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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월 시 번역]
이원걸(문학박사 : 성균관대학교 대학원/한국한문학 전공)
應長者呼韻[七歲時作]
地闊靑山小、天高白日遲。
人生宇宙內, 幾箇是男兒。
어른들의 명에 따라 시를 지음[일곱 살 때 지음]
넓은 지구 위의 작고 푸른 산, 하늘은 넓은데 태양은 느리게 기우네.
우주 사이 인간 세상에서, 진정한 남아는 몇이나 될까.
秋興
倦倚疎欄納晩凉、風流新薄敗荷塘。陶濳嗜酒山巾短、張翰乘秋海帆長。
煙雨江鄕棃棗熟、風霜水國蟹螯香。天翁好事今方驗、立立峯巒紫繡糚。
가을 흥취
무료해 난간에서 서늘한 늦가을 느끼고, 풍류도 줄고 연못의 연꽃도 시들었네.
도잠은 술을 즐겨 산속의 갓이 낡았고, 장한은 가을 맞아 돛을 길게 달고 항해했네.
비 내리는 고향 배와 대추 익고, 바람 불고 서리 내리는 섬마을의 게 맛이 향기롭네.
조물주가 일 즐김을 이제 체험하였으니, 봉우리 멧부리마다 자줏빛 수를 놓았네.
冬至夜、次朱文公韻
剛反兀從子夜䨓、乾坤都向一陽開。陰陽此理恆消長、須識天行七日來。
동짓날 밤에 주문공의 시에 차운하며
굳센 것이 이내 한밤이 되면 느슨해지고, 천지가 모두 양을 향해 열려지네.
음양의 이치는 서로 사라졌다가 생성되니, 하늘의 운행은 일곱째 날이 되면 온다네.
鼎山院、次趙月川先生韻
萬疊層巒九曲流、一區形勝擅東邱。髦儒碩士藏修地、地護神扶萬億秋。
정산원에서 월천 조목 선생의 시에 차운하며
만 겹 산 따라 아홉 구비 강물 흐르는데, 이 구역 좋은 경치 영남에서 으뜸일세.
빼어난 유림 걸출한 선비가 몸 숨겨 수양했으니, 신께서 이 땅을 영영 보호하리라.
壬午秋、皇太子誕生、詔使東來、將以明年大擧蒐才
玉節東來下慶章、漢庭將試董賢良。雲開北海龍吟壯、霧捲南山虎嘯長。
誰道桓文能霸世、必稱堯舜便陳王。十年衡泌長吟志、不爲紅塵逐臭香。
임오년 가을은 황태자의 탄신일이어서 조사가 조선으로 와서 장차 내년에 크게 인재를 모을 계획임
사신들 오자 경사스런 글이 드리워져, 궁궐에서 과장이 열려 어질고 좋은 인재 뽑네.
북해에 구름 걷히자 용이 웅장히 트림하고, 안개 걷힌 남산에 범이 길게 울부짖네.
그 누가 환문이 세상을 제패할 줄 알았으랴. 필경 요순이 왕도를 펼치리라 했네.
형필은 십 년 간 품은 뜻 길게 토로하며, 티끌 세상의 시류를 따르지 않았다네.
枕流亭、次郭景含[守智]韻
古峽三淸界、澄潭五月秋。孤村漁蓫晩、暝度一沙鷗。
침류정에서 경함 곽수지의 시에 차운하며
오래된 계곡은 삼청의 세상이니, 오월의 깨끗한 연못일세.
외딴 촌에선 늦도록 물풀 사에서 고기 잡고, 모래펄엔 물새가 밤을 지새우네.
雲院別友生
洪與李與南汝源、唯我與爾在是夫。明朝欲作雲樹別、把酒相看腸欲無。
운원에서 벗을 전송하며
홍과 이와 남녀원 가운데, 오직 나와 그대만이 장부일세라.
내일 아침이면 구름 낀 나무에서 이별하리니, 술잔 들어 바라보니 창자가 끊길 듯.
送黃光遠曙赴輸城
瀚海秋光屬馬頭、禦寒猶未念重裘。桑蓬喜售平生志、唯把斑衣惜遠遊。
황광원을 전송하고 새벽에 유성에 당도하여
말 머리에 가을 넓은 바다 펼쳐졌고, 추위 막을 겹 갖옷 갖추지 못했네.
지난 세월 동안 함께 기뻐하였는데, 얼룩무늬 옷 여미며 멀리 떠나는 그댈 전송하네.
次吉注書碑韻
1.
平生事業祖詩書、晩直天崩退舊居。宋端難謀扶宋日、殷師不忍過殷墟。
精神萬古通天地、忠義千秋表宅閭。頭上一天魂耿耿、首陽山下有知予。
길주서의 비석 운에 차운하며
평생 시서를 익히다가, 만년에 임금님 타계하시자 옛 터전에 은거했네.
송단은 송나라 이어감을 도모키 어려웠고, 은사는 은나라 유허지를 지나지 못했네.
만고에 빛날 정신은 천지에 통했고, 천추에 빛날 충의는 집안과 고을에 빛나네.
고개 들어서 하늘 우러르며 근심하나니, 수양산 아래 나를 알아보는 이 없다네.
2.
一節元無愧讀書、成仁就義是安居。魂隨夜月朝王祖、恨作秋煙鎻麥墟。
忠義已收太史筆、江山不改注書閭。椒漿一酹山雲暮、男子流芳宛襲予。
곧은 절의 시서에 부끄러움 없었고, 어짊을 이루고 의로 나아가 편안히 지냈네.
혼백은 밤마다 달빛 아래 왕조를 조회하고, 가을 들판 연기가 빈터 맴도니 한스럽네.
3.
