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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경험한 걸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건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한 일이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 중에는 같은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며 그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꿈의 길을 먼저 간 사람들의 경험이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고 그 꿈을 실현하는데 많은 도움과 용기를 줄 것이라는 생각이다. 여행하는 것을 거창하게 꿈이라고 해서 미안하기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하는 것을 좋아하고 가고 싶어 하며,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현역에서 은퇴를 하면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것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처음부터 여행에 대해서 취미가 없다면 모르겠거니와 여행을 하고 싶은 소망만 있다면 누구라도 갈 수가 있을 것이다.
건강이 허락되지 않으면 어쩔 수 없지만 다른 문제는 마음먹기 달린 것이다. 은퇴를 하게 되면 남는 것이 시간일 것이므로 시간은 충분하다. 경제적인 문제가 걸림돌이 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럭셔리한 호화여행을 한다면 모르겠지만 내 경험으로는 태국, 라오스, 베트남 등 동남아라면 100여 만 원 내외로 열흘 정도의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자신이 없는 사람은 인도로 가는 길이나 혜초 여행사 등의 단체배낭 상품을 여행하고 싶은 나라나 취향에 따라서 선택해 여행사의 도움을 받아 따라 가고 요령이 생기면 혼자나 몇 명이서 자유여행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남미여행을 함께 한 사람들(라파즈 칼리칼리 전망대에서)
이번 남미여행을 같이하게 된 일행 24명들은 50대 두 커플을 제외하면 60대 중후반이 대부분이고 78세의 고령자도 포함되어 있어 생각하는 것보다는 보는 것 위주의 여행을 원하였기 때문에 주로 경치 위주로 여행을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2020.1.30일 오후 6시 50분 아메리칸 항공(AA280)에 탑승해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날짜 변경선을 통과해 14시간의 지루한 비행 끝에 미국 달라스 Fort Worth(DFW)공항에 도착하니 현지 시간으로 오후 4시 30분이다. 리마행 항공기로 환승하려면 한국에서 ESTA를 신청해 승인을 받았음에도 길게 늘어선 KYOSK에서 여권 캡처 및 지문 등록, 설문 응답과 사진 촬영까지 해야 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키오스크에 한국어가 지원되어 비교적 쉽게 이용할 수 있다.키오스크에서 출력되는 종이를 가지고 입국 심사대로 가 입국 심사를 받는데 한 사람 입국 심사하는데 1분 이상 걸린다. 다시 보안 검색을 받고 A,B,C,D,E 5개 탑승동을 빠르게 연결해 주는 스카이 트레인을 타고 리마행 항공기(AA909) 탑승 게이트로 이동한다. 달라스 포트 워스 공항은 아메리칸 항공의 허브공항으로 공항 주기장에는 대부분 아메리칸 항공사 항공기가 보인다.
6시간의 환승 대기 끝에 오후 10시 40분 리마행 항공기를 타고 8시간을 비행한 끝에 Lima Jorge Chavez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우리나라 시간으로 1월 31일 오전 6시 30분으로 달라스에서 갈아탈 때 기다린 시간을 빼더라도 꼬박 하루 정도를 타고 간 셈이다. 페루는 한국보다 14시간이 늦다. 인천공항에서 부친 수하물을 찾아 공항 출국장으로 나오니 인솔자인 페페(이은석) 팀장이 미리 나와 우리 일행들을 맞이한다. 30대 초반인 페페는 우리를 인솔해 미리 대기하고 있던 버스를 타고 숙소로 향한다.
공항에 보이는 간판들 중 미추픽추 그림이 보면서 그 먼 페루에 왔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
바비에도스라는 말은 환영한다는 말이라고 한다. 호텔로 향하는 차창으로 보이는 붉은 벽돌로 지은 건물들은 짓다 만 것처럼 건물 위쪽으로 철근이 삐져나와 있고 정비되지 않은 거리는 무척 어수선하고 지저분해 보인다. 좁은 도로엔 버스보다 낡은 승합차들이 줄지어 서서 승객을 태우려고 외치는 차장들의 목소리와 거리를 메운 승용차들로 매우 혼잡하다.
리마는 태평양 연안에 있어서 숙소로 가는 도중에 태평양을 보면서 가는데 단단한 모래와 같은 해안선으로 나무들이 없어서 황량하다. 그리고 남극해에서 올라오는 차가운 흄볼트 해류의 영향으로 해안선 근처는 안개가 자욱하다. 좁은 도로에 무질서하게 주차된 차량들과 교통체증으로 공항에서 호텔로 가는 길은 서울의 러시아워를 방불케 한다.
