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V 성경공부 시리즈(로마서) 1과
(서론)
렘브란트의 그림 중에 <탕자의 귀환>이 있다.
외투 하나 걸치지 못한 채 빛바랜 황갈색 옷을 입은 작은 아들이 무릎을 꿇고 아버지의 품에 얼굴을 묻고 있다. 상처 난 왼발과 밑창이 너덜해진 신발은 ‘돌아오는 길’이 얼마나 험했을지 짐작케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 그림의 중심은 돌아온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챌 수 있다. 유난히도 큰 두 손으로, 눈먼 사람처럼 지그시 눈을 감은 채 아들을 감싸 안고 있는 이 구부정한 아버지에게 가장 강렬한 빛이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에라도 눈물을 왈칵 쏟을 것 같은 그 눈은, ‘네 맘 다 안다. 그러니 내 아무 것도 묻지 않겠다’ 말하는 듯하고, 아들의 등과 어깨 위에 놓인 큼지막한 두 손은 살았으나 죽은 듯 지내다 돌아온 아들의 상처 난 맘을 어루만지며 있는 그대로 다 받아주겠노라고 토닥이는 듯하다.
거기엔 종의 자격마저 없다고 여기던 아들에게, 실제로 그랬던 아들에게 새 생활과 새 생명(요 10:10)을 주는 일에 단 일 초도 기다리지 않는 성마른 아버지가 있다.
렘브란트는 문자 그대로 누가복음의 비유를 옮겨 놓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이 안 계신 듯이 자기 몫을 주장하고 자기 맘대로 헤프게(prodigal) 생명을 허비하다 돌아온, 태초의 인류부터 오늘 우리에게까지, 아낌없이 남김없이 밑도 끝도 없이 넉넉하게, 입히고 끼우고 먹이는 막무가내의 헤픈(prodigal) 사랑을 보이시는 하나님을 잘 그려내고 있다.
인간의 하나님 노릇이 가져온 결과를 기어코 약속을 지켜 내시는 신실함(faithfulness)을 통해 우리의 아들됨과 하나님의 아버지되심을 회복하시는 이야기로 어설프게나마 로마서를 이해하고는, 이 렘브란트의 그림이 달리 보인 것이 우연이었을까?
1515년 11월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루터의 마음을 뒤흔들어 결국 중세를 뒤흔든 복음, 1738년 5월 24일 저녁 8시 45분 런던의 알더스게이트에서 존 웨슬리의 마음을 뜨겁게 달구어 18세기 영국과 미국의 대부흥의 불씨를 지폈던 복음, 바로 그 복음을 담은 책이 로마서다.
(로마서를 쓴 이유)
롬 16:25-27, “25.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26.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연보하였음이라 27.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바울은 이방교회들의 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중이었다. 이미 로마제국의 동쪽 지역 여러 곳을 다니며 사역을 했고, 사역한 곳곳에 믿는 무리들이 생겼다.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들이 바울의 복음을 듣고 교회를 이루었다. 이방교회는 예루살렘 교회가 어렵다는 소식을 듣고 구제헌금을 모았다. 바울은 그 헌금을 전달할 대표단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중이었다.
그런 바울에게 세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이제 동반구 사역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되었으니, 로마를 거점으로 해서 서쪽 지역으로 갈 생각이 있었다. 그리고 로마 교회가 그 서반구 사역의 기지가 되어주길 바랐다.
롬 16:22-23, “22.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 23.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니”
그런데 그 로마교회에 대해 들었던 소식이 떠올랐다.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의견 차이가 적잖이 있었고, 음식 먹는 문제로 갈등이 생겼다는 소식도 있었다.
롬 14:1-3, “1.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2.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 3.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특히 이미 그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유대주의자들의 영향력도 생각났다. 지금 로마교회에서는 신자들이 혼란스러워할 만큼 율법에 대한 잘못된 주장이 전달되고 있었다.
