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법 성탄절은 하나님과 무관한 불법의 일
1.이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2.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 되었을 때에 첫번 한 것이라 3.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4.요셉도 다윗
의 집 족속인 고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5.그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 되었더라 6.거기 있을 그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7.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8.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9.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
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
니라 하더니 13.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14.지극히 높
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15.천사들
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까지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16.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17.보고 천
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고하니 18.듣는 자가 다 목자의 말하는 일을 기이히
여기되 19.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지키어 생각하니라 20.목자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
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눅2:1-20)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지난 주간은(2006.12.31) 성탄절 주간입니다. 그런데 근래 오신 분들이 교회
가 성탄절을 안 지키는 것에 의문을 가질 것이고 해서, 그것을 말하고자 눅2:1-20의 말씀을 본문으
로 했습니다. 그 외에 예수님이 나신 그때 상황을 구체적으로 기록한 곳이 마1장과 2장입니다. 오
늘 성서의 증거를 중심으로 하여 "성탄절은 하나님과 무관한 불법"이라는 것을 자세히 말씀드릴 것
이고, 본문도 살펴보겠습니다.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은데, 여러분이 바른 믿음이 되려면 믿음을 배
우고자 하는 간절함과 적극적 태도가 돼야 한다는 것을 알 것으로 생각합니다. 믿음을 배우지 않으
면 자기 방식대로, 자기 양심을 따라 믿는다고 하기 때문에 믿음이 잘못될 확률이 큽니다. 그러니
바른 믿음을 배우는 기회로 삼고 마음을 다하기를 바랍니다.
온 세상이 다 아는 대로 12월 25일은 예수님이 탄생하신 생일이라 하여 기독교의 큰 명절인 성탄절
로 지켜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탄절은 인간의 뜻으로 된 것으로서 '하나님과 무관한 것이라'는 것
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됐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믿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서 말씀하시는 믿음은 인간 쪽에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하는 것 아닙니다. 성서에 기
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믿음의 근거요 말씀대로 행하고 따르는 것이 믿음이요, 믿음의 일입니
다. 성서가 말씀하고 있지않으면 인간이 아무리 옳다고 해도 생각에 옳은 것 같아도 인간이 정하고
행하는 모든 것들은 믿음의 일도 아닐뿐더러 하나님과 전혀 관계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오늘 읽은 눅2장 내용을 통해서 보았듯이 예수님의 나심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나
신 연도나 달이나, 날에 대해서는 성서 어디에도 기록이 없습니다. 성경학자들이 모든 자료를 다 동
원하여 예수님이 나신 연,월,일을 찾는 연구를 거듭했지만 찾지 못했고 예수님이 나신 그때 유대는
로마의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기에 그 역사와 성경에 등장한 로마 황제들의 배경을 중심으로 해
서 추적해볼 때, 예수님의 나심이, BC 6년경이나 4년경이지 않겠느냐는 추정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 12월 25일을 왜 성탄절로 지키고 있는가? 하는 그 유래를 살펴보면 그때 로마의 이교도들의
동지축제라는 것이 있었다고 합니다. 겨울이 되면 태양의 고도가 점점 낮아지면서 동짓날이 되면
1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은 또 가장 짧잖아요? 그러다가 동짓날을 기점으로 해서 태양의 고도가
다시 점점 높아지면서 밤은 짧아져 가고, 낮은 다시 길어지는 그 현상을 보고 인간 심리에 '만약
에 태양이 다시 떠오르지 않고 낮아지다가 아예 가버렸다면 큰일이지 않았겠느냐? 그러니 태양이
다시 올라온 것이 밤을 이긴 승리요 어둠에 대한 빛의 승리가 아니겠느냐?'해서 바로 12월 25일을
태양의 승리를 축하하고 기쁨을 나누는 축제와 함께 제사 지내는 날로 삼았다고 합니다. 이것을
동지 축제, 또는 부르말리아 축제라고 불렀다는 거죠.
그런데 사도시대 이후에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도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오셔서 어두움을 이기고 승
리하신 것이니, 예수님의 탄생과 동지 축제와 관련이 깊으니 우리 기독교도 성탄일이 없으면 되겠
느냐? 그러니 축젯날을 성탄절로 받아들여 이교도들을 기독교화 시켜자 하여, 12월 25일을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을 축하하는 절기로 받아들여 지키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교회사
에 전해져왔습니다. 그러면 취지는 좋지만, 여러분이 판단할 때 성탄절이 인간에게서 나왔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입니까? 인간 맞아요? 만일에 성탄절 지키는 것이 '성서적이다, 복음적이다'
한다면 그것이 바로 무교병에 넣은 누룩이요. 이단입니다. 성경을 전혀 모르는 무식을 말하는 것
과 같습니다.
제가 기독교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신학자나 교수들은, 성탄절이 성경의 근거가 아니라 이교도들
의 축제일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어떤 반응을 하는지 신앙 월간지에 기고한 글
들을 한 대목씩만 읽어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그들의 말을 어떻게 듣는지 자기를 분별해보십시오.
그들의 이름은 생략합니다만, 그 월간지(신앙계)는 보관합니다. 신학 연구소장입니다. '크리스마스
는 1년 365일 중에 비록 낮이 짧고 밤이 가장 긴 날이지만 인류에게 기쁨과 사랑을 전해주는 날이
다. 오늘날 우리가 지키는 성탄절 절기는 신 구교를 막론하고 기독교 최대 명절로 지켜지고 있다.
만일 기독교의 절기 중에 성탄절을 빼버린다면 세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매년 보는 일이지만 12
월이 들어서자마자 백화점과 호텔 그리고 이에 앞서서 TV와 각종 매스컴은 우리보다 앞서서 크리스
마스를 소개하고 한껏 축제 분위기를 고양시킨다. 많은 사람들은 올해도 얄팍한 상업주의에 젖은
이 같은 분위기에 편승되어 거리마다 집마다 축제의 분위기에 들뜨서 분주하게 보낼 것이 틀림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런 상투적인, 얼마나 쓸데없는 자기 말들을 하는 것에 사실 저는 입에 올리
기도 싫습니다.
그다음 성경학자의 말입니다. '크리스마스 절기가 비록 이교도 축제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더라도 기
독교회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나신 성육신 사건에서 출발하여 세워진 것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가 현재 지키는 12월 25일이 주님이 이 땅에 태어나신 바로 그 날이 아니더
라도 1년 중 하루 어느 한날을 택해 주님의 탄생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
다. 오늘날 크리스마스는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축일이 되었으나 동시에 기독교적 요소와 세속적
인 요소가 혼합되어 있어 크리스마스 본래의 기독교적 의미가 퇴색되어 버리고 말 수 있는 이런 위
험성에 놓여있다. 전통에 의해 해마다 시행되던 크리스마스 행사가 이제는 온통 세상 사람들이 먹
고 마시는 축제로 뒤바뀌어 버린 듯, 온통 요란함과 분주함 속에서 진정한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생
각할 겨를도 없이 지나쳐 가기가 일쑤이다. 크리스마스란 이미 현대를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
게 즐거운 날로 특징지워져 있지만, 사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며 행해야 할
가장 큰 것은, 우리 영혼 속에 친히 탄생하시며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묵상하는 일이라고
믿는다'했습니다. 바꿔 말하면 '지금 하나님의 일이 실패하게 생겼다'는 말입니다. 도대체 이들에
겐 진짜 참 하나님의 요소가 1%도 없습니다.
