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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에 있는 천국
1.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누가복음 17:20~21
에베소서 4:1~16
설교 목적
하나님 나라가 ‘우리 안에’ 있다면 우리는 그 나라에 어떻게 들어갈 수 있을까?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은 좁다고 했는데, 왜 그런 것일까? 이것은 개인의 자기중심성을 버리고 공동체를 위하는 삶으로 전환하기가 그렇게 힘들다는 의미가 아닐까?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4장부터 공동체 안에서 성도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친다. 그것은 공동체 안에 하나님 나라가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나는 이 설교를 통해서 우리 안에 있는 천국은 무엇이고 우리는 그 천국에 어떻게 들어가는지를 생각해 보려고 한다.
설교 개요
1. 들어가는 말 – 천국은 우리 안에
2.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3.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곳
4. 우리 안에 있는 천국을 지키는 법
5. 공동체 안에서 함께 성장하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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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 – 천국은 우리 안에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가 ‘너희 안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천국은 어디에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안에 천국이 있다는 말입니다. 정말로 천국은 우리 안에 있는 걸까요?
천국이 ‘우리 안에’ 있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떤 사람들은 천국을 침노하여 그 안에 있는 기쁨과 영생을 차지한다고 하셨습니다(마 11:12). 천국을 침노하여 구원의 기쁨을 차지한 사람들은 삭개오 같은 사람이며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진 여인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예수님께 나와서 자신을 맡긴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운명을 예수님께 드린 사람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영생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천국을 침노한 사람들 안에 하나님 나라가 있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회개한 삭개오에게 말씀하시기를,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눅 19:9)고 하실 때, 그 말은 하나님의 나라가 바로 이 집에 임하였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께서는 삭개오의 삶을 아셨습니다. 그가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사람들로부터 나쁜 평판을 받고 있는 것을 보셨을 것입니다. 전에 그렇게 살아가는 삭개오의 집에는 구원이 이르지 않았으며 거기에는 하나님 나라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삭개오가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되었을 때, 하나님 나라가 바로 그 집에 임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삭개오의 집에 임한 하나님 나라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어떤 사람의 가정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을까요? 어떤 교회를 가리켜 여기에 하나님 나라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 나라가 임한 곳에는 어떤 일이 있는 것일까요?
사도 바울은 하나님 나라의 본질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로마서 14:17
이 말씀을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다음과 같이 나타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문제로 다투는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중에 어떤 분들은 지금 어떤 사람이 무슨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 그를 비난합니다. 어떤 사람이 고기를 먹는 것을 보고 제사 음식을 먹었으니 그는 우상숭배의 죄를 지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고기를 먹는 사람은 고기를 먹지 못하고 채소만 먹는 사람들을 신앙이 어리다고 비웃습니다(롬 14:2). 여러분 중에는 다툼이 있습니다.
또 여러분 중에 어떤 사람은 안식일을 반드시 지켜야 하며 그 날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제 더 이상 안식일은 특별한 날이 아니며 모든 날이 다 특별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14:5). 그런 사람들은 안식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을 가리켜 율법에 매여 있다고 평가해 버리기도 합니다. 날에 대하여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을 용납하지 못하는 여러분 안에는 분쟁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문제와 마시는 문제를 가지고 서로 다투는 곳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는 사람들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디에 있습니까? 자기의 생각과 판단을 내려 놓고 성령의 인도를 구하는 사람들 안에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떳떳하고 정직하게 살아갑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기에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화목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모임에는 갈등과 긴장이 사라지고 기쁨이 충만합니다. 바로 그곳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며 바로 그곳이 천국입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바로 우리들 안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들은 찬송하기를,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어디나 하늘나라’(찬송가 438장)라고 노래하면서도 하늘나라는 우리가 죽어서 하늘로 올라가면 거기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천국 즉, 하나님 나라는 우리 안에도 있으며 또한 하늘에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우리들에게 가르치시기를, ‘하나님 나라가 너희에게 임하기를 기도하라, 하늘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뜻이 너희가 사는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주기도문을 주셨습니다. 이 말은 우리에게 하늘에 있는 천국에 갈 것을 사모하고 살라는 말이 아니라, 도리어 하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져 우리가 사는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가 되기를 위하여 기도하고 노력하라는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관심사는 얼마나 많은 사람을 하늘나라로 데려가실까에 있지 않고 얼마나 많은 곳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할 수 있을까에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에 새롭게 시작하는 설교의 시리즈를 ‘우리 안에 있는 천국’으로 잡아보았습니다. 우리가 있는 가정과 교회, 우리나라와 온 세계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바라고 그것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우리의 소임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죽어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사는 가정과 교회, 그리고 우리 지역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안에 천국이 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것이 이번 시리즈에서 다루고자 하는 주제입니다.
