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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장 (1) 달란트 비유
14.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15.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16.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17.두 달란트를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18.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
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19.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새 20.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1.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
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22.두 달
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
나이다 23.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24.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
으므로 25.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
셨나이다 26.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7.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
다가 나로 돌아 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28.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29.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30.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
라 하니라 (마25:14-30)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오신 것을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더니 십자가에 죽으시
고 부활 승천하신 뒤 다시 성영님으로 오셔서 이때는 아주 믿는 자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천국이
가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믿는 자 안으로 들어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죽어야만 가
는 곳이 아니라, 육체로 있을 때에 천국이 믿는 자 안에 들어와야 또한 천국에 들어간 것입니다.
눅17:20,21에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
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성영님이 사람 안에 오신 것이 바로 천국이
들어온 것임을 말합니다. 성영님이 오신 것은 천국이 오신 것이니, 그러므로 이제 자기 안에 오신
천국을 처음 경험하는 이때는 씨로 임한 것이니, 그 씨가 자라 온전케 소유되도록 믿음의 힘을 써
자라게 하라는 것입니다. 만일 자라지 않고 씨로만 있으면 마귀에게 빼앗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천국의 결실이 되느냐? 마13:23에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셨고 눅8:15에 좋은 땅에 있다는 것
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착하고
좋은 마음이 말씀을 받을 제 밭이요, 말씀이 심어져 씨가 썩지 않고 자라 결실하여 혹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로 결실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말씀을 듣고 깨닫는 좋은 땅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말씀을 듣고 자기 소유를 다 팔아 버려야 함을 깨달아 자기 소유를 다 팔아 예수
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 결실하는 자라는 말입니다.
만일에 천국이 씨로만 있어도, 즉 "나 예수님 믿습니다. 예수님 구세주이신 것 믿어요. 예수님이
내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피 흘려주셨고 또 내게 영생주시기 위해서, 생명주시기 위해서 몸 찢으신
것 압니다. 저 그거 믿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내 구주이신 것 믿습니다."하는 이 같은 믿음의 말
만 가지고도 온전한 구원이 된다고 하면, 다시 말해 주님이 나를 구원해 주셨다고, 주님만 믿으면
된다고 하는 그 씨만 가지고도 구원이 있다고 한다면, 예수님께서도 '너희가 모두 나 예수만 믿으
면 천국 가니까 그냥 나만 딱 믿으면 된다'하시고 다른 말씀 하지 않으셨어야 할 것입니다. 한 달
란트 받은 자, 두 달란트 받은 자, 다섯 달란트 받은 자, 이런 것도 나누어 말씀하실 필요도 없고,
좋은 땅, 나쁜 땅 말씀하실 필요도 없고,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다고 하시는 말씀도 전혀
하실 필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마음에 무지의 교만을 내려놓고, 오늘 이 달란트 비유의 말씀을 통해 자기
믿음을 비춰보는 기회가 되자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달란트 비유는 그런 뜻이구나, 열 처녀
비유는 그런 뜻이었구나'라고 아는 것에 명석하여지라고 드리는 말씀 아닙니다. 믿는다는 자신이
참으로 예수님을 만나 혼인 자리로 들어간 슬기 있는 다섯 처녀와 같은 자로서 신랑을 만나 혼인
자리에 들어간 것인가, 미련한 다섯 처녀로 신랑을 만나지 못한 것은 아닌가, 달란트 받아 장사 잘
하여 자기에게 남긴 것이 되었는가, 땅에 묻어둔 악한 자에 속한 것은 아닌가 하는 자신의 믿음을
들여다보라는 뜻에서 드리는 말씀이라는 것,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만일에 저에게서 말씀 듣는 여러
분이 그동안 자기가 들었던 다른 설교들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버리지 않고, 거기다 덧붙이려고 듣
는 것이라면, 듣는 것 삼가라고 말씀드립니다. 자기가 아는 지식에다 더 붙여보려고 기웃거린 것이
라면 듣는 것 금하라는 말입니다. 육의 것과 영의 것이 같을 수도 없고 함께할 수도 없는 것이고,
자기 머리의 것과 성영님의 것이 같을 수 없고 함께 할 수 없다는 것 분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자기의 가지고 있던 것들을 깨끗히 탁 깨버리고 새롭게 듣고 새기는 말씀이 돼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과거에 듣고 가졌던 자기 지식에다가 저의 전하는 말씀을 덧붙여 보려고 했던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저를 시험하는 자로 있었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성경은 구
세주 예수님을 알게 하려고 예수님을 말하기 위해 초점을 두고 기록하신 책이라는 것을 아십시오.
