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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장 심영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1.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2.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
대 3.심영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마5:1-3)
하나님이 모세에게 인간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는 율법을 주실 때 산으로 올라와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주시는 복을 말씀하실 때 산으로 올라가셨습
니다. 산에 올라갔다는 것은, 하나님의 메시지를 중보를 통해 내리신다는 의미입니다. 전 인류에게
내리시는 하나님 나라의 복된 메시지라는 말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은 인간이 죄인임
을 깨닫게 하면서, 또 누구를 말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습니까? 바로 예수님을 말한 것이요, 죄인을
예수님께 안내하는 것으로서, 바로 그 예수님이 오셔서 율법이 말한 예수님 자신을 통해서 받을 수
있는 엄청난 복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산에 올라가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심영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
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하시면서 지금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복, 무엇이 복인지를 말씀하여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복을 소유
할 수 있는 것, 그 복은 바로 천국인데 그 천국을 누가 소유하느냐? 누구의 천국이 되느냐? 바로 심
영이 가난한 자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영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왜? 천국이 그의 것
이기 때문이라 한 것입니다. 그러면 심영이 가난한 자가 누구냐? 심영이 가난한 자에게서 나타나는
것이 무엇이냐? 바로 애통인데 애통하는 그가 위로를 받는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또 이러이러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시며 계속 복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복은 물질 좀 생기는 그런 복을, 세상 것을 채워주신다는, 세상에
서 얻을 수 있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이제 모두 다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
으로 주시는 복은 바로 영적인 것이라는 것, 하나님께서 주시기 원하시는 진짜 참된 복은 영적인 것
이라는 것, 여러분 모두 잘 알게 되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땅에서의 삶은 아버지가 필요를 채워주시는 것이요, 우리는 자족하며 사는 복 된 자가 되
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예수님을 받아들여야만 살 수 있도록 지어졌기 때문에 그래서 예수님께
서 오셔서 예수님으로 사는 복에 대하여 자기의 백성들에게 깨우쳐주고 계신 것입니다. 바로 예수
님 자신이 천국이요, 천국이 너희 가운데로 오셨다는 것, 예수님 자신을 통해서 주는 그 천국은
첫째 심영이 가난한 자의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참으로 믿으려면 천국이 되시는 예수님이 산에 올라가 가르치신
이 하나님의 복이 있는 천국의 특성들에 대하여 잘 깨달아 알고 자기 복이 되게 하는데 마음과 뜻
을 다하는 겸손함이 있어야 합니다. '아, 그렇구나!'하는 정도의 지나가는 말씀으로 대해서는 절대
천국이 자기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의미도 모르면서, 말씀대로 믿음이 되
기 위한 자기 의지도 없으면서 무조건 아멘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권위를 인정
하고 자기의 실제, 천국이 자기 것이 되기 위한 진정이 있어야 합니다. 심영이 가난한 것이 천국이
고 애통하는 것이 천국이고 긍휼히 여기는 것이 천국인 이 같은 천국의 특성을 깨달아서 자기 천국
이 되는 것에 전 뜻이 돼야 한다는 말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위로를 받는다고 하셨으니 그럼 애통
은 무엇이며 그 위로는 무엇인가? 실제로 자기에게 그 애통함이 있고 위로의 복을 받는 것이 돼야
하는 것입니다.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케 하는 자, 의를 위
해 핍박을 받는 자, 이런 말씀 모른다고 구원받지 못하는 것 아니다. 주님이 구주라는 것을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했으니, 그 주님 믿으면 구원받는 것이지 꼭 이 말씀들을 다 알아야 하는 것이냐? 하
고 나온다면 벌써 그의 구원은 글렀습니다. 그것은 집터만 닦아놓고 그것을 집이라고 거기서 살겠다
고 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기초를 닦아 집을 짓는 것도 부실공사였다면 그것도 어느 날 무너지는 것
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을 자격으로 갖춰가는 과정
에 예수님의 말씀은 구원받게 하는 것이요, 또 믿음의 집을 세우는 신영한 재료입니다. 예수님의 말