오늘은 에베소서 4장을 중심으로 사도 바울이 교회에 주는 권면을 살펴보면서 우리 안에 천국이 임하는 비결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2.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가 믿는 사람들 안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예 하나님 나라를 침노하여 들어가서 그 안에서 영생의 기쁨을 맛본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사람들 안에는 이미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 나라를 맛본 사람 중에 사도 바울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뿐 아니라 자기 동족 전체 그리고 이방인들까지도 모두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기를 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 나라가 온 세계 위에 임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임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태초부터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었으며 그 계획이 완성되는 날에는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엡 1:10). 그야말로 하늘과 땅이 하나 되는 세상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스터플랜이며 하나님의 경륜임을 사도 바울은 깨달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이런 깨달음을 글로 써서 에베소에 있는 교회에 보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나라가 개인에게 임할 때 그 개인은 전에 죄와 허물로 죽은 사람처럼 살았지만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이 처음부터 계획하신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설명했습니다(엡 2:10). 그 하나님의 나라가 온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까지 임하면 더 이상 유대인과 이방인이 서로를 차별하지 않고 그 둘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고 함께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지어진다는 것을 사도 바울은 깨달았습니다. 그 깨달음과 확신으로 그는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하나님의 경륜을 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온 아시아와 유럽에 교회들이 세워졌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처럼 세워진 교회들에 하나님의 나라가 충만하게 임하여 그들이 세상을 비추는 등불이 되고 만인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제사장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하고 바랐습니다. 그런 바람을 담아 사도 바울은 교회들에게 구체적으로 권면을 합니다. 사도 바울의 권면은 교회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는데 어떻게 그것을 유지하고 충만하게 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지침이었습니다.
그 지침은 에베소서 4장부터 시작됩니다. 3장까지는 하나님의 경륜이 어떤 것인지를 설명했다면 4장부터는 실천편입니다. 사도 바울의 서신서는 대부분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대부분의 서신에서 이론과 원리를 초반에 다루고 후반에서는 행동강령과 실천지침을 소개합니다.
가장 먼저 사도 바울은 부르심을 받은 교회에게 다음과 같이 힘써야 할 일을 소개합니다: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에베소서 4:3
교회가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곳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은 교회입니다. 사도 바울이 교회를 가리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이라고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당시의 교회는 하나 되기 어려운 두 그룹이 하나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입니다. 유대인은 이방인과 거리를 두고 살았습니다. 그들이 이방인과 거리를 두며 산 이유는 아마 이방인과 어울리면 율법에서 금하는 음식을 먹게 되어 자신이 부정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사도 바울 자신도 그렇게 율법에 철저한 유대인으로 살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로 하나님의 경륜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을 깨닫고 보니 하나님의 계획은 창조 때부터 시작되었고 결국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민족들이 한 가족과 같이 되며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로 지어질 것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깨달은 비밀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습니다: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에베소서 3: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방인들이 유대인들과 함께 상속자가 된다는 말은 함께 하나님 나라를 물려받는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미래에 함께 동참하기 위하여 서로 연합하고 교제하며 서로를 위한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마치 같은 뜻을 가진 동역자와 같고, 또한 서로 우정을 나누는 친구나 가족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전에 원수처럼 멀리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가까워지게 된 것은 그 둘을 가로막고 있던 장벽을 예수님이 제거하셨기 때문입니다(엡 2:13).
전에는 율법의 조문을 따라 사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면,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성령은 이제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누구나 거룩하게 씻음을 받았으며 율법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성령은 유대인과 이방인처럼 서로 섞일 수 없는 사람들을 하나 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나 된 공동체는 성령 안에서 의와 화평과 기쁨이 충만해졌습니다. 바로 그런 교회 공동체에 하나님 나라가 임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곳에는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공동체를 깨지지 않도록 힘써 지켜야 한다고 사도 바울은 교회에 권면합니다.