예수님을 안다면 곧 또 자기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에서부터 구속사에 필요하여 도구로
세운 모든 인물 속에서나 사건들 속에서 비밀처럼 감춰있듯이 계신 예수님을 보지 못하면, 사실 신
약에 훤히 드러나 보인 예수님을 바로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잘 아는 것처럼 말한다 해
도 그것은 자기 머리로 아는 것일 뿐, 영으로는 도무지 만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영혼이 구원받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신약에 드러나신 것을 통해서 구약을 이해하여 훤히 알 수가 있게 되고, 구약
에서 비밀처럼 계셨던 희미한 예수님이 훤히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구약에서의 예수님을
보지 못하면, 신약에 나타나신 예수님도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바로 볼 수도 없고 예수님을 영혼
으로 만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달란트를 주셨다는 것이 뭐냐? 이것은 구속사에 대한 이스라엘의 영적 역사를 말씀
한 것이지만, 오늘날 또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 원하면, 이 달란트의 의미를 바로 알아서 그 의
미를 자기에게 적용할 것은 적용하여 능력을 갖추는 것으로 예수님을 알고 믿어 바른 관계를 이뤄
야 할 것임을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지으신 사람들에게 예수님으로 온전한 연합을 이루
어 예수님으로 살라는 것인데, 그것이 하나님의 전 뜻인데 그 뜻에 합당하려면 성경의 전 역사를
통해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그 수고를 힘써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에게 주신 달
란트, 곧 사명입니다. 그래서 저는 성경의 영적 역사를 스스로 이해하기가 어려워 안타까워하며 진
정 깨닫기 원하고 믿음을 바로 하려고 마음을 애쓰는 이들에게, 그 관계가 되게 하고자 이같이 구
약과 신약을 넘나들면서 예수님을 알게 하는 데, 자기를 알게 하는 데 초점을 두고 지금까지 말씀
을 전하여 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관계없는 엉뚱한 방향의 것들을 자기 머리에 잔뜩 가지고, 거
기에다 제 말씀을 덧붙여 보겠다고 '아 그런 뜻이구나''아 말씀의 뜻 깨달았다'한다면 둘 다 쓸모없
게 돼 버리지 않겠느냐는 말입니다. 그것은 바른 능력이 될 것이 아니라 교만밖에 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시작에서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했습니
다. 여기서 '어떤 사람이'한 것은 구약에 아직 드러나지 않은 예수님에 대한 비유입니다. '자기 소
유를 맡김과 같다'는 것은, 사람에게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가지신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소
유가 있는데, 그 일을 이루시는데 필요한 종들을 불러 그 하나님의 소유의 일을 하도록 맡겼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맡은 종들도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그러면 여기 달란트 비유에서
말씀하는 하나님 소유의 일을 맡아 일하라고 선택된 하나님의 소유된 종들이 누구일까요? 이스라
엘? 더 거슬러 올라가서, 아브라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려고 생명의 언약을 담은 복음을
시초로 받은 사람이 누구냐? 여러분, 여태까지 복음의 시초가 어디서부터라고 들었습니까? 아브라
함이라고 누차 들었지 않습니까? 아브라함! 벌써 몇 주째 그것을 강조해서 말해왔는데 근데 왜 이
렇게 안 나와요, 어찌 몇 주뿐입니까? 저는 아브라함 얘기 빼놓은적 그리 없습니다.
천국의 씨, 생명의 씨를 아브라함 때부터 뿌려 싹이 났다고 하는 것을 아는 것이 예수님의 비유 말
씀을 이해할 수 있는 기초적 지식이 됩니다. 15에서 각각 그 재능대로 한 것은 하나님의 언약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실 때까지, 그 독생자 예수님이 오시게 하는데 필요한 하나님 소유의 일
을 맡겨서 하게 하신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소유하신 일을 하는 데에 자질이 마땅한 자에게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주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3장에 비유 말씀에서 천국은 좋은 씨
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제 밭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여러분이 다 듣
게 되었잖아요. 하나님께서 하나님 소유의 것으로 농사를 짓기 위해 친히 준비하신 밭, 하나님께서
씨를 심으려고 준비하신 씨에 맞는 밭, 그가 바로 아브라함 가정이라고, 그 후손 이스라엘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재능대로 하는 것도 다 하나님의 일을 행할 자로 마땅히 자질이 된 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다음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
났더니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를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했습니다. '금 달란트'라고 한 그 '금'은 하나님
의 소유로써 보유하신 신영한 하나님의 일을 믿음으로 받아 온전하게 행할 사명을 뜻합니다. 그것
을 우리는 믿음으로 받아 나의 소유가 되게 해야 합니다. '달란트'는 16에서 장사하여 했습니다.
