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너(Wagner,Wilhelm Richard, 1813~1883년) 독일의 신음악을 대표하는 바그너와 고전주의 절대음악을 계승하는 브람스(Brahms, 1833~1897년)는 나이는 20년차이지만 동시대에 많은 대립을 해온 라이벌이다. 브람스는 성격이 온후하고 제 갈 길만을 꾸준히 정진하는 스타일인데 반하여, 바그너는 여자문제를 비롯한 비도덕성과 남을 비방하는 못된 버릇을 가진데다가 남을 이용하고 차 버리는 전형적인 패륜아(?)이다.
Wagner는 프랑스식으로 발음하면 「바네(열심히 번다)」 , 독일어로는 바그너(박아너어_오입쟁이) 그리고 영어로는 와그너[와그(래)너!]이다. 그래서 바그너의 생애에서 “왜, 그래 너(바그너)”라 할 만한 이야기거리를 발췌하여 「반우스개_와그(래)너」 라는 코너로 몇 차례에 걸쳐 이야기 하려 합니다. |
■ 반우스개_‘와그(래)너_#1’ 빚지고 야반도주!
1836년 23세의 바그너는 네 살 위의 ‘민나 플라너’와 결혼한다(아래 참조)
이 시절 젊은 바그너의 계획은 독일의 극장생활에서 빠져나와 파리의 오페라좌에서 깃발(?)을 날리는 것이었고, 그러기 위해 오페라 <<리엔치(Rienzi,1842년 뮌헨에서 초연)>>를 구상 중 이었다. 리엔치는 「여관집 주인과 세탁부와의 결혼에서 태어났다」는 로마 최후의 호민관의 영웅적인 이야기를 다룬 오페라로 리엔치가 부패한 귀족들을 로마에서 추방하였으나, 판단 착오로 자기도 시민권을 빼앗기고 카피톨리노 언덕의 대화재로 붕괴된다는 스토리이다.
1837년에 두 차례에 걸친 민나의 외간 남자와의 사랑의 도피 행각과 낭비벽으로 크게 빚을 지게 되자, 1939년 여름에 바그너 부부는 바그너의 시골마을 최후의 직장이었던 러시아령의 리가로부터 ‘로버’라는 개 한 마리만 다리고 야간도주를 하기에 이른다. 바그너 부부가 여권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므로 도망칠 위험은 없다고 채권자들은 안심하고 있는 사이에 어둠을 타고 러시아와 프로이센의 국경을 돌파하고 만다. 동 프로이센의 필라우항에서 런던까지의 배여행은 산 같은 파도 때문에 ,예정인 8일이 3주간이 넘게 걸렸다. 이 때 태풍을 피해 숨어 들은 노르웨이의 피오르드에서 메아리치는 수부의 노랫소리에 크게 감명을 받았는데, 후일 이 고난의 감명을 오페라 <방황하는 네델란드인(1843년)>로 만들었다. 런던에 머무던 중 같은 독일인으로 파리 오페라계의 실력자로 , 마침 영불해협 근처에 피서차 와 있던 독일계 유대인 마이어베어(Myerbeer, 1791~1864년)의 소개장을 얻어 파리로 갔다.
■ 민나 플라너(Minna Planer 1809~1866) 바그너는 시골 극장에서 지휘자를 맡고 있던 1836년에 여배우인 민나와 결혼한다. 매우 매력적이고 여린 성질의 그녀는 여배우로서는 재능이 없으며 교양도 없었고, 작센 군인과의 사이에서 난 사생아를 그녀의 여동생이라며 키우고 있었다. 1837년 5월과 7월에는 두 차례에 걸쳐 디에트리히라는 사업가와 사랑의 도피 행각을 떠나버려 바그너가 찾아나서는 등 말썽을 부리다가 그 해 10월에 바그너에게로 돌아왔다. 이런 일 등으로 간신이 부부관계를 지탱해 오던 중 1857년에는 '드레스덴 봉기'에 연류되어 스위스에 은신할 때 바그너가 집을 마련해 준 마틸데 베젠동크 부인과 열애하자 , 별거하다가 1866년에 지병인 심장병으로 사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