씀으로 집을 세우기를 원치 않는다면 그 구원은 없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말씀은 구원에 이르
고 구원받은 영적 사람의 생명이 풍성케 하여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양식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한 구절 한 구절로 우리 속사람의 능력이 되지 않으면 천국은 없습니다. 아니, 생명
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말씀에 관심이 없으면 그에게 신앙의 목표가 있겠습니까? 자기 기분에 맞는
목표만 있을 뿐입니다. 엡3:18,19에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
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안다고 하지만 사실 예수님을 아는 것
아닙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전 성경이 말씀하는 것보다 그 위에 더 넘치는 사랑으로서 끝없고 한없
는 사랑이라는 거예요. 그러므로 예수님의 그 사랑의 깊이와 넓이와 길이와 높이가 어떠한가를 계
속 깨달아 감으로써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이 우리에게 그대로 실제의 경험
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원한다고 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오셔서 말씀하십니다. 심영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요, 이러이러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시며 복을 말씀하셨습니다. 마5:3-12까지 복
이 있나니 라고 하신 것이 아홉 번인데 11에서 '복이 있나니'하신 것은, 위에서 복이 있나니 하신
것의 총 결론적인 것을 말씀하신 것으로 보기 때문에 그래서 팔복이라고들 말합니다. 그런데 저는
구(9)복이라고 하겠습니다. 복이 아홉 가지가 있다는 뜻이 아니라 이러이러한 자는 곧 천국이 저희
것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서 복이 있는 자는 곧 이러이러한 자로 나타난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성경은 '복이 있나니'라고 했는데 '복이 있나니'의 원뜻은 '행복 자로다' 또는 '행복
하여라'입니다. 심영이 가난한 자는 행복 자로다, 또는 행복하여라. 왜냐? 천국이 저희 것이기 때
문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복이 있나니'라고 한 여기에는 복이 있는 자와 복이 있을 자에 대한
두 의미가 전제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네가 '심영이 가난한 자냐? 애통해 하는 자냐? 온유한 자냐?
화평케 하는 자냐? 그러면 너는 이미 행복 자로다''이미 복 있는 자로다'이고, 또 하나는 '네게 행
복이 있으려면 심영이 가난한 자가 되어라, 애통하는 자가 되어라, 온유한 자가 되어라'하는 것을
전제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복이 있나니'하신 이것을, 우리 인간이 가진 복의 개념은 뭡니까? 집안 잘 되
고 부자 되고 자손 잘 되고 하는 것 등 아닙니까? 그러니 예수님의 말씀, 복이 있다고 하신 그 복
의 속뜻을 성영님의 기름 부음으로 바르게 알지 않으면 인간이 가진 복의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하
고 그대로 연관 짓는 것입니다. 그래서 100% 믿음의 잘못된 방향으로 갈 수 밖에는 없습니다. 여기
서 말씀하는 복은 영적인 것, 천국의 요소입니다. 인간 속에는 없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서 있는
하늘의 복(행복)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만나 이 말씀으로 사는 능력이 되지 못하면 이 행복(천
국)은 가질 수도 없지만 알 길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이 내 안에 깨달아지는 경
험이 있고, 이러이러한 복이 있나니 라고 하신 그 이러이러한 자로 사는 자에게 있는 행복(천국)입
니다. 천국이 내 것이니 행복한 자입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신 생명을 얻게 되니 천국이요, 그러므
로 행복하고 생명 안에 평안이 있으니 행복하고, 기쁨이 넘치니 행복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
께서 천국이신 예수님 자신을 주시려고, 생명을 얻은 그 엄청난 행복을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우리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서 얼마나 큰 노력을 합니까? 옷을 잘 입으면 행복할까? 좋은 학교에 다
니면 행복할까? 공부 잘하게 하고, 높은 공부를 하게 하려는 것, 공부 많이 시키려고 하는 것 다
결국은 행복하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지 않겠습니까? 큰 집에서 살면 행복할까? 해서 일평생 그 행
복을 찾으려고 밤낮 쉼 없이 몸부림하는 겁니다. 그러나 그것을 이룬다 해도 행복한 것은 잠시 잠
깐입니다. 저 남자하고 살면 행복할까? 저 여자하고 살면 행복할까? 하고 살아 보지만 사실은 거기
에서도 진짜 행복이 있습니까? 우리 행복하게 잘 살게요 하고 결혼했는데 얼마 뒤에 가서 서로 원
수 관계로 헤어지는 것을 봅니다. 일생 원수처럼 억지로 사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심영이 가난한 자로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영적인 생명을 얻은 행복이 없기 때문에 그렇
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너희가 복이 있기를 원하느냐? 그러면 심영이 가난한 자가 되라 하십니다.