장사하는 것으로 표현한 것은 팔고 사는 것임을 인식하게 하려고 그렇게 돈의 명칭인 '달란트를 주
셨다' 말하고 또 '장사하여'라고 하셨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다고 했습니다. 명을 받자마자 지체하지 아니하고 바로 가서 장사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다섯 달란트이겠습니까? 아니 잘못 짚었어요. 예수님께서 말씀하는 것은 저
같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성경 역사에서입니다. 누가 지체치 않고 바로 가서 장사하였을까
요? 짐작 안 됩니까?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라는 말씀이 떨어지
자 바로 가서 그 일을 행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보다 더 위에 두고 있는 것이 없고, 하나님
을 온전히 경외하고 사랑하여 믿는 온전한 믿음을 나타냈습니다. 그래서 다섯 달란트는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입니다.
그리고 두 달란트를 받은 그 하나가 누구냐? 애굽에서 이끌어낸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의 사명,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십계명을 지키고 성전을 짓고 제사를 지내고 율법을 행하며 그 속에 넣으신
하나님의 뜻을 잘 보전케 하는 사명을 말합니다. 또 한 달란트를 받은 그 하나는 누구냐?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유대인입니다. 물론 모세나 예수님을 낳은 마리아나 침례 요한 등은 다섯 달란트의 사
명과 같은 일이겠으나, 예수님은 지금 아브라함부터 예수님 초림 때까지 이스라엘을 세 등분으로
나누어 달란트 비유를 드신 겁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순종하는 그 앞에는 좋은 일도 어려
운 일도 나쁜 일도 있지만, 그 어려움을 겪는 중에서도 개의치 않고 바로 가서 장사를 잘했다는 말
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팔아 버려야 할 자기 것은 깨끗이 팔아 버리고, 사야 할 하나님의
것은 온전히 사는 것을 잘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의도대로 일을 잘했으므로 하나님의 일에 유익이 되
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곧 자기에게로 갑절로 돌아오는 복이 되었다. 21에 다섯 달란
트나 23에 두 달란트나 돌아오는 그 상은 같은 것으로서 많은 것을 맡겨주시고 주인의 즐거움에 참
예하라 하신 복이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여 하나님의 독생자를 내주시겠다는 언약을 하시고, 그 일을 이루시는
데 그의 후손 이스라엘이 일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실 길의 역할을 하고, 하나님께서 사람
에게 죄를 사하여 영생하게 하시려고 하늘로부터 땅으로 오셨다는, 이 하나님의 뜻을 만방에 알리
도록 그 사명을 맡기셨다고 하는 것을 달란트를 비유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 이야기야 여
러분이 이제 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것이니, 이제 더 말할 필요는 없고 물론 또 이스라엘 역사
도 그렇습니다. 그러면 달란트에 대해서 여기까지는 이해됐습니까?
18에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했습니다. 다섯 달란
트, 두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장사를 잘하여 그 두 배로 남겨서 주인이 돌아와 회계할새 "잘
하였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
의 즐거움에 참예하라"는 큰 상을 받게 되었는데, 24, 25에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
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
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했다
는 것입니다. 여기 한 달란트 받았던 자가 예수님 오시기 전에 유대인들을 말한다고 말씀드렸지요?
바리새인 서기관 사두개인 이 세 부류의 사람들과 또 성전의 대제사장, 제사장들입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이라는 말입니다. 이들을 놓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한 달란트 받았다는 것을 예를 듭니다. 제가 예를 드는 거예요. 조상들이 살 곳과 집을 마련하느라
고 좋은 터를 찾고 찾아서 집터를 닦고 우물을 파고 집을 짓고 전답을 준비하는 모든 수고를 하여
만반의 준비를 다 하였음으로써 후손들이야 그런 고생하지 않고 편히 살 수 있게 되었지 않습니까
이제 후손들이 할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조상이 이룩한 삶의 그 터전이 보존되도록 관리 잘하면서
가꾸어나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요. 그처럼 이 유대인들은 조상들이 이룩한 성전과 제사와 절기와
율법의 뜻을 그대로 받아서, 죄인 됨을 알고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의 말을 새겨듣고 오직 하나
님이 보내시는 메시아를 기다리는 데에 모든 초점을 두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한 달란트의 일
인데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한 달란트의 일을 하러 가서 땅을 파고 감추어 두었다는
것입니다. 땅에 감추어 두었다 했으니 이것은 의도적인 고의였음을 말합니다. 땅은 흙으로 된 저
땅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 본위의 마음 중심을 말합니다.
