 남진이, 영아, 나는 왜 그들의 얼굴을 잊고 있었을까?
추억이 줄을 잇는다. 학교에서 기르는 닭을 주기 위해 논두렁으로 개구리를 잡으러 다니던 일, 남의 밭에 들어가서 참외를 따 먹다가 주인이 기어서 다가오는 것을 알고 혼비백산해서 도망가던 일, 강으로 달려가 옷을 벗어 던지고 물로 뛰어들던 일, 어느새 나는 순수하던 그때 가지고 있었던 인간 본연의 심성을 되찾고 그 시절에 무대가 되었던 그곳으로 달려가 있었다.
선물을 준다고 해도 의심부터 해보고 낯선 문자에 불안해하고 공원에서도 모르는 사람과는 멀리 거리를 두었던 피해망상적인 나의 경계심과 배타심이 부끄러워졌다. 고향에서 종친회장님이 보내온 옥수수, 그것은 영원히 잃어버릴뻔했던 나의 바른 인성을 되찾게 해주어서 세상 사람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자신 있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해준 고귀한 선물이었다.
-펜문학 20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