漢宮來奏一對書、卻借南鄕十畝居。柳絮不沾劉雨露、樹枝猶向宋邱墟。
洛川魚鳥知名字、烏嶽風煙護里閭。萬古忠寃誰識取、碧天明月照臨予。
한나라 궁궐에 가서 한 번 대책문 올리고, 남향하여 열 이랑 밭 갈고 살았네.
버들 솜처럼 우로에 젖지 않았고, 나뭇가지는 여전히 송나라 옛땅을 향해 자랐네.
낙천의 물고기와 새도 그대 이름 알았고, 오악의 바람과 연기는 마을 문을 보호했네. 만고 충성의 원통함을 누가 알지, 푸른 산의 밝은 달빛만 날 비춰준다오.
送高景樞遊小白
君作山中遊、山中春未老。白雲入袖來、長空淡如掃。
自恨老昌黎、塵綠脫未早。錦囊收拾煙、霞祕歸來詑。
고경추를 전송하고 소백산을 유람하며
그대가 산중에서 노니니, 산속의 봄이 다 지나지 않았네.
흰 구름이 소매로 스며드니, 넓은 하늘 비로 쓴 것처럼 깨끗하네.
스스로 늙은 창려처럼 세상 인연 일찍 떨치지 못한 게 한스럽네.
비단 주머니에 신비한 이내를 가득 담아와 자랑한다네.
在苞山、次安仲賀[應一]惠韻
霜野秋深水國幽、思親千里愧南遊。毗山影接浮山遠、洛水波連竹水脩。
紫錦近分糚晩峀、黃雲遙見捲遐疇。一聲海鴈三更月、半是秋愁半客愁。
포산에 있을 때 중하 안응일의 ‘혜’운에 차운하며
가을 깊은 들판의 물가는 조용한데, 천 리 고향의 어버이 그리운 남쪽 유람일세.
비산 그림자 먼 산까지 맞닿았고, 출렁이는 낙동강은 대나무 숲 따라 흐르네.
늦가을 산은 자줏빛 비단으로 물들었고, 누런 구름이 저 멀리 밭두둑에 드리웠네.
달빛 비친 삼경에 바다 갈매기 울고, 가을 우수에 나그네 근심이 겹쳐졌네.
煙雨牧牛
淸曉疎煙一抺輕、輕風吹散羃前坰。兒童但識騎牛樂、詎解身遊水墨屛。
가랑비 내릴 때 소를 치며
맑은 새벽 성근 연기 가벼이 피어오르는데, 앞 들판에 가벼운 바람이 살랑대네.
목동 녀석 소 등에 올라타 즐기느라, 수묵화 병풍 속에 놀고 있음을 모르겠네.
書瘟㽺方後
上世皆登仁壽鄕、熙熙民物絶橫殤。何緣大建醫邦策、火盡人間辟瘟方。
온역방 후지를 쓰며
옛날엔 모두 오래 사는 고향에서, 백성들 만물과 즐겁게 오래 살았다네.
어이해야 병 고치는 대책을 크게 세워, 세상의 재앙을 멸하고 역병도 피하게 하랴.
雲院、重三呈朴山長
霽月橋邊花似錦、光風臺丁水如苔。浩然天地無邊趣、收入罇前酒一杯。
운원에서 박산장에게 두세 번 시를 올리며
제월교 가엔 비단처럼 고운 꽃 피었고, 광풍대 아랜 이끼 같은 푸른 물 흘러가네.
호연한 천지는 끝이 없으니, 술 동이 앞에 두고 술잔을 들이키네.
壬癸年
自我之先幾千古、自我而後幾萬年。兵連歲惡民無子、只怨生丁壬癸天。
임계년에
나로부터 천고 세월 앞서 있었고, 나 이후로 몇만 년 뒤에 있으리.
병란 이어지는 모진 세월 자식도 못 낳으니, 임계년만 생각하면 원통하네.
送黃光遠赴富山軍幕
之子富城去、鐵衣又鐵冠。廟謨雖克壯、時事自多端。
主辱哀愈憤、邦危枕未安。此行澄海嶽、耿耿只心丹。
황광원이 부산 막사로 떠남을 전송하며
그대가 부성으로 떠나가니, 철갑옷에 철관을 썼네.
조정의 명하심이 심히 웅장하나, 시세의 일은 어수선하다네.
주상의 욕보심은 애통하고 분하니, 나라가 위태로우니 편히 잘 수도 없다네.
이 행차로 온 천지가 새로워질 것이니, 빛나고 빛날 그대의 일편단심이여!
次養眞齋金栢巖韻、贈安典籍[憙]
一春光景屬雲巒、鳧舃來尋峽裏寰。四海風塵猶滿目、一場詩酒強偸閒。
芳罇已倒傾前釀、新蕨初肥採後山。山酌再謀巖上話、高情先到翠徽間。
양진재 김백암 운에 차운하여 전적 안희에게 주며
봄빛이 구름 두른 산에 미치니, 물오리 깊은 골짜기로 날아들어 노니네.
온 세상 풍진이 눈에 가득하나, 시를 짓고 술 마시며 한가로움을 누려보네.
술 단지 비었고 앞 단지도 기울었고, 뒷산의 고사리 살이 올랐으니 따러가세.
偶吟
王業如何可復基、不憂兵食不憂時。長街快梟奸憸首、而後方論討叛夷。
우연히 읊음
어떻게 해야 왕업의 기반을 다질지, 전란 막고 배불리 먹고 시절 염려치 않음일세.
거리엔 교활한 올빼미처럼 간사한 이들 판쳐, 이속 채우고 오랑캐 토벌할 궁리한다네.
謝光遠勸酒
사광원이 술을 권하며
1.
明珠何病伏波翁、多口紛紛最可恫。行路之難險於水、一方泉石足安躳。
복파옹에게 구슬이 무슨 필요 있는지, 구설수 분분함이 가장 마음 아프네.