지금 이들의 말이 무엇입니까? 성탄절이 예수님 나심의 그 의미와 관계없는 것이 되어서, 오히려 세
상 사람들이 즐기는 날로 세속화되었다고 하는 것이잖아요? 이것은 당연합니다. 성탄절은 예수님의
날이 아니기 때문이요 사단이 섬김 받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 인간이 즐기는 타락의 날
로 삼고, 교회를 비웃으며 하나님의 일을 훼방하는 거예요. 여러분이 생각해보세요. 세상은 예수님
을 구주로 보지 않습니다. 세상에 좋은 영향을 끼친 사람이라 해서, 공자 석가모니 마호메트와 함께
4대 성인이라 말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태어난 날은 있는데 그들이 성인이라고 말하는 공자 석가
마호메트의 태어난 날은 없습니까? 그런데 왜 성탄절만 인간이 먹고 마시고 흥청거리는 축제의 날입
니까? 바로 성탄절은 하나님을 훼방하기 위한 사단의 간계로 인본에서 나온 뜻이기 때문입니다. 사
단이 하나님 뜻을 어지럽히고 예수님을 훼방하고자 예수님을 위해서인 것처럼 인본(종교인)을 이용
하여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세상 향락의 날이 되도록 교회라는 곳에서 권리를 주었습니다.
여러분! 성탄절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 사람이 더 잘 알까요? 사단이 더 잘 알까요? 더 잘
아는 사단이 사람을 이용했습니다. 하나님은 인본의 머리에서 나는 것으로 영광 받지 않으십니다.
사람에게 증거 받지도 않으십니다. 사단은 인본을 들어서 자기 일을 행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방해
하여 하나님을 실패케 하려는 것이 사단의 일이요 목적이에요. 하나님의 보좌를 찬탈하려다 하늘에
서 쫓겨났음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보좌에서 끌어내리려고 지금도 분투하는 겁니다.
사람들을 믿지 못하게 할 수는 없으니, 아니, 믿지 못하게 할 방법이 있다면 다 동원해서 방해는 하
지만, 성경이 있으니 믿지 못하게 할 수는 없으니 '그래, 믿으라'합니다. 그러나 사람 속에 예수님
의 부활 생명으로 연결되지 못하도록, 속사람이 생명으로 자라나지 못하도록 인간의 양심을 이용해
서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하고 그것을 열심히 따르고 섬기도록 조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르치는
자들이, 믿음은 영적인 것 영의 것을 말하는 것이니, 성영님의 밝음이 없으면 사단에게 속고 이용당
하는 것입니다. 성탄절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므로 사단이 자기의 날로 삼아 인간이 즐기는 날이 되
게 하여 예수님의 이름을 훼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본의 교회들이 거기다 장단 맞춰서 기독교 절기 중에 성탄절을 빼버리면, 세인들은 어떻
게 생각할까? 하며 세상 사람들 때문에, 성탄절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그것이 염려되어서 성탄절 있게 하셨습니까? 하나님
의 뜻, 왜 예수님 나신 날을 감추셨는지를 깨달아볼 줄은 모르고, 그렇게 귀신의 가르침이나 베풀
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이라고 다르지 않아요. 정신 차려 듣고 성영님의 믿음이 되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성탄절을 당연히 지켜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생각입니다. 그 같은 짓
들은 인간 자신을 믿는 오만이요, 더러움이에요. 더 올라가면 인간 자신을 숭배하는 일입니다.
여러분이 읽어드린 것 들었잖아요? 마지막에 한 말이 뭡니까? '사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크리스마
스를 맞이하며 행해야 할 가장 큰 것은 우리의 영혼 속에 친히 탄생하시며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묵상하는 일이라고 믿는다' 했잖아요? '우리의 영혼 속에 친히 탄생하시며 내주하시는 그리
스도의 생명'이라고 말했는데 그러면 여러분은 이 말을 맞게 받습니까? 맞지 않은 다른 말입니까?
물론 예수님을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았으면 분별 못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무조건 아무거나
받아들일 수밖에는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영접하면 성영님께서 내주하시니 내가 예수님의 생명으로 다시 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나는 거예요. 그래서 '거듭난다' '영으로 난다'라고 말하는 겁니
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생명으로 내가 다시 나는 것이지, 그리고 예수님이 성영님으로 우리 안에
오시는 것이지, 우리 영혼 속에 예수님이 친히 탄생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예수님의 생명이
사람 안에 와서 탄생합니까? 이건 십계명에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에 해당하
는 거짓 증거입니다. 그래서 비스름한 거짓말들로 사람들의 믿음을 혼란케 하고 믿음을 바로 갖지
못하게 하려는 것들을, 여러분이 참으로 믿기 원하면 분별할 수 있는 데까지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도록 하기 위해 이것들을 지적하는 겁니다.
그다음 역사 신학 교수의 말입니다.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성탄절은 마음 설레는 절기
이다. 성서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그리스도의 탄생일을 정확하게 알 수 없다고 해서 일 년에 하루를
정하여 성탄을 축하하며 그 의미를 새겨보는 일이 무의미할 리가 없다. 그날을 계기로 가족과 이
웃간에 두터운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일도 인생살이에 빼놓을 수 없는 활력소가 될 것이다'했습니
다. 여러분! 이거 지금 하나님 말이 아니라, 다 자기 말하는 거잖아요? 이런 말들이 전부 구주 예
수님과 관계없는 쓰레기 같은 인본의 말들입니다. 예수님의 나심이 인생살이에 활력소나 얻으라는
것입니까? 그리고 성탄을 새겨봐야 하는 것에 왜 성탄절 날이라야 합니까?
믿음은 이제 날에 의미 없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이후에는 날에 의미를 두지 않으셨어요.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으면 의미, 즉 예수님이 우리 안으로 오셨어요. 그래서 예수님으로 사는 그
믿음으로 날마다 자라가는 것입니다. 영적인 예수님의 사람으로 피와 살이 되게 하는 예수님의 말
씀을 양식으로 하여 받아먹고 행하고, 예수님의 성품으로 변화 받으며 자라가는 것입니다. 성탄절
을 맞아 의미를 새겨보았다가 또 돌아오는 성탄절에 새겨보았다가 하는 이런 누추한 말은 성영님의
말이 아니니, 여러분이 말씀을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지각이 열리기를 바라서 이 말을 하였습니다.