저 흙의 땅은 파고, 또 파고 한없이 파낼 수 있어서 무엇을 깊이 묻어버릴 수 있는 것처럼, 이 유대
인들이 한 달란트의 일을 자기 머리에서 나는 생각 밑에다 깊이 묻어버리고, 선지자들의 말은 틀렸
다고 듣지 않고, 머리를 더 높였다는 말입니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를 받아서 장사하여 남긴 그
조상들에게는 없던 육체의 정욕, 육의 안목, 이생의 자랑을 한 달란트 받은 종들이 다시 사들여서
한 달란트의 일을 그 밑에다가 깨끗이 묻어버린 것입니다. 한 부류는 세상에서 돈 많고 명예 얻고
잘 사는 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라고 나왔고, 한 부류는 하나님의 율법을 잘 지키는 것만이 하나
님을 잘 섬기는 것이고 우리 민족이 복을 받는 것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나왔고 한 부류는
모세 오경을 깊이 아는 지식만이 하나님이 계신 하늘 문을 여는 최고의 열쇠라고, 성경을 아는 지식
만이 최고의 복이라고 나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 달란트 받아 땅에 왜 감추었느냐? 지금 그 주인에게 와서 그것을 24,25에서 고하는 것
입니다.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
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
나이다 했습니다. 주님은 전능하셔서 못하시는 것이 없는 것을 안다는 말입니다. 한 치도 어긋남 없
이 정확하시고 매사에 빈틈없으셔서 손해 입지 않으시는 것도 안다는 말입니다. 없는 데서 있게 하
시고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타작하지 않은 데서 곡식을 모으는 당신의 능력을 잘 알고 있다는 말
입니다. 그렇기에 제가 한 달란트 일하다가 잘못하게 되면 그 책임을 물으시리라는 것도 잘 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주인의 것 제가 손해 입힐까 두려워서 손해 입히지 않게 하려고 땅에 잘 감춰두었
다가 가져왔으니 당신의 것 다시 받으시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당신의 것을 손대는 것이 두려워
서 그대로 두었다가 다시 가져왔으니, 손실 입지 않고 해 입지 않게 하여 잘 감추었다가 가져왔으
니, 우리만큼 주인의 마음을 잘 알아서 주인의 뜻대로 충성하는 자가 어디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주
인의 마음을 잘 알고 주인의 뜻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주인의 한 달란트를 건들지 않고 감추어 두었
다가 도로 가져왔으니 우리가 얼마나 충성되게 했는지 주인이 이제 아시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주인의 대답은 "악하고 게으른 종아"였습니다. 이 말을 다른 말로 하면 '도무지 깨달아 볼
능력이 없는 짐승 같은 놈아''자기 머리를 높여 사단에게로 나간 짐승 같은 놈아''팔아 버린 육을
다시 사들인 짐승 같은 놈아'입니다. 그리고 30에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사단에게 예비된 유황 불못으로 들어가 영원히
슬피 울며 이를 갈아야 하는 형벌에 처해졌습니다. 이같이 초림하신 예수님을 맞아 영접하지 못한
유대인들이 영원한 형벌의 장소에 들어가게 되었음을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달란트
비유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아브라함으로 시작해서 예수님이 초림하실 때까지의 사명을 받아
장사를 잘하여 남겼음으로써 주인의 즐거움에 들어간 자와 장사를 하지 않았음으로써 남긴 것이
없어 주인에게 쫓겨나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아 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믿는다는 사람들이 이 달란트를 가지고, 달란트 감당한다고 자기 머리에서 나는 생각
들로 하고 있어서 예수님의 말씀의 의도를 얼마나 어지럽히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 비유의 의미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달란트 감당해야 한다고, 달란트 감당하라고 그렇게 가르치고 있으니, 그래
서 달란트 감당한다고 자기 생각들을 좇아 행함으로써, 이 한 달란트 받은 악하고 게으른 종과 같
은 모습들이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과 생각이 맞는 인격적 모습은 도무지 없는 것입니다. 이 한 달
란트 받았던 자가 무엇을 남기지 않았는지, 왜 한 달란트를 받아 땅에 감추었는지, 예수님의 의도
대로 깨달아봐야 할 텐데 그 인격은 없고, '아, 내게 있는 재능을 하나님을 위해서 써야 한다는 것
이구나, 그것이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구나, 그것이 달란트 감당하는 것이구나'라고 너무 가
볍게 자기 멋대로 생각하고, 행하고 다니면서 '아, 나도 하나님을 위해서 일한다'고 가슴 내밀고
다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자기 의지의 선택이지만, 영혼이 구원받아 영혼으로 맺은 믿
음이 되는 것은, 여기 한 달란트 받은 자가 그 한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다는 것이 무엇인지,
왜 악하고 게으르다고 하시고 사단의 형벌로 떨어지게 되었는지부터 깨달아 알고, 자신이 먼저 한
달란트의 사명부터 알고 능력을 갖추는 그것이 믿는 것의 정도요, 예수님을 영혼으로 모셔 들일 수
가 있는 것이요, 예수님과 인격적인 관계로 맺는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방인으로서 예수님을 믿으러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3장에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다고 말입니다. 유대인 밭 속에, 유대인들 속에 감춰 있
듯이 한 하늘의 보화, 즉 그들 속에서 구주 예수님을 발견하고 기뻐서 돌아가 자기 소유를 다 팔고
그 밭을 샀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예수님 발견하고 기뻐서 자기 소유를 다 팔아 버렸습니