인생 험난함은 강물보다 심하니, 샘물 흐르는 자연 한 구석에서 몸을 보존하네.
2.
兩山無語自崔嵬、山下浮雲任往來。日出雲消眞態露、蒼顔依舊碧於苔。
말 없는 두 산이 쭝긋하게 솟아있고, 산 아래 뜬구름 자유로이 오락가락하네.
해 오르고 구름 사라질 때 참모습 드러나, 예전 그대로 푸른 산은 이끼보다 푸르네.
以書筵進講、書院綱目上進、仍書其意
洪惟恭憲大王年、一部糚■下九天。拜獻經帷西去路、白雲猶惹紫芸編。
경연에 진강하게 올리고 서원강목을 올리며 본의를 쓰다
넓고 크신 공헌대왕께옵서, 한 부를 꾸며 구천에 내리셨네.
절하며 올리는 경연 장막 서로에, 흰 구름 자색 무늬 드리우며 책에 엉키네.
歲旱
虐魃爲灾五月天、茫茫大地欲生煙。洛東江水深千尺、不澤生民數井田。
가뭄에
잔혹한 오월 가뭄 이어져, 타들어 가는 대지에 연기가 피 오를 듯하네.
깊고 푸른 낙동강 물 넘실대지만, 백성들 논밭을 적셔주질 못하네.
輓閔參軍興業
家傳詩禮志無渝、一榻相從分義殊。半世襟期眞石友、末年恩命執金吾。
堂前忍見悲巢鳥、林下無聞反哺鳥。引紼未從元伯柩、此生長負更堪吁。
참군 민흥업의 죽음을 슬퍼하며
집에서 시례 익혀 변함없는 지조 지녔고, 함께 종유하며 분수와 의리 지켰네.
반평생 진실하고 올곧은 벗으로 지냈고, 말년에 어명으로 금오랑을 하사받았네.
집안은 넉넉하게 못했고, 자연에 묻혀 알려지지 않은 채 효도하며 살았네.
잣나무 널의 상여줄 부여잡고 슬퍼하니, 이제 이 세상 영영 떠나니 애통하도다.
自遣
百年三萬六千日、懽樂幾時憂幾時。十年強半臥牀裖、 强半爲人說是非。
소회를 펼치며
백 년은 삼만 육천 일이니, 즐거움이나 근심의 날이 그 얼마이랴.
십 년 세월 동안 반쯤은 누워 잠들고, 반쯤은 남의 잘잘못을 입에 올린다네.
山中
老臥靑山雲作伴、雲鳥龍役更奔忙。風來卻與隨玄化、北走南翔也未遑。
산 속에서
늘그막에 푸른 산에서 구름과 짝하니, 구름 속 새와 용처럼 다시 분주하다네.
바람이 불어오자 변화하여, 북으로 달리고 남으로 날아 겨를조차 없다네.
偶吟
姓名倉不挂王章、病㐲林泉五十強。飢便採山慵便睡、淸問一味者尤長。
우연히 읊음
성과 이름을 드러내지 못했고, 병약한 채 임천에서 오십 년을 살았네.
주리면 산나물 뜯어 먹고 졸리면 자고, 청아한 질문에 더욱 흥미롭네.
病中逢春有喜
多病年來謝討文、土牀長臥送朝昏。此身有似逢寒蟄、直待春風始出門。
병으로 누워지내다 봄이 되어 맘이 즐거워
근래 병이 잦아 글 짓는 것도 접고, 나무토막처럼 누워 지냈다네.
추위 두려운 벌레처럼 웅크리며 지내다가, 봄바람 불어와 문을 나서네.
過玉川、夜抵金行初草堂、主人適出、獨宿、仍題。
草室靜而寂、薄暮來栖宿。主人歸不歸、寒燈伴霜菊。
옥천을 지나다가 밤에 김행초의 초당에서 묵었는데 마침 주인이 출타하여 혼자 자다가 시를 지음
아담한 초당이 참으로 조용한데, 저녁이 되자 여기 와서 잠드네.
주인을 출타하여 돌아오지 않으니, 차가운 등불 켜고 서리 내린 국화 감상하네.
偶題
是是非非我不知、紛紛辭說各張旗。直須山嶽分明語、人世方能定是非。
뜻하지 않게 지음
시시비비는 내 알 바 아니니, 저마다 분분한 사설로 언성을 드높이네.
곧은 산 가리키며 분명히 말하건대, 세인들은 시비를 멈춰야 한다네.
落花
風動梨花點點飛、高沾羅綺下汚池。無情卉木寧分別、一任隨風不自知。
낙화
배꽃 핀 나무에 바람 불자 꽃잎이 펄펄 날아, 비단옷이나 진흙탕에 떨어지네.
무정한 저 나무가 무엇을 알겠냐만, 바람이 부는 대로 날아가 떨어질 뿐이라네.
逸士傳
臣思遇主主遇臣、會合元因氣類親。主欲臣恭多傲物、臣須主禮竟濳鱗。
尹非殷聘終華野、呂失周畋老渭濱。漢漠乾坤塵霧暗、雲山埋沒幾番人。
일사전
신하와 임금은 서로 잘 만나야 하니, 만남은 원래 기질이 같은 이와 친한 법.
임금은 신하를 공손케 하려고 거만 피우고, 신하는 예를 앞세워 재주 숨기네.
윤은 은의 부름 거부하고 초야에서 지냈고, 여는 주의 사냥터 잃고 위수에서 늙었네.
卞和
변화
1.
卞生懷璧豈要君、惟惜希珍世未聞。不有當年三刖獻、至今埋沒楚山雲。
변씨가 구슬 품고 임금 알아주길 기대했지만, 애석하게 구슬을 알아주질 않았네.
세 번이나 발을 베이면서 바치지 않았다면, 그 구슬 여전히 초산에 묻혀있으리.