3.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곳
교회는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공동체입니다. 교회에는 하나님 나라가 임합니다. 거기에는 진실된 교제와 예배가 있고, 거기에는 서로 마음을 나누며 존중하는 화목이 있으며, 서로 마음을 맞추어 협력하기에 그곳에는 기쁨이 충만합니다. 성령을 좇아 행하는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에는 하나님 나라가 임합니다. 아마 예수님도 그런 공동체를 보시고 ‘하나님 나라가 이미 너희 가운데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시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은 교회만이 아닙니다. 사실 가정도 하나님이 맺어주신 부부로부터 출발하므로 가정도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 부부를 지으시고 말씀하시기를,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24)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도 결혼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마 19:6, 막 10:9)라 고 하셨습니다. 부부는 하나님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부부가 하나님을 사랑하며 순종하면 그 가정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시편 16:6)라고 하나님이 주신 기업에 대한 감사를 노래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것은 각 지파가 할당 받은 땅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거주하는 공동체가 그들의 기업이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지역공동체나 생활의 중심이 되는 일터는 가정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곳입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고 말씀하셨을 때, 우리는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교회 공동체를 생각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심으로 세워진 우리의 가정을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의 교회와 가정에 임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지역공동체에 임합니다. 바로 거기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에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을 잘 가꾸고 지켜야 하겠습니다.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교회 공동체와 가정에 임한 천국이 깨지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에게 이처럼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 위하여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권면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는지 방법을 제시합니다.
4. 우리 안에 있는 천국을 지키는 법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바로 우리 안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우리 안에 있다는 말은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교회 공동체 안에 있다는 말이며, 하나님이 짝지어 세워주신 가정 안에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줄로 재어 준 구역이자 우리의 기업인 지역사회 안에 하나님 나라가 있습니다. 물론 천국은 침노하는 사람들의 것이며, 그런 사람들은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것처럼 간절히 진리를 찾습니다. 천국은 구도자들의 종착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모시고 살면 초막이나 궁궐이나 그 어디나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 하나님 나라는 성령이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신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있는 천국을 힘써 지키려면 공동체를 깨트리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 방법으로 몇 가지를 제시합니다.
첫째는 사람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입니다. 우리는 지금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한 몸을 이루고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그 이유는 성령이 우리를 하나 되게 하셨기 때문이며 하나님이 우리를 짝지어 주셨고 우리에게 줄로 재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서 주님이 우리와 함께 거니시며 우리 가운데서 일하고 계십니다. 이처럼 주님이 우리를 인도하신 교회와 가정, 그리고 지역사회와 일터는 그곳이 곧 하나님 나라요, 천국입니다.
그렇기에 천국백성은 어떻게 서로를 대해야 합니까? 사도 바울의 권면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에베소서 4:1~2, 개역개정성경
그러므로 주님의 일로 갇힌 몸이 된 내가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불러 주셨으니,
그 불러 주신 뜻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언제나 겸손함과 온유함을 지니십시오.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면서, 오래 참으십시오.
에베소서 4:1~2, 표준새번역성경
이것은 감옥에 갇힌 사도 바울의 권면이자 간절한 부탁입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천국을 힘써 지키려면 언제나 겸손하고 온유하게 그리고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고 오래 참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 안에 있는 천국이 보존되고 자라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도 언급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한 몸이라는 사실이며 우리 안에 한 성령이 역사하셔서 우리를 부르셨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우리가 믿는 주님은 한분이시며 믿음도 우리의 세례도 하나라고 사도 바울은 일깨워줍니다(엡 4:5). 이 말은 내가 믿고 섬기는 주님이 바로 형제가 믿고 섬기는 그 주님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같은 신앙을 가졌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다르고 그의 하나님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여기서 더 나아갑니다. 그는 하나님을 만유의 아버지라고 소개합니다(4:6). 만유의 아버지라는 말은 모든 사람의 아버지라는 말이며 모든 민족의 아버지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위에서 모든 사람들을 돌보시고, 모든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을 살피시며, 그리고 우리 안에 거하시듯이 모든 사람들 안에 계십니다. 이 사실은 우리가 교인뿐 아니라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게 지내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롬 12:18, 히 12:14).
