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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01일 주일 메시지
누가의 두 번째 하나님 나라 이야기 01
제목: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
사도행전 1장
설교 목적
누가의 두 번째 책인 사도행전 1장을 보면서 세 가지 키워드를 잡았다. 그것은 승천(昇天), 사명(使命), 사도단(使徒團)이다. 누가는 예수의 승천 이야기에서 예수께서 ‘구름 속으로’ 올라갔다고 말한다. 그리고 가심을 본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라고 천사들의 증언을 소개한다. 이 승천 장면은 다니엘서 7장에 나오는 환상, 곧 인자 같은 이가 하나님께 나아가 대권을 받는 모습을 생각나게 한다. 누가는 예수님의 승천을 주와 그리스도가 되는 즉위식으로 이해한다. 초기교회는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공동체였다(고전 12:3). 그리고 그의 통치는 지금 여기서 이미 시작된 것이었다.
그리고 승천 직전에 교회에 남겨진 임무(mission)는 예수의 증인이 되라는 것이다. 예수의 증인이란 예수께서 행하시고 가르치신 것에 대한 증인이 되라는 말이다. 이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을 증거하라는 말이다. 그 일을 하는 이들과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이며 그 증표로 성령을 보내실 것을 약속하셨다. 여기서 말하는 증인은 주님이 하시던 일을 이어받은 대리인이며 상속자를 말한다. 그들이 하는 일은 하나님의 통치에 동참하는 것이며 그의 통치를 삶과 행동으로 기리고 증거하는 일이다.
끝으로 누가는 예수의 승천 이후에 교회가 가룟 유다를 대신하는 사도를 선출했다는 이야기를 소개한다. 교회는 왜 열두 사람의 사도단을 구성해야 했을까? 이 행동은 제자들이 자신들의 모임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들은 새로운 이스라엘이라고 자신을 이해했던 것이다. 초기 교회는 열방에 빛이 되라는 제사장적 임무를 받았다고 스스로를 인정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앞으로 교회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워진 교회가 스스로의 정체성과 임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설교 개요
1.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
2. 누가의 두 번째 서신 사도행전
3. 예수의 승천: 구름 속으로 올려져
4. 교회의 임무: 예수의 증인이 되라
5. 교회의 첫 번째 결정: 열두 사도단의 보선(補選)
1.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
우리는 매주 설교를 듣습니다. 어떤 분들은 매일 성경을 읽습니다. 성경을 읽음으로 또는 성경을 배움으로 우리는 어떤 유익을 얻을 수 있을까요? 누가가 데오빌로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쓴 글이 누가복음입니다. 누가는 누가복음을 쓰면서 데오빌로 각하가 이미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해드리려고 한다는 목적을 밝혔습니다(누가복음 1:4). 그러므로 성경을 읽으면서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바를 더욱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을 읽으면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성경에는 많은 이야기와 사건이 담겨 있습니다. 성경에 담긴 글의 양식도 역사와 시, 편지와 율법 등 여러 형태가 있습니다. 이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들을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알게 될까요?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무엇을 알고자 할까요?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이 세상의 존재 목적과 우리 인생의 의미’를 알고자 합니다. 우리가 왜 무엇을 위해서 존재하는지 알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이 장차 어떻게 되는지 우리는 어떤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지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확실하게 알기를 원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 세상을 지으신 분이신 하나님에 대해서 알려줍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들려줌으로 우리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합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이 이 세상을 왜 창조하셨고 장차 어떻게 이끌어 가시는지 성경은 들려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을 알게 되며 그분의 뜻과 우리를 향한 계획, 그리고 장차 될 일을 알게 됩니다. 그런 진리를 분명하게 알게 될 때 우리는 세상과 자신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목적과 삶의 방향을 찾아 살아갑니다. 우리는 그것을 신앙생활이라고 부르며, 또는 진리를 찾아가는 삶이라는 의미로 구도자의 삶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고 배우는 목적이 세상과 자신에 대한 이해를 목적으로 한다면, 성경이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말하는지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하게 살피는 일입니다. 그 후에는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나 사건이 하나님의 계획과 우리의 존재이유에 대해서 무슨 통찰을 주는지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이것을 묵상이라고 부릅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동안에 우리 안에는 하나님과 세상과 자신에 대한 이해가 더욱 분명해질 것입니다. 그처럼 진리에 대한 바른 이해에 기초한 신앙은 든든한 반석 위에 세워진 집처럼 흔들리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는 자신의 두 번째 책인 사도행전을 통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걸까요? 다같이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2. 누가의 두 번째 서신 사도행전
누가는 사도행전을 쓰면서 누가복음을 간단하게 요약합니다. 그것은 ‘예수의 모든 행적과 가르침’이었습니다. 그 내용은 예수께서 사도들을 부르시고 그들에게 성령으로 분부하시고 승천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누가복음의 전체 기록입니다. 우리는 지난 11개월 동안 예수의 행적을 배웠습니다(2019. 11. 24 ~ 2020. 10. 25). 그것은 ‘누가가 들려주는 하나님 나라 이야기’였습니다. 이제 예수의 승천 이후에 제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도행전은 예수의 승천 이후에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인으로서 교회가 예수의 분부를 어떻게 실천했는지를 들려줍니다. 사도행전은 교회의 이야기이자 교회의 역사입니다. 또 그것은 성령이 교회를 이끌어간 역사이기도 합니다. 사도행전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말씀은 예루살렘에서부터 온 유대로, 그리고 사마리아로 퍼져 나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땅 끝까지 복음이 어떻게 전파되어가는지를 들려줍니다. 그런 점에서 사도행전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교회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직접적인 교훈을 주고 모범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사도행전 1장에서는 예수의 승천 이야기가 좀 더 자세하게 소개됩니다.
