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한다는 것
-원문생활공원에서 미늘공원까지
송언수
친구와 점심을 먹었다. 식후 바로 앉아 일을 하기에는 거북하여 잠시 걷자 하였다. 어딜갈까 하다 근처에 있는 낮은 숲길이 생각났다. 원문생활공원에서 미늘공원까지 그리 길지 않은 코스다. 다리 수술로 함께 걷지는 못한다며, 또 다른 친구가 차로 데려다준다 나선다.
원문공원은 여전히 한산하다. 공원 입구에 만세운동에서 순국하신 열사들의 비석과 만세운동 기념비가 있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해병대 용사들의 전적비와 충혼비, 기념관도 있다. 넓은 부지에 잔디가 잘 조성되어 나들이하기 좋은 곳인데 접근성이 좋지 않아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은 아니다.
공원 뒤쪽으로 죽림공원으로 통하는 길이 있다. 짧지만 대나무 숲도 지난다. 길은 숲으로 이어진다. 날이 따뜻하다. 길가엔 어느새 매화가 활짝 피어 반긴다. 야생화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날이 더 따듯해지면 이 숲길 양쪽으로 두릅이 지천이다. 봄이면 산딸기가 주렁주렁 달리고, 산벚나무에 화사한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다.
같이 간 친구는 예전에 이 길에서 뱀을 만났었다 한다. 길을 걷다 새끼 뱀 한 마리를 보았단다. 눈이 딱 마주쳤는데, 자기도 뱀도 서로 놀랐다며 웃는다.
“뱀도 놀라드나?”
“지도 놀래서 어쩔 줄 몰라하더만, 좀 있으니 도망가더라”
“지가 더 놀랐겄네, 산만한 괴물로 보였을 거 아이가”
대곡마을과 미늘고개 갈림길 옆에 있는 농장에서는 오늘도 개가 짖었다. 그 농장 앞 나무 위에 작은 오두막이 있었다.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나무를 베어 버렸는지 농장 앞이 훤하니 넓다. 친구도 그 오두막을 알고 있었다. 섭섭한 마음은 친구도 컸다.
몇 년전에 왔던 길을 오랜만에 걸었다. 같은 길인데, 갈 때마다 다르다. 같이 가는 사람에 따라 나누는 이야기가 다르다. 이야기가 다르면 느낌이 달라진다. 계절이 다르면 만나는 풍경이 달라진다. 늘 똑같기만 하다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 싶다. 변함없어서 좋은 것은 어쩌면 관계뿐일지 모르겠다. 아니, 관계도 지속적인 서로의 노력으로 조금씩 좋아지지 않으면 지루해질 수도 있겠다. 한 번의 실수로 틀어질 수도, 작은 배려로 더 돈독해질 수도 있는 게 사람 간의 관계이지 않은가.
예전엔 변함없기를 바라며 살았다.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것들이 변하지 않기를, 우정과 사랑도 변하지 않기를 바라며 살았다. 이젠 변하는 것들이 좋다. 계절이 변하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 좋다. 하루가 저물어 되돌아보는 시간이 좋다. 나이를 먹을수록 예전과는 다른, 긍정적인 모습은 물론 부족한 모습도 그냥 다 좋다. 잘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 더 이상 젊지 않아서 그로 인해 자유로워진 모든 상황이 좋다.
모든 사물은 변한다. 모든 사람은 변한다. 모든 관계도 변한다. 그렇게 변하는 것이 있으니 새롭고, 새로운 모습에 대한 기대로 설렘도 생긴다. 늘 똑같은 삶보다 늘 새로운 삶을 꿈꾼다. 새롭게 해보는 일이 좋다. 처음 해보는 일, 처음 가보는 길이 좋다. 좋으니, 낯선 곳에 가보고 싶고, 안 하던 짓을 해보고 싶다. 어제보다 조금 다른 오늘을, 오늘보다 조금 더 나은 내일이기를 바란다.
내게 남은 삶의 하루하루는 조금씩 다르기를. 조금씩 새롭기를.(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