그다음 세계적인 목사의 말입니다. 누군지 밝히지 않아도 짐작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크리스마스
는 우주 최대의 축제일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과 천국의 축제요 전쟁과 가난과 절망에 찌
든 세계에 찬란한 희망을 가져다주는 인류의 축제입니다. 우리는 이날에 마음껏 하나님을 기뻐하고
찬양하고 마음 문을 활짝 열고 예수님을 우리의 영혼 속에 모셔 들이는 위대한 기회로 삼아야겠습
니다'했는데 여러분! 성탄절에만 예수님을 모셔 들일 기회인가요? 앞에 말한 내용들과 다르지 않습
니다만, 예수님의 나심을 말하려 한다면 오늘 본문이 구주 나심에 대한 것이잖아요? 성경은 구주
나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구주가 뭡니까? 전쟁과 가난과 절망에 찌든 세계에 찬란한 희망을 가져다주는 인류의 축제
가 된다는 뜻입니까? 예수님이 탄생하시니 지금 세계의 전쟁과 가난과 절망이 떠난 것이 되어서,
그 기쁨 때문에 인류의 축제가 되었다고 하는 뜻인가 말입니다. 여러분이 잘 새겨들으세요. 사단의
영향 아래 있는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훼방하기 위한 사단의 주도 아래 있으니 자기 기분 내고
즐기는 인간의 축젯날이 되게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본뜻에서 벗어난 것으로서 예수님의 이름을
훼방하는 의미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구주로 오셨
다는 것은 인간의 죄 때문에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죄인의 구주로 오셨다"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의 영혼이 죽느냐 사느냐의 엄청난 책임의 일을 가진, 그것도 세계적인 목사라고
하는 그 입에서 구주의 오신 뜻을 말하지 않고, 전혀 관계없는 말을 하는 것입니까?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하신 말씀을 이용하여 하나님께 불법 행하는 성탄절이라는
것을 지키려 하니, 이런 귀신의 가르침들로 정당화시켜야 하는 것이지요? 정당화시키려니 막연한 말
들이 나올 수밖에는 없고, 듣는 자들은 미혹될 수밖에는 없습니다. 믿음이 너무나 방해를 받고 있습
니다. 하나님께 불법인 성탄절을 지킨다고 하기 때문에 이런 모순투성이의 말들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성서는 예수님의 나신 날을 언급하지 않았듯이 또한 인간들에게 예수님 나신 날
을 정해서 기념해라 축하해라 또는 축제일이 되게 하라고 하신 적 없습니다. 그러니 성탄 절기 때마
다 얼마나 막연하고 빗나간 모호한 말들을 쏟아냄으로써 믿음이 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믿음의 혼란만 있게 되고, 어떤 것이 믿음인지, 어떤 것을 붙잡아야 하는지, 어떤 것을 들
어야 할지 모르고 그저 추상적이고 두루뭉술이고 막연한 모습으로 믿는다는 식이 되어 있습니다. 아
마도 그러지 않을까요? '아니 세상 교회들이 다 지키는 것인데, 좋은게 좋다고 같이 따라가면 되지
뭘 그렇게 따질까?'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은 성경을 따라 믿는 것이지, 세상 교회들을
따라 믿는 것 아닙니다. 교회가 성경을 따라 뜻대로 하는 것이냐 할 때 하나님이 세운 교회인 것이
지, 그렇지 않으면 종교입니다.
그러면 그 많은 세상 교회들이, 그 많은 목회자가 다 바보라서 성탄절을 지키는가? 자기보다 유능하
고 감히 게임도 안 되는 훌륭한 목회자, 능력 있는 목회자들이 세상천지에 널렸는데, 그리고 그 오
랜 세월 동안 지켜온 것을 그들도 다 말하지 않는데, 자기가 뭘 그리 잘 안다고 그러는 것이냐? 속
으로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나는 세상 목회자들이 가진 능력은 아무것도 갖추지 못했습
니다. 진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과 의도를 깨달아 알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생각하
는 그런 훌륭한 것이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성영님에 의해서입니다. 그래
서 어느 누구 보다도 성영님만을 나의 의지할 능력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니 성영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가르치시고 들려주시고 보이시고 깨닫게 하시니 말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겁니다.
앞에서 기독교 지도자라는 자들이 뭐라고 말했나요? 성탄절이 없으면 세인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느
냐고 했습니다. 사람도 태어난 날이 있고, 부처도 태어난 날이 있는데 하물며 예수님의 탄생일이
없으면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를 어떻게 생각하겠느냐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이것이 하나님의 생각
입니까? 인간 자기 생각입니까? 하나님의 일을 인간 자기 생각으로 꿰맞추고 기독교를 인간의 종교
나 되는 것처럼 하였습니다. 어느 한날을 정해서 성탄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인간 자기가 그렇게 정의를 내렸잖습니까? 그러니 가르치는 자들에게서 믿음을 배워야 하
는 신자들은 특별한 은혜 입은 자를 제외하고는 다 그대로 따를 수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인간에게 도리를 행하듯 하나님께도 똑같이 행하는 것입니다. 인간 도리로 볼 때
누가 언감생심 성탄절을 부정할 수 있을 것이며, 생일날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고, 오
히려 예수님의 생일을 더 성대하게 함으로써 기독교의 위상을 세워야 한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
러면 여러분도 성탄절 지키는 것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것이잖아요? 여기는 분도 있을 것이
고 말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에게 질문합니다. 여러분은 성경 말씀에 근거하여 성탄절을 지켰습니
까? 아니면 교회가 하는 것이니, 당연한 것으로 알고 지켰습니까? 어떤 처지였나요? 후자이지요?
그래서 여러분도 성경대로 믿는 것이 아니고 자기 양심으로 믿는다고 한 것입니다.
교회가 하는 것일지라도, 인간이 보기에 옳은 일 같아도, 말씀이 명한 것이 아니면 인본의 거짓이
요 누룩 넣은 떡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옳은 것은 하나님이지 인간이 아니에요. 인간이 하
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하라고 명하시지 않은 것을 깨고 나오면서 하나님에 대하여 월권하는 것인
지조차도 모르는 겁니다. 인간이 제 분수도 모르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뭔가 부족한 것이 있는
것처럼 자기가 걱정하듯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하고 사람을 높이듯, 사람의 비위에
맞아야 하는 것처럼 한 교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적인 일을, 하나님의 생명 주시는 하나님의 일을 세상 종교처럼 끌어내리
는 일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네가 누구인가? 너 자신을 알라는 겁니다. 너를 들여다보라는 거예요.
네가 진짜 예수님의 구원이 아니면 살 수 없는, 의가 없어서 죽게 된 너를 보라는 것입니다. 네 머
리에서 나는 것은 다 죄라는 그것부터 깨닫고 예수님의 죽으심에 같이 네 머리에서 나는 것도 양심
에서 나는 것도 죽음에 내주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구원 얻었으면, 그 구원을 또 전하라는 것입
니다. 이것이 믿음이요, 믿음의 일입니다.
