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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 :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시편 42:1~43:5)
* 본문요약(42~43편 요약)
시인은 하나님 얼굴 뵙기를 갈망합니다.
그는 이전에 하나님의 성전에서의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했던 것을 추억하며
하나님을 앞에 나아가기를 갈망합니다.
원수의 압제와 대적자들의 비방으로 영혼이 낙심되고 불안에 싸여 있지만,
그를 도우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그의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합니다.
시인은 자신을 불의한 자에게서 건져 주시고,
주의 빛과 진리를 통해 주께서 계신 곳으로 자신을 인도해주시길 간구합니다.
주께서 자신을 주의 성산과 장막에 이르게 하시면
그는 큰 기쁨이신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수금으로 찬양할 것이라고 노래합니다.
왜 낙심하고 불안해하느냐며 스스로 자신의 영혼을 향해 책망하며,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말합니다.
찬 양 : 404장(새 304)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483장(새 539)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 본문해설 : (고라 자손의 마스길, 영장으로 한 노래)
(※ 70인역과 라틴역은 시편 42편과 43편을 하나의 시로 편집하고 있습니다.
시편 42편에서 후렴구로 나오는 5절과 11 절이 시면 43:5에서도 반복되고,
두 시(詩)의 분위기와 내용이 서로 연관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두 시를 함께 묶어서 정리를 하겠습니다.)
= 42편 =
1. 하나님을 향한 갈급함(1~2절)
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살아계신)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
- 고라 자손(1절) :
고라는 모세와 하나님께 대한 반역에서 주도자였습니다(민26장).
모세의 사촌인 고 라는 광야에서 르우벤 자손인 다단, 아비람, 온과 무리를 짓고
족장 250명을 동원하여 모세의 지도권에 도전하다
고라, 다단, 아비람, 온은 땅이 갈라져 죽임 당하고
250명은 하나님의 불에 태워져 죽임당했습니다(민 16:1-35, 26:9-11).
하지만 고라의 세 아들들은 죽지 않고 살아남아
후대에 성전 문지기(대상 9:17-19, 26:1, 19), 찬송하는 자(대하 20:19),
빵을 굽는 성전 요리사로(대상 9:31) 하나님을 섬겼으며,
시편에는 고라 자손들의 시가 여러 편 소개된다(시 42, 44-49, 84-85, 87-88편).
선지자 사무엘, 시인 헤만(시편 88편을 지은 자) 등은
모두 고라 자손들입니다(대상 6:33-38).
- 마스길(표제) :
마스길은 ‘교훈시, 묵상의 시’ 라는 뜻입니다.
- 시냇물(1절) : 아피케 마임
‘시냇물’에 해당하는 ‘아피케 마임’은
‘물의 근원, 마르지 않고 흐르는 물’을 가리킵니다.
심한 가뭄에 모든 것이 다 마른 때에도 항상 흐르는 그런 샘물을 뜻합니다.
-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1절) :
연약한 사슴이 목이 말라 시냇물을 찾아 헤매는 모습을
고통받는 하나님의 백성의 상징으로 삼았습니다.
- 찾기에 갈급하니이다(1절) : 아라그
‘찾기에 갈급하다’에 해당하는‘아라그’는
‘간절히 부르짖다, 목말라서 울부짖다’라는 뜻으로,
지독한 가뭄 때 헐떡거리는 들짐승을 표현한 단어입니다(참조, 요엘 1:20).
조용히 사모하는 것이 아니라, 간절한 마음으로 울부짖으며 찾는 것을 뜻합니다.
- 생존하시는 하나님(2절) : 엘 카이
‘생존하시는 하나님’에 해당하는 ‘엘 카이’는
항상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모든 생명체에 생명을 공급하시는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2절) :
이것은 시인이 하나님의 성막(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서 쫓겨나서
먼 타국에서 떠돌아다니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2. 탄식 중에도 하나님을 기억하며 기도함(3~8절)
3) 사람들이 종일 나더러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4)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찬송의 소리를 발하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곤 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생각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를 도와주시는 나의 구원자,
나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양하리로다.
6)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망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
7)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깊은 바다가 깊은 바다를 부르며)
주의 파도와 물결이 나를 엄몰하도소이다(나를 휩쓸고 지나가나이다).
8)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 인자함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의 찬송이 내게 있으니(찬송으로 나를 채우시니)
내가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3절) :
날마다 음식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슬픔이 이 시인의 삶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는 것
-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 (4절) : 호게그
‘성일(聖日)을 지키는’에 해당하는 ‘호게그’는
‘원 안에서 선회하며 돌다, 성스럽게 행진하다, 춤추다’라는 뜻으로,
뛰고 춤추면서 절기의 축제를 지키고 축하하는 것을 가리킵니다(출 5:1, 레 23:41).
