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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드디어 대망의 최지영을 보는 날이 다가왔다.
웨이하이를 가는 거지만 비행기 표에 쓰는 돈을 조금이라도 더 아끼겠다고 칭다오를 통해 웨이하이로 가는 경로를 택했다.
실상 지금 보면 칭다오 비행기표에 꼬테표를 사나 직행으로 웨이하이로 가는 비행기표를 사나 가격이 별 다를 바가 없었다.
그래도 웨이하이 공항에서 지영 집까지 버스 2시간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나름 적절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오전 8시에 일어나서 너덜꼬질한 모습으로 공항버스 7000번 타고 인천공항으로 출발했다.
지영이도 이 날은 근무일이라서 꼬질할 게 분명하니 나도 굳이 꾸미지 않았다..ㅎㅎ
일찍이 일어나서 준비를 마치다보니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0시였다.
출국 수속도 너무 빠르게 끝나는 바람에 약 2시간은 여유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몇 달 전 칭다오 여행에서 출발 2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했더니 final call까지 받아버린 아찔한 경험 때문에 이르게 도착한 거 후회하진 않는다..
파스타로 아점을 해결하고 멍 때리다 보니 2시간은 후딱 갔다.
파스타 다 먹고 사진을 찍으려고 핸드폰을 들었는데 햇빛이 예쁘게 비추어졌다..갬성 넘치는 걸?
두근두근..비행기 타고..꼬테 타고 갑니다 가요.
환승할 때 하도 시간이 급하다길래 심장 쫄렸는데 막상 가보니 매우 여유로웠다.
기범이랑 인스타 영통까지 할 여유가 있었다는 것이다. 기범이는 꼬질꼬질하다고 계속 놀렸다...캡쳐도 한 바가지를 했다...언젠간 돌려주겠다.
꼬테 도착해간다. 택시 바로 환승해버리고. 그녀의 집으로 갔다 악.
지영의 자취방 스케일이 장난 아니었다..방이 세 개에 화장실 두 개...내가 로망하던 그런 자취방...
나도 중국 오면 이 로망 실현할 수 있는 걸까. 지갑이 텅 비었다..
문 앞에 전신 거울이 있길래 전신샷 하나 남기고~
처음에는 방이 두 개인줄 알았다. 문 앞의 방은 지나치고 지영 방부터 구경했다..그럼 내 방은 바로 옆 방이겠지? 하면서 봤는데
어...뭐지? 박스랑 그녀의 속옷들이 있었다. 분명 방을 정리해놨다고 했는데...물론 정리를 마치지 못했다고 하긴 했는데 정리가 시작조차 안 된 모양새로 보였다. 약간 당황스러웠지만, 내 방이 따로 있다는 것 자체에 감격하며 구경을 계속하는데, 문득 나의 화장실이 궁금해졌다.
바로 나의 화장실을 구경하러 가는 길에 나의 방을 찾은 것이다...문 앞의 방이 지영이가 준비한 내 방이었던 것이다...
너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미친 감동을 주는 포근해보이는 이불, 수건, 옷, 인형, 선물... 악. 악. 악. 비명 지를 뻔했다. 행복해서.
구경 다 마치고 침대에 앉아서 폰하면서 지영의 퇴근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침대가 포근하니 내 집 같았다. 편안하다..감동 흣.
18시 50분쯤 지영의 콜을 받고 바로 지영 회사로 출발했다.
훅 두근. 그녀의 얼굴을 보는 첫 순간. 묘하게 떨렸다. 뭐 때문이지? 나도 모르겄다.
그나저나 나 좀 멋진걸. 유사 남친이잖아? 그녀의 퇴근을 마중가다니 훗.
만났다. 와우.
첫 번째 사진은 지영 시각이다. 나를 계속 불렀는데 반응이 없었다고 한다... 아무 소리도 안 들렸다... 쥐 지나가는 소리도 못 들었다...쥐가 실제로 안 지나갔을 수도 있다...난 아무 것도 못 들었다...나는 아무 시각이 없다(?). 캄캄한 회사였다. 어어... 그냥 추웠다.
