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에 능한 자
(창세기 33:9-11)
1. 소헌왕후 청송 심씨
청송의 심씨 가문에서 자란 소헌왕후가 태종 임금의 셋째 아들 세종에게 시집올 때까지만 해도 자신의 남편이 왕이 되고, 자신이 왕비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세종 자신도 원하지 않던 왕이 되면서 부인은 따라서 왕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외척을 극도로 경계했던 시아버지 태종이 친정 식구들을 모두 죽이자 남편과의 사이도 극도로 나빠졌습니다. 그러나 한 남편의 아내로서, 시아버지의 며느리로서 그리고 무엇보다 8남 2녀의 어머니로서 마지막 순간까지 그 자리를 지킨 현명한 왕비로 이름을 남겼습니다. 세종대왕이 조선의 여러 왕 중 훌륭한 왕으로 평가받을 수 있었던 것은, 뒤에서 보이지 않게 흘린 소헌왕후의 눈물이 있었기 때문이랍니다. 시아버지가 병들어 죽을 때 마지막까지 시중을 들었다고 합니다. 세종은 아버지를 닮아 여러 명의 후궁을 두었는데, 막내아들의 양육을 맡길 만큼 후궁들을 소리소문없이 잘 다스려 조선 500년 역사 중에 가장 조용하게 왕궁의 복잡한 집안 살림을 했답니다.
친정아버지를 죽인 시아버지를 용서하고, 멀어졌던 남편과의 관계를 회복하여 조선의 가장 훌륭한 왕 세종대왕이 되도록 내조하는 남편의 한 아내로, 자신의 자녀는 물론 여러 후궁의 자녀들까지 돌보며 한 나라의 왕비로 일생을 마치고 여주 영릉에 남편과 함께 묻힌 소헌왕후는 화목에 능한 왕비였습니다.
2. 화목에 능한 자
십자가는 화해의 상징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다 이루었다고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죽는 순간 성소의 휘장은 위로부터 아래로 갈라져 둘이 되었고, 성소와 지성소는 이제 둘이 아닌 하나가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 이후 갈라졌던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넘을 수 없는 장벽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야곱과 에서는 쌍둥이 형제로 태어났습니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서로 형이 되겠다고 싸우는 두 민족으로, 동생이 형의 발뒤꿈치를 잡고 나왔답니다. 결국 동생이 죽 한 그릇으로 형의 명분을 샀고,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장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싸움은 거기까지였습니다. 형이 된 동생은 고향을 떠나 외갓집 머슴이 되어 20년을 살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형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1) 화해하면 하나님이 보입니다.
야곱이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내가 형님의 눈앞에서 은혜를 입었사오면 청하건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창세기 33:9).
꼭 한 번 형을 이기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후에야 알았습니다. 동생으로 사는 것이 큰 복이라는 것을 객지 생활 20년 만에 알았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표를 이루었습니다. 20년 동안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결혼하여 아내와 자녀들이 가득하니 모두가 복 받아 성공했다고 부러워합니다. 그러나 정작 야곱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맞아 죽더라도 형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20년 만에 돌아와 만난 형은 이제 형이 아니라 하나님이었습니다. 야곱은 20년 전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2) 화해하면 형통합니다.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창세기 32:11).
야곱은 복을 받아 20년 동안 아내 넷을 얻었고 12명의 아들을 낳았습니다. 20년 동안 일하고 받은 품삯은 큰 재산을 만들어 부자가 되었습니다. 다 얻은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야곱의 마음을 채워주지 못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20년 전의 사연이 밤마다 야곱을 괴롭혔습니다. 밤잠 설치며 뒤척이다가 결단했습니다. 자리를 박차고 고향을 향해 떠났습니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편한 것이 복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암염소, 숫염소, 암양, 숫양, 젖 나는 낙타와 그 새끼, 암소, 황소, 암나귀와 그 새끼 등, 형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불편해진 형과의 관계를 개선할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한 대가라도 치르겠습니다. 속여 뺏는 것이 아니라 나누어 베푸는 것이 복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갈라져 두려웠던 형을 다시 만나 함께 기뻐하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가족은 어떤 값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하나님의 복입니다.
3) 화해가 복입니다.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창세기 35:9-11).
네 아내와 열두 아들, 셀 수 없는 재산을 가지고 있었지만, 야곱에게는 복이 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와 모의해서 아버지를 속이고 받은 축복도 복이 되지 않았습니다. 죽 한 그릇을 주고 산 형의 명분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돌려주고라도 갈 수만 있다면 20년 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야곱이 화해를 결심하고 형님 앞에 무릎을 꿇고 나니 그동안 받은 모든 것들이 복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형님과 화해 한 이후에 그동안 맡겨놨던 복을 내려 주셨습니다. 야곱의 축복은 이스라엘이 되는 것입니다. 갈등하던 야곱이 화해하는 이스라엘로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은 고향을 떠나 제 길로 가는 야곱이 아니라 형님과 화해하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십니다.
3. 화해에 능한 자가 됩시다.
갈등 상황을 조장하지 맙시다. 갈등을 방치하지 맙시다. 갈등을 즐기지 맙시다. 화해는 갈등을 불편해하고 불행하게 느끼는 감정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그대로 방치하지 않고 다가와 손을 내밀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은 죽음의 십자가로 막힌 담을 헐고 넘어와 하나가 되자고 화해의 손을 내밀었습니다. 요셉은 자신을 판 형들을 향해 화해의 손을 내밀었습니다. 소헌왕후처럼 오늘 한번 손을 내밀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