그러는 저도 과거에 성탄절을 대단히 귀한 절기로 생각하고, 혹시 성탄 축하 예배 안 하면 죄가 되
어서 땅에서 잘 사는 복을 받지 못할까봐 열심히 잘 지켰습니다. 그때는 제가 말씀의 뜻을 알 수
있는 때가 아니었으니, 당연히 목사들이 하나님을 대신하는 것이니 어련하지 않겠습니까? 또 양심
으로도 당연한 것이지 거기에 무슨 이유가 있었겠어요? 바로 이런 모습들이 성영님에 의한 믿음에
서가 아니라, 인간 양심에 맞는 것이니 어떤 거부감 없이 따라 행한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표적에 맞히지 못한 죄입니다. 교만의 죄!
기독교가 성탄 날이라고 정해서 지키는 것이나, 가톨릭이 마리아를 숭배하는 것이나 같은 일입니
다. 가톨릭이 '예수님을 낳은 마리아가 죄 없는 여자'라고 하는 다른 복음이 있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암튼 다를 바 없습니다. 이것도 여러분이 믿음이냐 타락이냐를 반드시 분별하고 알아야
할 중요한 것이라, 잠깐 말씀드리게 되니 들으십시오. 성경은 마리아가 성모이니 그를 찬양하라,
또는 숭배해야 한다고 말한 적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어머니라고 부른 적도 없고, 마리아
도 예수님을 아들이라 부른 적도, 자기 아들로 말한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 보는 사람들이 예
수님과 마리아를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 인간관계, 혈연의 관계로 그냥 여겨버립니다. 그러니 인간
심리는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이니, 예수님도 그 어머니를 지극히 공경하여 어
머니 말을 거역한 적이 없는 효자다. 그래서 마리아에게 모든 것을 기도로 부탁하면 마리아가 아들
예수님에게 그 부탁 들어주라고 하면 예수님께서 들어준다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인간이 구주를
낳으신 어머니를 공경하여 받들고 숭배해야 그것이 곧 또 예수님을 받들고 숭배하는 것이 된다고
가르치고 있으니, 인간 심리는 양심에 어긋나지 않으니 당연히 맞는 말로 여기에 절대 거부감 없
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절대 거부합니다.
인간이 예수님을 마리아의 아들로 아주 효자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인간의 양심과 이성은 예수님을
효자라고 하는 말이 예수님을 높이는 것처럼 좋게 들리지만, 예수님을 그렇게 인륜적인 데로 끌어
다 놓고 평가하듯이 하고 나오는 것은, 인간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는 아주 무지하고 교만한 행위
입니다. 예수님을 인간 중에서 윤리 도덕에 흠 없는 성인의 한 사람으로 끌어내려 놓은 악한 행위
입니다. 인간이 자기를 지으신 그분 앞에 죄를 지어 형벌에 떨어지게 되었다는 것을 보게 하시려고
율법을 주시고 죄를 없이 하시려고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을, 생명의 주인이시며 영생이 되시는 윤
리 도덕 위에 계신 예수님을 놓고 효자다, 아니다 하는 식의 평가로 칭찬하듯이 하고 나오는 것은
예수님에 대한 모독이요, 인간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는 교만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탄 날을 정
해서 지키는 것이나 마리아 숭배하는 것이나 내용은 달라도 인간 양심에서 발생한 것은 같습니다.
어느 큰 교회 목사가 오래전부터 효를 복음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효 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하고 있
다고 들었습니다. 그 목사는 제가 과거에 알던 목사로 존경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효가 복음인지
제 믿음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냥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복음은 오늘 눅2:
10이 말씀하는 것, 기쁨의 좋은 소식, 그것은 죄로 인해 영벌에 처한 인간이 죄를 용서받고 영벌에
서 놓여 자유하게 된다는 것, 죄인들에게 그것이 기쁨의 좋은 소식으로 그래서 복음이라 했는데, 효
가 어떻게 복음인가? 효가 어떻게 죄인을 구원할 수 있어서 효 복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하
는 의문은 저에게 있었습니다.
어느 날 기독교 TV를 틀자 그 목사가 방송에 나와서 효 복음에 대한 취지를 직접 말하는 것을 듣게
되었는데, 내게 '당사자에게 직접 들을 기회를 주셨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의 말이 "세상에
예수님 외는 구주가 없다. 구주는 오직 예수님 한 분이심에는 변할 수 없다. 그런데 효를 복음이라
고 한 것은 예수님은 하나님께도 효자셨고 그 부모 요셉과 마리아에게도 아주 효자셨다. 예수님이
그 부모에게 효를 다함으로써, 우리 인간들에게 효에 대한 본을 보이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효를
본받아서 효를 실천하고 살 때 효가 살아야 가정이 살고, 가정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복음이 되시
는 예수님이 효자요 효의 근본이 되시는 분이기 때문에 그래서 효 복음이라고 이름을 붙였다"는
것으로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런 망령된 말이 어디 있습니까? 육신의 부모에게 효도를 가르치려고, 예수님을 인륜에 맞
는 윤리 도덕가로 끌어내려서 포장하고 앞세워 사람들의 정신 운동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것
은 공자 맹자를 뒤이어 보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인간 윤리로는 가장 기본이 되는
것으로 십계명 중 제5계명에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습니다. 때문에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분명한
기독교 정신입니다. 부모 공경할 줄 알아야 하나님도 공경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부모 공경을 가르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 간에 행할 효가 복음 위에 있을 수
없고, 효를 복음과 동일 선상에다가 놓을 수는 없습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대로 예수님은 사람의 가르침이 필요하신 분도, 인간의 칭찬이 필요하신 분도 아
닙니다. 사람을 창조하신 창조주입니다. 창조된 그 사람이 죄를 가졌으므로 죄를 처리하시려고 마리
아의 몸을 통해 육신으로 세상에 오셔서 구주의 길을 걸어가셨던 신성이요 인성입니다. 구주의 길
을 걸어가신 그 삼 년의 짧은 공생애의 삶은 복음서 전체가 다루고 있고, 또 신약이 그것을 말하고
있는데 또한 성경 전체가 그것을 말하기 위해 쓰였는데, 그러나 공생애 전, 삼 년의 열 곱이나 되
는 30년의 긴 세월 동안 사시던 삶은 다루지 않았습니다. 인간 윤리와 도덕이 뛰어나신 분으로 비
칠 수 있는 그 30년의 평범한 삶은 기록하지 않으셨다는 말입니다. 물론 눅2:51은 공생애 전 예수
님 성장기 때 그 양친에게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라고 말하고 있어서 효자라는 개념으로 비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효자라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고, 그렇다고 예수님이 불효자라는 것을 말하
기 위해 제가 이 말을 하는 것이겠습니까? 30년 동안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으로서의 그 인격이 성
장하시는 것을 눅2:40-52까지를 통해서 비춰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놓고 '효자다'하는 이런 평이 필요하신 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감히 하고 나오는
것도 엄청난 모순인데, 거기에 더 올려서 효가 복음이라 말하고 나오니, 진짜 복음이 방해받고 복
음을 자기가 요리하는 것이 되어서 하나님께 두렵고 무서운 일인 것입니다. 불법이라는 말입니다.