3. 예수의 승천: 구름 속으로 올려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안식 후 첫날 무덤에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사십일 동안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께 돌아가셨습니다. 그 장면을 누가는 다음과 같이 들려줍니다: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사도행전 1:9
예수께서 하늘로 올려져 가는 장면에 구름이 그를 가렸다고 말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다시 오실 때도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성경은 여러 곳에서 설명합니다(마 24:30, 26:64, 막 13:26, 14:62, 눅 21:27, 계 1:7).
왜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구약성경 다니엘의 예언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장차 될 일을 환상으로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이 땅의 왕들이 일어나고 쇠하는 역사의 끝에 세상 나라들을 심판하고 다스릴 하나님의 대리인이 오신다는 예언이었습니다. 예수께서도 다니엘의 예언에 대해서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만, 그리스도를 간절히 기다리던 유대인들은 다니엘의 예언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마 24:15).
다니엘은 환상 가운데 이 땅을 다스릴 나라의 왕들이 짐승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았습니다(단 7:17). 그 짐승들은 사나운 사자와 곰, 그리고 표범과 열 뿔 달린 짐승들이었습니다. 그 짐승들은 성도들을 괴롭히고 박해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성도들의 억울함을 풀어주시려고 일어나셨습니다. 그리고 짐승들은 죽임을 당하고 그 시체는 타오르는 불구덩이에 던져졌습니다. 세상에 심판이 임한 것입니다.
다니엘은 그 모습을 다음과 같이 그려주었습니다: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다니엘 7:13~14
위와 같이 다니엘의 예언에 의하면 세상을 다스릴 하나님의 그리스도는 인자 같은 분으로서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하나님 앞으로 인도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하늘로 올려져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는 누가의 설명은 다니엘의 예언대로 부활하신 예수께서 하나님의 대권을 받기 위해 하나님 앞으로 구름을 타고 가시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구름을 타고 하나님께 가신 후에 구름을 타고 다시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구름 타고 오신다는 말을 손오공처럼 그저 문자 그대로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의미로 생각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대권을 받아 영광 가운데 오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임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누가는 예수님의 승천 장면을 소개하면서 독자들에게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요? 누가는 예수의 승천이 바로 다니엘의 예언을 성취한 것임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예언대로 그리스도는 하늘 구름을 타고 하나님 앞으로 가서 권세를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땅을 다스리는 제국들과 제왕들을 심판하는 권세를 받아 하나님 우편 보좌에 앉으실 것입니다. 이제 드디어 주님이 통치하신다는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친히 세상 나라들을 통치하실 것입니다. 그것은 다니엘의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비록 지금 로마라는 큰 나라가 있고 가이사라는 황제가 무시무시한 짐승처럼 많은 나라들 위에 군림하고 있지만 성경의 예언대로 그 짐승은 붙들려 죽게 되고 그 시체가 불못에 던져질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의 승천을 본 제자들의 신앙입니다. 밧모섬에서 사도 요한은 다니엘의 환상을 더 구체적으로 보고 기록하여 교회들에게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그것이 요한계시록입니다. 그 내용은 그리스도께서 짐승의 세력을 이기시고 최종적으로 승리하신다는 것입니다.
