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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동부아프리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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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 49,924,252명 (2024년 추계) |
수도 | 캄팔라 |
면적 | 241,038.0㎢ 세계면적순위 |
공식명칭 | 우간다 공화국 (Republic of Uganda) |
기후 | 고온열대성기후 |
민족 구성 | 바간다족(17%), 앙콜레족(8%), 바소가족 |
언어 | 영어,우간다어 |
정부/의회형태 | 공화제 / 단원제 |
종교 | 로마가톨릭(33%), 개신교(33%), 이슬람교 |
화폐 | 우간다 실링 (UGX) |
대륙 | 아프리카 |
국가번호 | 256 |
GDP | USD 27,616,000,000 |
전압 | 230V / 50Hz |
도메인 | .ug |
요약 적도에 위치한 동아프리카의 내륙국. 수도는 캄팔라이며 화폐는 우간다 실링이다. 주로 농업에 기초한 시장경제체제이며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보건의료 서비스와 교육제도는 아직 미비한 상태다.
남동쪽으로는 빅토리아 호에 면해 있으며, 남서쪽은 탄자니아와 르완다, 서쪽은 콩고민주공화국, 북쪽은 수단, 동쪽은 케냐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수도는 캄팔라이다.
우간다 자연환경
우간다는 국토의 대부분이 중앙 아프리카 고원에 위치하며, 산과 계곡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서쪽 경계는 화산지대인 비룽가 산맥, 루웬조리 산맥, 그리고 동아프리카 지구대에서 갈라져 나온 서부지구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앨버트 호와 앨버트나일 강이 서부지구대에 포함된다. 비룽가 산맥의 무하부라 산(4,126m)과 루웬조리 산맥의 최고봉인 마르게리타 봉(5,109m)은 눈과 빙하로 덮여 있다.
동쪽 경계에는 화산들이 늘어서 있는데, 그중 가장 높은 것은 음발레의 동쪽에 있는 엘곤 산(4,321m)이다.
우간다의 수계(水系)는 앨버트 호, 키오가 호, 에드워드 호, 조지아 호, 비시나 호, 빅토리아 호 등 주요 호수들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6만 9,484㎢에 이르는 빅토리아 호는 북아메리카의 슈피리어 호에 이어 세계에서 2번째로 큰 담수호로, 사실상 우간다 남동부지역 전체를 빅토리아 호의 일부가 차지하고 있다. 빅토리아 호의 북서부에서 발원한 빅토리아나일 강이 키오가 호를 지나 앨버트 호까지 이어지며, 이곳에서 다시 앨버트나일 강으로 이어진다.
토양은 남부에 비해 북부가 다소 못하지만 대체로 기름진 편이다.
주로 철과 알루미늄이 많이 함유되어 있으며, 빅토리아 호의 북서쪽과 서쪽 연안의 토양은 수분이 많은 점토질로 되어 있다.
우간다는 적도에 걸쳐 있지만 온화한 아열대 기후를 보이는데, 이는 높은 지대와 큰 호수에 면해 있는 지리적 특성이 기온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수도 캄팔라의 낮 최고기온은 평균적을 1월에 28℃, 7월에 25℃이며, 북부지역의 기온은 좀더 높다. 빅토리아 호 일대의 연평균강수량은 1,500㎜로 연중 고른 분포를 보이지만, 북동부 국경의 몇몇 지역은 연평균강수량이 500㎜ 미만이며 계절에 따라 심한 차이를 보인다.
숲이 우거진 사바나는 중부 및 북부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며, 남부는 대부분 농지화되어 있고 군데군데 숲과 목초지(elephant grass)가 있다.
총 7,252㎢에 달하는 면적을 국립공원과 금렵구가 차지하고 있으며, 그중에서 가장 큰 것은 3,885㎢의 카바레가 국립공원(또는 머치슨 폭포 국립공원)이다. 우간다에는 사자·코뿔소·표범·코끼리·하마·물소·말(콥종)·토피영양뿐만 아니라 많은 종류의 원숭이들도 서식하고 있다. 국토의 1/3가량이 가경지이며, 1/10 가량이 목초지로 이용된다.
