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그곳은
- <통영은 맛있다>를 읽고
송언수
나그네라는 그를 나는 휴석재에서 처음 보았다. <섬을 걷다>로 먼저 만난 작가의 감성은 친근한 것이었으나 고양이를 좋아하고 술을 달게 마시는 그의 눈빛은 낯설었다. 눈빛엔 날이 서있고 어투는 뾰족했고 몸짓도 투박했다. 저런 사람에게서 그런 감성이 나왔다고? 의아했다. 길에서, 섬에서 두어 번 더 지켜본 그의 하루는 삶의 여유나 여흥이라기보다 글감을 얻기 위한 ‘작가’의 수고로운 일상이었다. 직업으로써의 삶이 만들어 낸 고운 글 타래.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서 천진한 웃음을 보았다. 선한 눈매와 생기가 가득한 얼굴엔 모나거나 뾰족한 가시 없이 둥글둥글한 순박함마저 보였다. 그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였던 그날 그들 곁에서, 뾰족하고 투박함으로 무장한 그의 내면에 숨은 감성을 보았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대하는 그 감성으로 쓴 통영 이야기, <통영은 맛있다>. 그의 글도 맛있다.
나그네에게 통영은 그저 지나는 곳이다. 3년을 살았고, 앞으로도 당분간 이곳에서 살겠지만 어느날 어디론가 훌훌 떠날 수도 있는 곳이다. 여행자의 입장과 주민의 입장은 다르다. 곧 떠날 사람에게는 머무는 곳의 모든 것이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신기하고 특별하다. 그가 사랑하게 된 통영과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나도 통영에 이사 와 산지 벌써 9년이다.. 첫눈에 호감을 느끼고, 그에 대해 알고 싶어지고, 하나씩 알아가고, 알면 사랑하게 된다는 연애의 대상으로써의 통영, 통영은 이미 내게도 특별한 곳이다.
통영은 느리다
수도권에서 나고 자란 사람에게 시간은 금이다. 성질도 급하다. 일분일초를 다투며 살던 사람으로서 통영에서의 첫 며칠은 모든 사물과 내게 주어진 시간이 갑자기 천천히 움직이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도무지 급할 것이 없는 느긋함에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제법 걸렸다. 집에서 시내에 나가는 버스는 한 시간에 두어 대뿐이었고, 지정좌석제가 아닌 두 개의 극장엔 웬만한 개봉작은 걸리지도 않았다. 갑자기 활동 범위가 좁아지고, 해야 할 일이 줄었다. 그렇게 조급했던 마음에 제동이 걸리고 슬로비디오로 돌아가는 세상에 합류하는 것, 나쁘지 않았다.
통영은 예쁘다
집에서 조금만 걸어 나가면 바다다. 동암 갯가는 해안선 따라 찻길이 조성되어 있지만 그 길을 통행하는 차는 그리 많지 않다. 그 길에서 만나는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 위로 왜가리와 백로가 나는 풍경은 마음의 빗장을 열었다. 통영은 아기자기한 섬이 푸른 바다 위로 올망졸망 떠 있는 한가로운 곳이다. 아이들 등굣길엔 누런 황소가 달구지를 끌고 가고, 근처 밭에서는 엄마 젖을 빠는 송아지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아침이면 새소리에 눈을 뜨고, 논에 우는 개구리 소리가 밤을 채우는 곳. 굽이굽이 돌아설 때마다 또 다른 그림이 펼쳐지는 곳. 시장 골목마다 빨간 대야에 푸른 채소들이 담기고, 살아 숨 쉬는 물고기가 펄떡였다.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배가 지나고 그 바다를 배경으로 한 나지막한 산들은 사철 푸르다.
통영은 있다.
버스가 중앙시장 정류소에 섰는데, 앞에 앉은 할머니 한 분이 갑자기 일어나 기사에게 좀 기다리라 하고는 내리더니 길가에서 콩나물이며 반찬거리를 사 들고 올라오셨다. 물론 버스 기사는 지켜보기만 할 뿐 재촉도, 안 된다고도 하지 않았다. 어르신들이 타면 자리에 앉을 때까지 지켜보다가 출발하는 기사를 나는 그때 처음 보았다.