페루는 남한 면적의 12배에 이르는 남미 대륙에서 3번째로 큰 국가로 잉카문화를 대표하는 남미 인디오인 케추아족이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나라로 국민 대부분이 카톨릭 신자다. 15세기 중반까지 지금의 페루, 볼리비아, 칠레, 에콰도르, 아르헨티나 북부에 해당되는 지역을 장악했던 잉카제국은 1531년 스페인의 프란시스코 피사로에 의해 정복당한 후 약 300년간 페루는 스페인의 통치하에 있다 아르헨티나의 해방자 호세 데 산 마르틴 장군이 1821년 리마를 점령한 후 페루는 독립을 선포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페루의 수도인 리마는 남극해에서 올라오는 훔볼트 해류(한류)의 영행으로 해안 사막지대에 둘러싸여 일 년 내내 비가 거의 내리지 않으면서도 안개가 끼어 있는 날이 그렇지 않은 날보다 많은 독특한 기후의 특성이 나타나는 도시이다. 리마는 페루 전체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거주하는, 남아메리카 내에서도 손꼽히는 대도시 중 하나로 많은 여행자들이 이곳에서 페루 여행의 첫 여정을 시작한다.
미라플로레스 지역에 있는 CASA ANDINA MIRAFLORES CENTRO 호텔에 여장을 풀고 호텔 식당에서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한 후 페페를 따라 환전소로 간다. 호텔 건너편에 있는 환전소에서 페루에서 쓸 400달러를 달러당 3.3SOL에 환전을 한 후 일행 몇 분과 함께 택시(20솔)를 타고 센트로 구시가지에 있는 산 마르틴(SAN MARTIN) 광장으로 간다.
▶ 산 마르틴 광장에 있는 산 마르틴 동상
친절한 택시기사는 광장 옆에 우리를 내려 준다. 산마르틴 광장은 1998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으로 광장 중앙에 페루의 해방 영웅인 산마르틴 장군의 기마상이 높이 세워져 있으며 푸른 잔디와 대비되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보라색 꽃나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 호세 데 산 마르틴(José de San Martín) 장군
호세 데 산 마르틴(José de San Martín) 장군은 스페인으로부터 남미를 독립시킨 영웅으로 아르헨티나 북동부 지방인 코리엔테스 주의 야페유에서 태어났다. 스페인 군인이었던 아버지가 스페인으로 전출되자 산 마르틴은 아버지를 따라 스페인으로 건너가 마드리드에 있던 귀족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장교로 군 생활을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칠레 출신인 베르나르도 오이긴스와 친구가 된다. 그 뒤 20여 년 동안 스페인 군주의 충성스런 장교로서 각종 전투에 참여했으며 영국군과의 전투에서는 사로잡혀 1년 이상 포로생활을 하기도 했다. 중령으로 진급해 기병부대 사령관으로 임명되었으나 남미 독립지지자들과 접촉하기 시작했던 그는 새 직위를 받아들이지 않고 대신 페루 부왕령의 수도인 리마로 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청해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간다. 산 마르틴이 34세 때 남미에서 독립을 희망하는 혁명이 일어나자, 그는 스페인군을 떠난다. 산 로렌소 전투 이후 북부군을 지휘하면서 그는 리마를 공격할 계획을 세웠으나 안타깝게도 계획의 첫 단계가 거의 끝나갈 무렵 스페인군이 다시 칠레를 장악하자, 칠레의 해방자 오이긴스는 멘도사로 도망간다. 안데스 산맥이라는 무시무시한 장벽을 넘어 싸우지 않을 수 없게 되자 산 마르틴은 멘도사에서 안데스 산맥을 넘어 칠레로 갔다. 해발 3,000~4,000m에 달하는 4갈래 안데스 산계의 좁은 골짜기, 갈라진 틈, 고갯길을 지나 부하를 인솔하던 능력으로 산 마르틴은 때로 한니발이나 나폴레옹에 비교되기도 한다. 1818년 2월 카사스 데 차카부코에서 스페인 군을 기습하여 산티아고를 장악했으나 그곳에서 리마를 함락시키겠다는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하여 오이긴스에게 칠레 총독자리를 양보했고, 오이긴스는 최고 총재에 선출되었다.
