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들이 이베리아 반도에 거주했으나 빙하기 마지막 시기에 사라졌다. 그후 1만 5,000년전 호모사피엔스들이 반도에 살기 시작했는데, 이들은 알타미라 동굴에 벽화를 남겼다. 엘 아르가르 농경문화가 시작된 BC 2000년경부터는 야금기술이 발달하여 청동·은·금 등을 제련했다. 이베리아 반도는 BC 1000년경 해상무역문화를 꽃피웠던 타르테소스족들과 교류를 가졌다. BC 9∼8세기에 피레네 산맥을 통해 이주해온 중앙 유럽의 켈트계 부족들이 원주민들과 혼혈족인 켈트이베리아족을 형성했다.
제2차 포에니 전쟁이 발발한 BC 218년 로마인들의 이베리아 반도에 대한 공략이 시작되어 그후 2세기에 걸쳐 진행되다가 결국 로마인들이 반도에 대한 주도권을 확보했다. 그후 AD 5세기에 게르만계 부족들이 침략해왔으며, 그중 서고트족이 가장 강한 세력으로 부상하여 반도 전역에 걸친 왕국을 세우고 7세기초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였다. 8세기초에는 이슬람교도들이 반도의 대부분을 점령했다. 그후 그리스도교 세력인 카스티야 왕국과 아라곤 왕국이 재정복을 시도해 13세기말에는 이슬람교도들이 통치했던 대부분의 지역을 탈환했다. 1479년 아라곤의 페르난도 3세와 카스티야의 이사벨 1세가 결혼함으로써 두 왕국은 하나가 되었고 1492년 이슬람교도들의 마지막 보루였던 그라나다 왕국마저 함락시켰다. 14세기말 스페인은 아메리카 대륙에 식민지들을 거느린 강대국으로 부상했다.
1516년 네덜란드의 통치자였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카를로스 1세가 페르난도에 이어 왕위를 승계했다. 그후 카를로스 1세는 1519년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로 선출되어 카를 5세라고도 불렸다. 1555∼56년에 카를로스는 스페인과 네덜란드의 왕위를 자신의 아들 펠리페 2세에게 넘겨주었다. 합스부르크가 출신의 스페인 왕들 가운데 가장 스페인적이라는 평을 받은 펠리페 2세는 종교광으로 로마 가톨릭교를 수호하고 프로테스탄트를 말소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스페인은 희생이 큰 전쟁들을 치러야 했고 모험적인 군사행위에 휩쓸리게 되었으며 재정은 바닥이 났다. 펠리페 2세 이후 3명의 합스부르크가 왕들은 모두 성격이 유약하여 스페인이 급격히 쇠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1700년 카를 2세가 후손 없이 사망하고 부르봉 왕가의 앙주 공(公)이 스페인의 펠리페 5세로 등극함으로써 합스부르크 시대는 막을 내렸다.
펠리페의 등극으로 스페인 왕위계승전쟁(1701∼14)이 유발되었고 전쟁 결과 스페인은 벨기에·룩셈부르크·밀라노·사르데냐·나폴리를 잃었다. 1808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자신의 형인 조제프를 왕좌에 앉혔다. 그러나 영국과 스페인 군대가 나폴레옹의 군대를 물리쳐 1814년 부르봉 왕가는 복위되었다. 이 전쟁에서의 승리로 스페인은 아메리카 대륙 식민지들의 혁명을 크게 부채질했으며, 스페인은 1898년 미국과의 전쟁을 끝으로 해외식민지의 대부분을 잃었다.
1931년 공화제에 대한 압도적인 찬성으로 끝난 선거 결과에 승복하여 알폰세 8세가 퇴위한 후 스페인은 공화국이 되었다. 그후 1936년 공화파와 국가주의자(파시스트)들의 대립이 스페인 내란으로 확대되었다.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이끄는 국가주의자들은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와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로부터 군대를 지원받았으며, 공화파는 국내외의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 그리고 자유주의적 경향을 가진 사람들의 지원과 소련의 도움을 받았다.
내란은 결국 1939년 3월 마드리드를 장악한 국가주의자들의 승리로 끝났다. 프랑코 장군 정부의 초기 10년은 매우 참혹했다. 내전 결과 약 100만 명의 스페인인들이 죽거나 이민을 떠났으며, 스페인은 혹독한 정치탄압과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다. 프랑코는 헌법을 대신해 일련의 기본법으로 40여 년간 스페인을 자의적으로 통치했으며, 국가원수·총리·군총사령관과 유일한 합법정당인 팔랑헤당의 당수직을 겸임함으로써 절대권력을 행사했다.