2.
卞翁非妄是顚狂、抱王竆山枉自戕。楚水荊雲無限寶、當年那得盡輸王。
변옹이 망령됨이 아니라 미친 정도이니, 산에서 구슬 안고 미칠 듯 슬퍼했네.
초의 강물과 형의 구름은 무한한 보배이니, 그 당시에 모두 황제께 가져가 바치지.
舟人
洋海翩然一葉舟、舟人南北各殊謀。檣傾楫倒渾無管、輸載應知一壑憂。
뱃사공
바다 위에 두둥실 뜬 조각배, 사공들은 남북으로 노 저으며 고기 잡네.
돛대 기울고 노가 뒤집혀 어이할 수 없어, 싣고 나르는데 온통 근심일세.
自笑
十分初心久未攄、居然華髮已紛如。塵泥自古多閒蟄、何數林崖木魯渠。
스스로 웃음
십분 초심 지녀도 오래 가질 못했고, 어느덧 흰 머릿결 흩날리네.
진흙땅에는 예로부터 한가한 벌레 많나니, 숲 언덕 도랑에 무수히 많다네.
輓李參奉[㠍]
追憶芳塵猥後隨、十年前事總依依。丁寧奉晤三春日、慘憺新阡十月時。
花萼庭前偏帶恨、琴書牀下孰爲持。從前一約抛虛地、白首山陽無限悲。
참봉 이첩의 죽음을 슬퍼하며
생전에 외람되이 종유했던 일 추억하며, 십 년 전의 일 흐릿하게 떠오르네.
봄날을 함께 보내며 모셨더니, 시월에 저 언덕에 새 무덤 지어졌네.
주인 잃은 뜰 앞의 꽃들도 슬픈 듯하고, 책상 아래 거문고와 서책을 누가 간수하리.
지난 시절 약속을 모두 저버렸는데, 이 늙은 몸 산 남쪽에서 슬피 운다네.
白虎吟
南山有虎齒如斧、白日咆咻掀山阿。長安壯士皆股戰、閉門縮首如凍蝸。
橫行負嵎誰敢攖、袖手傍觀無奈何。江西老將眞馮婦、攘臂長嘯橫金戈。
脾睨白額如狗兒、霜刃一掣披兇牙。人皆大呼生竟氣、庸懶賈勇思陵加。
堪笑鄰翁不量力、卻向阿豚施冷訶。
백호가 울부짖음
남산에 도끼 같은 이빨 지닌 법이 있으니, 대낮에 울부짖어 온 산을 뒤흔드네.
한양 고을 장사들도 맥을 못추고, 문 닫아걸고 달팽이처럼 숨어 지내네.
산을 누비며 다니는데 누가 감당하리. 수수방관할 뿐 어찌할 도리가 없네.
서강 늙은 장수 참으로 용맹하여, 팔 걷어붙이고 휘파람 불며 창을 어깨에 걸쳤네.
백호 낯짝 보기를 강아지 보듯 흘겨보더니, 번쩍이는 창날로 놈의 이빨 후리쳤네.
사람들 큰 소리로 놈의 기력 다한 것 놀랐고, 만용을 부리다가 죽음 맞았다 하네.
가소롭긴 이웃 노인이 역량을 돌보지 않고, 아둔을 향해 냉소한다네.
梅子
手種雙梅樹、春來結子多。團團排碧玉、箇箇絡靑珂。
何用周筐墍、端宜殷鼎和。但教根本在、棄擲不須訶。
매실
매실 두 그루 심었더니, 봄 되자 제법 열매 맺혔네.
동글동글 푸른 구슬, 알알이 푸른 구슬일세.
주나라 광주리가 필요치 않으니, 은나라 솥의 음식에 간 맞추리.
가르침의 근본이 남아 있으니, 버릴 필요가 없다네.
歎老
兩耳帶聲聞亂管、雙眸隨物掩輕紗。此心未老身先老、皓首藜牀感慨多。
늙음을 탄식하며
양쪽 귀에 갈대 서석대는 소리 들리고, 두 눈동자엔 가녀린 실밥이 가려진 것 같네.
내 마음 늙지 않았건만 몸이 먼저 늙어, 백수로 지팡이 짚으니 서글퍼지네.
詠史、感書
齊城七十四、比義片雲空。在糾雖當死、爲桓亦忍哀。
庳封綠象愛、管殪職庚同。臧札千年跡、三薰遡遠風。
역사서를 보고 느낌
제나라 성은 칠십 일곱 개, 의에 견주듯 공중에 뜬 구름 떠오르네.
분규로 당연히 죽어 마땅하나, 환을 위해 슬픔을 참는다네.
비는 모양을 좋아했고, 관은 죽은 뒤 동경 직을 받았네.
그 역사 천 년을 내려오고, 삼훈은 먼 유풍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네.
霽後
雨後殘雲濕不飛、靑山新沐帶羅幃。朝來意味殊佳勝、正屬騷人覓句時。
날씨가 갠 뒤
비 온 뒤 쇠잔한 구름 젖어 날지 못하고, 머리 감은 청산은 비단 장막 둘렀네.
아침 되면 의미 달라져 승경이 되니, 참으로 시인들의 시재로 적당하리.
炎夏病臥、見庭陰醒然
窩㝔深幽不見明、炎天煩惱若爲情。柴門鎻斷無人問、惟喜庭陰送晩淸。
더운 여름철에 병으로 누웠다가 마당 음지 기운을 차리며
으슥한 작은 오두막 침침한데, 무더위에 시달려 참 괴롭게 지냈네.
사립문을 열건 닫건 누구도 상관 않고, 뜰의 음지에서 때늦은 상쾌함 누리네.