까? 자기 소유 팔아 버렸느냐고요? 근데 예수님 발견하고 기뻐서 자기 소유를 팔아 버린 것이 아니
라, 오히려 자기 소유 어찌 될까 봐서 예수님의 이 같은 말씀들은 자기에게는 해당 없는 것으로 해
버리고, 자기가 믿는 이유는 예수님 발견한 것 기뻐서 그 기쁨 때문에 예수님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무엇 좀 도와주시라고, 응답해주시라고 했더니 응답해주셨다고 그것을 기쁘다고 간증하며
전하러 다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든, 이방인들이든 관계없이 사람이 예수님을 발견
하고 기뻐서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자기 소유를 다 팔아 버려
야만 그 밭을 사게 됨을 말씀한 것입니다. 자기 생각, 자기 이론, 자기 방법, 자기 경험, 자기 지
식, 자기 머리 다 팔아야 육의 정욕, 육의 안목, 육의 자랑 다 팔아 버려야 밭을 살 수 있음을 말
씀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왜 천국을 샀다, 예수님을 샀다고 하는 것이 아니고 그 밭을 샀다고 하는 것입니까? 그 밭
의 유래와 역사는 곧 예수님을 말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밭의 유래와 역사를 알아
야, 즉 하나님의 창조하심과 이스라엘을 세우시고 넣으신 뜻, 그 영적 역사를 알아야, 성경의 구약
역사와 하나님의 뜻과 의도를 알아야 예수님을 정확히 알게 되고, 예수님을 모셔 들일 수 있는 자
격을 갖추게 되고 연합을 이룰 수가 있게 되기 때문에, 온 세상의 보화와 같으신 그 구세주 예수님
을 발견하게 되어, 그분을 확실히 알아보기 위해 밭을 샀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 팔아 버려야 할
것을 팔지도 않았는데 '아! 주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 지시고 죽으시고 다시 사셨으니, 그 주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 얻는다고 하셨으니, 나는 구원받아 이제 천국 백성 되었다'하는 그것으로 구원이
확실히 보장되는 것일까요? 구원이 보장됩니까? 아니라는 것, 여러분이 이제 말씀의 가르침으로 분
명히 알게 되었고, 자기의 지각으로 인정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께서 다 이루어 놓으신 십자가 구원의 복음을 듣고 나와 예수님이 내 구주시라
는 것,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시고 나를 위해 사셨으니 그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 얻는다는 이 복
음으로부터 믿는 일이 시작되기 때문에 그래서 그 일을 믿기만 하면, 믿고 시인하면 구원 얻는다는
것부터 듣고 받기 때문에 그래서 그것을 구원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구원받은 것
도 아니요, 영으로 된 믿음이 아닙니다. 이 복음 들은 것을 시인한다고 구원받은 것인 줄로 착각하
면 큰 오산입니다. 이때의 믿음은 영의 믿음이 아니고 단지 먼저 지식으로 받게 된 머리의 믿음일
뿐으로 그것이 한 달란트 받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면 처음에 받은 이 한 달란트가 구원입니까, 사명입니까? 사명입니다. 사명! 사명인 것 이해하
시나요? 달란트의 사명이라는 것 구원이 아직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명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
다섯 달란트의 일과 두 달란트의 일에 대한 뜻과 의미를 깨달은 믿음이 되지 않는다면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구원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믿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나오는 개개
인들에게 먼저 사명부터 주셨습니다. 사명이라 하니 목사 사명, 가르치는 사명, 복음 전하는 사명,
이런 타인을 위한 등등을 말하는 것으로 아는데, 말씀을 잘 배우고 알아 자기 자신을 바른 믿음으
로 세우라는 자기에 대한 사명을 주셨다는 말입니다. 영의 구원을 이룰 수 있도록 이방인인 우리 개
개인에게 주신 달란트, 바로 사명을 주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한 달란트를 받아다가 땅에 감추어
두었던 이들을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바리새인 서기관 사두개인 성전 제사를 담당했
던 유대교의 지도자를 통해서 자기 이론, 자기 지식, 자기 머리, 자기 생각, 자기 지혜, 자기 경험
다 팔아 버려야 함을, 육의 정욕, 육의 안목, 육의 자랑 다 팔아 버려야 함을 배우고 팔아 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팔아 버려야 할 것들은 본래 누구 것입니까? 사단의 것, 마귀의 것, 과거 마귀에게
속하여 살 때 가졌던 하나님과 원수 된 것, 하나님을 거스른 이 같은 육의 것들을 마귀에게 넘겨줘
버려야 한 달란트를 남기게 되는 것이고, 그다음 두 달란트를 남기기 위해서 즉 예수님과 나와의
관계를 이루어 예수님과 연합이 되기 위해서 구약과 신약을 잘 연결해주는 말씀을 듣고 배우는
것입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은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들에게 예수님과 자기
와의 관계에 대해 잘 가르침을 받고 배우는 것입니다. 또한, 자기 자신이 성경을 부지런히 읽고 성
경을 아는 일에 열심을 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배우면서 자신을 알고 예수님을 알고 만나는
체험을 계속함으로써 예수님과 연합을 이루는 관계가 되는 것, 영혼으로 맺은 신랑과 신부의 관계
가 되는 것, 이것이 두 달란트를 남기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슬기로움이요, 두 달란트 남기
는 것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달란트를 자신에게 남겨야 합
니다. '나는 예수님 믿고 구원받았다'가 구원이 아니라 너 자신에게 달란트를 남겼느냐, 그것이 19
에서 회계할새 하셨는데 바로 계산하신다는 말입니다.