너무 캄캄해서 내 눈으로도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카메라로는 뭐가 찍힐 거라는 믿음은 없어서 폰 자체를 주머니 속에 쿡 박혀놓았다.
기억이 안 나서 지영이한테서 기억 소환용 동영상을 받았는데 역시나 너무 캄캄하다...그녀의 기대에 찬 소리가 은근 귀엽게 느껴지구마잇 흐흐
만나자마자 생각보다 열렬한 반응이 없었다고 보면 안 된다.
동북 여자는 원래 쿨한 법이다. 겉으로는 쿨하지. 속으로는 아주 그냥 날뛰고 있다고 보면 된다.
만나자마자 팔짱도 꼈다. 호호호호. 자연스러운 스킨십이라고 할 수 있지. 중국에 와서 바람피는 기분이군 호호호호.
어 동성애자는 아닙니다예.
배고파서 기절 직전인 우리는 바로 팔짱을 끼고 택시를 타고 하이디라오를 갔다..
중국의 하이디라오가 너무 궁금했는데 드디어 체험하는 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보다 가격이 더 싸고, 서비스는 더 좋고(말이 많다, 조용히 혼자 먹긴 쉽지 않다.), 선물도 있었다. 지영이랑 먹으러 간 건지 직원이랑 먹으러 간 건지 약간 헷갈릴 뻔했다.
농담이고, 전반적으로 너무 대만족이었다. 이미 가격이랑 서비스에서 내 마음을 다 채갔다고 보면 된다.
들어가자마자 갑자기 곰돌이 꽃송이를 받았다...1차 놀람.
웨이팅이 없었다...2차 놀람. 내가 웨이팅 없이 하이디라오를 먹을 수 있다니요.
자리에 앉고 메뉴를 주문했다. 이야 역시 현지인이 있으니 든든하네에~
다들 중국 여행 갈 때 나를 찾는 이유가 이거인가? 난 현지인이 아닌 걸 ㅠㅠ 하여튼 난 좋았다...흐흐. 아 물론 지영이랑 가서 좋은 거다. 현지인이랑 가서 좋은 게 아니라; 이 부분은 확실히 짚고 넘어갈란다.
주문하는 데 야악간 쉽지 않았다. 인생 여러 고난을 되돌아볼 때 사실 이건 매우 쉬운 수준이라고 봐도 무방하긴 하다.
야악간 쉽지 않았던 이유는 간단하다. 둘 다 생각이 없다.
메뉴를 확정 못한다.
둘 다 따라다니기만 해와서 그런지 둘 다 너무 배려하면서 살아와서 그런지 메뉴 확정하는 데까지 시간이 쫌 약간 살짝 걸렸다.
쓰고 있는 지금도 군침이 흐른다...츄베릅...너무 맛있었다...
토마토 소스는 항상 싫어해 온 맛이라서 토마토탕이 정말 기대감이 없었는데, 이날부로 최애 탕이 되었다...그야말로 大开眼界
대하는 너무 웃긴 에피소드라고 생각한다..ㅋㅋㅋ
혼자 발라 먹는데 묘하게 입에 들어오는 게 거의 없다고 느껴졌다. 이게 지금 먹고 있는 건지 소스를 입에 갔다 와구와구 하고 마는 건지 약간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지영이한테 발라달라고 요청해보자고 얘기를 꺼냈다.
지영이는 머뭇머뭇 얘기를 꺼냈다 ㅋㅋㅋㅋ 너무 웃겼다 머뭇머뭇. 내가 해도 머뭇거렸겠지만, 지영이가 하니 난 마냥 행복하기만 한 여자였다.
직원은 싫다는 장난스런 표정을 지었는데 그것 또한 코미디였다.
그러면서 잘도 발라주셨다.
면상이 유머스러워서인지 모든 장난이 유머스러웠고, 그냥...호감이 갔다. 쌉 E는 확실하다.
쌉 E가 두 쌉 I를 어찌 감당하였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웃프다 ㅋㅋㅋ 질문해도 우리 둘은 입을 거의 다 다물었던 것 같다.
난 지영이가 대답하기만 기다렸다. 내 일 아니라는 듯이. 흐흐..
