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일: 8월28 북아프리카 타카스테에서 테어났다 그의 어머니 모니카는 독실한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항상 기도하고 권고하였다. 이교도인 아버지는 영특하고 재능이 뛰어난 그를 웅변가로 출세시키고자 하였다. 명예와 쾌락만을 추구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아우구스티노 역시 자기의 재능만을 믿고 자만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하였다. 아버지의 죽음 후에도 어머니의 탄식어린 기도를 외면하고 명예와 쾌락만을 추구하였으며, 마니교의 이원론에 깊게 빠졌다. 카르타고 대학의 수사학 교수로 있으면서 진리를 얻기 위해 마니교 연구를 하였으나, 양심의 가책과 불안으로 마음이 편치 못했다. 384년 밀라노에서 수사학을 가르치게 되었는데, 이때 밀라노의 주교인 성 암브로시오의 설교에 큰 영향을 받았다. 또 에집트의 은수자 성 바오로에 대한 독서를 통해 개종을 결심, 387년 부활절 전야에 세례를 받았다. 33년간 아들을 위해 기도한 모니카의 결실이 맺어진 것이었다. 아프리카로 돌아온 그는 성스럽고 모범적인 수도 생활을 하였다. 이에 감탄한 신자들에 의해 391년 성직자로 추대되었읔며, 히포의 주교 발레이오에 의해 사제로 서품되었다. 5년후 발레리오 주교가 서거하자 후임 주교로 임명되었다. 그노시스, 도나투스, 마니, 펠라지우스등의 이단과 싸워 교회를 지켰으며, 이를 통해 자신의 신학을 구축하였다. 우리는 성서에서 예수가 선한 사람을 찾으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시며, 잃어버린 자를 구하려 온 분이시며, 아흔 아홉마리의 양보다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아오신 목자의 비유를 읽을 수 있다. 많은 죄를 범하고 타락의 길로 빠졌던 자들이 회개하고 거듭나게 되는 것은, 분명히 성총의 빛나는 승리인 것이다. 아우구스티노는 그의 참회록을 통해 죄악에서 성덕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대전환을 이룬 실례를 보여주고 있다. 어떤 죄인이라도 그 사람의 결심 여하에 따라 멸망에서 소생되어 광명의 아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초대교회의 뛰어난 학자였던 그는 이단과의 논쟁을 통한 저서 외에 개종꺄지의 자서전인 "고백론"과 최초의 역사 철학서인 "신국론"등의 대작을 남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