冬夜聞雞
長宵無寐境沈沈、輾轉寒牀未著衾。淸叫一聲開病耳。鳴雞奚啻直千金。
겨울밤에 닭울음 소리 듣고
긴 밤에 잠 못 이룬 채 뒤척이다가,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이불도 덮지 않았네.
꼬끼오 닭 울음 병든 내 귀에 역력히 들리고, 닭울음 소리가 천금의 가치 지녔네.
夢權應諧[協]
一別音容泉路長、如何今夜到吾傍。哀情不與幽明隔、擬訣從前未盡腸。
꿈에 응해 권협을 만나
한 번 헤어진 후 오래오래 아득했더니, 오늘 밤에 그대는 내 곁으로 와주었소.
저승과 이승에서 우정을 나누지 못했더니, 제문 지어 다 못한 말 전한다오.
輓應諧
素牋今抵我、云祖應諧喪。䛶子吾何忍、緘辭淚自滂。
無竆情義地、未訣死生腸。孤介心無累、端方立有疆。
群馳能駐足、衆毁不要芒。早托金蘭契、相從翰墨坊。
砭頑常比義、撿行每依方。自我縻痾久、煩兄記念長。
書來言更複、便至問猶詳。兩地雲山路、三霜月屋梁。
常懷俟病間、相造吐心藏。在夏時方燠、逢君喜欲狂。
顚忙欣執手、信宿爲聯牀。積歲思千緖、通宵敍一場。
黃梁辭曉早、靑眼擬秋凉。違面纔經莢、因風訝患瘍。
但言仁必壽、那意藥無艮。東去思醫疾、西歸未返堂。
哀情猶耿耿、世事更茫茫。江夏無雙彦、任家不少卽。
猶爲積慶報、無謂降年忙。多愧身縻恙、無由哭薦觴。
此生將底托、非子爲誰傷。吉日涓陽月、佳城卜舊岡。
長呼阻遠紼、和淚寫哀章。不昧心猶在、松煍曉月光。
응해의 죽음을 슬퍼하며
흰 종이 부고가 날아드니, 응해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네.
제문을 내 어찌 지으리, 붓을 들자 눈물이 펑펑 쏟아지네.
무궁한 정이 생각나는데, 생사를 다 말하지 못한다네.
고결한 마음은 걸림이 없었고, 단정하고 올곧아 경계가 있었네.
세인들 내달렸고, 훼방을 놓아도 무관했다네.
일찍부터 신실한 우정을 맺어, 문단 활동에도 종유하였네.
모난 날 의리 따라 깨우쳐주셨고, 방도에 따라 행동을 검속케 하셨네.
나 역시 병마에 오래 시달려, 형을 오래 번거롭게 하였던 것 생각나오.
서신으로 거듭 말씀해 주셨고, 질문에 상세히 답해주셨네.
사는 곳이 구름과 산이 막혀, 서리 내리는 가을의 지붕엔 달이 휘영청 떠올랐네.
병 차도 있을 때를 기다려, 서로 만나 심회를 터놓고 말했다네.
여름철에는 매우 더웠지만, 그대 만나 기뻐하며 즐거웠네.
기뻐하며 내 손을 부여잡고, 자리를 나란히 하여 잠을 잤다네.
오랜 세월 쌓은 정회가 깊어, 밤 내내 이야기하며 지냈다네.
새벽에 기장밥 먹고 헤어져 이별했고, 가을에 다시 만나길 기약했네.
서로 만나지 못한 채 얼마 지나, 나는 풍을 맞아 자리에 누웠다오.
어질게 살아 오래 살 것이라 믿었더니, 갖은 약을 써봤어도 소용이 없었네.
동쪽으로 떠나니 병 고칠 의원이 생각나고, 서쪽으로 돌아가 집에 오질 않았네.
애닯은 정은 아직도 사무치지만, 세상사가 다시 아득해졌다네.
여름철 강마을엔 친한 이 없으니, 집안 일거리 역시 적지 않았네.
적선하면 넉넉한 경사의 보답 있다 했으니, 허망하게 세상 떠날 줄 몰랐다네.
이 몸에도 병마들이 달라붙어, 그대 죽음에 곡하러 가질 못해 한스럽소.
이 생애 어디 의지하려나. 그대를 위해 누가 슬퍼해 주리.
길일 연양월에, 옛 언덕에 무덤이 만들어졌네.
영영 떠나감을 슬피 울며 이별하니, 눈물이 제문을 적신다오.
나의 마음속에 그대 남았으니, 송추에 새벽 달빛 처량히 비치네.
採朮
半生多病臥林泉、入戶靑山作好綠。斲盡霜崖蒼白朮、烹來聃與濟殘年。
차조를 캐며
반평생 병치레하며 임천에서 지냈는데, 푸른 산으로 들어가면 푸른 빛 좋아라.
서리 내린 언덕 푸르고 흰 백출 캐어, 달여 마시며 목숨 보전하려네.
次趙都事韻贈成城主[以敏]
1.
祥麟毛骨瑞星精、灑落胷襟玉蘊貞。皂蓋偏邦新惠洽、玉堂虛位舊僚驚。
曾圍筆陣奴王隸、早築騷壇主夏與。暫屈竆閻聊採俗、小車隨處溢歡聲。
조도사 운에 차운하여 성주 성이민에게 주며
상서로운 기린 자태에 별빛도 정결하고, 흉금 깨끗이 씻어 구슬 품은 형상일세.
좁고 작은 나라에 새 은혜가 흡족하고, 옥당에 자리 비어 옛 관료들 놀라네.
일찍이 문단에서 큰 활약을 했고, 시인들 사이에서 맹주로 지목되었네.
궁한 시골에서 살며 세속을 멀리하여, 작은 수레 지날 때 환호성 높았네.
2.