우간다 국민
우간다에는 수십 개의 종족이 존재하며, 이들은 주로 반투어나 나일제어, 또는 나일-함어를 사용한다. 인구의 7/10을 차지하는 반투어를 쓰는 종족들은 주로 남부지역에 분포한다. 이 가운데에는 인구의 1/5을 차지하는 간다족 외에 소가족·은콜레족·키가족·기수족·르완다족·니오로족 등이 있다. 나일제어나 나일-함어를 사용하는 종족들은 주로 북부지역에 살며, 그중 규모가 큰 것이 아촐리족·랑고족·테소족·카라모종족 등이다. 영어와 스와힐리어가 일상어 및 공용어로 사용된다. 소수지만 영향력 있는 아시아인 사회가 존재한다.
인구의 1/2 가량이 로마 가톨릭교도, 1/3은 개신교도이며, 소수만이 이슬람교를 믿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우간다인들은 전통신앙을 유지하거나, 전통신앙에 그리스도교나 이슬람교를 혼합한 신앙 형태를 취해 왔다.
우간다의 연평균 인구증가율은 높은 출생률로 인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의 평균치를 웃돈다. 전체인구의 거의 절반이 15세 미만이며, 비옥한 남부·동부 지역, 주로 빅토리아 호 주변에 인구가 밀집되어 있다. 가장 큰 도시는 수도인 캄팔라이며, 그밖에 주요도시로 진자·마사카·음발레 등이 있다. 도시인구는 전체의 1/8 정도에 불과하지만 증가추세에 있으며, 촌락인구는 상대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20세기말에 와서 보건 및 사회복지제도의 개선으로 사망률이 1,000명당 약 22명으로 줄어들었고, 출생률은 1,000명당 약 51명, 인구의 자연증가율은 1,000명당 29명이다. 1980∼85년에는 연평균 인구증가율이 3.5%였는데, 르완다·콩고민주공화국에서 인구가 이동해온 것도 부분적인 원인이 되었다. 우간다의 서부와 남부에는 수년 간 이곳에 살고 있는 이웃 국가의 난민이 10만여 명에 이르지만, 1983년의 게릴라전 때문에 오히려 20만 명의 우간다 국민이 르완다·수단·콩고민주공화국 등지로 피난하기도 했다.
우간다 경제
우간다는 주로 농업에 기초한 시장경제체제로 발전하고 있다.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정치적 불안정과 내전으로 인해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농업·공업 생산이 심각하게 감소했다.
1990년대 중반 정부는 외국인투자를 장려하고 수출산업을 강화했으며 국제통화기금(IMF) 같은 국제기구들과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또한 아시아인 등 이디 아민의 집권(1971∼79) 하에 추방당하거나 우간다를 떠났던 사람들에게 토지와 재산을 돌려주었다.
농업이 국내총생산(GDP)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노동인구의 4/5 이상이 이에 종사하고 있다. 자급용 농산물이 전체생산량의 절반을 넘는데, 주요농산물은 카사바, 고구마, 기장, 요리용 바나나, 옥수수 등이며, 커피·차·목화·설탕 등이 수출용으로 재배된다. 1973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한 농업생산량은 1980년대 중반까지도 영향을 미쳤다. 광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 미만에 불과하다. 1970년대 구리의 생산이 크게 줄어 킬렘베의 구리광산과 진자의 제련소가 모두 문을 닫았다. 이밖에 토로로에서 인회석이 생산되며, 소량의 텅스텐과 주석도 채굴된다. 키게지에는 개발되지 않은 양질의 철광석 광상이 있다.
