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자연의 일부입니다. 인간의 자연에 대한 전쟁은 자연으로 하여금 인간에 대한 전쟁을 피할 수 없게 만듭니다.
인간은 미래를 예견하고 그 미래를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다. 지구를 파괴함으로써 그 자신도 멸망할 것이다. - 앨버트 슈바이처
해충은 살충제 살포 후 생존능력이 더욱 강해져서 이전보다 오히려 그 수가 많아진다. 따라서 인간은 이 화학전에서 결코 승리를 거두지 못하며 그저 격렬한 포화 속에 계속 휩싸일 뿐이다.
아마 미래의 역사학자들은 우리의 왜곡된 균형감각에 놀랄 것이다. 지성을 갖춘 인간들이 원치 않는 몇 종류의 곤충을 없애기 위해 자연환경 전부를 오염시키고 그 자신까지 질병과 죽음으로 몰고 가는 길을 선택한 이유를 궁금해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우리가 저지른 일이다.
인간이 자신의 기원을 망각하고 생존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인지 잊어버리는 순간, 물은 다른 자원과 더불어 무관심의 희생양이 되어버렸다.
박테리아, 균류, 해조류는 유기물을 썩게 만들어 동식물의 유체를 원래의 구성원소인 무기물로 환원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런 미생물이 없다면 토양과 대기, 살아 있는 생물들을 통한 탄소와 질소의 순환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떤 일을 계획할 때에는 그 주변 역사와 풍토를 고려해야만 한다. 자연 식생은 그 환경을 구성하는 다양한 생물들이 벌이는 상호작용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왜 이런 경관을 갖추게 되었는지, 왜 있는 그대로 보존해야 하는지 그 이유가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다.
야생완두는 이른 봄 알팔파가 활짝 피어나 꽃가루를 딸 준비가 되기 전까지 벌들의 중요한 먹이가 된다. 다른 먹이를 발견할 수 없는 가을철이 되면 벌들은 월동 준비를 위해 메역취 꽃가루를 모은다. 자연이 스스로 결정한 이런 정확하고 미묘한 타이밍에 의해 어떤 야생벌은 버드나무 꽃이 피기 시작하는 바로 그날 등장한다. 이런 사실을 이해하는 사람이 없지는 않겠지만 화학물질의 무차별적 살포를 명령하는 사람이 그러한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 문제다. 야생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적절한 서식지의 필요성을 이해하는 사람은 어디로 갔는가? 그들 중 너무 많은 사람들이 제초제가 야생동물에게 ‘무해하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마구 없애버리는 식물들은 사실 건강한 토양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기능을 담당한다. 흔히 잡초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는 이런 자연적 식물 군락은 토양 상태를 나타내주는 지표 역할을 한다. 그런데 화학제초제를 사용하면 이런 유용한 기능이 상실되게 마련이다.
울새의 숫자가 점점 증가하고, 숲에 처음으로 녹색 안개가 싹트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아침 햇살 사이로 울려 퍼지는 새들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새로운 봄날을 맞는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들은 모두 지나간 옛일이 되어버렸고,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새가 돌아오지 않는 것을 당연시 여기게 되었다.
식품의약국은 ‘허용량’이라 불리는 오염의 최대한계치를 제정했는데 여기에는 한 가지 분명한 결점이 도사리고 있다. 현 상황에서 이 제도는 단순한 서류상의 절차에 지나지 않을뿐더러, 이 안전 기준 정도만 신경 쓰면 된다는 점을 정당화하는 느낌을 풍기고 있다. ‘이 식품에 약간, 저 식품에 약간’ 하는 정도로 유독물질 함유량을 허용하는 안전 정책에 대해, 상당수의 사람들은 식품에 있어서 유독 물질의 안전 수준이나 바람직한 수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인간이 아무리 안 그런 척 행동해도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다. 이 세상 곳곳에 만연된 공해로부터 과연 인간은 도망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