山河儲淑降元精、天與王家表世貞。氣壓九垓龍虎躍、詩傾三峽鬼神驚。
仁誠自有陳元化、信義無煩季路盟。衙罷聲簾無箇事、邑人時復聽琴聲。
깨끗한 산하에 정기가 내려오고, 하늘과 왕가에 곧음으로 알려졌다네.
세상에서 기에 눌려도 용과 범은 날뛰고, 시가 삼협에 알려져 귀신도 놀랐네.
어질고 정성스러우면 저절로 온화해지고, 신의가 두터우면 계로의 맹세가 나온다네.
관아가 파하는 주렴소리 나면 무사하니, 읍인들 때로 다시 거문고 연주 소릴 듣네.
3.
文星當日鍾光精、天挺瑰儀瑞彩貞。仁禮存心民自化、風雷驅筆世會驚。
絃歌遠續前人美、琴鶴猶尋舊日盟。自此小邦遺愛遠、武陵何獨擅芳聲。
문성이 당일에 정한 빛을 발휘하니, 하늘이 옥 같은 거동 내어 좋은 빛 드러내리.
어질고 예스러워 백성들 절로 교화되어, 바람과 우레가 표현되니 세상이 놀라네.
좋은 노래에 옛날 미인 곡조 연주되고, 거문고 켜니 학이 이전 약속처럼 날아오네.
4.
風姿當食萬羊豬、歷屈偏封志自如。詩禮飭行名已外、仁誠覃化政斯餘。
桐鄕爲採風謡美、蓮閣時乘水月虛。琴罷小軒春畫靜、筆頭時聽響寒㻕。
풍채와 자태는 큰 벼슬 누릴 만 했고, 작은 벼슬 받았지만 안분자족하였네.
시례로 몸을 닦아 밖으로 알려졌고, 어질고 정성스러워 그 여파 미쳤다네.
시골마다 그를 노래하며 칭송했고, 연꽃 핀 누각에서 달빛 감상하였네.
작은 헌의 거문고 연주 멎자 봄빛 따사한데, 붓끝에선 찬 구슬 구르는 소리 들리네.
5.
餘子紛紛遼下豬、文章當世孰能如。風儀迥出塵埃表、政事常從孝悌餘。
朝■每嗟時望繫、沖襟猶覺自持虛。年來世味都嘗盡、不願龍墀曳瑀琚。
많은 이들 분분히 경쟁하지만, 당세에 문장으로 겨룰 이 없었네.
뛰어난 풍채와 거동은 세상을 벗어난 듯했고, 효도와 공손을 으뜸 삼아 실천했네.
아침마다 선망의 대상으로 지목받았고, 가슴 속에는 많은 포부를 지니고 있었네.
세상 사는 재미가 모두 사라졌으니, 높은 벼슬자리 탐하는 이들 부러워하지 않았네.
6.
歲律新囘屬白豬、鏡中絲髮更紛如。詩書閑閣三冬後、負病連仍十載餘。
芝朮賴延駒隙壽、水雲長伴夜窓虛。半生豪氣消磨盡、詞藻多慚欠佩琚。
새해가 돌아와 백저해가 되었으니, 거울에 비친 머릿결이 더욱 하얗게 되었네.
한가로이 누각에서 시를 읽으며 삼동 보냈고, 병으로 지낸 지 십 년이 되었다네.
영지와 차조에 의지해 연명해가니, 강과 구름을 짝하여 밤을 지새우네.
반평생 호기가 모두 사라졌고, 시 짓는 솜씨가 줄어들어 부끄럽다네.
書辛亥曆
歲月如流不少留、星星華髮已蒙頭。願將一萬八千歲、更作人間三十秋。
신해년 월력을 보고 지음
세월은 물처럼 흘러 가버리고, 머리에 백발이 성성하다네.
일만 팔천 세가, 곧 인간 세상의 삼 십 년이라지.
辛亥春帖
詩翁今日始開局、一望祥雲繞遠坰。自有沖和灾沴遠、何須鬱壘戒門庭。
신해년 봄의 시첩
시 짓는 노인이 오늘 시집을 펼치니, 고운 구름이 먼 언덕을 두른 것 같네.
충화한 가운데 재앙이 멀리 달아나니, 우울함이 문에 들어오질 못한다네.
輓金應教[光燁]
經世才猷執若虛、淸朝無施竟何如。鵬圖欲振風無力、駿步將騰道且砠。
只爲偏慈縻職事、郡綠多病返田廬。文星晦彩天衢暗、梅雨江南哭老余。
응교 김화엽의 죽음을 슬퍼하며
세상을 기울일 재주 지녔지만 겸손했고, 좋은 조정에서도 뜻을 펴지 못했네.
붕새가 날고자 해도 바람이 불지 않았고, 준마가 달리고자 하나 길이 막혔네.
어버이 모시고 농사지음을 낙으로 삼아, 병이 잦아 전원으로 돌아왔다네.
문성이 빛을 잃어 하늘이 어둡고, 남강에 매화 비 내려 늙은 내게 슬픔 더해주네.
次松軒韻
月出生寒色、風來作晩凉。半庭成翠蓋、何用拂雲長。
송헌의 운에 차운하며
달이 뜨니 차가운 빛 비치고, 바람이 불어와 늦게 서늘하여라.
뜰의 절반이 푸르게 덮였지만, 구름 몰아와 쓸어낼 필요 없네.
寄全性之[以性]謫所
男兒行止聽天爲、憂喜元來不自期。芳草未歸勞遠夢、白雲長望作孤羈。
行過落影山千疊、路入扶安地一涯。千里懷人愁正苦、半庭桐葉雨絲絲。
성지 전이성의 유배지로 보내며
남아의 행동거지는 하늘이 시킨 바이나, 근심이나 즐거움은 스스로 초래하는 것일세.
좋은 시절 돌아오지 않으니, 흰 구름 바라보며 지내는 나그네 신세.
