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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1 : 요한계시록 소개 : 요한계시록의 이해를 위하여
1. 요한계시록의 소개
요한계시록은 주께서 다시 오실 인류의 마지막 때의 일을 기록한 책이므로
성경 전체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는 책입니다만,
많은 부분이 이해하기 어려운 상징 언어로 되어 있어서
잘못 이해하기가 참 쉬운 책입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을 살펴보기에 앞서서
먼저 알아야 할 사항을 정리하겠습니다.
1) 저자와 연대 : 요한은 살아있는 순교자였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예수님의 제자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 갇혀있을 때인
주후 90~95년쯤에 기록하였습니다.
요한은 복음을 전하다가 도미티안 황제 때에
밧모섬에 갇혀서 그곳에서 요한계시록을 기록했고,
그러다 주후 98년에 옥에서 풀려난 후
에베소에서 죽을 때까지 마지막 사역을 했습니다.
그 후 요한은 복음을 전하다가 에베소에서 다시 잡혀서
독사 굴에 던져지고 끓는 기름에 던져지는 형벌을 받았으나
하나님께서 놀랍게도 그 끓는 기름에서 요한을 살리십니다.
하지만 그 일로 사도 요한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으므로
들것에 실려서 종종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에 참석했는데
사람들이 그를 앉혀 놓으면 “소자들아, 서로 사랑하라”라고 설교했다고 합니다.
사도 요한은 사도 중 유일하게 순교당하지 않고
주후 100년경에 자연사로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끓는 기름에까지 던져졌으므로
그를 가리켜 살아 있는 순교자라 부릅니다.
2) 요한계시록이 쓰여질 당시의 상황
요한계시록이 기록될 당시 로마의 황제는 도미티안이었습니다.
주후 81년부터 96년까지 황제로 있었던 도미티안은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부르게 하면서 기독교인들을 아주 무섭게 박해하였습니다.
황제 숭배가 그 이전에도 있었으나 강제성이 별로 없었고,
박해가 있더라도 일부 도시에 국한되었습니다.
네로 황제의 박해도 로마시에 국한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도미티안은 거의 로마제국 전체에 걸쳐 대규모로 박해를 하였습니다.
이때 사도 요한 역시 예수님의 제자라는 이유로
정치범 수용소인 밧모섬에 갇히게 되었는데,
그때 요한이 주께로부터 받은 계시를 기록한 것이 요한계시록입니다.
3) 요한계시록의 특징
이처럼 요한계시록이 아주 심한 박해 때에 기록된 책이므로
다음과 같은 특징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➀ 요한계시록은 그 당시의 성도들에게 준 요한의 편지입니다.
우선 우리가 기억해야 할 첫 번째는
요한계시록이 먼 미래의 성도들에게 준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성도들에게 준 사도 요한의 편지라는 것입니다.
이때 요한이 가장 염려하는 것은 당장 엄청난 핍박 앞에 놓인 성도들이
그 핍박을 두려워하여 믿음을 포기하게 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요한은 어떠한 핍박이 있더라도 믿음을 잃지 말라는 편지를 씁니다.
바울이 그의 성도들에게 편지를 쓴 것과 똑같은 편지를 쓴 것입니다.
➁ 그 안에 주께서 다시 오실 때의 일이 함께 기록되어 있다.
사도 요한이 그 시대의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그 안에 주께서 다시 오실 마지막 때의 일을 기록한 것은
사도 요한을 포함하여 주님의 제자들은 모두 자기들이 죽기 전에
예수께서 다시 오실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주께서 승천하여 올라가시면서
한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다시 오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요한은 이제 곧 주께서 다시 오시면
저 악한 왕국 로마제국이 완전히 망할 것이니
끝까지 믿음을 잃지 말라고 증거합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요한은 그의 성도들에게 믿음을 잃지 말라고 전하는 중에
마지막 때의 일을 함께 섞어서 증거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때 처음 요한계시록을 읽은 성도들은
요한계시록이 전혀 어려운 책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자기들에게 준 요한의 편지이고,
그들 역시 주께서 곧 오실 것이라고 믿었으므로
이 책에 기록된 모든 것이 다 자기들에게 해당하는 말씀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➂ 그러나 마지막 때가 지연되었으므로 오늘날 이 책이 어려워졌다.