우리가 한 몸임을 기억하고 우리가 같은 신앙을 가지고 같은 주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한 가족임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더 솔직하고 더 화목하고 그리고 더 즐겁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려고 노력할 때마다 우리 안에 있는 천국은 더 견고해지고 더 풍성해질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가 일하는 일터에서와 지역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화목하게 지내고 함께 소통하며 기뻐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그곳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있는 그 어디에서나 서로 화목하고 서로 소통하고 서로 즐거워한다면 바로 거기가 하늘나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투고 불화하며 서로 담을 쌓고 살아간다면 거기는 천국이 아닙니다. 어쩌면 어두움의 세력에게 우리는 자리를 내어주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최종 목적은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엡 4:10). 예수 그리스도도 교회를 만물 위에 두시고 교회의 머리가 되셔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십니다(엡 1:22~23). 만물이 충만하게 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기쁨이 충만하고 생명이 충만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하나님은 처음부터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하라고 복을 주셨습니다(창 1:28). 예수님도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이런 저런 계명을 주시면서 주님 안에 있는 충만한 기쁨이 그들 안에도 있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5:10~11). 그것은 곧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맛보게 하신다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5. 공동체 안에서 함께 성장하는 우리
이처럼 하나님 나라는 우리 안에 있습니다. 우리 교회 안에 있고, 우리 가정 안에, 그리고 우리 일터와 나라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살아간다면 반드시 우리는 우리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자리잡고 있음을 볼 것입니다.
우리에게 각 직임을 주신 목적도 바로 우리 안에 있는 천국을 힘써 지키게 하기 위함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에 대해서 잘 말했습니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에베소서 4:11~12
우리가 맡은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면 공동체 안에서 가족이 성장합니다. 그리고 성장하면 봉사의 일을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또 결혼을 하여 자녀를 낳으면서 그리스도의 몸은 점점 성장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가족이 성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그리스도의 몸이 가지고 있는 비밀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자라나게 된다는 것입니다(4:13).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닮은 완전한 인격의 사람으로 성장한다는 의미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납니까?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그 비결을 알려줍니다: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에베소서 4:15하 ~ 16
이 말씀은 우리가 교회나 가족 같은 공동체 안에서 서로 연결되고 결합되며 각자의 다양한 소임을 다할 때 그 몸이 자라나며 바로 그런 방식으로 우리도 성장한다는 의미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비로소 온전한 사람으로 자라납니다. 공동체를 떠나서 자기 마음대로 살아보려는 사람에 대하여 잠언 저자는 다음과 같이 우려를 표현합니다:
무리에게서 스스로 갈라지는 자는 자기 소욕을 따르는 자라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느니라
잠언 18:1
예수께서는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이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7:13~14).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은 곧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왜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은 좁을까요? 그 좁은 문을 통과하면 생명이 충만한 곳 천국이 기다리고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 교회가 들어가야 할 문이 바로 그 생명의 문인데 그 문은 좁습니다. 우리 가정과 일터와 우리 사회가 들어가야 할 문이 바로 그 생명의 문입니다.
그런데 왜 생명으로 들어가는 그 문은 좁을까요? 그 문을 넓게 만들어 주시면 안될까요?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은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정도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 문에 들어가려는 사람이 하나님께 받은 몸을 그대로 가지고 가면 되는데 커다란 짐꾸러미를 들고 그 문을 들어가려고 하기에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이 좁게 느껴지는 것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히 12:1).
우리가 천국의 문으로 들어갈 때 반드시 버려야 할 그 무거운 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마 쓸데없는 자존심이나 자기만을 생각하는 욕심이 아닐까요? 자존심 때문에 솔직하게 사람을 대하지 못하고 욕심 때문에 더불어 나누며 함께 기뻐하지 못하는 것 아닙니까? 마음을 터놓고 솔직하게 대하고 서로를 기뻐하고 축하해주며 살아간다면 두 사람이 살아도 행복하고 네 사람이 만나면 더 기쁘지 않겠습니까?
천국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 나라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 나라는 바로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나라에 들어가려면 자존심과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가면을 벗고 아이들처럼 서로를 환영하고 친구가 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에게 그 길을 보여주시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며, 우리를 그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킵시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 나라를 빼앗기지 말고 잘 지키고 세워갑시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며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도 주님과 함께 주님의 나라를 세워나갑시다. 그때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천국을 확인하고 영생을 맛보며 살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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