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로 다시 모든 것을
- 모든 성경과 함께 시편을 열며 -
시편을 통해 찬양되어지는 하나님은 시편 기록자의 다양함만큼 다양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부요하심만큼 풍성한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인간에게는 다양하게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시며 유일하신 뜻만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시편에서뿐만 아니라 신약에 이르기까지 성경 전체에 면밀히 흐르는 하나님의 한 뜻이 무엇인지 헤아리지 못한다면 마당만 밟고 돌아가는 헛된 경배에 지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총 150편의 각 편의 다양성만큼의 프리즘을 얻고자 하는 것은 본 공과의 목적이 아닙니다. 오직 시편과 성경 전체를 통해서 동일한 한 목소리를 듣고자 하는 것이 본 공과의 향방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했다는(호 6:4) 선지자의 탄식을 두려워하며,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출 20:7) 계명에 더 주의하며, 오직 그 이름에 지극히 합당한 영광이 무엇인지 지혜와 계시의 영을 따라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시편과 성경을 상고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시 4:3)과 하나님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시 23:3)” 모든 일을 행하시되, 특별히 주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케”(엡 1:6, 14; 사 43:7, 21) 하려고 그들을 영원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오직 그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택하셨습니다. 스스로 홀로 충만하게 계셔서(출 3:14) 결코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지 않으심에도 불구하고(요 5:41) 호흡이 있는 모든 자들로부터(시 150:6), 특히 주의 백성과 교회로부터 하나님의 영광을 찾으시는 이유는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으로부터 섬김을 받고자 하심이 아니라(행 17:25),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기에 그 주신 자에게 다시 모든 것을 돌려 드리는 것이(대상 29:14, 16; 시 115:1; 롬 11:36; 고전 15:10; 벧전 4:11) 인간의 본분이며 참된 예배의 본질임을 알리시기 위해서입니다.
모든 것을 다시 주께 돌려드린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줬다가 다시 빼앗아 가신다는 뜻이 아니라, 그 분의 이름에 지극히 합당한 영광을(시29:2) 올려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존재(삼위일체)와 성호와 속성과 뜻(작정, 예정)과 일하심(창조, 섭리)에 대해서 만홀히 여기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학교인 성경을 지혜와 계시의 영을 따라(엡 1:17) 착념하여(딤전 6:3) 연구해야만(시 111:2) 합니다. 그래서 인간의 순종과 협력도 없이 오직 하나님의 선물로만 구원이 있으며(시 3:8; 엡 2:8-9), 6일 동안의 창조의 전 내용도 구하기 전에 필요를 미리 아시는 하나님께서 마지막 창조물인 인간 창조에 앞서 선물로 준비하셨으며, 우리가 이생에서 누리는 어떠한 분복도 하나님의 선물(전 3:12-13, 5:18-19)이 아닌 것이 없기에 나의 나됨은 하나님의 은혜인 줄(고전 15:10) 아는 것입니다. 우연처럼 보이는 어떠한 것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일어날 수 없음을 시인하는 것입니다(마 10:29). 그러므로 범사에 그를 인정해서(잠 3:6) 말하거나 봉사하는 것도(벧전 4:11), 먹거나 마시거나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만을(고전 10:31) 과녁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고하지 아니한 땅과 건축하지 아니한 성읍과 자신이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과 자신이 파지 아니한 우물이 주어졌고, 자신이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원의 과실을 먹을지라도(신 6:10-11; 수 24:13), 그렇게 주어진 모든 것들은 주신 자보다 클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미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 자신만이 방패이며 지극히 큰 상급임을(창 15:1) 알리셨습니다. 이것이 시편 전체에 면면히 흐르는 찬양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주의 백성들과 참된 교회에 주고자 하셨던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 자신인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때로는 모든 것을 다스리도록 했던 에덴 동산에서 유일하게 금지된 선악과와 타락 후 금지된 생명나무를 통해서(창 1:26, 28, 2:15-17, 3:24), 때로는 사람이 떡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게 하시려고 하늘에서 내려주신 만나를 통해서(신 8:3), 때로는 가나안 땅을 배분받지 못했을지라도 각 지파 내에 흩어져 살며 참되며 유일한 기업인 하나님만을 분깃으로 하는 레위지파를 통해서(수13:33; 애 3:24), 때로는 그리스도께서 주의 뜻 행하시기를 기뻐하사 순종함으로 자신을 단번에 제물로 드린 것처럼 주께서 찾으시는 것이 순종과 감사의 제사임을 번제와 속죄제 등의 제사법을 통해서(시 40:6-8; 히 10:5-10) 계속 말씀되어지고 있던 내용입니다. 그리고 때가 차매 하나님 자신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셨고, 포도원 농부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주인의 아들에 관한 비유처럼(마 21:33이하) 자기 백성을 위하여(마 1:21) 죽으심으로 하나님 자신을 선물로 주셨음을 역사적이며 구체적으로 드러내기까지 하셨습니다. 이처럼 모든 외적인 역사를 통해서 여전히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만이 진정한 선물로 주어졌음을 성경은 숨긴 적이 결코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의 것은 우리를 뒤흔들 수 있는 세력이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피난처와 산성과 요새와 반석과 힘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시편의 노래가 아닙니까?