그러나 요한이나 그 당시 성도들의 생각과는 달리
예수님은 오시지 않았고, 예수님의 재림은 지연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이 기록되고도 거의 2,000년이나 더 지났음에도
아직도 예수님은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에
어떤 것이 그 당시 성도들에게 준 메시지이고
어떤 것이 주님 다시 오실 때의 일인지를 구분해야만 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것은 그 시대의 성도들에게 준 말씀과
마지막 때의 말씀이 확연하게 구분되는 것도 있는데,
어떤 것은 두 가지가 함께 섞여 있어서
그때의 메시지인지 마지막 때를 위한 말씀인지를 구분하기 어려운 것도 있습니다.
요한이 이렇게 자기 시대에 다 일어나리라 생각하여
그 시대의 일과 마지막 때의 일, 이 둘을 서로 뒤섞어버렸으므로
후대의 사람인 우리가 보기에 몹시 어렵게 된 것입니다.
➃ 상징 언어로 되어 있다.
이렇게 두 시대의 메시지가 함께 섞여 있어서 가뜩이나 어려운 요한계시록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 시대의 사람들만 알아들을 수 있는
암호와 같은 상징 언어로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핍박을 받던 시대이므로
기독교적인 냄새가 나는 언어를 쓸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로마 군인들은 모르고
당시 기독교인들만 알 수 있는 언어로 되어 있습니다.
상징 언어를 풀 때는
반드시 그 시대의 사람들이 그 언어를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사도 요한이 그 시대의 성도들에게 쓴 편지이기 때문입니다.
그 상징 언어를 그 시대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오늘날의 관념으로 억지로 해석하면
요한계시록을 아주 엉터리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을 볼 때에는
반드시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그 상징들이 어떻게 기록되었는지를
연구하면서 보아야 합니다.
2. 요한은 왜 임박한 종말로 기록하였을까?
“때가 가까움이라”(요한계시록 1:3)
여기에서 가깝다는 말은 때가 찼다는 마가복음 1:15의 말씀과 같이
아주 가깝다는 말이 아니라 이미 그 시대에 도래했다는 뜻입니다.
주님의 재림의 때가 이미 요한이 이 글을 쓰고 있던 그때에 와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그보다 빨리
주후 70년 예루살렘이 무너질 때 오실 생각이셨습니다.
공관복음(마태, 마가, 누가복음)은 그때 주님 오시는 것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서 요한계시록이 기록되던 도미티안 황제 때로 다시 미뤄집니다.
그리고도 또다시 미뤄져 2024년인 오늘에까지 예수님은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은
왜 그때 예수님이 오시는 것으로 증거하고 있습니까?
1) 초대교회 성도들 모두가 다 그렇게 믿었습니다.
요한만 이렇게 쓴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주님이 오실 때가 가까이 왔으니
아직 결혼하지 않은 자는 결혼하지 말고 그날을 기다리라고까지 했을 정도입니다.
신약성경에서 마지막 때를 기록한 모든 부분이 다
그 성경이 기록되던 바로 그때 주께서 다시 오시리라고 기록했습니다.
2,000년이 넘도록 주께서 오시지 않을 것처럼 기록된 부분은 단 한 곳도 없습니다.
이렇게 기록한 것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포함해서
초대교회 성도들이 모두 다 그렇게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 예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므로
주님의 제자들과 초대교회가
왜 자기들의 시대에 주님이 오실 것이라고 믿었을까요?
주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마지막 때에 관한 말씀을 하시면서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나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승천하여 올라가실 때도
그들이 본 그대로 구름을 타고 곧 다시 오시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3) 그것이 본래 하나님의 계획이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왜 제자들에게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까?
금방 오시겠다고 하시고는 2000년이 넘도록 오시지 않으니
이 일로 참으로 많은 사람이 시험에 들고 믿음을 포기한 자들까지 있었는데,
이 모든 일을 다 아시면서 예수님은 왜
금방 다시 오실 것처럼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까?
그것이 바로 본래 예수님의 계획이었기 때문입니다.
승천하여 올라가실 때만 해도 예수님은 금방 그렇게 다시 오실 생각이셨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예수님의 계획이라기보다 성부 하나님의 계획이십니다.
마지막 종말의 때의 계획은 성부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성자 예수님은 그 일을 집행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날은 아들이신 예수님도 모른다고 하는 것은
그 일을 결정하시는 분이 성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4) 예수님의 간절하신 사랑으로 연장된 것
하나님께서는 주후 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질 때
세상을 심판하실 생각이셨습니다.
그래서 70년 이전에 기록된 복음서에서는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질 때에 마지막 종말의 때가 뒤섞여서 나옵니다.
그러나 그때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께 1년만 더 시간의 말미를 달라고 간구하십니다.