애통하는 자가 위로를 받으니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세상은 재산이 있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그래서 피와 땀으로 이루려고 하지만, 예수님은 심영이 가
난한 자가 행복하다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세상이 주지 못하는, 세상에서 지배하지 못하
는 영적 행복에 대해서 예수님의 복음 전하시는 첫 시작이 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인간
에겐 없는 것, 그러나 반드시 있어야 하는 이 영적인 복을 주시려는 것부터 하신 것입니다. 그것을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하시며 시작한 말씀이 행복의 첫째 조건인 심영이 가난한 자라는 것입
니다. 그래서 모든 일에는 처음이 있고 시작이 있듯이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도 행복이 있게 되는
것도 그 시작이 자기가 심영이 가난한 자라는 것을 깨닫는 것부터입니다. 심영이 가난한 자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영이 가난한 자는...애통하는 자는... 온유한 자는..하고 말씀하신 이것이 심영이 가난
한 자가 애통하는 것이요, 심영이 가난한 자가 애통하고 온유한 자로 살 수 있고 긍휼히 여기는
긍휼한 자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심영이 가난하지 않으면 그다음 애통도 온유도, 긍휼도 될
수가 없습니다. 애통하고자 해도 심영이 가난하지 않으면 애통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심영이
가난한 자라야 복이 있습니다. 그래서 심영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복의 결론을 말
씀하셨습니다. 심영이 가난한 자면 그 뒤에 나타나는 모든 것이 따르는 것이니 다른 말이 필요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심영이 가난한 것이 뭘까요? 한마디로 영의 빈곤입니다. 영의 가난, 영이 벌거벗은, 영의
메마름으로 겪는 고통, 그래서 마음이 가난한 거예요. 참기쁨이 없는 거예요. 참행복이 없는 거예
요.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으니 마음이 헤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가난'을 원어
로 '프토코스'라고 하는데 '절대적 극빈, 아무것도 갖지 못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늘 아래의
것으로는 어떤 것으로든 채울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영이 왜 벌거벗고 빈곤한 것일까요?
바로 하나님의 생명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 영이 입어야 할, 영에 채워야 할 하나님의 생명이 그
영에 없기 때문이라는 것, 여러분이 이제 다 잘 아시잖습니까?
사람은,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알기 전에는 자신이 심영이 가난한 자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심영이 가난한 것은 알지 못하지만, 그러나 그 심영의 가난 때문에 나타나는 증상
이 있습니다. 단지 그것이 영에 하나님의 조에, 생명이 없어서 그렇다는 것은 전혀 알지 못하지
만, 그 가난 때문에 자기 속에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이 있다는 말입니다. 무엇인가에 목마른 것
같은 고통, 무엇인가 채워지지 않은 갈증 같은 것이 있어서 마음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으로, 마음이
허전한 것과 같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그 고통을 사랑으로 채워보고자 사람에게
서 사랑을 갈구하고, 돈이 많으면 해결이 될까 하여 열심히 돈을 좇아가는 겁니다. 명예를 얻으면,
먹고 입고 쓰는 것에 부족함 없이 쌓아놓으면 기쁘고 행복할까 해서 그것을 이뤄보려고 일생 몸부
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이 비어있어 두려움으로 목마름으로 겪는 고통은 세상 그 어떤 것으로
도 채울 수 없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입니다. 아멘입니까?