롬 3:19-20, “19.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20.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바울은 가만있을 수 없었다. 갈 길이 바쁘긴 하지만 로마교회에 편지를 쓸 필요를 강하게 느꼈다. 선교적, 목회적, 신학적 목적으로 편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잘 설명해 전할 필요를 느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로마교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복음에 대한 깊은 이해였다. 앞으로 로마에 갈 예정이지만, 먼저 편지로라도 그 내용을 대략 전해야 했다. 그래서 바울은 더디오더러 대서하게 하고 편지를 시작했다.
롬 16:22, “22.이 편지를 기록하는 나 더디오도 주 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하노라.”
(더 큰 이야기)
로마서가 정경에서 바울이 기록한 첫 서신(편지)은 아니지만(첫 번째로 나와 있기는 하지만, 첫 번째 편지는 아님. 데살로니가전후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가 먼저 기록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바울의 다른 모든 서신의 기초가 되는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분량 때문인 것도 있지만, 이러한 또 다른 이유로 로마서는 경쟁의 서신서 중에서 가장 앞에 위치한다.
물론 로마서에 다루지 않은 주제들이 다른 짧은 서신에서 다루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교회론, 그리스도의 본성, 종말론 등), 바울의 다른 모든 서신의 주요 주제인 죄, 그리스도, 복음은 로마서에서 가장 온전한 형태로 표현되고 있다.
로마서는 나머지 신약 성경(얼핏 보기에는 칭의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다소 있어 베드로전후나 야고보고서도 여기에 포함된다)을 뒷받침하는 복음 교리의 장엄한 신학적 청사진을 제공한다.
사복음서와 사도행전 바로 다음에 나오는 신약으로서, 바울이 로마인들에게 쓴 이 편지는 예수님이 과연 어떠한 분이시고 예수님이 과연 무엇을 행하셨는가에 담긴 중요한 의미를 풀어주고 있다(주석, 해석).
바울은 예수님과 그의 사도들에 대한 복음서의 이야기와 이들이 완성한 구약의 계시를 취합하고, 이 모든 가르침에 담긴 교리적인 중요한 의미를 드러내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바울은 창세기에서 예수님까지, 그리고 그 너머의 미래로 흐르는 성경 전체 이야기의 신학적인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핵심 구절)
“23.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롬 3:23~25).
=> 죄, 심판, 십자가, 이신칭의
(연대와 역사적 배경)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한 연대는 그가 3차 전도여행 중이던(참고 행 20:2~3). AD 57년경으로 추정된다.
아마도 고린도에서 기록했을 것이다. 필사자들(출판을 위한 인쇄 기술이 없던 옛날에는 일일이 필사를 했음)에 의해 두 초기 사본의 말미에 남겨진 기록에 의하면 고린도를 로마서의 저작 장소로 볼 수 있다. 또한 로마서에 언급된 뵈뵈(롬 16:1~2)와 가이오(23절)도 고린도와 관계있는 인물들이다.
로마서는 바울이 아직 방문하지 않았거나 또는 자신이 직접 개척하지 않은 교회에 보내는 편지다.
그러면 로마 교회는 누가 세웠는가?
아마도 로마 교회는 오순절(행 2장)에 예루살렘에 왔다가 신자가 되어 로마로 돌아간 로마 거주민들에 의해 세워졌을 가능성이 있다(참고. 행 2:1-13, 40-42, 행 2:10, “10.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바울은 그러한 로마 교회에 방문하고자 했고(롬 1:11, 13, “11.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13.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이 편지로 로마가 복음 선포를 위한 선교의 전진기지로 세워지기를 바랐다.
바울이 이 글을 쓸 당시, 로마 황제는 네로였다. 로마는 단지 로마 제국의 중심이 아니라, 전 세계 도시 문명의 중심이기도 했다.
분명 바울은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자신과 독자들이 속해있던 당대의 세상이 뒤집어지는 모습을 보기 원했을 것이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와 정치와 이교 사상이 제국의 수도로 줄기차게 쏟아져 왔다. 당시의 로마는 오늘날의 뉴욕, LA, 런던, 파리가 다 합쳐진 도시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바울이 주장하는 복음은 제국의 찬란한 중심 도시인 로마의 모든 것을 다 초월하는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