천 산이 겹친 곳의 그림자 길 지나가니, 구석진 부안 길로 접어드는구나.
천 리 떨어져 지내는 그리움 깊어가고, 뜨락의 오동 잎은 비에 젖어 푸르네.
宿郭靜叔[㟳]草堂、次成城主韻
午夜風軒穏點燈、詩豪不惹鄭公憎。攀轅亭畔不堪處、一鶴一琴雲棧登。
정숙 과표의 초당에서 성성주의 운에 차운하며
밤바람 부는 정자에 등불 깜빡이고, 호걸스런 시인은 정공의 시기 받으리.
정자 언덕에 수레 부여잡았으니, 학이 거문고 가락에 춤추고 구름 떠다니네.
偶吟
紛紛世事苦難常、攲枕孤吟感慨長。雲去雲來朝暮變、靑山依舊一般蒼。
우연히 지음
분분한 세상사 항상 견디기 힘들고, 외로이 시 읊으니 감개무량하도다.
구름이 오락가락하고 세상도 변하지만, 청산은 한결같이 푸르고 푸르네.
始祖遺基敍事碑
樹木根深枝葉荗、江河源遠派流長。務農亭畔齋壇下、永慕吾先祚業昌。
시조의 유허지에서 비석에 관해 쓰며
나무뿌리 깊어야 가지와 잎 무성하고, 강물 근원이 길어야 강물 넘실댄다네.
정자 언덕 제사 단 아래서 농사하며, 선조님의 업이 길이 창성해지길 기원하네.
輓內舅
哭母如今歲幾違、每於牀下想竟儀。規頑早被恩憐至、縻累恒憂省侍稀。
斯疾豈知違館舍、此生何處更瞻依。白頭未死癡甥子、永訣無從叩穸扉。
외삼촌의 돌아가심을 슬퍼하며
어머니 돌아가신 지 몇 해 지나, 매번 침상 아래서 그리움 간절하였네.
어려서부터 가르쳐주신 은덕 지극했기만, 근심을 살피고 돌보는 일에 소홀했네.
이 질병으로 인해 이렇게 돌아가실지 알았으랴. 이제 이 몸은 그 누굴 의지하나요.
흰 머리카락 많은 이 생질이, 외삼촌과 영영 이별하면 찾아뵈올 수 없다네.
落梅
曉風吹擺暗香來、睡起旋教病眼開。花落滿階憐不掃、一春無酒送殘梅。
一春多病廢吟哦、滿目林園屬歲華。郊外曉來風雨惡、半庭無數落梅花。
매화가 지는 것을 보고
새벽바람 불 때 솔솔 향기 실려 오기에, 눈 뜨자마자 병든 몸으로 눈을 떴네.
계단 가득 떨어진 매화를 보니 마음 시려, 봄 술도 나누지 못하고 매화를 전별하네.
봄 내내 병이 잦아 신음하며 지냈지만, 정원에 꽃 피어 눈 가득 들어오네.
새벽의 교외에 비바람 세차게 내리치더니, 뜨락엔 매화가 무수히 떨어지고 말았네.
日暮投草庵寺
翠竹丹楓六七里、毗盧白雪兩三峯。前山日落暝雲起、欲問禪房何處從。
해 저물어 초암사에서 묵으며
푸른 대와 단풍이 육칠 리 길에 펼쳐졌고, 비로봉의 백설이 봉마다 소복하다네.
앞산에 해가 지니 검은 구름 끼었고, 그 어디가 절집인 지 물어 보려네.
草庵寺次鄭湖陰韻
木爲橋閣石爲門、始信蓮房是處存。寒日上臺江海闊、平臨灝氣接崑崙。
초암사에서 정호음의 운에 차운하며
나무로 교각을 돌로 문을 삼았고, 연꽃 핀 방이 머물기 좋다함을 알았네.
차가운 태양이 누대에 오르자 바다가 넓고, 평평한 바다 기운이 곤륜산에 닿았네.
次李城主[埈]韻
萬仞盤空小白岡、昔賢曾此散遺芳。始攜藜杖穿雲逕、更借藍興問竹房。
夕磬喜聞紅樹岸、胡僧俄進紫瓊霜。山椒一路通眞境、恭向瑶臺拜紫皇。
성주 이준의 운에 차운하며
만 길 공중에 소백산 솟았으니, 일찍이 현인들이 이곳에 유풍을 남겼네.
지팡이 짚고 구름 핀 돌길 걷다가, 다시 남녀 올라타고 죽방이 어디냐고 묻네.
붉은 단풍 핀 언덕 위의 경쇠 소리 정겹고, 이내 스님이 자색 구슬 서리에서 나오네.
산초나무 길은 진경으로 통하니, 공경스럽게 옥누대로 가서 자색 황제를 배알하네.
次李城主去官別席韻
柳季何曾辭小官、只綠行路險於山。沖襟廣天雖客色、下邑獰頑亦厚顔。
錦槖攜來嗟轉富、狐表獘盡卻生寒。雲山百里風程遠、惟願行塵更重安。
이성주께서 관아를 떠나기에 이별 잔치 자리의 운에 차운하며
류종원과 계로가 왜 일찍이 벼슬 사양했나. 벼슬길이 산보다 험하기 때문이라오.
넓은 하늘 아래 나그네 같은 행색이지만, 낙향하면 주민들도 환히 웃으며 맞으리.
奉呈李城主歸軒
百年文教繼前賢、誰使游琴遽輟絃。祥鳳肎懷栖枳棘、編氓無賴惠顚連。
盟深竹塢歸心促、春入梅園逸興牽。留愛只教心面在、錦陽新月照寒泉。
이성주께서 집으로 돌아오시어 받들어 올림
옛 현인들 찬란한 문풍을 다시 일으키리니, 다시 그 풍류를 이어가리.