그러므로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험악한 세월(창 47:9)과 수고와 슬픔(시 90:10) 뿐인 인생을 겪을지라도, 측량할 수 없는 지혜(롬 11:33)와 영원한 선하심과 인자하심(시 107:1이하, 136:1이하)으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롬 8:28) 하나님! 주신 자와 취하신 자가 동일하며 복과 재앙의 저자가 한 분이신(욥 1:21, 2:10) 하나님! 빛 뿐만 아니라 어두움의 창조자이시며 평안 뿐만 아니라 환난의 창조자이시되(사 45:7) 결코 죄의 조성자는 아니신(시 5:4) 하나님! 바로 그 분께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8)는 말씀은 예와 아멘(고후 1:20)이 아니겠습니까? 시편 전체는 모든 성경과 동일하게 그의 이름에 지극히 합당한 영광을 그렇게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 자신의 영광 뿐만 아니라, 그 영광을 위해서 주의 백성을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는(엡 1:4) 목적도 영원 전에 교회를 택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 목적의 실현을 위해서 실제로는 거룩하게 하시는 자가 하나님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그 백성들에게 거룩하라고 명령하십니다(레 20:7-8). 그렇게 하늘에서 이뤄진 뜻을 땅에서 이루기 위한(마 6:10) 하나님의 방식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라는 것입니다(딤전 4:5; 시 107:20).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담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도 노래해야 하며(시 119:54; 행 13:48), 기도도 주께서 가르쳐 주신 것처럼(마 6:9-13) 그 분의 뜻이 틀이 되어 주를 기뻐하며 의뢰함으로(시 37:4-5) 그 간구와 소원이 찬송과 함께 들려져야 함을(시 18:3, 28:6) 시편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경배의 대상이신 여호와께 거룩한 옷을 입고 나가는 것입니다(시 29:2). 그럼에도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의로움과 거룩함이시므로(고전 1:30) 그 보장된 거룩 위에 우리의 거룩을 쌓아 가는 것이 성화가 아니라, 여전히 우리에게 머물러 있는 완악함과 곤고함과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결코 주의 거룩을 우리로부터 거두시지 않는 것, 거기에 성화가 오직 하나님의 역사로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오직 주께만 영광이 세세토록 있도록 작정하셨으며(롬 11:36), 그것을 알리시고 깨닫게 하시며 찬미케 하십니다. 이 모든 것을 드러내기에 시편은 결코 부족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기에 그 주신 자에게 다시 모든 것을 돌려 드리는 것이 참된 예배임을 시편과 전 성경으로부터 배운다면, 우리의 행위와 열심과 육체와 혈통과 달음박질이라는 자랑과 예물은 더 이상 그리스도의 향기가 아니요 한낱 배설물에 지나지 않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듬은 돌(출 20:25)보다는 상한 심령(시 51:17)을 찾으시며, 일 천 번제보다는 순종을(삼상 15:22)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 때문에 찬양해야 합니까? 그의 은혜로 인하여 찬양할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누구를 찬양해야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 자신 외에는 진정한 찬양의 대상과 찬양의 내용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시편의 진심이며, 성경의 한 음성이며, 참된 교회의 진정한 유산입니다.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을 인하여 주의 이름에 돌리소서”(시 115:1)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