롬10:10에서 바울이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했습니
다. 그러면 '의에 이르고'한 것은 완료입니까, 지향적입니까? 잘 이해를 해보세요. '이르고'했으니
지향적입니다. 그러면 '구원에 이르느니라'도 완료입니까, 지향적입니까? 지향적입니다. 또한 '주
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했지 구원을 얻었다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또 육체에서 떠
나 하늘에 들어갈 때 구원받는다는 말 아니니 새겨들으십시오. 우리 믿음은 육체 안에서 구원이 완
성되어야 한다는 것,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육체로 있을 때 구원이 완성되어야 하는 것
슬기 있는 자로 달란트를 자기에게 남겨야 하는 것임을 오늘 말씀을 통해서도 분명히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르치는 자나, 믿는다고 하는 자나 다 자기 좋을 대로 인간 열심만 내고 있습니다. 진정으
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속사람이 거듭나야 하는 것이 먼저임에도, 말씀을 잘 배우고 팔아 버
려야 할 것은 팔고, 사야 하는 것은 사는 믿음의 능력부터 갖추어야 함에도 그렇지 아니하고, 그같
이 삼위 하나님과 관계되는 믿음으로 영혼의 구원을 얻기도 전에 먼저 직분을 받고 가르치는 자가
되고, 자기에게 좀 있는 재주, 자기 재능들 가지고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라고, 그 달란트 감당한
다고 하는 참 웃지 못할 인본의 일들로 악의 영들이 주인이 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니, 성경
이 언제 그런 것들을 달란트라고 했습니까? 언제 어디에 그런 것들을 달란트라고 했나요? 또 언제
이방인들에게 가서 달란트 감당하라고 했나요. 믿는다는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이 바리새인 서기관
사두개인과 유대교의 지도자들을 향해서 끊임없이 말씀하시는 것은 왜들 그렇게 안 보이는 것입니
까? 왜들! 팔아 버려야 할 자기 소유가 있다면 죽었다가 깨어나도, 신앙생활 아무리 열심을 다해
했어도 영혼의 구원은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먼저 자기 사상을 담은 머리의 소유를 다 팔아 버려
야 비로소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자격이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사람들이 자기 생각을 따라서 믿고, 말씀 앞에 자기 이론을 높이고, 자기가 요리하듯 하면
서 믿는다 하고 있기 때문에, 다 한 달란트 받아서 땅 파고 묻어 놓은 것과 같은 모습들이 되어 있
습니다. 과거에 믿은 세월이 수십 년 된 어떤 권사가 목사와 함께 교회 중심이 되어서 열심히 교인
들 가정 심방 다니고, 예배와 기도하러 다니고 교회 봉사한다고 열심을 품고 다녔는데, 나이 들어
한계가 오니 그 일을 못하게 되자, 자기 마음에 기쁨이 없다고 말한 겁니다. 그리고 우울감에 빠져
살고 있다고 제게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열심히 할 때는 기뻐서 펄펄 날아다니다시피 했는데 그런
기쁨이 없다는 거예요. 그것이 바로 자기 열심이 행한 열매입니다. 열매! 자기 열심에 의해 자기가
만족을 얻고 자기가 기뻐했다는 것이 열매로 나온 것이란 말입니다. 지금 자기 안에 예수님이 오셔
계시고 예수님으로 살고 있느냐, 어떤 형편에 있던지 말씀으로 교제하며 살고 있느냐, 사귐이 되어
있느냐? 그래서 자기 안에 생명수의 기쁨이 있고 행복감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니면 그것은
자기 편리한 대로 믿는다고 한 자기 믿음일 뿐입니다.