주께서 십자가의 피를 흘려 구원의 길을 여셨으니,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시려는 간절함으로
1년의 시간을 연기하신 것입니다(눅 13:6~9).
그렇게 1년 1년이 연장되어 주후 95년이 되었고,
그때는 도미티안 황제의 핍박이 막바지에 이를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이때 세상을 멸망시키시기로 작정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또다시 연장해 주실 것을 성부 하나님께 간구하시고,
그렇게 해서 또다시 연장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이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간절하신 사랑으로 연장되어 오늘에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3. 요한계시록을 볼 때 주의할 점
1) 지금 현재의 사건으로 보십시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요한이 자기 시대에 예수님이 오실 것으로 여기고 계시록을 쓴 것은
주께서 승천하여 올라가시면서
그 세대가 지나기 전에 오시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시려는 간절함으로 예수께서 간청하셨고,
성부 하나님께서 이를 받아들이셔서 1년, 1년 연장된 것이 오늘에 이른 것이므로
요한이 계시록을 기록한 그때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그때가 바로 마지막 때일 수 있는 긴장된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어느 순간에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님의 간청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으시든지,
성자 예수께서도 이제는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시고
성부 하나님께 “이제는 때가 되었나이다”하고 말씀을 드린다면
그때가 바로 주께서 다시 오실 때가 될 것입니다.
➠ 그날이 오늘일지 내일일지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천국에서는 이미 마지막 때를 위한 모든 준비를 다 완료해 놓고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상황입니다.
이미 요한계시록이 기록되던 그때부터 카운트다운을 시작할 준비가 다 끝이 났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명령하시기만 하면 모든 것이 곧바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은 항상 오늘 현재의 사건으로 보아야 합니다.
내년이나 10년 후쯤 일어날 것이라고 믿다가는 큰 낭패를 보게 될 것입니다.
2) 요한계시록을 보며 마지막 때의 시나리오를 만들려 하지 마십시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상징 언어 중에 666이나 짐승이나 음녀나 큰 바벨론은
모두 로마 제국이나 요한의 시대의 황제인 도미티안을 가리키는 말들입니다.
요한이 마지막 때에 나타날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가
바로 로마제국과 도미티안 황제라고 확실하게 증거하고 있는 것은,
자기가 죽기 전에 주께서 오시리라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주께서 요한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때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셨다면
요한이 요한계시록에 기록한 대로 로마제국과 도미티안 황제가
마지막 때에 나타날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께서 그때를 연기하셔서 오늘까지 왔습니다.
그러므로 로마제국과 로마 황제 도미티안은
마지막 때에 나타날 적그리스도나 거짓 선지자는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주님을 대적하여 주님의 백성들을 핍박하였으므로 적그리스도인 것은 맞지만,
마지막 때에 나타날 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요한이
로마 황제 도미티안에게 굴복하지 말라는 뜻으로 편지를 썼던 요한계시록을 보고
마지막 때의 재앙의 시나리오를 만드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이것은 요한계시록을 바르게 보는 것이 아닙니다.
3)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파악하십시오.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통해 그 때의 성도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주께서 마지막 때의 대혼란을 통하여 참된 믿음을 가진 자를 고르신다는 것입니다.
마치 농부가 키질을 하여 곡식과 쭉정이를 골라내듯,
마지막 때의 혼란의 시기를 통하여 참된 믿음을 가진 자를 고르신다는 것입니다.
요한의 때에는 도미티안의 극심한 핍박을 통해 참된 믿음을 가진 자를 고르셨습니다.
마지막 때에는 어떤 시련과 혼란으로 참된 믿음을 가진 자를 고르실지 우리는 잘 모릅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것이 핍박이든 아니면 평안한 때에 나타날 죄의 유혹이든 간에
도미티안 황제의 핍박을 이기는 것보다 결코 더 쉽지 않으리라는 것입니다.
● 묵상 : 그러므로 항상 주께서 곧 오시리라는 긴장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가 되십시오.
항상 주께서 다시 오실 것이라는 긴장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을 가리켜
종말론적인 신앙이라고 말합니다.
사도 요한 역시 종말론적인 신앙으로 주께서 그의 시대에 오실 것이라 믿고
이 계시록을 기록했습니다.
그 후로도 거의 2,000년이나 미루어졌지만,
그만큼 시간이 미루어졌으므로 오늘 일어날 확률은 그만큼 높아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주께서 오늘 오실 것이라 믿고 주님을 섬기는 자가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