그래서 심영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하신 것은 이것을 아는 자는 복이 있다는 말입니다. 빈
곤에 처한 자기 영에 예수님의 생명을 얻어야 그 모든 고통에서 해방된다는 것을 알고 생명이신
예수님 앞에 나온 너는 복이 있다. 세상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너는 복이 있
다. 그것을 채워주는 나에게 나아왔으니 너는 복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참행
복은 세상 것으로 얻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마음이 헤매는 자여, 네가 그 행복을 줄 수 있는 나에
게 왔으니 너는 행복 자다. 하늘의 행복, 천국이 네 것이 되니 너는 행복 자라는 말씀입니다. 끝
없이 다가오는 마음의 갈증은 세상 것으로 채워지지 않음을 뼈저리게 깊이 자각하고 있는 것, 그
것이 바로 천국이 저의 것이 되는 복으로 나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오직 예수 그리
스도가 아니면 살 수 없는 존재인 것을 진심으로 아는 자가 천국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영의 빈곤 속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영의 빈곤을 채
우실 예수님께 나와야 할 영적 존재로 지음 받았다는 것을 모르고 혹은 받아들이지 않고, 그같이
육체와 정신의 것으로 영의 빈곤을 채워보려고 몸부림하고 사는 것입니다. 오로지 그 육체와 정신
을 위해서 살고 또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육체와 정신에 욕망을 채
워주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육체와 정신의 것들로 영의 호소, 영의 고통, 영의 소원을 막아버리
고, 불안이 있으면 두려움이 있으면 고통이 있으면 육체와 정신의 것으로 환락을 즐기라고, 그것
을 즐기므로 잊으라고 끊임없이 유혹하는 것입니다. 돈이 많으면 소유가 많으면 세상사는 능력을
많이 갖추면 거기에 행복이 있고 평안함이 있다고 끊임없이 유혹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 예수님께서 '심영이 가난한 자는....'하시면서 너는 부자 되었다고 하지만 실상은 가
난뱅이다. 너는 세상 능력을 갖춰서 성공한 것 같으나 실패다. 네 영의 가난 때문에 그 영이 견딜
수 없어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먼저 깨달으라 하시는 겁니다. 네가 하나님의 절대적인 도우심이 아
니면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아 알라는 것입니다. 너는 육체와 정신 그 이상의 영적 존재인
데 그 영이 아주 빈곤하여 고통을 겪고 있다고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앞에 나와
이 말씀을 듣는 너희는 행복 자다. 귀를 열고 자신이 영적으로 가난함에 있다는 것을 듣고 깨달을
기회가 되었으니 복 있는 자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예수님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시기까지의 과정에서 있었던 사건들은 예수님이 하나
님이시며 구주라는 것을 보이신 것이요, 누가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지를 보이시고 알게 하신 내용
들입니다. 그중 눅19장에 세리장이라고 하는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난 것은 예수님께서 그곳을 지나
가시다가 우연히 만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나기를 사모하고 소원하는 삭개오의 그 가난한 마음
을 따라서 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행적은 절대로 우연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발걸음 하나하나가
말씀을 이루시고 응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사건은 성영님의 눈으로 보아야 사건의 참뜻을 알 수
있고, 그 속에서 영적인 관계를 깨달아 볼 수가 있습니다.
삭개오는 세리장이요 부자라고 했습니다. 사회적 지위와 명예가 있고 돈도 많은 부자라는 말입니
다. 그런데 삭개오가 자기 동족들에게 편견과 오해로 따돌림을 받고 손가락질(비난)을 받고 있었
습니다. 이유는 유대가 로마 속국이 되었으므로 로마 정부가 세금을 징수해 갔습니다. 그 세금 징
수의 모든 업무 담당 책임자가 바로 삭개오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가난한 자기 동족의 세금
을 많이 걷는다고 비난받고, 같은 민족의 편을 들지 않고 기생충처럼 로마 편에 붙어서 세금을 걷
어 로마에 바쳐 대우를 받고, 얼마는 자기가 착복하는 도둑놈이라고 비난을 받았습니다. 로마의
개가 되어서 세금을 도둑질 해 먹는 도둑놈이니 하나님께 저주받아야 마땅한 죄인이라고 손가락질
을 받았습니다.