그러니 달란트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면서 달란트 감당한다고 행위 위주가 되어 자기 열심
에 의해 하다가, 그러니까 입으로는 구원을 받았어, 입으로는! 입의 말로는 구원받았고, 행위들로
도 구원을 받은 겁니다. 열심히 행한 행위들로는 구원을 받았는데, 그런데 정작 그 영은 구원되지
않았으니, 이후 예수님 앞에 설 때 문제가 뭡니까, 예수님께서 "나는 네가 누구인지 모르겠다"라고
하신 청천벽력의 말씀을 하신 겁니다. "아니, 왜 저를 모르시는 건데요? 저를 왜 모르시는데요, 제
가 얼마나 교회 일에 충성 봉사 희생을 열심히 하고 왔는데, 왜 저를 모르세요?""목사님 말씀이라
면 하나님의 말씀인 줄 알고 내 일도 제쳐놓고 열심히 하라는 대로 순종하고, 심방 잘 따라다니고
고생과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저를 왜 모른다는 겁니까?""저 달란트 감당하느라고 수고 많이 했습
니다. 감당하느라고....,""내게 주신 그 끼, 재능 가지고 얼마나 사람들 앞에 자랑하며 달란트 감
당하느라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려고 웃기고 울리는 일 많이 하고 왔습니다. 그런 수고 많이 한
저를 모르신다니요,"
이같이 한 달란트 받아 땅에 묻어둔 자가 자기가 하나님을 잘 안다는 듯 이론을 들이대 변명한 것
처럼 변명을 늘어놓는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래, 네가 그 목사를 따른 것이지 나 예수를 따
른 것이냐? 악한 자야 나는 너를 모른다""예수님! 예수님이 나는 예수님이 내 죄 때문에 십자가에
서 피 흘려 죄 용서해주신 예수님의 그 피를 알고 있는데요, 나를 구원해 주신 피 맞잖아요?""그
래, 너의 죄악으로 영원히 불 가운데서 고통받을 곳에서 건져내기 위해 은이 단련함을 받는 것과
같이, 그 고난으로 피 흘려주었는데 네가 그 피를 믿고 받아들였으면 거룩한 그 피가 네 안에서 살
아서 너를 변호하는 피가 되어 있을 텐데 네 안에 거룩한 피가 보이지 않는구나, 네가 피를 사랑하
여 세상을 이기고 산 것이 아니라, 육의 소욕을 쫓아 살면서 나의 거룩한 피를 더럽히고 내 피가
모욕을 당하였으니, 너를 위해 이미 십자가에 달린 것으로도 족하다. 나를 떠나가라""아이고, 예수
님! 예수님 믿어야 하는 것 알지만, 수없이 들어서 믿어야 하는 것 알고 있었지만, 세상 것들이 나
를 즐겁게 해주는데, 사실 나도 마음이 좀 불편했지마는 거기서 벗어나기가 어려워서 그랬어요""그
래? 그러면 그 세상에 네 구원을 부탁해봐라, 나는 널 모른다" 이처럼 나는 널 모른다가 될 것밖에
는 없는 것입니다.
오늘도 여러분이 저의 이 말씀을 듣고 배워 적용하는 것으로 영적 사람의 능력을 갖춰야 하는 것이
남겨야 하는 달란트 주신 것임을 알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바로 깨달아 그 말씀대로 할 때
만이 믿음이라는 것을 알기 바랍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성경을 얼마나 가까이하고 말씀을 읽습니
까? 혹 하나님의 말씀이 TV만도 못한 것이 돼 있지는 않습니까? 말씀을 사랑해야 할 여러분이 혹
컴퓨터를 더 사랑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 등을 더 좋아하고 사랑하고 있지 않
습니까? 그거 없으면 못 살 것 같으면서도 성경 말씀은 없어도 되는 그런 자세는 아닌가 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면 함께 심판에 들어갈 것들에 집착하고, 자기 영혼을 거기다 팔고 있을 수는 없습
니다. 오히려 다 팔아 버려야 할 것들입니다.
여러분 성영님을 의지하여 말씀을 늘 가까이하십시오. 말씀을 많이 읽으십시오. 저는 지금 때늦은
이야기를 여러분에게 또 하는 겁니다. 때늦은 이야기를! 때늦은 말을 여러분에게 또 하는 겁니다.
