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페라의 탄생 ▲ 오페라(Opera)란? 오페라(opera)라는 용어는 ‘작품(opus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오페라는 일반 연극처럼 의상·무대장치·조명 등을 갖춘 무대극으로, 등장인물들은 노래와 연기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주로 환상적이거나 복잡하고, 사랑·미움·질투·복수 같은 아주 격정적인 감정들이 표현된다. 오페라는 작곡가와 대본가의 공동 합작으로 만들어지며, 대본은 ‘리브레토(libretto)’(‘작은 책’이라는 의미)라고 부른다.
▲ 탄생 오페라의 탄생은 16세기 말 이탈리아의 문화적 상황과 상당히 관계가 깊다. 르네상스 운동의 중심지인 피렌체에 살고 있던 폴리치아노(Angelo Poliziano, 1454~94)는 15세기 최고의 인문주의자로, 16세 때 이미 호메로스(기원전 8세기)의 〈일리아스(Ilias)〉를 라틴 어로 번역하여 출판하기 시작했는데. 메디치 가의 로렌초 공작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아 공작의 궁정에 머물면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시와 극을 썼다.
당시의 문인들은 인문주의의 영향으로 고대 그리스 문화에 관심이 높았고, 특히 극작가들은 고대 그리스 비극이야말로 자신들의 극음악이 모방해야 할 모델이라고 보아, 그리스 신화 속에서 많은 소재를 발견했다. 그리스 극에서 음악이 차지했던 역할에 대해서는 당시의 학자들 간에도 의견차이를 보여, 합창만이 노래로 불려졌다는 주장과, 극 전체의 가사들이 모두 노래로 불려졌다는 주장이 있었다. 다수의 그리스 비극을 편집했던 지로라모 메이(1525~1608)는 극 전체의 가사들이 모두 노래로 불려졌다는 주장하였고, 그 연구결과는 서신교환을 통해 카메라타 멤버들에게 전해졌고, 이것이 바로크 시대 모노디 양식의 태동과 오페라 탄생의 시발점이 되었다.
카메라타의 멤버들이었던 작곡가이자 가수인 페리(1561~1633)와 카치니(Giulio Caccini,1545경~1618) , 그리고 시인인 리누치니가 모노디 양식으로 된 음악극(dramma per musica)을 시도했다. 직접적인 결과는 최초의 오페라들이라고 할 수 있는 ‘다프네(Dafne)’와 ‘에우리디케(Euridice)’의 탄생이었다. ‘다프네’는 갈릴레이의 후원자이기도 했던 피렌체의 코르시 백작(Jacopo Corsi, 1561~1602)과 페리의 공동합작으로 작곡된 것이며, 이것은 극 전체에 음악이 붙여진 최초의 오페라로, 1598년에 코르시 백작의 궁정에서 초연되었다. 이 오페라에서 페리는 아폴론 역을 맡았다고 전해지는데, 불행히도 현재는 대본과 악보의 극히 일부분만이 남아 있다. 현존하는 것으로 최초의 오페라는 역시 리누치니 대본에 페리와 카치니가 함께 음악을 붙였던 ‘에우리디케’이다.
■ 오페라 탄생이후 첫 오페라 오페라의 탄생 이후 가장 중요한 첫 오페라는 몬테베르디(Claudio Monteverdi, 1567~1643)의 ‘오르페오(L’orfeo)’이다. ‘오르페오’는 몬테베르디가 만토바의 궁정에 고용되어 있던 당시, 공작의 결혼식을 축하하는 행사의 일환으로 공연되었던 작품으로, 1607년 만토바에서 상연되었다. 대본은 몬테베르디와 함께 만토바 궁정에 고용되어 있던 시인 스트리조(Alessandro Striggio, 1573~1630)가 쓴 것으로, 원래 오르페오(그리스 어로는 오르페우스) 신화는 비극적인 종말로 끝나지만, 이 오페라가 축복받는 신부와 신랑을 위해 작곡된만큼 해피엔딩으로 끝나도록 각색되었다. 몇몇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시작된 해피엔딩은 거의 관습화되어 19세기 말까지 지속되었다. <음악으로 동물등을 복종시킨느 오르페오> 17세기 초 황제 루돌프 2세의 궁정화가 뢸란드 사베리, 회화
● 오르페오 이야기 오르페오는 음악의 신 아폴론의 아들이며, 아버지로부터 리라를 선물받았을 뿐만 아니라, 뛰어난 연주기술과 음악성도 함께 물려받았다.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케의 이야기를 보면 이 신화와 음악과의 연관성을 바로 알 수 있다.
<출처 ; 서양음악사 100장면(1), pp.20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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