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인가 우연히 와인을 배워보고자 동호회에 가입하여
모임에 나갔다. 와인 기초 모임이라 스터디 형식으로
오손도손 모였고, 모두들 살짝 긴장된 표정으로 강사님의
강의에 집중하였다. 그 많은 프랑스 지역의
마을 단위 지역명이 그때는 너무 어려웠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꼬부라진 프랑스어가 낯설
뿐이었다. 7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어려운 지역명은
외워지지 않지만, 프랑스의 어느 지역의 와인이 나에게
맞는다는 정도는 알게 되었고, 와인을 평가하기 보다는
즐길수 있게 되었다.
와인 애호가들에게는 와인에 세계에
빠지게된 첫 경험이 있다.
나에게 첫경험은 결혼기념일(아마도?)
이태원 더 그릴 스테이크하우스에서 미리 준비해간
샤토 딸보 2008년을 마셨을 때였다.
더 그릴의 스테이크는 내가 아는 가장 완벽한 스테이크
였고, 당시 히딩크의 와인이라고 국내에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샤토 딸보를 추천받아 잔뜩 기대하고
가지고 간 터였다.
고기에 와인은 언제나 진리지만, 유난히 오늘따라
잘 익혀진 스테이크와 알코올이 쎄지 않고
목넘기기 부드러운 샤토 딸보가 만나 최고의
마리아주를 만들어냈다.
와인은 음식과의 매칭(마리아주) 도 중요하지만,
그 날의 분위기도 한 몫 했다.
오랜 육아로 지친 상태에서 아이를 맡기고 오랜만에
가진 둘만의 시간은 이날의 분위기를 더욱 북돋아주었다.
이때부터 와인을 찾아다니기 시작했고,
내 삶은 풍족해지기 시작했다.

와인덕후들의 최종 목적지는 언젠가 나에게 맞는 최고의
와인을 마시는 것이다.
와인평론가들이 정해놓은 점수를
기준으로 마시다보면 좀 더 비싼 와인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의해 와인이 비싸지면
그만큼 맛이 있다.
하지만, 실구매가 10만원이 넘어가면 그 때부터는 누가
얼마만큼 와인 경험이 많고 타고난 미각,후각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매겨진다.
즉, 1~2%의 맛의 차이에 따라 적게는 10만원에서 많게는
100만원까지 가격차이가 나는것이다.
나는 최고의 와인을 쫓는 것을 일찌감치 포기했다.
엄청난 재력이 있지 않는 한 병당 5~10만원의 와인을 자주
마신다는 건 힘든일이기 때문이다. 대신 1만원 초반대의
와인들 중에서 가성비 좋은 와인을 찾아가고 있다.
와인이 내 삶을 변화시켜준 것은 삶의 풍요로움이다.
난 항상 와인을 고를때 시간을 많이 소비한다.
마트에 가서 소뮬리에의 도움을 받지 않고, 라벨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고 예전에 먹었던 비슷한 나라나 지역의 와인을
떠올리고 그 때 같이 먹어서 맛있었던 음식들을 되내이며
와인을 고른다.
'오늘 저녁에 집에서 먹을 샤브샤브에 무거운 레드와인은 좀
부담스럽고, 가볍게 화이트 와인을 마시면 좋을것 같은데
그 중에서 알코올이 좀 강한 샤도네이보다는
쇼비뇽블랑을 마시면 좋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며 그 중 라벨이 이쁜 와인을 고른다.
살짝 기대감을 가지고 집에 와서 샤브샤브와 함께 마셨는데
기대했던것보다 더 맛이 좋았을때 '와인 마시기 참 잘했구나'
생각하게 된다. 물론 와인은 가볍게 2~3잔 마신다.
와인 때문에 다음날 머리가 아프게 만든다는 것은
너무 슬픈 일이기 때문이다.
와인은 살아있는 생물과도 같다.
똑같은 빈티지(생산연도)의 와인도 보관상태에 따라
그 날 온도에 따라 코르크를 열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에 따라 향과 맛이 급격하게 변한다.
사실 와인의 매력은 바로 이것이다.
마치 와인이 핸드폰처럼 똑같은 연도에 같은 제품은
어느 매장에서 구입하든 똑같다면 와인은 쉽게 질리고
말 것이다.
좋아하는 와인에 애정을 가지고 그 와인이 가진 맛의
포텐셜을 최고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상태를 알아야 한다.
똑같은 와인을 2001, 2004, 2007년 빈티지를 사서 비교도
해보고, 2004년 같은 빈티지의 와인을 코르크 오픈후
한번은 바로, 한번은 30분후 마셔보면 이 와인이 어떤
상태일때 가진 최고의 맛을 내는지 알 수 있게 된다.
똑같은 와인도 수백만원짜리 고급와인으로 바뀔수 있다.
사실 국내에서 와인은 사치스런 취미로 여겨지고 있다.
물론 사람들이 와인 자체보다는 남들에게 보여지는
이미지를 위해 마시는 경우가 많아서 그럴수도 있을 것이다.
술을 잘 못하는 사람이라도 와인에 조금 관심이 있다면
가벼운 화이트 와인 - G7 샤르도네(구입가 9천원)를
한 병 사보기를 권한다.
그 와인을 권장 온도보다 조금 더 차갑게 김치냉장고
한 쪽 구석에 무심히 방치해놓아라.
그리고 잠시 잊고 지내다가 기분이 꿀꿀한 어느 날에
'아 참 시원한 와인이 하나 있지' 하면서
와인잔이 없으면 맥주잔에 따라서 저녁식사와
함께 곁들여보아라.
단언컨대, 그 날이 당신이 와인의 세계에 빠져드는
바로 그 첫날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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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와인은 비행기에서 빨리 그리고 깊게 잠들기위해서 한잔만 마셨지 평소에는 즐겨 마시지 않았는데, 최근에 롯데타워 라운지 가서 마셨던 와인이 인상 깊기도 했고, 사실은 그때 같이 먹었던 과일 치즈가 너무 맛있었어서.. ㅎㅎ 한번 와인에 대해서 공부해볼까 생각중이였는데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아 참고로 '신의 물방울'이라는 만화를 한번 봐볼까 생각하고 있어요 ㅎㅎ)
제 글에 첫 댓글이네요^^ 감사합니다.
신의물방울도 좋고, 와인 관련 행사나 모임에 참석해보세요. 와인은 운명처럼 첫 만남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