어떤 이유가 되었든 효가 복음이 될 수도 없고 또한 예수님이 하나님께 효자였다고 하는 것에다 빗
대어서 효 복음이라는 것으로 포장해서 사람들에게 복음에 대해서 혼란을 주어서는 안 되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앞에서 말했지만,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어머니라고 직접 부르신 적이 한 번도 없고 그 기록이 어
느 곳에도 없습니다. 또 마리아도 예수님을 자기 아들이라고 말하거나 칭한 적도 없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인간이 예수님을 효자였다고 말한다면, 자기를 낳아준 어머니에게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는
것이 효자입니까? 어머니를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아야 진짜 효자라고 하는 것인가 봅니다. 아니면
예수님 자신이 마리아에게서 나신 것 몰라서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은 것일까요? 그리고 마리아도
자기가 예수님을 낳은 것 몰라서 아들로 부르지 않을 것일까요? 아니라는 것, 예수님은 하나님이
시오, 마리아는 죄 있는 사람이요, 그러므로 예수님과 마리아를 인간의 관계로 보는 것은 절대로
믿음도 아니요 구주로 관계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낳았지만, 예수님은 성영님으로 자기 몸에 잉태되어 나신 하나님의 맏아들이심
을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자신은 주의 계집종으로, 예수님의 계집종으로, 자기 몸을 내드려서 하나
님이 사람으로 세상에 오시도록 한 도구로 쓰인 것을 안다는 말입니다. 세상 사람 다 몰라도 누구
는 알아요? 마리아는 자기가 분명한 경험으로 예수님은 죄인의 구주로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
심을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으신 것처럼, 마리
아가 예수님을 아들이라고 하지 않은 것처럼 인간도 예수님을 놓고 효자였다고, 그런 평을 할 수 있
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아는 영의 지각이 있어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또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은 복음이 되시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사람들
에게 윤리 도덕을 가르치려고, 윤리 도덕이 깨졌으니 그 깨진 것 좀 세우시려고 오신 것 아닙니다.
정신을 깨우려고 오신 것 아니에요. 또한 인간이 먹고, 입고, 쓰는, 그런 세상 것들이 부족할까 봐
서 그것을 채워주시려고 오신 것도 아니에요. 사단이 들어갈 지옥으로 떨어지게 될 죄로 인해, 하
나님께 나올 수가 없게 되었으므로, 그 죗값을 치르고 하늘의 생명을 주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그
래서 사람들이 죄인임을 알고 회개하여 용서받은 기쁨이 있고, 구원받은 영혼으로 성영님이 계시면
삶의 방향도 삶의 목적도 알게 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도, 이웃을 사랑하는 것도 알게 되는 것
입니다. 그 사랑은 예수님의 사랑을 가질 때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랑만이 모든 것을 회
복 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주신 분명한 사명은 사람들이 죄인임을 깨닫게 하여 예수님으로 구원 얻고 생명을 얻
게 하되, 더 풍성히 얻게 하는 데에 있습니다. 끊임없이 예수님을 알게 하고, 예수님으로만 살게 하
고 세상 사랑하던 것에서 돌이켜 예수님을 사랑하는 데 목적을 두게 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이같이 인간 양심에 맞고, 인간이 선하게 여기는 것들로 복음인 것처럼 속여 진짜
복음을 방해하여 믿음이 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에 속지 않아야 하기에....,오늘 들은 말씀으로도 여
러분이 깨달을 수 있잖습니까? 복음인 것처럼 가장한 것들로 믿음의 혼란을 겪지 않아야 하고 반드
시 분별해야 할 중요한 것이기에 그 책임으로 말씀을 드렸으니 깨닫는 것으로 받았기를 바랍니다.
자, 그래서 성탄절도 인간 양심이 임의로 정하여 만들었으므로 사단이 세상에게 예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게 하고 이름을 훼방하도록 하는 날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도
성영님이 말씀을 열어 보게 하여 주시지 않으면, 하나님 아버지의 사정을 절대로 깨달을 수 없기
때문에 인간 생각에서 나온 것들이 옳은 줄 알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성영님으로 깨달아 아는 영적
지각이 없으면 인간 생각에서 나는 것들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같은 무리가 된다는 말입니
다. 성영님만이 영이신 아버지의 깊은 사정의 뜻, 마음을 알게 하시기 때문에 그래서 성영님으로
믿는 믿음이 되지 않으면 하나님 아버지를 알 수 없을뿐더러 의도에 맞는 것인지도 분별 못 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늘의 일, 눈에 보이지 않는 신영한 일을 다루는 영적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책임이 큰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세상 학문이나 지식 가르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뜻과 목적과 방향이
같아야 하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기에, 지도자들이 사람들의 신심이나 개발시키고 키우는 것
이 된다면, 그것이 바로 거짓 선지자니, 그 심판이 큰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께 당부합니
다. 믿음은 내 생각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내 생각이 아무리 옳은 것 같아도 하나님의 생각을 받
아들이고 따르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생각에 맞추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 생
각에 맞추는 것이 믿는 것의 기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믿는 믿음으로 나아가려면 먼저
이 믿음의 기본부터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으로 호적하러 가서 예수님을 낳은 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호적에
오르게 하여,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인간 역사에도 기록되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만일 예
수님의 나심을 기념하는 것이 뜻이었다면, 호적에 올리게 하신 하나님께서 성경에 한 줄 정도 되는
출생일을, 기록하실 줄 몰라서 안 하셨겠습니까? 몇 년 몇 월 며칠, 이것이 어려워서 기록하지 않
았겠는가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의 나심을 기록하여 구주가 나셨다는 것을 알게 하고, 구
원 얻게 하시는 데 있는 것이지 태어나신 날에 있지 않다는 것을, 날을 온전히 감추시는 것으로 말
씀을 대신하셨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처녀에게서 나셨다는 것, 이것이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
한 믿는 증거이지, 그날이 증거가 아닙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생각이요 하나님의 생각을 따르는 것
이 믿음임을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 같은 생각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서라
고 하는 인간의 모든 열심히는 종교적 행위요, 영적인 바벨탑입니다.
여러분에게 질문합니다. 여러분! 예수님 나신 날을 모르면 구원 못 받습니까? 여러분은 예수님 나
신 날이 있어서 예수님을 믿기로 했습니까? 나신 날을 모르면 믿지 않을 것입니까? 우리가 성영님
에 의해서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나와 말씀을 들으니 내가 죄인이더라, 하나님을 거
역하고 떠나 살았던 죄인으로 형벌밖에 없는데, 그 형벌에서 구원해주신 분이 바로 구주 예수님이
라는 그 복음을 듣고 믿음을 가진 것이지, 저도 이 질문과는 상관없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습니
다. 만일에 성탄절을 지키지 않아서 문제가 된다면, 그것은 날을 감추신 하나님께 책임이 있는 것
이지, 우리에게 책임이 있지 않다는 것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분명히 말씀을 드립니다.