사실 삭개오는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니 삭개오의 마음엔 상처가 가득하
고 큰 외로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돈도 있습니다. 지위 명예도 있습니다. 그러나 돈으로도 지위로
도 명예로도 그 외로운 상처, 상한 심영에는 평안함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소문이 들리기를
요셉의 아들 예수님이라는 분이 언약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구주이시며, 죄인들을 영접하시고 친
구가 돼 주시는데 만나는 자마다 나음을 얻고 기쁨을 얻는다는 소문이 들렸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어떤 분인가 하여 그 예수님을 보기 위해 달려 나가보니 예수
님이 많은 사람으로 둘러 쌓여있어 키가 작으니 볼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나 보고 싶은 분이었는데
어떻게 하면 볼 수 있을까, 보기만 해도 좋을 것 같은 그분을 어떻게 볼까 하고 고민하는데 저 앞
에 뽕나무가 보였습니다.
자기가 세리장이라는 체면도 잊고 어린아이처럼 그 뽕나무에 달려 올라갔습니다. 예수님을 보고 싶
은 그 마음의 사모함이 크니 체면 따위는 내던져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뽕나무 앞에 이르러 뽕나무
에 오른 삭개오를 우러러보시며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여러
분, 예수님이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신 것이 아니고 삭개오야 하고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예수님
께서 삭개오를 이미 아신다는 뜻입니다. 그렇기에 여러분도 예수님께서 이미 아시는 것이어야 합니
다.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는 것은 오늘 삭개오의 집에서 유하시겠다는 말씀이기도 하지만,
삭개오를 아시는 예수님께서 "내가 네 안에 들어가 너와 함께하리라"라는 뜻입니다. "네게 내 기쁨
을 주고, 평안을 주어 너로 쉬게 하겠다. 천국이 네 것이니 너는 행복 자라"하신 뜻입니다. 삭개오
의 마음에 예수님의 마음이 흘러 들어가니 삭개오에게 자유와 함께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샘솟았
습니다. 마음이 행복으로 넘쳤습니다.
그에 삭개오가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여 영접하거늘 그런데 거기 모인 사람들은 뭐라고 했습니까?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했습니다. 거기에 모인 무리가
다 예수님을 에워싸고 쫓아다닌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자는 삭개오뿐입니다. 예수님
의 마음이 흘러 들어가 받을 수 있는 마음의 그릇은 삭개오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쉼을 주실 수
있는 마음은 바로 삭개오 마음밖에 없었습니다. 삭개오가 즉시 예수님께 뭐라고 했습니까? 주여 보
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돈 내놓으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네 재산 많은 것 좀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고 하신 것 아닙니다.
삭개오에게 예수님의 마음이 흘러 들어가니 가치관이 달라져 버렸습니다. 인생의 목적이 달라져 버
렸습니다. 자기 마음을 이미 다 꿰뚫어 보시듯 알고 계신 예수님께 '주여 보시옵소서'한 것은, '제
가 성실과 근면으로 돈을 모아 재산가가 된 것을 주께서 아십니다. 그러나 재물도 지위도 억눌린 마
음의 고통을 해결해줄 수 없었고 괴로움만 더했음을 주께서 아십니다. 동족이 다 나를 비난했지만,
예수님은 나를 아시고 내게 이 자유의 기쁨을 주시니 주님만이 내 행복입니다. 이제 내 소유의 절반
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습니다'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속여서
감췄거나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배로 갚겠습니다. 토색한 일 없다' 그 말입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말씀 전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삭개오를 말할 때마다 도둑놈 취급해서 세
금 착복해 먹은 사람으로, 자기 동족의 피를 빨아먹은 사람으로 취급하여 말하고 있는데, 삭개오는
토색하지 않았습니다. 만일에 그런 일이 있다면 그것도 네 배로 갚겠다고 한 것입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자 소유가 복이 아니라는 것, 명예가 기쁨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래
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도 세상 사람들이 가진 이 관심을 똑같이 가졌다면, 진정한 행복은 알 수
없는 겁니다. 그것은 이 삭개오와 같이 심영이 가난한 것을 아는 것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심영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그 복은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하셨으니, 오늘 예수님
의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은 '아, 나는 예수님이 아니면 살 수 없는 존재구나, 예수님이 아니면 지
옥의 형벌로 떨어지는 것이구나, 내 영이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살고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살 수가 없는 존재구나, 내 영이 예수님의 생명이 없어 빈곤을 겪는 것이구나'라는 것을 받아 확