공업은 GDP의 7% 미만이며, 이 부문에 종사하는 노동인구의 비율 또한 낮다. 1970년대초 이후 생산량이 크게 감소했으며, 가공식품·섬유·자동차·금속제품 등을 주로 생산한다. 산림의 훼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장작과 숯이 중요한 에너지원이 되고 있다. 거의 모든 전력이 수력발전에 의해 생산되는데, 그중 빅토리아나일 강에 있는 오언 폭포 댐에서 막대한 양의 전력이 공급된다.
과거 정부는 경제부흥계획을 세워 외국 투자가들의 투자를 장려·보호하고, 주요수출산업을 강화하며 기본적인 공공사업을 회복시키려 했다. 그 결과 1981년에 우간다 실링의 환율이 변동되어 10대 1의 평가절하를 가져왔다. 1980년대에 우간다는 다국적 또는 쌍방국으로 구성된 여러 조직으로부터 외국 원조를 끌어들이는 데 성공하여 내전중임에도 불구하고 개발비가 상승했다.
1980년대 중반에는 커피·차·목화·구리가 주종인 수출이 기계류·금속·종이 등의 품목으로 이루어진 수입을 초과하는 등 오랜 무역수지 적자가 흑자로 돌아서기도 했다. 그러나 1996년 현재 무역에서 수입이 수출을 초과하고 있으며, 기계류·운송장비·광물·연료·화학제품·식품·가축 등을 주로 수입하고, 볶지 않은 커피(전체 수출의 거의 7/10을 차지함), 차, 목화 등을 수출한다. 주요 무역상대국은 케냐·네덜란드·미국·독일·프랑스·영국·스페인이다.
우간다 정치와 사회
우간다는 주권을 가진 공화국으로 1995년에 채택된 헌법에 따라 국민에 의해 선출되는 대통령이 행정권을 갖는다. 대통령은 5년 임기로 1번의 연임이 가능하며, 총리가 이끄는 내각의 도움을 받는다.
입법권은 단원제의 의회가 행사하며 5년 임기로 선출되는 의원은 선거구를 대표한다. 사법부는 최고법원·상소법원·고등법원과 그밖에 다양한 하급 법원들로 구성된다. 법관은 입법부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1986년부터 1996년 새 헌법에 명시된 대로 선거에 의해 선출된 관료들이 임명될 때까지 우간다는 선거를 거치지 않은 대통령과 간접선거로 구성된 국민저항위원회에 의해 통치되어 왔다.
1970년대에 악화되었던 보건·복지 서비스는 1980, 1990년대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의 만연으로 심각한 보건상의 위기를 맞으면서 개선되었다. 다른 주요질병으로 결핵·성병·홍역·말라리아·수면병·이질·백일해·십이지장충병·장티푸스·나병 등이 있다. 정부가 교육제도 전반을 관할하는데, 재원과 훈련받은 인력의 부족, 국내 정치의 불안정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캄팔라에 있는 마케레레대학교에는 의과대학을 포함해 예술·사회사업·과학·법학·공학·수의학·농학·교육학 등의 학과가 개설되어 있다.
주요 방송사인 라디오 우간다와 우간다 텔레비전은 정부 소유이며, 모든 주요도시에 방송국이 있어 전통음악 등을 방송한다. 1970년 언론의 자유로 많은 일간지 및 주간 신문이 발행되다가 1973년 신문발행을 금지하는 정부 포고령이 발표되자 많은 언론인과 방송인이 투옥되거나 처형되었다. 수도인 캄팔라에서 일간지와 정기간행물들이 발행될 뿐 언론의 자유가 거의 없으며 외국 및 국내 언론에 대해 정부가 많은 규제를 하고 있다.
우간다 문화
전통문화는 대체로 식민지시대의 여파를 잘 견디어낸 편이지만 변화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순수예술가와 이를 감상하는 층은 비교적 적지만 점차 확대되고 있다. 주요종족집단을 대표하는 무용단은 공연예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설립되었으며, 우간다 문화를 재건하기 위해 역사학자·음악학자·인류학자·신학자들이 구전 전통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농촌과 도시 지역의 다양한 민족집단 사이에서 전통 음악과 춤이 매우 인기가 있다. 문화시설로는 캄팔라의 국립극장과 우간다 박물관, 엔테베 식물원 등을 비롯해 국립공원 안에 박물관들이 있다.