날을 감추신 하나님 아버지의 속사정을 성영님으로 좀 깨닫고 그 믿음이 돼야 하지, 어떻게 인간이
임의로 날을 만들 수가 있습니까? 누가 언제 자격을 주었나요? 인간 스스로가 자기 분수도 모르고
자격이 있는 것처럼 하고 나오는 것으로 스스로 하나님 됨을 나타낸 교만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예
수님의 나심을 축하한다는 것을 할 수 있는 권리나 자격이 없습니다. 그 자격을 또 누가 언제 주었
습니까? 주었다면 그것은 마귀가 준 것입니다.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이신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
께서 죄인을 구원하시고 마귀의 권세를 깨뜨리기 위해서는 죄 있는 육신처럼 오셔야 했기에 마리아
의 몸에 성영님으로 잉태되어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눈으로는 예수님이 마리아의 아들로밖
에 보이지 않지만, 그래서 효자라고 말하고 나오는 것이지만, 성영님의 눈으로는 그분은 완전한
신성과 인성이신 하나님이요, 인성이 몸으로 오신 것을 보는 겁니다.
그러나 아담 이후 가인으로부터 우리 인간은 하나님과 스스로 원수가 되어 하나님을 떠나버린 전적
으로 타락한 죄인입니다. 그런 죄 된 피조물인 인간이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께 축하한다는 그 자체
가 얼마나 상식에 어긋난 것인지 생각해볼 수 있지 않습니까? 인간이 자기 주제도 모르고 하나님께
축하한다고 하는 것은, 자기 위치가 무엇인지 도무지 모르는 무지한 행위요, 또한 하나님 앞에 가
져야 할 겸손이 무엇인지, 뜻을 모르는 교만한 행위입니다. 인간이 습관에 붙은, 인간끼리 하고 사
는 인사치레를 생각 없이 자기 기분대로 하나님께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하나님을 축복
할 수 있습니까? 인간이 도대체 어떻게 하나님을 축복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어떻게 사람이 하나
님을 축복합니까? 축복도 축하도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피조물에 축하받을 위치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이것만 깨달아져도 오늘 말씀을 다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그다음 본문 중에 밤에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구주가 나신 첫 목격자가 되게 하신 것은, 바로 예
수님이 목자로 비유되었기 때문입니다. 유목하는 목자들은 밤에 이리나 늑대가 와서 어린 양들을
물어가기 때문에, 신경의 촉각을 세우고 밤잠을 잡니다. 만일 양을 물어갈라치면 목숨의 위험을 감
수하며 짐승의 입에서 양을 빼앗아 냅니다. 양을 보호하는 일을 그같이 희생적으로 하면서, 목숨을
다해 자기 양을 지켜냅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목자로 이리나 늑대에게 잡아먹힐 위험에 빠져있는,
목자의 음성을 기다리는 자기 양들을 위해, 그 이빨에서 구원해내시려고 선한 목자로 오셨다는 것
을, 목자들로 첫 목격자가 되게 하는 것으로 부각케 하셨습니다.
그다음 마2장에서는 이방의 동방박사들이 왕이 나실 별의 징조를 보고 그 별을 따라서 수백 킬로나
되는 먼 길을 찾아와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고 보배함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고 했습니다. 이것의 의미는 바로 이방인들로 하여금 이 땅에 오신 예수님 나심의 목격자가 되게
하시고, 만왕의 왕이신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여 왕으로 맞이한다는 표시로 황금을 드리게 하셨고,
유향은 하나님과 인간의 중보로 오신 구주를 맞이한다는 표시로 드려진 것이고, 성전 제사 때 유향
이 쓰였는데, 유향은 자기 백성의 중보로 오실 예수님을 예표 하는 상징이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
님께 나아오는 자의 중보가 되신 예수님을 이방인도 맞이한다는 뜻입니다. 몰약은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고난받으시고 죽기 위해 오신 예수님의 장사를 위한 표시였습니다. 이방인도 구주로 오신 메
시아를 맞이한다는 표시로 예물을 드리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물론 동방 박사들은 하나님의 깊은 영적인 뜻을 알고 행한 것은 아닙니다. 별로 징조를 점치는 그들
에게 별을 따라오게 하셨고, 성영님께서 감동케 하심을 따라 순종한 행동이었습니다. 이방인들의 구
원을 위해 예수님이 오심을 이방인이 맞이하게 함으로써 예수님과 관계있는 뜻이 되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어 그 걸음을 인도하신 것과 똑같은 이치입니다. 그래서 구주가
나심에 대한 이방인인 우리의 자세는 첫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기 백성에게 구주를 보내시겠다
고 수천 년 동안 언약하신 대로 마리아를 통해 죄인의 구주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믿는 것입
니다. 날짜가 중요하니 날을 알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죄인인 나를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
셨다는 것을 알고 믿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 믿음을 가졌으면 성탄절 지키는 것으로 아기 예수님
을 붙들고 늘어질 필요 없습니다. 지나갔습니다. 그다음 우리 믿음의 둘째는, 우리도 동방 박사의
예물 드림에 함께 참여된 것을 믿는 것입니다. 황당한 말입니까? 그러면 이방인인 우리가 아브라함
의 복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아브라함이기 때문에 그 복이 있습니까? 바로 믿
음과 행함으로입니다.
그같이 동방 박사들의 경배와 예물 드림은 이방인들 중에서 예수님을 믿으러 나온 자들의 대표였고
경배와 예물 드림에 함께 참여된 것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믿음이요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하
나님의 방법이에요. 그래서 죄인으로 구원받아 예수님으로 사는 자는 동방 박사들의 경배와 예물의
뜻에 함께 참여가 된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이 자기의 구주가 되었고 왕으로 모셨으면, 나신 날은
지나갔으니, 믿음으로 받되 붙잡지 말라는 뜻에서 태어난 연 월 일은 남기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이것을 믿음으로 받지 않고 굳이 성탄절을 지키겠습니까?