모인 무리와 함께 예배드리던 때를 추억하는 것입니다.
- 주의 폭포 소리, 주의 파도와 물결(7절) :
주의 폭포와 주의 파도는 시인이 받은 하나님의 진노를 비유한 것입니다.
시인이 지금 하나님의 진노 속에 있는 것 같은
낙심과 불안감에 싸여 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3. 절망 중에 하나님을 노래하며 찬양함(42:9~43:5)
9)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슬픈 나날을 보내야만 하나이까)?” 하리로다.
10) 내 뼈를 찌르는 칼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하도다.
11)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를 도와주시는 나의 구원자,
나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양하리로다.
= 43편 =
1) 하나님이여, 나를 판단하시되 경건치 아니한 나라에 대하여 내 송사를 변호하시며,
간사하고 불의한 자에게서(거짓을 일삼는 저 악한 자들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2)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어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하여 내가 원수의 압제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슬픔에 잠겨 있어야만 하나이까)?
3)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주셔서 나를 인도하사
주의 성산과 장막에 이르게 하소서.
4) 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찬양하리이다.
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를 도와주시는 나의 구원자,
나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양하리로다.
* 묵상 point
● 표제 “고라 자손의 마스길” ●
42편에는 ‘고라 자손의 마스길’이라는 표제가 붙어있습니다.
마스길은 ‘교훈시, 묵상의 시’라는 뜻으로,
‘고라 자손의 마스길’은 ‘고라 자손이 지은 교훈, 묵상의 시’라는 뜻이 됩니다.
1) 고라의 반역(민수기 16:1~35, 26:9~11)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가데스바네아에 이르렀을 때
12명의 정탐꾼 중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보고하며 가나안으로 들어가자 했으나,
나머지 10명이 정탐군은 “저들의 키는 하늘에 닿았고,
그들 앞에 우리는 메뚜기 같다”하고 보고하였는데,
백성들은 10명의 잘못된 보고만 받아들이고 밤새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다시 새로운 지도자를 세워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이 일로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로 다시 돌아가
40년의 광야생활을 해야만 했으며,
20세 이상의 사람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가데스 바네아 사건은 출애굽 2년에 있었으므로,
광야생활 40년을 채우기 위해 그 이후 38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합니다.
40년의 광야생활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 고라 일당의 반역이 일어납니다.
레위자손 고라와 르우벤 지파의 다단과 아비람, 벨렛의 아들 온이 모세를 거역하여
모세를 향해 “너희만 거룩하냐?”하고 말하며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위임하신 권위에 도전하는 반역을 저지릅니다.
제사는 아론의 자손에게 맡겨주신 일이었으므로,
지성소의 지성물을 옮기는 역할을 담당했던 고핫 자손은 제사는 집전할 수 없었습니다.
고라는 이것이 불만이었던 것입니다(민16장).
하나님께서는 고라와 그를 따르는 무리를 따로 불러서 세우고,
지진으로 땅이 갈라져 한꺼번에 몰살당하는 비극이 일어납니다.
2) 고라 자손의 마스길
그때 고라의 세 아들은 고라의 반역에 참여하지 않아 죽지 않고 살아남아서
후대에 고라의 후손들이 성전 문지기, 찬송하는 자,
빵 굽는 성전 요리사 등으로 하나님을 섬겼는데,
다윗의 시대에는 아삽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들이 됩니다.
시편 42편의 표제에 나오는 ‘고라 자손의 마스길’이 바로 고라 자손의 노래입니다.
이 시편으로 우리는 고라 자손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오직 하나님을 구하며, 눈물로 회개하며,
어떠한 형편에서도 하나님만을 바라며 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회개와 믿음을 시편에 기록하게 하셔서,
오늘날 어려운 형편에 처해있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을 알고 끝까지 붙잡게 하시고,
바른 믿음을 회복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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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절망과 불안감 속에서 탄식하는 시인
시편 2편(42~72편)의 첫 시작인 42편은
고통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는 탄원시(탄식시)에서부터 시작합니다.
환난 중에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발견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 먼 타국에서 이리저리 떠돌며 살아가는 시인(42:1~2)
시인은 성막(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서 쫓겨나서
멀리 타향에서 이리저리 떠도는 방랑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인은 고향을 떠나 타국에서 방랑 생활을 하는 것보다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이 더욱 답답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을 뵈옵기를 갈망합니다.
2) 조롱과 핍박(42:3, 9~10, 43:2~3)
고대 사회에서는 각 나라의 전쟁을
그들이 믿는 신들의 전쟁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가령 두 나라가 전쟁을 하여 한쪽이 패하면
이긴 나라의 신이 더 강한 신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하나님의 백성인 시인이
나라를 잃고 쫓겨나서 먼 타국에서 방랑하는 삶을 살고 있으니
주변 나라의 사람들이 시인을 향하여 그가 섬기는 하나님을 조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졌다는 것은 곧 이스라엘이 섬기는 하나님이
자기들이 믿는 신보다 못하다는 증거라며 시인을 조롱하고 핍박하는 것입니다.