차카부코 전투와 마이푸 전투에서 스페인군을 물리치고 1819년 칠레, 1820년 페루의 독립을 성공시켰다. 산 마르틴은 1822년 7월 22일 이곳 부왕령의 수도를 부분적으로 장악했으며, 페루의 보호자가 됐지만 리마 공격을 계속 주장한 일로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지지자들과 이미 사이가 벌어졌고 페루인들의 충성심을 확신할 수 없었으며 장교들 중 많은 사람들이 산 마르틴이 독재나 군주에 대한 야심을 가지고 있다고 의심했을 뿐만 아니라 내륙지방에 남아 있는 스페인군을 진압할 만한 병력이 부족했다. 더구나 남미 북부를 해방시킨 시몬 볼리바르가 과야킬을 합병시켰는데, 그곳은 항구로 산 마르틴이 페루에 편입시키길 원했던 지역이라 볼리바르와 담판을 짓기로 결정하고 1822년 7월 26일 과야킬에서 회담을 가졌다(과야킬 회담). 비밀회의에서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 알려져 있지 않으나, 분명한 것은 산 마르틴이 낙담하여 서둘러 리마로 돌아갔다는 사실이다. 리마에서 중병을 앓는 가운데 비난과 노골적인 반감에 부딪혀 1822년 9월 20일에 섭정직을 사임한 뒤 망명길에 올라 딸과 더불어 브뤼셀·파리·불로뉴 쉬르메르 등지에서 여생을 보내다 1850년 불로뉴 쉬르메르에서 숨을 거두었다. 결국 신생독립국가들의 초기 역사를 얼룩지게 만든 무정부 상태에 개입하는 것을 현명하게 피한 셈이었다. 시몬 볼리바르와 함께 스페인으로부터 남미를 해방시킨 영웅이자 아르헨티나 국민의 아버지로 높이 추앙받고 있다. 그를 기린 해방자 산마르틴 장군 훈장(Orden del Libertador San Martín)은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높은 훈장이다.
▶ 검은 간판이 눈에 띠는 KFC
고급스러운 레스토랑과 호텔들이 광장 주변에 자리 잡고 있는 가운데 가장 시선을 잡아끄는 곳은 다름 아닌 KFC이다. 붉은 간판으로 대표되는 KFC는 센트로 지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까닭에 주변 경관과의 조화를 위해 검은 간판으로 대체했는데, 튀지 않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오히려 그 반대의 결과를 낳았으니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우니온 거리(Jr. de la Unión)
산 마르틴 광장에서 아르마스 광장(Plaza de Armas, 또는 Plaza Mayor)으로 이어지는 5~600m 쯤 되는 보행자 전용 거리인 우니온 거리(Jr. de la Unión)에는 옷가게, 카페, 음식점 등 온갖 고급스러워 보이는 상점들이 줄지어 있는 번화한 거리로 센트로 지구의 메인 거리라고 한다.
▶ 아르마스 광장(Plaza de Armas) 대통령 궁
예사롭지 않은 위용을 자랑하는 식민지 시대의 유럽풍 건축물들로 둘러싸인 아르마스 광장과 그 주변부는 오랜 역사와 아름다운 건축물로 199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중남미의 공통적인 특징은 그 중심이 되는 광장의 이름이 아르마스 광장(Plaza de Armas)인데 이 이름에는 사실 역사적인 슬픔이 묻어있다. Arma는 스페인어로 무기란 뜻이고 Armas는 Arma의 복수형이니 직역하면 아르마스 광장은 무기 광장이란 뜻이다. 과거 스페인 식민시대에 스페인 사람들이 광장에서 무기를 만들거나 재정비했다고 하여 무기 광장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Paza de Myor(메인 광장 or 중앙 광장)으로 이름을 바꿔 부르려고 하지만 아르마스 광장이 너무 익숙해진 탓인지 잘 고쳐지지 않는다고 한다.