사람이 성경을 믿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이런 영적인 것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고전2:
10에 오직 하나님이 성영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영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
라도 통달하시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하신 일은, 인간의 마음으로 깨달을 수도 없고 눈으로 볼
수도 알 수도 없는 것이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을 알게 하시는 것은, 오직 하나님
의 깊은 것을 통달하신 성영님에 의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신영한 일, 바로 예수님으로 구원하시는
영적인 모든 뜻은 오직 성영님으로만 보고 깨달아 분별합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하나님 아버지의 의도에서 벗어난 혼합한 누룩 넣은 떡을 열심히 만들어 먹이고 있
습니다. 성탄절 지킨다고 붙잡고 있는 이 한 사건만 보더라도, 얼마나 많은 것들을 분별하지 못하
고 있는지 증명이 됩니다. 성경의 기록된 겉 말씀의 교리적인 것이나 역사적인 것이나 시대적인 이
런 것의 지식적인 것으로는 밝지만, 그 속에 넣으신 하나님의 영적 의도와 뜻은 보지 못하는 것이
어서, 두려운 줄도 모르고 인간 자기의 말들로 해석하여 생명 없는 말들을 외치므로, 사람들을 영
적으로 쭉정이가 되게 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성탄절을 굳이 지켜야 한다면 지키는 그 날에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님이 그 자리에 계시든지, 아니면 이천 년 전 그 구유에 오신 아기 예수님께로 가야
합니다. 그때의 사건을 믿음으로 받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님이 계셔야 그
것이 진실이요 예배가 성립됩니다. 아기 예수님으로는 죄를 사하실 수가 없습니다. 구원을 주실 수
도 생명을 주실 수도 없습니다. 아기 예수로는 사람 안에 오실 수가 없으니 성탄절을 지키려면 그
자리로 가야 맞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장성하여 십자가의 구원을 이루시기를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정말 영적인 이해들이 되고 믿음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러니 성탄절을 붙잡고 있으려면 아기 예수님이 나신 그 이천 년 전으로 가야 하는데 그럴 능력도
없고, 또한 능력이 있어 간다 해도 아기 예수님이 그 자리에 머물러 계신 것이 아니라, 장성하여
십자가에서 구원을 이루시고 하늘로 가셔서, 오늘날 영접하는 자 안에 성영님으로 와버리셨는데 어
디 가서 아기 예수님을 찾을까요? 그러니까 찾을 수도 만날 수도 없으니, 성경이 금하고 있는 짓들
을 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성경이 금하고 있는 짓들을 하면서 거기서 거짓된 것들을 만나는 거잖
아요.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님을 흉내 내어 모형으로 만들고 온갖 장식으로 치장하고, 예배한다면
서 그것들로 만나고 있는 거잖습니까?
성탄절을 교회 명절과 축제일로 삼았으니, 명절 기분이 나는 축제가 되어야 하니, 여러 가지 프로그
램을 만들어서 재능 자랑하고 끼 자랑들 하는 것 아닙니까? 그것이 무슨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나
님이 받으시는 것처럼 기분을 내고 있지만, 지금까지 들은 말씀을 비춰볼 때 그것이 누구를 위한 것
이라고 생각합니까? 인간 자기들을 위한 것입니다. 사단에게 영적인 타락을 주도하도록 허용하는 행
위입니다. 도대체 신영과 진정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타락이에요.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수공물은 아무것도 받지 않으십니다. 인간의 노력과 수고도 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오직 성영님으로 말미암은 믿음만 받으십니다. 인간의 신심에서 나는 것들로 하
나님을 위한 것처럼 하는 누룩의 일들이 너무나 판치고 있습니다. 인간이 아기 예수라고 모형을 만
들어 강단에 장식하고, 성탄절 분위기 낸다고 온갖 장식품들로 강단을 치장하고 아기 예수의 탄생
을 재현하면서 예배한다고 하고 있으니 그것을 누가 받습니까? 정말 여러분의 영의 눈이 열려서 볼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금하신 가증한 것들이니, 악한 영들의 자리가 되어서 비웃으
며 앉아 경배받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뿐이지, 하나님의 뜻을 인간이 왜곡하면
그것은 다 마귀에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다음 짚고 가야 하는 중요한 부분이 오늘 본문 11,12의 말씀인데, 이 말씀도 얼마나 잘못 전해지
고 있는지 말로 다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
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했
습니다. 구주가 어디에 누이셨다는 것입니까? 구유에 누이신 것이 구주이신 표적이라는 거예요. 구
유가 소나 말 돼지, 이런 가축들의 밥통이라는 것 다 알지요? 오늘날 말씀을 말하는 사람들이 이 구
유에 누이신 것을 가지고 표적에 빗나간 자기의 해석으로 예수님을 동정하듯이 열심히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죄를 사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실 때 하늘의 영광 다 버리고 낮고 천하고 비천한
모습으로 오셨다고 가장된 말로 오버(over)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낮고 천한 자들
도 예수님을 부담 없이 만날 수 있게 하시려고 그 누추한 곳으로 오신 것이다. 그러니 예수님이 얼
마나 겸손하신가 보라! 예수님의 겸손을 닮아라!'하면서 예수님의 나심의 의미와는 전혀 상관없는
불필요한 말들로 사람들의 감정에 맞추어 주느라고 애쓰는 것을 듣습니다.
예수님이 말구유에 누이셨다고 해서 절대로 낮고 비천한 모습으로 오셨다는 것과는 하등 관계없습
니다. 앞에 말했던 '효자다'하는 것이나 '얼마나 겸손하시냐?' 다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을 칭찬하
듯이 평가하듯이 또 동정하듯이 하는 이런 쓰레기 같은 말은 다 인간 자기 중심적인 데서 나온 것
들로, 예수님의 나심의 의미와는 절대로 관계 없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이런 표현들이 죄인인 척하
는 인본에게는 필요한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자기가 절대적 죄인이라는 것을 아는 자, 그 죄인에
게는 필요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낮고 천하고 비천한 자들이 예수님을 만나러 나올 수 있게 하려고 구유에 오신 것 아닙
니다. 구유에 누이신 것은 그렇게 낮고 천한 것이 아니라 '죄인의 구주로 오셨다'는 표적입니다.
표적! 낮고 비천한 자들하고 예수님하고 뭔 상관입니까? 비천한 것과 예수님과 관계없습니다. 예수
님과 상관있는 자,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자는 누가 만날 수 있어요? 바로 자기가 하나님이 말씀
하는 죄인이라는 것을 아는 자입니다. 세상에서 낮고 천하고 하는 신분의 것들이 아니에요. 하나
님이 보실 때는, 인본이 말하는 낮고 천한 것과는 상관없이, 다 죄인인데, 자기가 죄인으로 구원
얻기를 원하는 자를 위해서 오신 구주시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죄인으로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누구도 예수님 만나지 못했어요. 아무리 수십 년 열심히
믿음 있는 것처럼 교회 다녔어도, 자기가 죄인으로 예수님 만나지 못했으면 예수님 만나지 못했어
요. 예수님께서 '나는 죄인 부르러 왔다''그 죄인에게 나를 주려고 왔다'하셨지 '낮고 비천한 자들
을 위해서 구유로 왔다'하지 않으셨습니다. 구유에 누이신 것, 이 세상 죄 속에 구주로 오셨다는
것, 죄 속으로, 죄로 죽을 자처럼 죽으려고 오셨다는 의미입니다. 본문 7에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했습니다. 사관에 있을 곳이 없게하신 것
하나님 아버지의 섭리입니다. 구유에 뉘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구유에 뉘어야만 세상
에 오신 구주이심이 증명되는 것이요. 구유가 아니면 다 절도며 강도요 거짓입니다. 구유는 세상을
상징하고, 죄를 상징합니다. 사람의 더러운 죄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
서 세상에 오셨는데 구유에 뉘인 것으로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 주시라는 것이 입증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왜 구유가 세상을 상징합니까? 여러분이 구유가 깨끗한 생각입니까? 더러운 생각입니까? 당
연히 불결한 생각이 듭니다. 구유가 있는 곳은 짐승이 거처하는 곳, 짐승의 우리입니다. 거기서 먹
고 배설하고 잡니다. 짐승은 본능적으로 먹고 배설하지만, 배설물의 불결한 것에 대한 지각이 없습
니다. 그곳에서 먹고 배설하고 자는 곳이니 그것이 얼마나 더럽고 불결합니까? 아무리 불결해도 그
짐승 스스로가 깨끗이 청소할 능력도 없습니다. 주인이 매일같이 짐승과 우리를 청소해주지 않으면
결국 자기 배설물에 의해서 전염병이나 병균이 침투해 죽을 수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짐승의 우리
는 바로 죄로 타락한 세상, 온갖 죄 속에서 죽게 된 인간은 그 짐승과 같이 스스로가 죄를 어찌해
볼 수 없는 불가피한 존재라는 것에 대한 상징이요 그 가운데로 예수님이 오셨다는 의미입니다.