시인은 주변 나라의 백성들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하고 조롱하는 소리가
마치 자신의 마치 칼이 자신의 뼈를 찌르는 것 같다고 탄식합니다(42:10).
이 일로 시인은 항상 슬픔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3) 주의 폭포 주의 파도와 물결에 싸인 시인(42:7)
그러나 시인은 주변 나라 백성들의 조롱 소리처럼
이스라엘이 다른 나라에 망하여 쫓겨 간 것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약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진노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하나님의 진노의 한 복판에 있는 자신의 처지를
‘주의 폭포, 주의 파도와 물결’로 표현합니다.
주님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깊은 바다를 부른다는 것입니다.
깊은 바다는 음부(스올, 지옥)을 뜻하는 것으로,
주님의 진노의 소리가 저 바다 깊은 곳에 있는 지옥을 불러
자신을 덮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천국과 지옥을 모르니 지옥을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4) 과거 좋았던 때를 추억하며 더욱 슬픔에 싸임(42:4)
시인은 과거 좋았던 때를 추억합니다.
과거에 그는 예루살렘의 성막(성전)에서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직책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며 함께 찬양하고 예배하던 그때가
얼마나 좋았나 하며 과거를 추억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자리에 갈 수가 없습니다.
5)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42:3)
그래서 눈물이 주야로 자신의 음식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날마다 음식을 먹듯 슬픔이 자신의 삶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조롱하는 것이 슬픔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자리에 갈 수 없다는 것이 슬픔입니다.
그래서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탄식합니다.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고”
2. 탄식 중에도 하나님을 기억하며 기도함
1) 낙망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기억함(42:6)
시인은 낙망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기억합니다.
과거 애굽의 노예였던 이스라엘을 구하신 하나님께서
자기의 아픔도 해결해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한다고 말합니다.
헤르몬과 미살산은 이스라엘의 북쪽 국경에 위치한 산맥에 있는 산들입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타국에서 최대한 이스라엘과 가까운 곳에서
예루살렘 쪽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시인이 예루살렘으로 가지 못하는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나라가 망하여 포로로 사로잡혀 간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으나,
마치 실향민들이 북한 땅이 보이는 임진각에서
북한 땅을 바라보며 가족들의 이름을 부르는 것처럼
그렇게 시인은 자신의 현재의 상황에서
최대한 예루살렘과 가까운 쪽으로 가서 하나님을 부릅니다.
2)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주를 찾기에 갈급함(42:1)
하나님을 찾는 자신의 갈급한 상황을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것에 비유하였습니다.
목이 마른 사슴, 그것도 새끼를 배었거나 새끼를 데리고 다니는 암사슴의 경우
그 애태움이 더 심각합니다.
비가 내리지 않는 건기(4월~10월)가 되면
모든 와디(시내)들은 완전히 그 물이 말라버립니다.
그때에는 언덕을 넘고 들판을 건너도 시냇물을 찾기 힘듭니다.
물을 찾다가 지쳐버리면 사슴은 목을 길게 뻗은 채 쓰러집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사모하는 자신의 심정을
시냇물을 찾는 이 암사슴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3) 주님의 빛과 진리로 자신을 인도해 주시길 간구함(43:3)
비록 지금의 시인의 처지는 고통과 아픔 속에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언제든지
자신의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실 능력을 갖고 계심을 믿고 있습니다.
만일 시인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인정을 받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 그 모든 일을 처리하여 주실 것입니다.
이것을 믿기에 시인은 아픔을 치유해달라고 기도하지 않고
주님의 빛과 진리로 자신을 인도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시련과 환난을 당하면 이 환난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하지만 내가 하나님 말씀에 합당하게 살지 않는다면
혹 그 시련에서 벗어나게 되더라도 다시 또 다른 시련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다면 진정한 평화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지금 당장 아픔을 해결하는 것보다
자신이 주님의 빛과 진리로 인도함을 받아
하나님의 참된 성도가 되는 것이 더 시급한 일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자하심을 기다리며 노래하고 찬양함(42:8)
자신이 지금 하나님께 주님의 빛과 진리로 인도해달라고 기도했으니
하나님께서 그를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찾는 자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그가 할 일은
이렇게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일하기 시작하셨음을 믿기에
시인은 고통 중에서 노래하며 찬양합니다.