초기교회 신자들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하는 찬송이 있다면 아마 이럴 것입니다:
세상 권세 멸하시려 주님 이 땅에 나타나시었네
우리 안에 계신 주 즐겁게 찬양해 주님 나라 임했네
죄악을 이기셨네 할렐루야 이기셨네
죽음을 승리로 할렐루야 승리로
모든 질병 고치셨네 할렐루야 고치셨네
주 다스리시네
For This Purpose
For this purpose Christ was revealed
To destroy all the works
Of the Evil One
Christ in us has overcome
So with gladness we sing
And welcome His kingdom in
Over sin He has conquered (Men)
Hallelujah, He has conquered (Women)
Over death victorious (Men)
Hallelujah, victorious (Women)
Over sickness He has triumphed (Men)
Hallelujah, He has triumphed (Women)
Jesus reigns over all! (All)
이 노랫말은 번역된 것인데, ‘주님 나라 거하리’로 번역하는 것보다는 ‘주님 나라 임했네!’고 옮기는 것이 옳습니다. 이 노래는 주님이 만국을 다스리심을 찬양합니다. 주님이 죄와 죽음과 질병을 이기셨다고 노래합니다. 그런데 다니엘서에 의하면 하늘 구름을 타고 오시는 분은 짐승으로 표현된 이 세상의 악한 세력들을 이기십니다. 우리말 가사에 ‘세상 권세 멸하시러’ 오셨다는 말은 사실 ‘악한 자의 일을 멸하러’ 오셨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요한일서 3:8). 그것은 세상 권세와 통치자들 배후에서 역사하는 세력입니다. 그러므로 부활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반드시 세상 권세자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을 목격한 제자들의 신앙고백입니다. 그런 확신과 믿음을 가진 제자들이라면 당연히 세상의 권세자들 앞에서 강하고 담대하게 맞설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들이 사도신경을 고백할 때, 예수님이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고 말할 때마다 우리는 이 장면을 상상해야 하겠습니다. 지금 예수께서 하나님의 모든 대권을 받으시고 친히 만국을 통치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는 우리들의 마음에 그려야 할 예수 그리스도의 현재 모습이며 영광스러운 판타지입니다.
예배와 묵상, 찬양을 통해서 예수님의 이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판타지를 마음에 그리며 기리며 사는 사람은 마침내 그 영광을 말하고 추구하고 실현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스트리아 철학자 이반 일리치는 세상을 바꾸려면 낡은 마음 속 그림을 대체할 새롭고 강력한 이야기를 들려주라고 말했습니다(If you want to change a society, then you have to tell an alternative story. – Ivan Illich). 예배야말로 우리가 마음 속에 하나님의 이야기를 배우고 기리고 반복하여 그리는 시간입니다. 그 그림이 선명해질 때 우리는 마침내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하나님의 동역자와 대리인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이미 우리 안에 선명하게 그려진 마음의 지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4. 교회의 임무: 예수의 증인이 되라
예수께서는 이토록 영광스러운 승천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막중한 임무를 맡기셨습니다. 그것은 제자들의 모임인 교회가 하늘에서 통치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인으로서 예수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누가는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1:8
이 구절은 두 가지 명령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명령은 권능을 받으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름을 받은 제자들에게 권능을 주시려고 예수께서는 하나님께 부탁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예언자들을 통해 성령을 부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일으키실 증인들에게 하나님의 영을 부어 주셔서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실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증인들은 하나님이 하신 위대한 일을 노래할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하나님이 하실 일을 말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장래 일을 말하는 것이며 그것이 젊은이들이 예언을 말한다는 뜻입니다(요엘 2장).
하나님이 자신의 일을 증거하게 하시려고 일군을 부르시고 보내실 때는 언제나 하나님의 영을 부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영을 부어 주신다는 말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예수께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그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그것을 목격한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사도행전 10:38
예수께서는 마태복음에서 제자들에게 모든 족속을 제자 삼으라고 말씀하시면서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신다는 말은 곧 성령을 부어 주신다는 뜻입니다.