▶ 아르마스 광장에서 한 컷
▶ 아르마스 광장의 분수대
▶ 시청 건물
▶ 박물관
열대 나무들이 인상적인 푸른 광장 안은 언제나 휴식을 즐기는 시민들로 가득하며, 그 주변으로 관광용 마차를 끄는 흰 말과 마부를 볼 수 있다. 광장의 북쪽과 동쪽으로는 각각 대통령 궁과 대성당이 위치하며, 식민지 풍을 그대로 보여 주는 박물관과 리마 시청 건물도 보인다. 광장 중앙에는 분수대가 물줄기를 시원하게 뿜어내고 분수대 중앙에는 나팔 부는 천사상이 우뚝 서 있다. 1535년 스페인 식민지시절 정복자 피사로는 아르마스 광장을 중심으로 대성당과 대통령 궁을 지으며 도시를 확장해 나갔는데 광장 주변에 건축된 식민지 풍의 노란색 건물들은 당시의 모습을 짐작케 한다. 이곳에 조성된 건물들은 스페인이 정복했다는 의미로 모든 건물들을 잉카의 건물들 위에 지어 잉카 문화를 말살해 지금 이곳에 잉카의 모습은 어디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원래 광장 가운데는 피사로의 동상이 있었으나 첫 원주민 대통령이 동상을 철거하고 분수대로 교체한 것이라고 한다.
▶ 리마 대성당
아르마스 광장 동쪽에 있는 리마 대성당으로 발길을 옮긴다. 대성당 앞의 넓은 계단에는 광장에서와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앉아 더위도 피할 겸 한가로움을 즐기고 있다. 리마에서 식민지 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상징적인 건축물로 손꼽히는 대성당은 페루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 스페인 침략 군대를 이끈 피사로가 직접 주춧돌을 놓았다고 해서 더욱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당시 스페인의 주류 양식이었던 바로크 양식을 그대로 이어받아 지어진 대성당은 1535년 스페인 세비야 대성당을 본떠 건축했다가 1746년 대지진으로 파괴, 1758년 개축된 모습이란다. 아르마스 광장의 동쪽 전체를 차지할 정도로 거대한 규모의 대성당은 당시 스페인 사람들의 가톨릭 신앙심을 그대로 반영한 듯 맞은편에 자리 잡고 있는 대통령 궁과 비교해도 전혀 뒤쳐지지 않을 정도로 고풍스러우면서도 대담한 조각과 장식들로 위풍당당함을 자랑한다. 대성당은 특이하게도 미사가 진행될 때에 한해 성당 박물관을 통해 입장료를 내고 들어 갈 수 있는데 우리가 간 날은 금요일이라 내부 입장이 안 된단다. 문 틈으로 살짝 들여다 본다.
▶ 리마 대성당
내부는 바로크 양식의 예배당으로 나무로 조각된 성가대 의자가 인상적이며 Martinez Montanez가 조각한 상아 예수상도 매우 유명하며 현재 성물실은 종교 예술 박물관(Museum of Religious Art)으로 이용되고 있고, 17세기와 18세기의 종교 유물, 전례 용품, 드리고 미술품 들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대성당은 훌륭한 건축물이기도 하지만 정복자 피사로의 미라가 안치되어 있는 것으로 더 유명하고, 대성당 내부에 금 은박, 조각 등으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는 재단이 16개나 있으며, 14세기 전부터 전해오는 종교화, 역대 잉카의 초상화 등으로 가득하다고 한다. 이는 마치 그 당시 페루가 스페인 사람들에게 강한 욕망을 샘솟게 하는 황금의 나라였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 페루 대통령 궁 앞에서
▶ 아르마스 광장을 떠나며 아내와 기념촬영
아르마스 광장 북쪽에 위엄있게 펄럭이는 페루 국기와 건물 꼭대기의 정면에 달린 붉은 휘장이 쳐진 가운데 날카로운 검은 철창이 건물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건물이 대통령 궁이다.최초의 대통령 궁은 건축에 관심이 많았던 피사로가 직접 설계를 담당했으며 그 때문에 피사로 궁(Casa de Pizarro)이라는 별칭이 있다. 현재의 건물은 1937년에 다시 지어진 것으로 페루의 정부 청사 역할을 하고 있다. 맞은편 아르마스 광장의 평화로운 휴식 광경과는 대조적으로 총칼을 차고 경호를 서는 군인들과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건물 옆쪽에 대기하고 있는 기관총 달린 장갑차를 통해 삼엄한 경계가 펼쳐지고 있다. 매일 정오에 이루어지는 근위병 교대식은 대통령 궁의 또 하나의 볼거리로 장난감 병정처럼 기계적인 동작으로 움직이는 모습이 인상적이라는데 우리가 찾아 간 시간은 이미 정오를 한참 지나 근위병교대식은 볼 수 없었고 지금은 2019년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대통령이 하야해 대통령이 공석 중이란다.