인간은 자신이 처한 처지를 알고 예수님이 자기 죄를 깨끗이 씻어주실 주인이시요 구주이심을 믿는
다면, 예수님은 예수님 자신을 통째로 내주시려고 오셨다는 것을 그같이 짐승의 구유로 오심으로써
구주임에 대한 표적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제 이 말씀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지 아셨습니까? 그래서
여러분이 오늘 이 말씀뿐만 아니라 모든 말씀이 다 그렇지만 자기와 연결이 돼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이에요. '그 같은 죄인으로 구유와 같고 짐승과 같은 나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씻어주시고 하나님 아버지께 의롭다 함을 받은 자녀로 나게 하셨구나'하는 참으로 감사한 그 믿음
으로 연결되어 예수님과의 관계가 분명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감사가 자기 속에서 올라
올 수밖에 없는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믿는 진정한 믿음입니다.
그래서 인자로 오신 예수님은 14에서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왜 영광입니까? 그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뜻, 마귀의 속박 가운데서 고통받는 자기의 백성을 건지시는 뜻이 이
루어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인을 구원하시
기로 정하셨습니다. 의인이라 하는 자를 구원하기로 정하신 것 아니에요. 지혜 있다 하는 자들을
구원하기로 정하신 것 아닙니다. 죄인을 구원하시기로 정하셨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
시고 죄에서 구원받은 자녀가 되어 함께 영원히 살게 하시는 꿈을 가지셨습니다.
예수님의 나심은 하나님의 그 꿈이 이루어지는 것이니, 하나님께 영광이었습니다. 모든 인류가 하
나님을 떠나서 마귀의 종으로 살았는데, 이제 마귀의 권세는 깨어지고 그 속박에서 해방되기를 기
다리는 자, 죄 때문에 고통 하는 자, 죄의식과 두려움을 안고 사는 자, 죽음의 두려움으로 떠는
자들을 구원하여 자유하게 하시는 뜻이 이뤄져 온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게 되었으므로 예
수님의 나심이 아버지의 영광, 곧 기쁘심이었습니다. 인자로 오시는 예수님도 고난을 겪으시지만,
예수님의 영광이 되시는 길이었습니다. 창세기부터 예언하셨던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것이요 온
땅의 왕으로 오신 것이요 그래서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오셨기 때문에 예수님께도 영광이 되시
는 것이었습니다.
그다음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셨습니다. 바꿔 말하면 '하나님께 기뻐하
심을 입은 사람들에게는 평화'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은 누구입니
까? '모든 사람들에게 평화로다'하신 것 아닙니다. 모든 인간들의 축제가 된다는 뜻 아닙니다. 분명
히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라고 하셨습니다. 아멘입니까? 하나님께서 직접 "이는 내 사
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말씀하신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예수님만이 하
나님의 절대 사랑이요 최대의 기쁨이십니다 하나님은 아들이신 예수님만 사랑하시고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분명히 알고 믿음이 돼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그렇게 사랑하시고 기뻐하시
기를 소원하셨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그 사랑과 기뻐하심을 입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입니다. 죄인으로 예수님이 구주이심을 믿고 영접하여 예수님으로 사는 자가 바로 사랑하는
자요 기뻐하는 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기뻐하시는 분량은 그 구원받은 기쁨으로 예
수님을 사랑하고 인격적인 교제를 이루어가는 것만큼, 예수님과 내가 사귐이 깊어져 가는 것만큼입
니다. 그래서 형벌 받을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으니 평화잖습니까? 이 얼마나 평화
입니까? 죽음의 두려움, 죄의식의 두려움, 삶의 불안과 공포, 이 모든 것에서 놓여났으니 이 얼마
나 평화입니까? 하나님과 예수님과 함께하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평화인가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나심은 하나님께 영광이요, 그 영광은 영원하신 영광이요, 땅에는 기뻐하심을 입
은 사람 중의 평화인데, 그 평화 또한 영원한 평화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하나님의 이 기뻐하심을
입은 자가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로 사는 믿음이면 예수님으로 이루어진 이 평화가 말입니다. 여러
분 속에서 살아서 운동해야 합니다. 운동하고 있어야 해요. 여러분 속에 항상 이 평화가 주장하고
있어야 해요. 그래서 이 평화가 영원한 평화가 돼야 하는 겁니다.
이제 <성탄절은 하나님과 무관한 불법의 일>에 대한 말씀을 맺으면서 한 가지 당부는 오늘 이 말씀
을 들은 여러분이 이제 믿음에 대해 깨닫게 되었고 믿는다면, 성영님께서 여러분의 영혼에 믿음이
되게 하셨다면, 그래서 믿음으로 동의하여 받는다는 뜻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하겠습니다.
아멘으로 답하신 여러분에게 하나님 아버지의 복이 충만히 임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을 듣고 보니 우리가 얼마나 믿음을 잘못 가지고 있었는지, 하나님의 뜻대로 된 믿음이 아
니라, 하나님께 열심히 있으면 다 기뻐하시는 줄로 알았고 인간 양심을 동원하여 믿는다고 해왔던
이런 모습들 다 죄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기 양심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복음
을 듣고 교회 나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하나님이 계시고 죄인이라는 것을 알았고, 예수님이
구주이신 것을 안 것입니다. 우리 양심으로 하나님을 알게 된 것 아닙니다. 양심으로 죄인이라는 것
을 알게 된 것 아닙니다. 양심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양심으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으려 했던 이 죄 된 인본의 것들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는지,
이 시간 성영님께서 깨닫게 해주신 대로 회개하고, 또 정말 성영님께서 인도하시는 믿음이 되게
해주시라고, 성영님으로 믿는 믿음이 되게 해주시라고, 그렇게 믿기를 원하여서 간절함과 사모함을
가지고 성영님을 의지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다 같이 기도합니다.
아버지! 이 말씀으로 우리를 깨우시고 깨어있는 산 믿음의 복을 주시니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영원히 감사드립니다. 아멘!!
불법 성탄절은 하나님과 무관한 불법의 일.p13-p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