직원이 갑자기 테블릿을 내민다.
어? 뭐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필터를 씌웠다. 내 이마를 극대화시켰다. 혼자 너무 재밌어 했던 것 같다. 사진 보면 그래보인다. 웃음이 꽤나 환하다...
지영이가 또 이런 행복한 순간을 찍어주었다. 지영이는 왜 안 찍었을까. 귀여운데 ㅠㅠ
나 좀 예쁜데? 이때 최지연 어디갔지?;;
직원은 우리가 한국어를 쓰는 걸 보고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었다.
지영이는 한국인이라고 대답했다. 약간 의아했다. 왜지?
물어보니 조선족은 '鲜族‘라는 식으로 불리면서 인식이 안 좋다고 한다.
조선족은 중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인식이 안 좋으면 대체 어딜 가야하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차피 내 언어 능력을 볼 때 중국이나 한국 밖에 있을 곳이 없어보여서 그냥 생각을 멈췄다.
굳이 노력해서 다른 나라 갈 열정걸이 아니다 나는.
직원은 한국인이라고 하니 우리한테 한국어를 물어봤다.
'漂亮'을 한국어로 예쁘게 어떻게 표현하냐고 묻길래 '예뻐요'라고 알려줬더니 지영이가 변태 같댄다.
그래서 '아름답네요.'라고 알려줬더니 따라하질 못한다. 포기했다. 뒷감당 알아서 하세요 마인드로 '예뻐요'로 알려줬다.
그리고 한국인이 '씨발놈아'를 자주 쓴다며, 중국어로 뭔지 우리한테 물어봤다.
알려줄 뻔했다.
다행히 지영이가 앞서 막았다. 그런 말은 안 알려줄 거라고. 정직한 여성이군. 반성했다.
사실 이걸 중국어로 뭐라 하는지도 잘 모른다. 욕이지 뭐.
다 먹고 지영이가 곰돌이 꽃다발을 들고 찍으랜다.
어? 약간 당황스러웟다.
찍으라니 찍었다. 그치. 찍었다. 어...귀엽네. 그래그래. 귀엽네. 그래그래....
하이디라오 싹싹 쓸어서 위에 담아두고 1층 큰 마트로 갔다.
거의 첫 중국 큰 마트 쇼핑이라서 왕창 사갈라고 했는데 막상 보니 뭘 살지 감이 안 잡혔다.
물론 감으로 뭘 사는 건 아니다만은 배불러서인지 막 왕창 끌리는 음식이 많이 보이지 않았다.
유자를 하나 겟하고, 蔓越莓干果도 겟하고, 菠萝蜜도 겟하고, 또 다른 무언가도 겟했겠지만 기억이 잘 안 난다.
또 臭干子랑 한 샷 건졌다. 왜 건졌지? 지영이가 찍으랜다.
어쩌다 이리 큰 라툘 보는데 한 샷 찍어야 하지 않냐며.
결제할 때 쉽지 않았다. 유자를 따로 무게를 재서 가져와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걸 듣지도 못하고 냅다 유자 무게 재러 뛰어간 지영의 뒷모습을 보며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직원은 계속 나를 쳐다본다...빨리 결제하라는 눈빛...땀 삐질삐질 흘린다...빨리 구조하러 오시옵소서 지영사마...
결국 직원이 입을 열었다. 결제 빨랑 하지 좀?
순간 쫄아서 위쳇페이를 냅다 들이밀었다. 결제됐다. 한 건 지나갔다. 그제서야 지영이가 뛰어온다. 원망스러웠다.
뭐했냐고 물으니 무게 재러 갔다고 하더라. 그랬구나.
그리고 한국 마트를 가자며 어딘가로 또 출발했다. 걸어갔다.
40분을 걸어갔다. 유자를 든 내 팔은 빠지는 줄 알았다. 원망스러웠다.
산책을 하며 웨이하이 풍경을 감상할 수 있어서 너무 감격스러웠다. 애초에 걷는 걸 좋아한다 나는.
산책을 하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유독 기억나는 건, 초등학교 때 같이 클라리넷을 불었던 사람에 대해서 얘기를 나눴다.