아주 습관적으로 성경을 읽는 그런 열심들을 가지십시오. 우리가 예수님으로 사는 자가 되었다면,
그 믿음이 되었다면 분명히 삶의 가치관이 달라지는 겁니다. 과거에는 돈이나 명예나 학식 등등을
가치로 알고 삶의 목적으로 삼고 그것을 쫓아 살았지만, 예수님으로 사는 믿음이 되고 보니 그것은
육의 것이요, 하나님께 원수 된 삶이요, 세상에서 끝나버릴 것들임을 알게 되어 당연히 그런 것들
을 다 팔아 버리고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하늘의 새로운 것을 구해야 할 것을 알기 때문에
예수님을 사랑하여 말씀을 따르고자 힘쓰는 대로 돌아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10:37에 아비
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충분히 깨달아져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보
다 더 사랑해서는 안 되는지 알게 되니 이제 사랑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마지막 말씀을 하시고 운명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는 것은
사단의 사망 권세가 깨어졌으니 죽음이 끝났고, 죄를 대속하셨으니 죄인이 용서받아 구원이 이루어
졌고, 율법의 요구를 만족케 하였으니 저주가 끝났고, 율법의 정죄나 의문에 쓴 증서나 모든 절기
가 다 폐하여 하나님과 원수 된 관계가 화해되어 화목하게 되었고, 영과 혼과 육체가 고침 받아 나
음을 얻게 되었고, 순종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용서받은 것이요, 죽
음에서 생명을 얻은 것이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신 것이요, 이제 하늘 아버
지께 나아가 아버지를 보고, 아버지의 복을 받게 된 자녀가 된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피 흘
려 나 같은 죄인을 용서해주셨으니, 이제 자기를 비롯하여 모든 사람을 또한 용서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나 외에 모든 사람들, 부모이든 형제이든 자식이든 남편이든 아내이든 이웃이든 간에
그동안 미움의 관계로 살던 것을 다 용서받고 용서함으로써 화해로 문을 열고, 구원의 길로 이끄는
영혼 사랑을 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도 과거엔 육적인 사랑이었지만, 이제 그 육을 십자가에 못 박
아 죽음에 내줘버렸음으로써 자식도 혈육으로 사랑하던 것, 어찌 되었던 자기 자식이 잘되고 잘 먹
이고 잘 입히고, 자기 자식 훌륭하게 되길 원해서 몸부림쳐 온 이기적인 사랑, 혈육 사랑이었지만
이제는 육 사랑을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에게도 과거엔 우상 섬기는 것을 당연시하여 동행도
해드렸지만, 이제 부모라 할지라도 오직 예수님 외에는 어떤 것도 섬겨서는 안 되는 것을 분명히
전하고 핍박이 있어도 타협하지 않게 되고, 자녀가 짐승과 친밀하고, 짐승을 애완용으로 키우겠다
고 하면, 과거에는 세상이 그러니까 하면서 당연시했지만, 이제는 영적인 세계를 통해서 자녀의
영혼이 짐승을 통해 역사하는 귀신의 영에 붙잡히고 더러워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더러운 귀
신들의 영향을 받는 그런 것들에서 보호하게 되고, 오직 예수님을 주기 위한 사랑으로 전투해 나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나 자식이나 남편이나 아내나 모두에게 혈육적인 관계에서 나누던 옛사랑의 일들을 타
협하거나 용납하면 그것은 예수님(하나님)께 합당치 않는 것입니다. 육의 사랑을 철저히 돌이켜야
마침내 십자가의 사랑으로 승리할 수 있게 되어서, 그들로 예수님을 믿게 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
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인생의 가치관과 목적이 바뀌는 겁니다. 돈을 버는 목적도
바뀌는 겁니다. 돈에다 목숨 걸지 않습니다. 과거에는 교회 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대부분 하나님
이 집안 잘되고 돈 잘 벌게 해주시는 이런 복 달라는 것에다 초점을 두었지마는 이 같은 것도 육의
욕구요, 하나님과 원수요, 원수 된 육의 생각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고전10:31에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하였으니 봉사하는
것도 전도하는 것도 모든 것이 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그 믿음으로 일하게 되
는 것입니다.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합당하게 일하는 믿음이 진정
한 복이요, 달란트 남기는 일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남겨야 할 달란트의 사명
을 행하는데는 자기가 있을 수 없고 자기 생각을 따라 행할 수 없는 겁니다. 오늘 우리는 달란트의
말씀을 깨달아 보았습니다. 자신에게 남겨야 하는 것에 대해서도 알아보았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충
실히 행하여 다 각자 자기에게 남기는 것이 되어서 아버지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복이 있길 바랍니
다. 여러분이 바른 지식의 말씀으로 행하는 믿음이기를 바라며 오늘 달란트 비유 말씀을 여기서
맺습니다.
나에게 우리에게 말씀으로 복 주고 복 주신, 아버지와 예수님과 성영님께 참으로 감사드리오며
모든 영광을 온전히 돌립니다. 아멘!!
제 1 장 (1) 달란트 비유.p13-p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