우간다 역사
이 지역 최초의 거주민은 반투어계 종족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후 17세기말에 이르러 나일-햄어군이 우간다 북부로 이동해왔고, 그로부터 1세기 뒤에 남부로 이주해왔다. 아랍인이 이 지역에 들어온 것은 1840년대 상아와 노예 교역을 위해서였다. 이 지역 최초의 유럽 탐험가 존 해닝 스피크와 제임스 오거스터스 그랜트는 1862년에 부간다 왕국을 횡단했다. 카바카(통치자) 무테사 1세는 1877년에 영국성공회 선교회의 첫 선교사들이 부간다 왕국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허가했으나, 1884년에 무테사가 죽고 그의 아들 음왕가가 왕위에 오르면서 그리스도교도를 박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후 아랍인들이 카바카 음왕가와 그리스도교 선교사들을 몰아내고 왕국의 통치권을 장악했다.
그리스도교도인 간다족의 도움으로 음왕가의 왕국이 재건되었으나, 곧 다시 유럽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1989년 독일인 카를 페터스는 음왕가와 보호조약을 맺었지만, 이 조약은 1890년 영국과 독일 간에 남위 1°선 이북 지역은 영국의 영향권하에 둔다는 내용의 조약이 체결되면서 무효화되었다. 같은 해 영국 동아프리카회사가 영국 정부를 대신해 이 지역 관리를 맡게 되었고, 이 회사의 F.D. 루가드는 음왕가와 부간다를 이 회사의 관리하에 둔다는 조약을 맺었으며, 서부의 은콜레·토로 왕국과도 보호조약을 맺었다.
1894년 부간다는 정식으로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고, 1896년에는 부뇨로·토로·은콜레·부소가 등이 보호령에 포함되었으며, 1890년대 후반에는 빅토리아나일 강 북쪽 지역까지 확대되었다.
1914년에 남서부 국경에서 작은 전투가 몇 차례 있기는 했지만, 제1차 세계대전중에는 우간다에 침략의 위험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때 우간다는 경제적으로 자립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전쟁이 끝난 1945년 최초로 아프리카인이 입법위원회에 진출한 이후 아프리카인의 정치참여가 꾸준히 증가했으며, 1955년에는 각료 체제가 도입되었다.
그러나 부간다 왕국의 간다족 통치자는 정부에 대히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1950년대 후반에는 자치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고, 부간다 왕국은 우간다로부터 독립하기를 원했다. 1962년 완전한 자치가 이루어져 간다족 출신의 베네딕토 키와누카가 초대 총리가 되었으나, 같은 해 4월에 치러진 선거를 통해 랑고족의 지도자 밀턴 오보테로 바뀌었다.
종족과 지역에 따라 정치적으로 분리되어 있던 우간다는 1962년 10월 독립했다.
1년 뒤 부간다의 통치자인 무테사 2세가 초대 대통령에 임명되었으나, 대통령과 총리 간에 그리고 다양한 종족들의 대표자들간에 분쟁이 생겨났다. 1966년 오보테는 무테사를 몰아내고 1년 후 새 헌법을 공포해 스스로 대통령에 올랐으며 모든 왕국을 폐쇄했다. 1971년에 이디 아민 장군은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했는데, 그의 집권기간은 폭정으로 악명이 높았다.
그는 1972년 상업·경제 부분을 장악하고 있던 아시아인들을 우간다에서 추방했고, 아촐리족·랑고족을 비롯해 다른 종족들을 박해했으며, 우간다의 경제 파탄을 초래했다. 1978년 아민은 이러한 우간다의 경제 파탄을 초래했다. 1978년 아민은 이러한 우간다 내부문제로부터 관심을 돌리기 위해 탄자니아를 침략했으며, 이에 대한 보복으로 1년 뒤 아민에 의해 추방당한 사람들의 도움을 받은 탄자니아군이 우간다를 침략해 그를 몰아냈다.
