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넝쿨 사랑
(요나 4:10-11)
1.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3년 1월 1일, 새해 첫날 예배로 한 해를 시작하더니, 구정 설날 아침도 주일예배로 하나님께 영공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한 주간의 시작은 월요일이 아니고 주일입니다. 주말은 토요일, 일요일 빨간 글자로 적힌 날이 아니라 토요일이 주말입니다. 주일예배는 한 주를 잘 보내고 감사한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한 주를 새롭게 시작하면서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그 뜻 대롤 살기로 다짐하면서 우리의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주일 아침에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체 만으로도 감사한 일인데, 신정과 구정 모두 새해 첫 날을 예배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시작할 수 있는 해는 일평생에 여러 번 경험할 수 없는 아주 특별한 해입니다. 주님께서 그 특별한 은혜를 내려주시고, 하나님께서 그 큰 복 베풀어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2. 요나가 받은 복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가다가 큰 풍랑을 만나 도중에 바다에 벼려져 천신만고 끝에 큰 물고기가 물어 바닷가에 토해놓음으로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다시 니느웨로 가서 결국은 하나님의 심부름을 잘 해내고 유종의 미를 거둔 훌륭한 선지자입니다. 비록 시작은 바람직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고집부리지 않고 자기의 뜻은 굽히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 큰 성 니느웨 사람들을 위험에서 구해 내는 큰일을 하는 동안 물고기 배속에 들어갔다 나오는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요나가 경험한 기적, 요나가 받은 축복은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1) 박넝쿨 사랑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 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요나4:6)
불의로 가득했던 니느웨가 하나님의 벌을 받아 크게 망하는 것을 보고 싶었던 요나의 꿈은 좌절되었습니다. 그 끝이 어떻게 될지 궁금한 요나는 성 밖의 움막에 몸을 의지하며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해를 가려주던 박넝쿨이 갑자기 말라 그늘이 사라졌습니다. 한낮의 땡볕에 죽을 것 같아 쩔쩔매던 요나는 크게 깨달았습니다. 내가 심지도 않았고, 내가 기르지도 않은 박넝쿨 하나에 내 목숨을 걸고 죽느니 사느니 하고 있었던 자신을 발견한 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심고 기스시는 니느웨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구원하시는 것이 너무나도 마땅하고 지당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착하게 산 사람은 복을 받고 악하게 산 사람은 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었지만, 하나님은 착하지 못한 사람들도 사랑하신다는 것이 박넝쿨 사랑입니다. 박넝쿨 사랑은 내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내 생각과 다릅니다.
2. 다시스로 가던 편안한 길
사공들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들을 바다에 던지니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요나1:5)
요나를 태우고 다시스로 가던 배는 큰 풍랑을 만나 가던 길을 멈추고 말았습니다. 바다에는 파도가 가득했고 배 안에는 두려움이 가득했습니다. 배를 볍게 하려고 배 안의 물건들을 배 밖으로 다 내버렸습니다. 선장과 함께 배 안의 모든 사람이 풍랑과 사투를 벌이고 있을 때, 요나는 배 아래층에서 깊이 잠자고 있었습니다. 배 밖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배 안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바다만 풍랑으로 시끄럽고, 배 안의 사람들만 살아보겠다고 아우성이지 정작 요나는 천하태평 잠자고 있습니다. 파도도 풍랑도 요나와는 상관이 없었습니다.
요나가 가는 길은 옳은 길이고, 정의의 길이었습니다. 불의한 세상이 시끄럽고 부정한 사람들만 어수선할 뿐 정작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요나의 길을 옳고 정의로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정의로운 요나의 길을 막으셨습니다. 그 배를 멈추게 했고, 그 배에서 내리게 하셨습니다. 다시스로 가려던 길은 막혔고 그 꿈은 깨지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다시스 길을 막고 그 꿈을 깨트리지 않는다면 결국 요나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니느웨가 아니라 다시스로 가는 꿈을 이루고 말았을 것입니다.
요나는 니느웨 구원이라는 큰 사명 받아 감당하기에 충분하도록 하나님을 경외하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요나는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고 자신을 알렸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하나님의 뜻에 반하여 자신의 길로 가고 있음을 자백하며 바다에 던져졌습니다. 어느 것 하나도 자기의 뜻대로 되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적어도 그가 물고기 배 안으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박넝쿨 사랑입니다.
3) 되돌아 가는 배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으니라(요나1:17).
욥바는 지중해를 통해 사방으로 나아가는 중요 항구입니다.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탓던 요나는 긴 여행 끝에 제자리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옳은 길, 정의의 길을 찾아 나섰지만 그 길은 막혔고 그 꿈은 깨진채 삼 일 밤낮을 물고기 배 속에 들어 앉아있다가 결국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헛고생만 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삼일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고, 그 시간은 결코 헛된 시간이 되지 않았습니다. 요나는 스스로 자신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다시스로 가는 길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으며, 풍랑이 일어 뱃길이 막힌 것도 내 탓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바다에 던져지기를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요나를 그냥 버려두지 않고 큰 물고기를 준비하여 요나를 다치지 않도록 받았습니다. 물고기 배 안으로 넣어 더 이상의 위협히 가해지지 않도록 보호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박넝쿨 사랑입니다.
3. 호박이 넝쿨째 굴러 들어오는 복
우리는 지금 욥바 항구에 서 있습니다. 니느웨 뿐만 아니라 세상 어디로든 갈 수 있는 배들이 항구 가득 들어차 있습니다. 어느 배를 탈 것인지는 내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혹여 니느웨가 아니더라도 하나님은 다시스로 가는 길조차 치키고 인도하여 결국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자리에 데려다 놓으실 것입니다. 물고기 배 속을 경험하는 기적, 심지도 않고 기르지도 않은 박넝쿨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