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을 부르는 목자의 음성
(요한복음 10:1-6)
1. 소경과 나사로 사이
베다니라는 마을에 마리아와 마르다 두 자매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마리아는 주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 머리털로 닦아준 여인으로 나사로는 그의 오라버니인데 젊은 나이에 죽었습니다.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애를 쓰다가 주님께 살려달라고 부탁했지만 그만 죽었고, 장사지내고 나흘 만에 주님이 왔습니다. 모두가 낙심하고 있을 때, 주님은 나사로의 무덤으로 가서 “나사로야 나오라”고 부르니 죽었던 나사로가 온몸을 베로 동인 채 무덤 밖으로 나왔습니다. 주님은 죽은 나사로를 무덤 밖으로 불러 내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고 하셨습니다(요11:44).
어떤 사람이 나면서부터 소경으로 태어났는데, 어느 날 눈이 멀쩡하게 다니는 것을 보고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그를 불러 놓고 어찌 된 일인지 물었습니다. 길에서 예수라는 분을 만났는데, 그가 내 눈에 진흙을 발라주며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해 그렇게 했더니 눈이 떠졌다고, 자초지종을 알려주었습니다. 그의 부모를 찾아가 확인했지만, 소경으로 태어나 앉아서 구걸하며 살았는데, 지금은 눈을 뜨고 똑바로 보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바리새인들은 오히려 그 사람을 쫓아냈습니다(요9:34). 바리새인들은 소경이 눈을 뜨고, 구걸하던 자리를 정리하여 건강하게 되었는데, 반갑게 맞으며 축하하기보다는 그날이 안식일이라는 이유로 오히려 따돌려 문밖으로 내쫓고 말았습니다.
2. 양을 부르는 목자의 음성
주님께서는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소개합니다. 도둑놈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러 다가오지만, 주님이 우리에게 온 것은 선한 목자로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고 왔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더 풍성한 생명이 있습니다. 이만하면 되었다고 만족하지 말고, 주님께서 주시는 더 풍성한 생명의 주인이 됩시다. 더 풍성한 생명을 가지려면 이렇게 해야 합니다.
1) 내 목자가 있어야 합니다.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고로 따라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요한복음 10:4-5)
인명은 재천이라고 합니다. 사람의 생명은 비록 내 생명이지만 내 맘대로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살고 죽는 것이 내 맘대로 되지 않습니다. 나아가 더 풍성한 생명도 하나님께서 주시고 덜 풍성한 생명도 하나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죽은 나사로를 살려 무덤 밖으로 나오게 했습니다. 그의 수명을 다하고 죽은 나사로에게 더 풍성한 생명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무덤에서 나온 나사로는 더 풍성한 생명을 덤으로 받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 소리 듣던 바리새인들은 나면서부터 소경으로 살다가 주님을 만나 더 풍성한 생명을 얻은 사람을 문밖으로 내쫓았습니다. 더 풍성하기는커녕 그나마 있는 생명조차 위협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더 풍성한 생명은 “내 목자”와 “내 양”이 서로 생명을 주고받는 아주 특별한 관계입니다.
2) 내 우리가 있어야 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요한복음 10:1-2).
울타리가 때로는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좋든지 싫든지 양은 내 우리가 있어야지 편합니다. 더러 좁기도 하고, 더러는 남의 집이 더 커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아도 남의 우리는 내가 들어가 쉴 수 없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날아다니는 새도 깃들이 둥지 하나는 가지고 삽니다. 양은 저녁이 되면 들어가 쉴 내 우리가 있어야 합니다.
양이 제집을 찾아 들어가는 것은 거기 내 목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 내 가족이 있기 때문입니다. 높은 울타리가 쳐져 있고, 드나드는 문이 단단하게 매달려 있는 우리가 있기에 양은 종일 그 넓은 벌판을 마음 놓고 뛰어다닐 수 있습니다.
양이 길을 잃는다는 것은 집을 잃는 것입니다. 돌아갈 집, 돌아갈 우리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양은 길을 잃는 순간 늑대의 밥이 됩니다. 더 풍성한 생명은 따듯하고 편안한 내 집이 주는 아주 특별한 은혜요 선물입니다.
3) 내 문지기가 있어야 합니다.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요한복음 10:2-3).
문지기는 문 앞에 서서 기다리다가 사람이 오면 문을 열어주고, 들어가고 나면 다시 문을 닫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문지기는 단순하게 문만 열었다 닫는 것이 아니라 그 문을 지나가는 사람의 신원을 확인하여 들어갈 사람과 들어갈 수 없는 사람을 구분해서 제한합니다.
양의 우리를 지키는 문지기는 양을 확인합니다. 양인지 늑대인지 확인해서 늑대에게는 문을 열어주지 않습니다. 양이라 하더라도 남의 양은 들어올 수 없습니다. 문지기는 양뿐만 아니라 목자도 확인합니다. 양을 돌보는 목자인지 아니면 양을 죽이고 훔쳐 가려고 들어오는 도둑놈인지를 확인합니다. 풍성한 생명은 문지기가 그 사명을 다할 때 주어지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요 축복입니다.
3. 목자의 음성
북한은 1.7%, 미국은 65%, 이스라엘은 3.5%, 아프가닌스탄은 0%, 바티칸은 100%인데 우리 대한민국은 27.6%랍니다. 전체 인구 중에서 예수를 믿는 기독교 인구 즉, 개신교와 천주교와 성공회 등 기독교 인구 비율입니다. 2024년 세계 46개 나라 중에 31번째랍니다. 잔치를 준비하던 열 처녀 중에 미련한 다섯 처녀가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주소서”라며 애타게 불렀지만, 대답은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이었습니다(마25:11-12).
대통령은 5년에 한 번씩 바뀝니다. 국회의원은 4년 지나면 다시 뽑습니다. 살던 집도 더러는 정리하고 다른 집으로 이사를 합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조금 다릅니다. 아무리 멀리 이사 해도 가족은 함께 갑니다. 아무리 멀리 갔더라도 내 집으로 돌아옵니다. 거기 내 가족이 있기 때문입니다.
양이 목자를 알아보는 것은 들고 있는 지팡이가 아닙니다. 입고 있는 옷이 아닙니다. 목자의 음성입니다. 목소리를 알아듣습니다. 내 목자의 음성, 내 양의 소리, 내 우리의 비밀번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