사실 기억나진 않고, 지영한테 물어본 거다..이 여자 뇌에 무슨 장치를 달아놨길래 그걸 기억하지...아무튼.
그러면서 손도 잡았다. 인증샷까지 남겼다.
어...약간 연애 이야기 쓰는 것만 같지만, 우정 이야기다.
손을 잡는 것에 대한 비하인드를 이야기 하자면 약간 머쓱 유머스럽다.
지영이가 손을 내미는 것이다. 손바닥이 위로 향하여.
나는 자기 핸드폰을 달라는 건 줄 알고, 잉? 핸드폰이 나한테 없는데? 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절레절레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뭘 줘야 하는 걸까? 한참 고민에 잠겼다.
고민에 빠진 찰나 내 손을 확 잡는 것이다...내가 줘야했던 건 나의 손이었다...
센스 없었다. 반성했다.
설레는 녀석.
그렇게 40분의 긴 여정 끝에 한국 마트에 도착했는데...문을 닫았다.
원망스러웠다.
그래도 그녀와 함께라서 좋았다. 행복했다. 미치겠다. 덕분에 즐거운 추억이 하나 추가됐다.
바로 택시를 타고 집으로 출발했다.
집 밑에 도착해서 그림자 샷 하나 건지고, 덕분에 지영 집을 다시 찾아간다면 이걸 참고해도 될 것 같다.
집 도착하고 나는 쌈마웨이를 보고 있었고, 지영이는 지옥의 유자 처리 과정을 밟고 있었다.
너무 힘들어보였다. 도움을 줄 수 없었다, 나도 할 줄 아는 게 없기 때문이다...
지영도 계속 날 쫓았다. 빨리 쌈마웨이를 보라고...
그래서 매우 여유롭게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ㅋㅋㅋㅋㅋ
너무 웃기다. 칼을 냅다 유자 정수리에 꽂아버리기...옆에 널부러진 유자 껍질을 볼 때마다 웃음이 나온다.
덕분에 맛있는. 부서진. 유자 쪼가리들과 菠萝蜜, 蔓越莓干果가 내 앞에 놓여졌다.
아 감동의 눈물이 또 눈 앞을 가리게 되...
와구와구 먹었다. 그런데 배가 너무 불러서 그리 많이 들이키진 못했다.
菠萝蜜는 처음 먹어봤는데 생각보다 달았고, 蔓越莓干果은 딱딱했다. 아무래도.
만나서 끊임없이 먹기만 했구나 싶다.
먹으면서 보고, 보면서 먹고.
함께 드라마 보는 로망을 이루었다.
슬슬 잘 준비하려고 세수하려는데 클렌징폼을 하나 추천해주는 것이다.
유명하지만 거품이 안 나서 안 쓰고 있다며 클렌징폼 하나를 나한테 건네줬다.
나는 거품이 나든 안 나든 사실 상관없어서 냅다 짜서 썼다. 실제로 쓰고 있던 클렌징밀크도 거품이 안 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뭐지? 이건...클렌징밀크가 아닌 것 같다.
아니 그냥 세수할 때 쓰는 물건이 아닌 것 같다.
이름을 살펴보니...중국어랑 거리 두면서 산지 좀 오래되다 보니 잘 모르겠지만, 내 촉이 이건 수분크림이라고 알려주고 있다.
지영이한테 고소했다. 이건. 클렌징폼이 아닌 것 같은데?
지영은 너그러웠다. 당황한 기색이 없이 순수한 웃음을 지으며 그랭? 아니양? ㅋㅋㅋㅋㅋㅋㅋ
이런 태도, 따라배워야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래저래 얘기를 하다가 이건 수분크림이라고 통일되는 결론이 났다. 흐흐..
다른 클렌징폼으로 세수를 마치고 둘이 팩을 붙였다.
로망 또 하나 실현했다. ㅎㅎ
이 팩 통채로 하나 선물받기까지 했다..눈물 찡..
자러 갔다~ 꿈나라로~
침대 역시 포근하니 내 집 같았다.
꿀잠 자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