▶ 라르코 마르(Larcormar)에서 바라 본 태평양
▶ 남태평양을 가르며 행글라이딩을 하는 사람
더위에 지친 우리는 아르마스 광장을 떠나 택시(20솔)를 타고 스페인어로 '꽃을 보다'라는 뜻을 가진 미라플로레스 지구에 있는 라르코 마르(Larcormar)로 향한다. 15분 정도 달려 도착한 라르코마르는 해안 절벽 가에 위치해 있는데 전망대 아래 현대적인 종합 쇼핑 몰로 각종 고급 브랜드를 진열한 상점들과 레스토랑 등이 즐비하다. 남태평양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전망대에 오르니 절벽 아래로 확 트인 남태평양의 파도와 그 파도를 타는 서핑 객들이 여행자의 가슴을 뻥 뚫리게 한다. 해안을 바라보는 절벽위에 건물이 들어서 있어 이곳에서 바라보는 해안 경관은 하나의 예술이었으며,100m가까이 수직으로 솟아오른 단구와 절벽 이와 나란히 평행선을 그리며 뻗어가는 해안가와 해안도로 그리고 밀려오는 파도는 한 폭의 그림처럼 보인다.
▶ 사랑의 공원에 있는 키스하는 연인상
라르코 마르에서 해안가를 따라 난 길을 따라 걷노라면 조경이 아름다운 시민들이 쉴 수 있는 공간과 전망 좋은 곳곳에 놓인 벤치와 보드나 자전거를 타기 좋도록 배려한 인도, 각종 조각품들이 이를 반영하고 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을 따라 가다보니 패러글라이딩을 하고 있어 잠시 구경을 한 후 위쪽으로 십여 분 정도 걸어 올라가니 사랑의 공원이 나타난다. 인상적인 타일 벽화와 함께 이곳의 명물인 키스하는 연인상이 공원 중앙을 커다랗게 차지하고 있다. 과감한 포즈로 키스를 하고 있지만 조각품의 두리뭉실한 몸매 덕에 선정적으로 보이기보다는 슬며시 웃음 짓게 만든다.
▶ 케네디 공원
저녁 식사 후 이곳으로 다시 와 일몰과 야경을 구경하기로 하고 걸어서 호텔로 돌아간다. 호텔 근처 케네디 공원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나무 그늘 아래에서 휴식을 즐기고 있다. 이 공원은 미라플로레스를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한 번이상은 지나야 하는 곳으로 공원 주변에는 카페, 빵 가게, 주점 등이 많아 커피나 음료수, 빵 등을 take out해 공원에서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 잉카 마켓
호텔로 돌아와 잠시 휴식을 취한 후 호텔 옆에 있는 잉카 전통공예시장을 구경하러 나선다. 전통공예품시장은 잉카마켓과 인디오마켓 두 군데지만 시장에서 판매하는 물건은 페루의 섬세하고 정교한 고대 잉카의 전통과 양식을 간직한 직물과 주얼리 뿐만 아니라, 알파카 털로 만든 스카프와 숄, 인형 등 공예작품과 강렬한 색채로 그려진 그림 등으로 대동소이하다. 리마가 여행 시작점이라 기념품을 미리 사면 앞으로 여행기간 동안 짐만 될 것 같아 아이 쇼핑으로 대신하고 호텔로 돌아온다.
저녁 식사 후 사랑의 공원 근처로 야경을 즐기기 위해 아내와 호텔을 나선다. 호텔을 나와 두 블럭 가서 좌측으로 가면 라르코마르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걸어도 라르코마르가 나오지 않는다. 한참을 걷다 마침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젊은 청년들에게 길을 물으니 우리가 지나고 있는 도로의 안내판을 가리키며 길을 잘못 온 것이라고 한다. 라르코 마르를 가려면 케네디공원 좌측으로 난 AV. JOSE MARCO로 가야하는데 우리는 케네디공원 까지 가지 않고 좌측 길로 접어들어 AV. RICARDO PALMA를 헤매고 있던 것이다. 헛웃음이 나온다. 내 나름대로는 지도 한 장만 있으면 어디든 찾아간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아내도 실망한 눈치지만 시간도 늦고 다리도 풀려 내일 이카와 나스카를 다녀 온 후 모래 리마로 돌아오니 그 때 야경을 구경하기로 하고 다시 호텔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