실히 깨닫는 기회가 되고 이제 자기 영의 가난함을 하나님께서 기도하여 아뢰며 예수님으로 채우
기를 원하는 뜻으로 가득 품고 영의 부유를 이루는 믿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것이 자기의
온 인생의 뜻이 되기를 바랍니다. 자기가 영이 있는 존재임을 아는 것, 영은 하나님과 교제가 없으
면 살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 영의 죽음이 들어와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어 가난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 이 같은 영적 빈곤을 깨닫고 오직 예수님으로 살고자 할 때에 성영님께서
말씀으로 도우시고 천국이 자기의 것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사람들이 천국 하면 꼭 죽어서만 가는 어떤 장소인 줄로만 알고 있습니다. 육체에서 떠나면 가는
곳, 영원히 사는 곳, 그곳이 천국이라고 하니까 어떤 장소의 개념으로 굳히고 그곳만을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삭개오처럼 예수님을 영접하여 예수님이 그 안에 오신 자는 천국이 그 안에
오신 것입니다. 죽어서만 가는 장소가 아니라 천국이 저희 것이요 하신 대로 그 사람 안에 임하여
그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천국의 주인이 누구라고 했습니까?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예수
님이 오신 것을 보고 '천국이 왔다'라고 했습니다. 하늘에서 이 땅으로 천국이 내려왔습니다. 그
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천국이라고 하는 데는 너무나 엄청난 의미를 가졌습니다. 예수님이 천국이
라 하시더니 그 천국이 믿는 자 안으로 들어와 버리셨습니다. 그래서 천국이 저희 것이 되는 것은
육체에서 떠나서만 가는 장소가 아니라, 이 땅에서 예수님을 믿는 자 안에 예수님이 들어오시니
천국이 저희 것이 돼 버린 것입니다.
천국은 기쁨입니다. 평안입니다. 행복입니다. 예수님 부활의 생명 안에 이 평안함이 있고 기쁨이
있으니, 그래서 예수님이 자기 안에 오셨으니 복 있는 자요, 행복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말씀 "심영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예수님 안에 있는 천국의 모든 복이 저희 것임이라"라
는 말씀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믿음으로 받아 여러분의 천국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심영이 가난한
자는 행복하여라! 왜 행복하냐? 자기의 모든 죄가 사하여졌으니 죄에서 자유케 되어 행복하고, 성
영님이 자기 안에 오셨으니 행복하고, 성영님이 계시니 영생으로 행복하고, 예수님의 부활 생명
안에 있는 참기쁨이 샘솟고 참평안이 샘솟으니 행복하고, 자녀가 되고 능력이 있고, 삶을 돌보시고
풍성함으로 채우심이 있고 하늘의 참 지혜가 있으니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복이 여러분의
복이 돼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 예수님을 아는 것, 그냥 막연하게 알고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천국이 저희 것이 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소유가 되어 주시는 것이 천국입니다. 예수
님이 내 소유가 되려고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내 소유가 되는 것은 예수님의 모든 말씀
하나하나를 예수님의 의도대로 깨달아 알고 행하여 가는 것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이 영적 능력입니다. 영적 사람의 피가 되고 살이 되어 부활의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영적 사
람의 체질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육체 안에서 맺는 천국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하신 것 바로 세상을 이길 능력, 세상을 초월할 수 있는 능력, 목숨도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을 주겠다고 하신 것이니, 이것이 믿는 여러분의 능력이 돼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심영이 가난한 자의 것이 된다는 것' 곧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한 기쁨이 영혼
에서 차고 넘칠 것이다'라는 말씀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아주 새김질하여 받은 말씀이 되고 자기
안에 이루어진 천국이기를 바랍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오셔서 처음으로 입을 열어 가르치신 것, 심영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영혼의 빈곤으로 마음이 고통 가운데 헤매는 자들에게, 내게 나와 나의 말을 들으라
부르시고 그 천국을 가르치셨다는 것을 말씀드리면서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도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영적 사람으로 복 주신 감사하신 우리 주 예수님, 우리의 영적 부유
이신 우리 주 예수님께 큰 영광을 돌리기를 원합니다. 아멘!!
제 1 장 심영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p13-p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