통영엔 통영을 사랑하는 통영 사람들이 참 많다. 식당이나 집 벽엔 어김없이 통영의 사진이 걸려 있다. 스스로 ‘통영 환자’라 부르는 이들, 그들에게 통영은 세계의 중심이자 우주의 중심이다. 단순히 고향을 그리고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는 지역 사랑이다. 그런 이들이 있다는 건 통영이라는 이 작은 도시의 축복이기도 하다.
삼도수군통제영의 역사와 문화예술이 근간이 되어 예술의 DNA를 타고 난 수많은 예술인의 이야기가 곳곳에 배어 있는 곳, 지금까지 그 맥을 이어가고자 애쓰는 곳, 통영이다.
통영은 없다
그럼에도 통영은 뭔가 이상한 곳이다. 다른 곳에 비해 월등히 많은 문화자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들을 활용하는 폭이 너무 좁다. 조선시대 역사를 복원하기 위해 근대문화의 흔적들을 부수고 관광객을 위한 주차장을 만들기 위해 유서 깊은 극장을 천연덕스럽게 부숴버린다. 조명해야 할 예술인이 너무 많아서 누구 하나 제대로 조명하지 못한다. 문화예술은 또 어떠한가. 예향이라면서 제대로 된 문화예술 공연장이 없고, 콘서트나 뮤지컬 등의 공연을 보려면 근처 대도시로 가야 한다.
도로 옆에 당연히 있어야 할 인도가 뚝뚝 끊기는 어처구니없는 곳이다. 학생들 통학로가 엉망인 곳이 통영이다. 서비스 정신 또한 미약하여 손님에 대한 예우가 무엇인지 모른다. 바다에서 먹을 것을 구하면서도 그 바다에 쓰레기 버리는 것 또한 너무 당당하다.
통영은 맛있다
봄의 도다리쑥국과 겨울의 물메기탕 그리고 사시사철 복국의 맛은 내가 보기에 그리 크게 다르지 않다. 통영 사람들이 때마다 찾아 먹는 이 세 가지 중 하나를 꼽으라면 나는 무만 넣고 끓인 물메기탕을 꼽겠다. 제일 시원하고 개운하다. 도다리보다는 아귀로 끓인 쑥국이 더 맛있다. 물론 나는 미식가는 아니다. 그냥 이십 년 된 주부다. 시장에 할머니들이 들고나오는 싱싱한 먹을거리들에 행복한 것은 주부의 특권이다.
채식주의자이면서도 미식가라 자처하는 그는 통영에서 나는 싱싱한 해산물이며 채소에 감탄한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서 싱싱한 해산물이 통영에만 나는 것은 아니겠지만, 통영의 것이 유독 맛있다는 그의 입맛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예로부터 통제영의 식문화가 여염집에 녹아들었다. 우리나라 전통이 그러하듯 고유의 통영 음식은 손이 많이 가고 고급스럽다. 회양적 한 장을 부치기 위해 은은한 불 앞에서 이십여 분 동안 심혈을 기울여야 하고, 도미의 살을 파내 고기와 양념해 다시 채우고 쪄서 색색이 고운 고명을 올린다. 통영 음식은 그 어디에도 없는 고급 음식이다. 물론 그가 말한 통영의 음식은 이런 고급스러움과 거리가 멀다. 그가 말한 통영 음식은 갓 잡은 신선함이 최고의 양념인 먹거리다.
그가 맛있다고 한 것이 무엇이든, 음식이라는 것은 누구와 어떤 상황에서 먹었는지에 따라 호불호가 갈린다. 사랑하는 이와의 박주산채가 싫은 이와의 진수성찬보다 좋은 것처럼. 책을 덮으며 드는 생각, 아무래도 그는 통영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모양이다.(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