이후 추방되었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연립정부가 세워지고 2명의 임시 대통령이 추대되었으나 경제정책 및 종족간의 이견 등으로 단명했다. 1980년 12월 논란 속에서 치러진 총선에서 오보테가 다시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아민을 몰아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요웨리 무세베니는 오보테의 승리를 인정하지 않고, 무장 반정부 투쟁에 들어갔다.
한편 오보테는 국제기구이 도움을 받아 경제재건에 힘을 기울였으나, 군 내부의 아촐리족과 랑고족 출신 사이의 갈등으로 추방되고, 1985년 쿠데타를 통해 아촐리족 출신의 티토 오켈로 장군이 권력을 장악했다. 그러나 그 역시 무세베니가 이끄는 국민저항운동에 패해 결국 1986년 1월 무세베니가 대통령이 되었으며, 이후 그는 친서방정책을 통한 경제회생에 주력했다.
무세베니는 1995년 정당설립 금지를 합법화하는 헌법을 공포했고, 1996년에는 정당이 없는 상태에서 실시된 의회 및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해 우간다 최초의 직선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20세기말 우간다의 경제적·정치적·사회적 상황은 여전히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우간다와 한국의 관계
외교
우간다는 한국과 1963년 3월 정식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한국은 이듬해 4월에 주 우간다 대사관을 개설했다가 1994년 10월에 공관을 폐쇄했으며 이후 2011년 12월에 재개설했고, 우간다는 주 일본 대사관이 겸임하고 있다. 우간다는 비동맹 중립주의를 표방, 남·북한 동시수교 형식을 취하고 있다. 우간다는 1990년 10월에 제2부총리 겸 외무부장관 세모게레레, 1993년 10월에 상공부장관 카이주카의 방한 이후 2013년 5월에 한·우간다 수교 50주년을 기념하여 무세베니 대통령이 방한했다. 한국은 2016년 5월에 박근혜 대통령, 2017년 10월에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이 방한하여 개발협력, 인프라·에너지, 과학기술·ICT, 문화·교육 부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관계가 확대되고 있다.
한편, 우간다는 북한과 1963년 3월에 외교관계를 수립했다가 1964년 1월에 단교했으며, 1972년 7월에 국교를 재개했다. 북한은 주 르완다 대사가, 우간다는 주 중국 대사가 양국의 외교업무를 겸임하고 있다.
경제·통상·주요 협정
2023년 기준 우간다의 대한국 수출액은 217만 달러, 수입액은 1,066만 달러이다. 주요 수출품은 커피 및 차, 잎담배, 식물 등이고, 주요 수입품은 의료용품, 원자로 및 보일러, 쌀 등이다. 한국은 우간다의 경제개발에 협력하기 위해 정부개발원조(ODA,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차원에서 1987년부터 2017년까지 1억 2,613만 달러를 원조했으며, 2011년부터 2018년까지 1,028만 달러를 투자했다. 양국이 체결한 협정으로는 의료협력협정(1986)이 있다.
문화교류·교민 현황
우간다에는 한글학교 1개교가 설립되어 있어 교민과 우간다인의 한글교육에 이바지하고 있으며, 1989년 3월에 설립된 우간다한인회는 한인사회의 발전과 권익보호를 도모하고 양국의 문화교류를 위해 기여하고 있다. 또한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한국해비타트가 진출해 다양한 봉사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2023년 기준 우간다에는 664명의 재외동포가 있으며, 이들 대부분은 우간다의 수도인 캄팔라에 거주하고 있으며, 한국에는 2023년 기준 560명의 우간다의 국적의 등록외국인이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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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 ・ 외교부
- ・ 주 우간다 대한민국 대사관
- ・ 한국무역협회 통계
- ・ 외교부 재외동포 현황(2023년 기준)
- ・ 법무부 등록외국인 국적별 현황(2023년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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