우리 교회가 속한 교단은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을 강조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누가가 말하는 성령충만은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말임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성령충만은 단지 은사나 능력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사실 은사나 능력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보여주는 표징입니다. 하지만 은사나 능력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는 사람은 언제나 성령으로 충만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주신 약속은 성령을 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함께 하신다는 약속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주신 사명은 예수의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예수의 증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의 증인이 되는 것은 예수께서 하신 일과 가르침을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예수께서 하신 일과 가르침에 대하여 증인이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하신 일이 무엇이었는지, 그 일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증거했습니다. 예수께서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시고 포로된 자를 자유롭게 하고 눌린 자를 풀어주는 분이며 죄를 용서하며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신 분이라고 제자들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하나님이 보내신 바로 그 선지자시요 그리스도이심을 나타내는 증거였습니다. 그 뿐 아니라 예수께서는 성경대로 고난 당하시고 성경대로 다시 살아나셨으며, 다니엘의 예언대로 하늘로 올려져 구름을 타고 하나님께 가셨음을 목격했다고 제자들은 증언했습니다.
제자들이 이 모든 일을 통해서 꼭 증거해야 하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하나님 우편 보좌에 앉아 계셔서 모든 권세를 받으시고 통치하신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제자들은 거짓과 불의에 굴복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로마 황제들이 박해할 지라도 굴복하지 않았으며, 세속적인 부유함과 화려함을 우습게 여기고 주의 일을 위해 궁핍을 견디고 고난에 동참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습니다. 예수께서 행하셨던 것처럼 가난한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서로 돕고 구제하는 것을 자신의 일로 여겼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들 가운데 계시는 주님의 증인이 되는 일임을 잘 알고 있기에 누가 뭐라고 하기 전에 자발적인 동참과 헌신이 교회 안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때마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섬기는 공동체임이 세상에 밝히 드러났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공동체는 예수의 증인이 되는 공동체입니다. 그리고 그 특징은 예수의 삶을 재연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참되고 따뜻하게, 그리고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위해 한마음으로 협력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충만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입니다. 그 동안 우리 교단은 성령충만의 첫 번째 외적 증거를 방언이라고 가르쳐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성령을 부어주심이 곧 주님이 함께 하심이며 그 목적은 주님의 증인이 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외적 증거는 진실되고 따뜻하게 사는 삶임을 명심하고 또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5. 교회의 첫 번째 결정: 열두 사도단의 보선(補選)
그렇게 예수께서는 약속과 소임을 주시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승천을 목격하고 예루살렘에 돌아와 함께 모여 기도에 힘썼습니다. 그들의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과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은 약 120명이었습니다. 그들이 한 자리에 모였을 때 교회는 최초로 중요한 결정을 했습니다. 그것은 주님을 배반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사도직을 떠난 가룟 유다를 대신할 사람을 뽑는 일입니다. 베드로는 교회 앞에서 성경을 인용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사람을 뽑자고 했습니다.
이에 교회는 두 사람을 추천했습니다. 한 사람은 바사바라고 부르는 요셉(별명-유스도: 의로운 자)이요, 다른 한 사람은 맛디아였습니다. 교회는 열두 번째 사도가 될 사람을 뽑기 전에 다음과 같이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들이 기도하여 이르되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님께 택하신 바 되어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인지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 직무를 버리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사도행전 1:24~25
그렇게 기도를 드린 후에 두 사람을 놓고 제비를 뽑으니 맛디아가 뽑혔습니다. 그렇게 해서 열두 사도가 모두 채워져 온전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교회는 왜 사도단의 수가 열두명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는 세상에서 사도들이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다스릴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마태복음 19:28, 참고, 누가복음 22:30
이스라엘은 본래 열두 지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들은 야곱의 열두 아들로부터 나온 가문들입니다. 그 열두 지파는 가나안 땅을 열둘로 나누어 분배받았습니다. 그들은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렇게 옛 이스라엘은 온 세상을 위한 제사장의 나라로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새로운 세상을 선포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가 왔다는 선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의 기둥과 터가 될 열두 제자를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이제 자신들이 새 언약 시대에 새 이스라엘의 대표자들임을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열둘입니다. 그런데 그 중 한 사람이 빠지면 불완전한 이스라엘이 됩니다. 그래서 빠진 사람을 대신할 맛디아를 사도로 뽑아 온전한 새 이스라엘이 되게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이스라엘이 되었다는 확신 속에 살았습니다. 그 기초는 열두 사도단(使徒團)이며 그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바울 사도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이 사실을 일깨워주었습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에베소서 2:20
사도들이 맛디아를 열두 번째 사도로 뽑아 열두 사도단을 완성함으로 스스로 참 이스라엘의 계승자임을 내외에 밝히 나타냈습니다. 하나님이 온 세상에 복을 주시려고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를 통해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온 세상을 위한 등불이며 축복의 통로입니다. 온 세상은 이스라엘에게 유업으로 주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열방에게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벧전 2:9). 그런데 이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시면서 열두 사도들을 중심으로 한 교회 공동체를 새 이스라엘로 세우셨습니다. 이런 영광스럽고 막중한 소임을 맡았음을 알았기에 사도들은 열두 번째 사도를 선출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사도들이 살던 시대에 유대인의 대표자들이 모인 곳은 따로 있었습니다. 그곳은 유대인의 모든 일을 관장하는 기관입니다. 그곳에서 결정되는 일을 모든 유대인은 따라야 합니다. 그곳이 바로 산헤드린이라 부르는 유대인의 국회입니다. 산헤드린의 의장은 대제사장이며 의장을 제외한 의원은 모두 70인입니다. 그들은 예수를 이단으로 판결했습니다. 그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다시는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위협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성전에서 내쫓았습니다. 온 유대인은 산헤드린이 이스라엘의 대표기관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들은 자신들이야말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이스라엘과 모든 만민을 인도할 새로운 대표자요 대리인으로 임명하셨음을 확신했던 것입니다.