1945년 이후 서방 강대국들로부터 노골적으로 적대시당한 스페인은 UN에서 추방당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이에 프랑코는 교회와 결탁하고 UN으로부터의 추방을 민족단결이라는 미명하에 지지세력을 결집하는 계기로 이용했다. 그러나 냉전체제하에서 미국은 스페인에 대한 적대관계를 철회할 수밖에 없었으며, 1953년 스페인은 미국과 협정을 맺고 군사기지를 제공하는 대신 재정지원을 받았다. 이무렵 스페인은 비교적 안정된 상태를 누렸다. 1960년대에 시작된 경제기적은 1973년까지 계속되어 스페인은 전통적인 농업국가에서 신흥공업국으로 변모했다. 특히 기간산업·자동차산업·조선업·장비제조업 등의 분야에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고, 외국자본이 투자되어 급속한 성장을 이루었다.
새로운 경제 기적으로 스페인은 어느 정도 활력을 되찾았다. 그러나 만족감을 느끼는 중산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곤한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팔랑헤당 주도의 노동조합을 불신하기 시작한 노동자들은 기존의 체계와는 별도의 노동위원회를 자체적으로 설립해 법으로 금지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격렬한 파업투쟁을 벌였다. 한편 교회 내에서도 젊은 사제들을 중심으로 주교단의 친정권적인 성향을 비판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1975년은 스페인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한 해였다. 4월 바스크의 극단적인 조직들이 이끄는 테러 행위가 극에 달해 기푸스코아 주와 비스카야 주 등지는 비상국면을 맞이했다(→ 색인 : 테러리즘). 이에 8월에 반테러리즘 법이 제정되었고, 9월 27일 세계적인 항의에도 불구하고 5명의 테러리스트의 사형이 집행되었다. 11월 20일 프랑코가 사망하고 이틀 후에 후안 카를로스가 왕위에 오르면서 군주제가 부활되었다. 카를로스는 스페인의 민주화에 크게 힘썼다.
1977년에 실시된 선거로 새로 구성된 의회는 정치·경제의 민주화에 착수하여 로마 가톨릭교의 공식적인 지위를 박탈했으며, 자유기업제도와 인권을 보장했다. 또한 여러지방에 제한적 자치권을 부여했다. 그러나 바스크분리주의집단(ETA)의 테러 할동은 계속되었다(→ 색인 : 에테아). 1978년 입헌군주제를 표방한 헌법이 제정되었으며 1982년 선거에서 사회 노동당이 승리해 펠리페 곤살레스 마르케스를 총리로 한 사회주의 정권이 등장했다. 스페인은 한때 서유럽에서 상대적으로 이질적인 국가였지만 차츰 여타 유럽 국가들에 적절히 동화되었으며, 1986년에는 EEC의 일원이 되었다.
1989년 10월 사회노동당이 재집권에 성공했다. 1990년대 들어서도 중앙정부와 에우스카르디·카탈루냐 등 자치정부와의 사이에 긴장관계가 계속되었다. ETA가 정치적 지원세력을 상실하긴 했지만 옛 소련 지역에서 급속도로 성장한 민족주의의 영향으로 스페인 국내의 분리주의 움직임이 촉발되었다.
스페인 정부는 주요 무역 파트너인 유럽공동체(EC)와의 보다 긴밀한 정치적 연대와 대외적인 국가신임도의 제고를 위해 힘을 쏟았다. 1992년 스페인은 세비야 국제박람회를 비롯해 바르셀로나 올림픽경기대회, 그리고 콜럼버스 신대륙발견 500주년 기념행사 등을 대대적으로 개최했다(→ 스페인사 ).
첫댓글 참으로 좋은세상 입니다. 동지님께서 머나먼 스페인까지 날아가셔 문화와 전통이 어우러진 스페인 이곳저곳을 두루 섭렵하고 견문을 넓히고 오셔 좋은글 올려주셔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건강과 즐거움이 늘함께 하시며 즐거운 인생삶 되시기 바랍니다. 꾸벅!!
덕분에 잘 다녀왔습니다.
내일부터 조금씩 이야기를 풀어나가 보겠습니다.
지금은 피곤해서 자러 갑니다.
구테 낙흐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