3. 절망 중에도 찬양할 수 있는 이유
1) 자신을 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았으므로
시인이 절망 중에도 기뻐하며 찬양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자신의 현재의 처지를 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처지만 보았다면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에 더욱 깊은 절망에 빠졌겠지만,
이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바라보니 소망이 생깁니다.
하나님은 무슨 일이든 하시는 능력을 가지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께서 만드시는 미래를 보았으므로
나의 오늘을 가지고 나의 내일을 만드시는 분이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과거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범죄하여
지금은 이렇게 하나님께 예배드릴 예루살렘의 성전에 가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지만,
지금 그가 하나님을 부르며 찾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새로운 미래를 만드실 것입니다.
나의 미래를 새롭게 창조하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믿기에
시인은 고난의 현장에서도 하나님을 기뻐하며 노래합니다.
3)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았으므로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부르며 찾는 자를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으므로
시인은 고난 중에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비록 죄인일지라도 하나님을 찾는 자를
인자하심으로 만나주시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있으므로
그는 절망의 한복판에서도 기뻐하며 노래할 수 있습니다.
4. 우리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기다리십니다.
1) 경건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도와 우리의 기도와의 차이
43:2에서 시인은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어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슬픈 나날을 지내야만 합니까?”하고 호소를 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버리셔서 지금 내가 이런 환난 속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다음 기도에 무엇이 나올 것이라 기대합니까?
이렇게 힘들고 어렵다는 호소가 나왔다면
당연히 나를 그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할 것입니다.
빚져서 집이 넘어가게 생겼으니 도와달라든지,
병들어 죽게 생겼으니 고쳐 달라든지 하는 기도가 나올 것입니다.
➠ 그러나 놀랍게도 시인은 3절에서 이런 기도를 합니다.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어 나를 인도하사 주위 성산과 장막에 이르게 하소서.”
자신을 괴롭게 하는 고통의 현장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주셔서 바른길을 걷게 하고,
주의 성산과 장막에 이르게 하셔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경배하게 해 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 묵상 : 경건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시련이 왔을 때
그 시련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경건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시련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이 시련을 주께서 주셨다면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시련의 기간이 끝나기까지 믿음을 잃지 않게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그 시련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주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환난과 고통의 자리에서 벗어나게 되었더라도
그 신앙의 자리가 여전히 무너진 채로 머물러있다면
다시 그 환난의 진창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당장은 고통스럽더라도 고통의 자리에서 벗어나기를 바라기보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 고통과 환난을 주신 목적이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구해야 합니다.
그것이 훈련이면 훈련을, 징계이면 회개를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구해야 합니다.
2) 우리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여호와의 날을 기다리십니다.
다만 그들이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복을 가지고 오시는 여호와의 날이
속히 오게 해 달라고 간구하는 것뿐입니다.
우리의 생사화복의 모든 것이 주께 달려 있으니
주께서 인간의 역사에 개입하여 들어오시는 여호와의 날이 오면
주께 부르짖어 기도한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그날을 기다리신다는 점입니다.
아이가 밥을 달라고 울며 보챌 때 엄마도 그 밥이 뜸이 들기를 기다립니다.
아이뿐 아니라 엄마도 기다리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가져다주시는 여호와의 날이 오기를
우리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기다리십니다.
3)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날이 오기까지 믿음을 잘 간직하기를 바라며 기다리십니다.
아무리 하나님이시라도 아무런 원칙도 없이 무조건 복을 주실 수는 없습니다.
그 복에 합당한 믿음이 있는지 확인한 후에야 그에 합당한 복을 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또한 공의의 하나님이기도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날을 기다립니다.
우리가 그날이 오기까지 믿음을 잘 간직하며 인내하며 기다리기를
하나님께서도 바라며 기다리십니다.
그러다 우리가 끝까지 믿음을 지켜서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복을 받을 수 있게 되면
우리보다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시며 춤을 추시는 것입니다.
마치 아이가 좋은 시험 성적을 받으면 엄마가 더 기뻐하는 것처럼
우리가 복을 받으면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십니다.
4) 그러므로 여호와 날이 오기까지 끝까지 이기는 성도가 됩시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날이 오기까지 끝까지 이기는 성도가 됩시다.
그날이 오기까지 믿음을 잘 지킨 사람은
아브라함이나 요셉이나 모세나 다윗처럼 큰 복을 받게 됩니다.
지금 당장 내가 당하는 시련에서 벗어나려고만 하지 말고,
주께서 복을 주시는 그날을 기다리며 주님을 참되게 섬기는 성도가 되십시오.
* 기도제목
1. 절망의 현장에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고 계심을
믿게 하옵소서.
2. 이 시인처럼 우리도
고통과 아픔 중에도
주께 감사하며 찬양하게 하옵소서.
3. 우리의 생명 되시는 하나님을
주님 오시는 날까지
항상 기억하며 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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