초기 교회가 내린 이 결정은 교회가 자신들을 어떤 존재로 이해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오늘 우리 교회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습니까? 우리들은 사도들과 같은 공동체 정체성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뽑으셔서 열방을 복되게 하신다는 사실을 믿습니까? 주님이 우리를 통해서 우리 안에서 일하실 것을 기대합니까? 우리 마음에 일어나는 열정과 소원이 주님의 뜻을 이루시려는 주님의 계획과 섭리 가운데 있음을 믿습니까?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적은 무리로 시작했을지라도 온 세상에 충만하도록 창대한 무리가 될 것입니다. 본래 교회는 자신들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 교회가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그런 사람이 무슨 일을 하려고 하겠습니까?
지난 주일은 종교개혁주일이었습니다. 종교개혁은 사실 로마가톨릭의 신앙을 새롭게 고치자는 운동이었습니다. 종교개혁을 통해서 개신교회가 탄생했습니다. 개신교회의 가장 큰 장점은 개교회와 개개의 신도들이 자신의 교회와 자신을 그리스도의 대리인으로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본래 신의 대리인이라는 말은 로마 가톨릭의 교황에게 해당되는 말이었습니다. 교황은 신을 대신하여 교회를 치리하기에 그에게는 잘못된 판단이 없다는 교황무오설까지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개신교회는 교황무오설을 부인하면서 스스로 하나님의 대리인이라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그 결과 개신교인들이 얻은 가장 큰 유익은 스스로 이 땅에서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의 책임과 권세를 가지고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교황청의 결정이 없어도 수많은 개교회와 개인들이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전도하고 개척하며 하나님의 뜻을 삶 속에 실천하려고 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이 교황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오늘 나에게 주님이 기뻐하시는 바를 알게 하시고 그 일에 대해서 소원을 품게 하신다는 확신은 오늘도 수많은 교회들에게 새 시대를 위한 그루터기라는 자부심을 갖게 했으며, 오늘도 수많은 기독교 기업인들에게 자신의 기업을 통해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공동체에 유익이 되는 길을 찾아 모험적으로 기업을 운영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부어주고 있습니다.
오늘 저는 사도행전 1장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과 교회의 사명, 그리고 교회의 정체성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주님의 승천이 무슨 의미를 가지며, 주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이 무엇이었으며, 교회가 열두 사도단을 완성함으로 스스로를 어떤 공동체와 존재라고 여겼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하늘로 올려져 구름을 타고 하나님 앞으로 가신 것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유의 주님이 되셔서 지금도 통치하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는 지상에 있는 자기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주님의 통치를 받는 교회는 예수의 증인으로 살 것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예수께서는 성령을 부어 주실 것입니다. 이는 언제까지나 함께 하신다는 약속이며 증표입니다. 그렇게 초기 교회는 주님의 통치와 자신의 사명을 확신하는 새 이스라엘로 살았습니다. 이 영광스러운 약속과 사명의 전통 위에 우리 교회가 서 있습니다. 이 사실을 확신하면서 살아가는 한 교회는 예수의 증인으로 담대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앞으로 계속 읽을 누가의 두 번째 편지인 사도행전을 통해서 교회가 어떻게 그 사명을 감당했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대리인 공동체로서 확신을 가지고 어떻게 했는지 확인해 갈 것입니다. 그 확신이 우리들 안에도 충만하게 되기를 우리 모두 함께 바라고 기대합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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