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저한테 뭐든지 시키세요!
2018년 6월 20일 수요일
행주를 포장하고 잇는데, □□ 씨가 물을 마시러 나온다.
미리 얘기해 놔야겠다 싶어서, 나는 그에게 한마디 건넨다.
“□□씨, 있다가 박스 도와 주세요~”
“선생님, 저한테 뭐든지 시키세요.”
“예~”
괜히 짠한 마음이 들었다.
눈물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아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생각해주는 마음은
언젠가는 알아준다는 걸,
장애인도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을 걸 몸소 느낀다.
장애인직업재활센터에서 일한지도 거의 1년이 다 되어간다.
이 일을 계속할 수 있게 될지 어떨지는 모른다.
공공근로라는 신분상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1층 작업장을 도맡아 관리하게 된 나로서는
직원도 아니고 그렇다고 외부인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에서 수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나의 위치는 어디일까.
처음 여기에 왔을 때, 지적장애인이라는 조금은 생소한 사람들을 대해야 한다는 것이 낯설고 괴롭기만 했다. 그들의 특성을 알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들과 어울리는 것도 힘들었고,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난감할 때가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팀장님께서 교육을 한다고 부르신다.
“지적장애인들에게는 우리가 당연히 여기던 것들도 다르게 여길 수 있으니, 혹시 불미스런 일이 있더라도 직접 지도하지 마시고 반드시 관리자에게 말씀해 주세요.”
아, 그렇구나! 지적 장애인들은 일반인과 조금은 다르게 접근해야 하는 거구나. 아마도, 그때부터였을 거다. 일반인과 조금은 다르게 대하면서, 그러면서도 일반인과 차별하지 않기 위해 나는 많은 노력을 했다. 일반인으로 대하면서, 그들의 특성을 고려해서 그들을 대하니, 그들이 내게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일반 사람들이라면 싸우지 않을 문제들로 그들은 다투기도 하지만, 일반 사람들이 쉽게 등을 돌리는 반면에, 그들은 싸우더라도 쉽게 등을 돌리지 않는다. 싸우고, 금방 잊고, 다시 또 웃는다. 내가 진심으로 대하면, 그들도 진심을 알아준다. 그들이 일하는 다양한 방식이 있고, 일반인보다 많은 실수를 하기는 하지만, 때로는 일반인보다 더 잘하는 일이 있을 때도 있다. 어느 날부터 그런 그들의 장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를 무의식적으로 생각해 내게 되었다. 그것은 그들이 하고 싶어 하는 것, 그들이 원하는 일을 최대한 맞추어주는 것. 물론, 때로는 그들이 원하는 것을 못할 때도 있으니, 그걸 설명해야 하는 몫은 기관에 근무하는 담당자의 몫이다. 나의 몫은 그저 그들의 기를 최대한 살려주는 것. 가끔, 일을 하다 보면,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있고, 화가 나기도 한다. 그런 모든 것들을 100% 컨트롤하지 못해서 그들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최대한 화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고, 최대한 일하는 장소를 즐겁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내가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일하는 동안의 기록을 최대한 남겨두고 싶다. 지적장애인이라는,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이 창피한 것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세상에 알리고 싶다. 그래서 이 책을 쓴다. 세상에 나올 수 있는 그날을 기다리며 원고를 써내려간다.
2. 사랑받아야 마땅하기에
그들의 말을 모두 알아듣기란 불가능하다. 그저, 눈치로 뭘 원하는지, 무슨 말 하려는 건지를 알아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의 공통점은 있다. 그들은 감정에 솔직하다는 것. 웃기면 웃고, 울고 싶어지면 울고, 때로는 화를 내기도 한다. 물론, 화를 내거나 울음을 터뜨렸을 때는 중재역할을 하는 관리자가 조금 피곤해지기는 하겠지만, 그렇게 꾸밈이 없는 그들을 바라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들은 먼저 와서 내게 웃으며 인사를 걸기도 하며, 때로는 일상적인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한다. 아주 작은 이야기에도 그들은 웃음을 터뜨리며, 별것 아닌 일에도 울음을 터뜨린다. 작고 별것 아닌 것들에서 그들의 순수한 마음을 볼 수 있으며, 그들이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선생님, 3만원이요!”
그러자 화영씨가 말한다.
“선생님, 100만원이요!”
내가 대답한다.
“안 사요!”
그들의 웃음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사건은 시작되었다.
“선생님, 100만원이요!”
몇 번을 그렇게 하자, 너무 떠드는 것 같아서 나는 웃으면서 화영씨에게 말한다.
“조용히 좀 하지.”
“왜 조용히 하라 그래요...?”
몇 번 같은 말이 되풀이된다.
그러자 주희씨가 엄청나게 큰 목소리로 격앙되어 외친다.
“조용히 하라고!”
그러나, 고은씨도 거기에 동참한다.
“조용히 하라고!”
주희씨가 고은씨에게 간다.
나는 그들의 반응을 보고, 관리자에게 인터폰을 건다.
곧 국장님이 내려와서 그들을 상담실로 데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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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내용이 채워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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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의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잘은 모르지만,
해결은 잘 되었던 듯 하다.
오후에 아무 일도 없는 걸로 보면.
언젠가는, 이 여백이 채워질 걸로 믿으며 나는 이 글을 쓴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하고 싶다.
“여러분은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입니다. 사랑받아야 마땅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을 끝까지 사랑할 것입니다. 마땅히 그래야 하기에.여러분이 화를 내는 순간에도, 울고 있는 순간에도, 기쁘게 웃는 순간에도 나는 항상 여러분의 마음 속에 있겠습니다.”
나는 그들의 가치를 세상에 전하고 싶다. 그리고 그들도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세상에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그들도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그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라는 것. 행복이 진정한 성공이라는 것. 그래서 세상에 알리고 싶다. 그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고 사람들도 진정한 행복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게 되기를. 사랑받아 마땅하기에, 일을 할 수 있기에, 오늘도 일터에 나오는 그들의 표정은 밝다. 그들의 밝은 표정을 보면서, 나도 또한 행복해진다. 행복, 별 게 있나. 이런 게 행복이지.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나는 몹시도 즐겁다. 이 시간이 오래오래 계속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