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빈(南份) - 충경공 의산위공 부사공파 8세
▲ 의산위공(宜山慰公) 남휘(南暉)의 장남 – 남빈(南份)
남빈(南份, 1421~1465) 조선 전기 문신으로 본관은 의령(宜寜)이며 부사공(府使公)파 파조이다. 증조부는 조선개국 1등 공신이며, 영의정을 지냈고 충경(忠景)의 시호를 받은 남재(南在)이시다. 조부는 병조의랑 남경문(南景文)이고, 부친은 부마(駙馬) 의산위(宜山威)에 봉해졌으며 소간(昭簡)의 시호를 받은 남휘(南暉)이다. 모친은 정선공주(貞善公主, 1404년~1425년)이며 태종(太宗, 이방원)의 적4녀이다. 부인은 남양 홍씨(南陽 洪氏) 현감 홍여공(洪汝恭)의 딸이다. 자녀는 3남으로 장자 충무공 남이장군이 있다.
남빈은 1421년(세종 3년)에 태어났으며 모친 정선공주는 그의 나이 3세(세종 6년)때 돌아가셨다. 2남 1녀중 장남으로 1443년(세종 25년) 감찰(監察)을 지냈으며 군수를 역임하였다. 1454년(단종 2년) 부친 소간공 휘(暉)께서 돌아가셨으며 1459년(세조 5년) 6월 13일 첩(妾)의 아들인 남돈(南惇)이 화살에 맞은 일로 남돈의 국문 기록이 남아있다. 1465년(세조 11년)에 타계하였다.
묘소는 창녕...
◆ 남빈(南份)의 가계도 - 충경공 의산위공 부사공파 8세
영의정 재(在) 충경공 | 5세 |
경문(景文) 의랑공 | 6세 |
휘(暉) 의산위공 | 간(簡) 직제학공 | 지(智) 충간공 | 7세 |
흡(翕) | 동(仝) | 붕(倗) | 빈(份) | | | 8세 |
| | 소간공 | 부사공 | | | 파 |
◼ 증조부 : 남재(南在, 1351년~1419년)-조선의 개국공신, 영의정
◼ 조부 : 남경문 (南景文, 1370년~1395년/1403년) - 병조의랑, 영의정부사에 추증
◼ 조모 : 숙녕택주(淑寧宅主) 온양 방씨(溫陽 方氏) 방순(方恂)의 딸,
판전교시사(判典校侍事), 참의(參議) 고려의 문신, 호 만송당(晩松堂)
◼ 부 : 남휘(南暉) 의산위(宜山威), 소간
◼ 모 : 정선공주(貞善公主, 1404년~1425년) 태종(太宗, 이방원)의 적4녀
장남 : 남빈(南份) 군수
부인 : 남양 홍씨(南陽 洪氏) 현감 홍여공(洪汝恭)의 딸
- 장남(아들) : 남이(南怡)장군, 충무공(忠武公) 1441년~1468년
- 며느리 : 안동권씨(安東權氏) 길창군 권람의 딸(4녀)사별
- 손녀(1녀) : 남구을금(南求乙金)
- 차남(아들) : 남초(南怊) 군수
- 3남(아들) : 남개(南愾) 현감
장녀 : 평산 신씨 대사성(大司成) 신자승(申自繩)에게 출가
남휘, 정선공주는 신사임당의 외고조부(모)가 되신다.
차남 : 남붕(南倗) 소간공
3남 : 남동(南仝) 절손
4남 : 남흡(南翕) 절손
▶ 세조실록의 기록 - 남빈(南份)
∙ 1459년(세조 5년) 6월 13일 의금부(義禁府)에 전지(傳旨)하기를,
"전 감찰(監察) 남빈(南份)의 첩(妾)의 아들인 남돈(南惇)이 화살에 맞아서 상처를 입었으니, 그 사인(事因)을 국문(鞫問)하여 아뢰어라." 하였다.
∙ 1459년(세조 5년) 7월 26일 의정부에서 남돈의 죄를 아뢰다
의정부(議政府)에서 아뢰기를, "남돈(南惇)이 적모(嫡母)를 위하여 근거도 없이 입으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내었으니, 죄가 대시(待時)하여 교형(絞刑)에 처하는 데 해당합니다." 하니, 임금이 명하여 장(杖) 1백 대를 때리고 제주(濟州)의 관노(官奴)에 영속(永屬)시키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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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여공, 영의정 남재
<참고문헌>
의령남씨 족보
세조실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