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꿇은 나귀
(민수기 22:21-30)
1. 최 씨 유감
“최 씨가 앉은 자리에는 풀도 안 난다”라고 하는데, 고집이 세다는 말입니다. 고집 세다는 말이 좋게 들리지는 않습니다. 이 말은 지금부터 700년 전 고려 말기 이성계에게 죽임을 당한 최영 장군이 남긴 말이랍니다. 고려가 망하고 새로 시작하는 조선에 힘을 합치자는 이성계의 말을 듣지 않고, 두 주인을 섬기지 않겠다면서 죽음을 선택했는데, 죽으면서 “신하로서 나라와 임금 앞에 부끄러운 짓이 하나라도 있었다면 내 무덤에 풀이 날 것이요, 그렇지 않다면 풀이 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최영 장군의 무덤에는 풀이 나지 않았답니다. 후손들이 무덤을 관리하느라 애를 썼지만, 여전히 풀이 나지 않아 적분(赤墳)이라고 했습니다. 최영의 고집은 좋은 의미인데 최 씨라서 고집이 세다고 하니 조금 억울합니다.
2. 나귀와 싸워 이긴 고집
고집은 최 씨만 센 것이 아닙니다. 발람은 최 씨보다 더 센 고집이 있었습니다. 발람은 그 고집으로 망한 사람입니다. 적당한 고집은 주관이 뚜렷하다고 하겠지만, 쓸데없이 뚜렷한 주관은 사람을 망하게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세와 함께 요단강 근처까지 왔을 때 모압왕 발락은 이를 두려워하면서 사람을 보내 발람 선지자를 불렀습니다. 소 떼처럼 이 땅을 지나가면 쑥대밭이 될 테니 와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라고 선지자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를 태우고 가던 나귀가 무릎을 꿇고 가던 길을 멈췄습니다. 발람은 들고 있던 지팡이로 나귀를 때렸습니다. 나귀와 선지자가 고집 대결을 벌이고 있습니다.
1) 길이 아니면 가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발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들이니라(민22:12).
애굽에서 나온 모세가 가나안으로 가기 위해 요단강 앞 모압 평지에 진을 쳤습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소문을 이미 들어 알고 있는 모압이 두려워 떨었습니다. 힘으로 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안 왕은 선지자를 찾아 불렀습니다. 와서 신의 이름으로 저들을 저주하라는 것입니다. 왕은 발람 선지자에게 사람을 보냈습니다.
발람은 와서 이스라엘과 모세를 저주하라는 왕의 말을 듣고 하룻밤 보내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은 가지 말라고 합니다. 가지도 말고 저주하지도 말라고 합니다. 그들은 복은 받은 자들이니 왕이 시킨다고 하더라도 결단코 가지도 말고 저주하지 말라고 합니다. 발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비록 왕의 부름이지만 정중하게 거절했습니다. 왕이 보낸 사람들은 하룻밤 묵은 후 빈손으로 돌아갔습니다.
가지 말아야 할 길에는 멈추라는 신호등이 있습니다. 가서는 안 될 길에는 경고 표지판이 붙어 있습니다. 위험하니 조심하라는 경고 신호만 잘 지켜도 대부분 사고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망하는 사람들은 이 잔소리를 듣지 않고 무시합니다.
2) 유혹은 물리쳐야 합니다.
밤에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왔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지니라(민22:20).
달콤한 유혹은 사람의 눈과 귀를 어둡게 만듭니다. 왕이 두 번째 불렀습니다. 더 높은 사람들을 더 많이 보내 제발 와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하라는 대로 다 하고, 달라는 대로 다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이 말을 듣고 다시 하룻밤 동안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너를 부르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고 허락합니다. 대신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하라는 단서 조항을 달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나귀를 타고 출발합니다. 왕이 은금을 준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고집입니다. 가서 옳은 말만 하겠다는 다짐은 이미 은금의 유혹에 끌려가는 자신에 대한 변명입니다. 한 발짝 망하는 길로 들어서는 자기 합리화입니다. 가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접어 두고 가라는 뜻으로 해석합니다. 망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허락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 소리는 가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고, 가고 싶은 자신의 마음에서 나오는 유혹입니다.
가서 옳은 말만 하겠다고 나귀를 타고 길을 나서지만, 나귀가 엎드립니다. 무릎을 꿇었습니다. 앞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길을 막습니다. 소리를 지르고 채찍으로 때려도 말을 듣지 않습니다. 들고있던 지팡이로 때려도 나귀가 일어서지 않습니다.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아야 한다는 것을 나귀도 압니다. 나귀도 아는 망하러 가는 길을 망하는 사람만 모릅니다.
3) 고집으로 망합니다.
발람이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하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당신이 나를 막으려고 길에 서신 줄을 내가 알지 못하였나이다 당신이 이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면 나는 돌아가겠나이다(민수기22:34)
나귀가 가던 길을 멈추고 무릎을 꿇은 것은 하나님의 사자가 길을 막았기 때문입니다. 나귀는 막힌 길은 안 가고, 못갑니다. 그러나 발람은 굳이 이 막힌 길을 뚫고 갑니다. 범죄라는 것을 알면서도, 옳은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돌아서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발람은 그 사람들과 함께 왕에게로 갔습니다. 고집입니다.
모세가 떠난 후 여호수아는 이 발람을 찾아 칼로 죽입니다(수13:22). 옳은 말만 하겠다고 가지 말라는 길을 굳이 가서 옳지 않은 말을 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에 염병이 돌았고 그 병으로 24,000명이 죽었습니다(민25:9). 그러니 여호수아의 칼에 죽고 말았습니다. 고집으로 망했습니다.
3. 애꿎은 나귀를 때리지 맙시다.
나귀가 말을 합니다. 왜 때리느냐고 합니다. 일생 동안 타고 다닌 나귀인데 언제 이런 적이 있었느냐고 합니다. 오죽 답답하면 나귀가 말을 합니다. 내가 뭘 잘 못 했다고 세 번씩이나 때리느냐고 나귀가 말을 합니다. 망하는 사람은 나귀가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망하는 사람은 나귀가 막아서는 길을 굳이 가겠다고 오히려 나귀를 때립니다. 망하는 사람은 나귀가 하는 소리는 못 알아듣고, 사탄이 하는 유혹의 소리를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확신합니다. 아버지는 집 나가는 아들의 고집을 꺾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망하는 사람의 고집을 꺾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