봉황이 탱자나무 가시나무에 내려앉으니, 백성들 무한한 은덕을 입으리.
대나무 언덕 맹세처럼 귀향을 재촉했으니, 매화 정원에 봄이 오자 흥이 나네.
마음으로 얼굴 대하며 가르침 받으리니, 빛나는 태양과 초승달이 샘을 비추네.
聞趙君抗䟽
夷齊已死今千載、烈烈高風誰復繼。豈知更有邯鄲生、能繼高風振衰替。
조군이 임금에게 상소함을 듣고
백이숙제 죽은 지 어언 천 년인데, 열렬하고 높은 지조를 누가 이어가리.
다시 한단이 살아나서, 그분들 고고한 풍조를 이어 쇠미한 세상 일으키리.
書甲寅曆
一年三百六旬日、隙駟光陰繫末粶。世事紛紛皆妄耳、不如罇酒度殘年。
갑인년 월력을 보고
일 년이 삼 백 육십 일인데, 세월이 나는 화살 같이 지나 머물지 않네.
세상일 모두 분분하여 망녕될 뿐이니, 술동이 술을 비우며 세모를 보내네.
書郭靜叔乞椒靑囊
一掬靑囊來故人、思人如對舊精神。玉墀未效療民術、乞得掓聊濟病身。
곽정숙이 초청낭을 달라기에
예로부터 한 움큼 청낭을 보니, 옛 그분들 정신을 마주 대하듯하네.
옥마루에서도 백성 근심 못 고쳤지만, 이를 얻어 몸의 병을 다스리려 하네.
哀江都
始聞疑訝更聞㐫、仰視蒼蒼尙爾夢。何處有山堪遠世、不如林下詠無聰。
강도를 슬퍼하며
의아해하면서 놀라 다시 물어보며, 푸른 하늘 우러러보니 꿈인 것 같네.
그 어디에 세상 멀리해 사는 산 있을까마는, 자연 속에서 시 읊고 사는 게 좋다네.
乙卯春帖
新陽初逐小梅回、瑞日祥雲䊮九垓。野老有詩兼有酒、熙然携伴入卷臺。
을묘 춘첩
새 봄을 따라 작은 매화 피니, 따사한 햇살과 고운 구름 온 땅에 가득하네.
들판의 노인 시 짓고 술 마시다가, 얼큰하고 흥겹게 자리 걷어 누대에 오르네.
輓郭靜叔
斯人斯疾命邪不、欲間蒼蒼更末由。情義不從冥裏隔、心顔猶向夢中求。
溫良本自天資美、孝悌元因世德休。衡泌一生無外慕、琴歌千古續前修。
端方志操人難奪、皎潔情懷物豈仇。早爲堂闈思取擧、可嗟時命不相謀。
鄕邦但惜才無施、沈晦誰知學亦優。鸞伏已能成鵠卵、鳳毛咸喜繼風猷。
自惟疎賤爲人棄、早結金蘭荷子收。忠告每施當病石、穢形還隗在傍璆。
鱣堂講業曾同席、雲榻攻文幾共裯。晩更阻違綠疾病、每憑音信杔綢繆。
樹雲長望俱靑眼、書劍無成共白頭。擬謂晩年期永好、那知沈痼竟難瘳。
文公不忍銘東野、天道咸嗟薄鄧攸。永訣已違從北牑、此生那復過西州。
從知有淚徒成血、多愧無辭可掩幽。耿耿一心應不昧、山陽難禁恨成邱。
곽정숙의 죽음을 슬퍼하며
이 사람 이 병에 걸려 명도 박하니, 푸른 하늘에 따져 봐도 소용이 없네.
사귄 정 깊지만 이승과 저승으로 갈려, 그대를 꿈속에서만 볼 수밖에 없네.
온량한 본성은 하늘로부터 부여 받은 것, 효성과 공손함은 집안 유훈일세.
은둔해 살며 세상일 부러워 않았고, 거문고 연주하고 노래하며 살았네.
단정한 지조는 남과 달랐고, 맑은 심회 지녀 세상사 멀리하였네.
어머님 소원 따라 과거를 도모했지만, 시운이 맞지 않아 불운하였네.
모두 재주 못 편 것 안타까워했지만, 은둔해 살면서 학문을 넉넉히 익혔네.
난새는 숨어살아도 고니 알을 낳고, 봉황 깃털은 좋은 바람 몰아온다네.
비록 남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구름 둘린 책상에서 학문에 전념했네.
만년에 어려운 질병에 걸려, 매양 고생하며 근심하였네.
만나는 이마다 기뻐 교유했고, 갖춘 재주 쓰지 못한 채 늙어버렸네.
만년에 오래오래 함께하길 희망했건만, 병을 이기지 못하고 떠나가 버릴 줄이야.
문공은 동야에 명을 차마 못 새겼으니, 하늘의 도는 어쩜 이렇게 박할까.
찾아가 문상하며 이별하지 못했으니, 남은 생애 서쪽 고을로 가볼 기약 없네.
눈물이 흘러내려 피눈물이 되고 마니, 무슨 말로도 이 슬픔 다 표현할 수 없네.
근심스레 잠 못 이루는데, 산 남쪽에 공의 무덤 만들어졌네.
聞鄭司直[蘊]謫海中
汪海思將隻手防、一封刳血植綱常。孤忠去國輕如葉、只有聲名萬古香。
사직 정온이 유배를 갔다는 소식을 듣고
넘실대는 바다 두 손으로 막을 듯한 위엄으로, 벼슬살이하면서 강상을 세웠다네.
고독한 충정으로 일엽편주로 나라 떠났지만, 좋은 명성 만고에 전해지리.
讀宋史有感
陳撟當日誓軍中、母犯前朝太后官。革世未能忘舊主、仁風千載感人哀。
송사를 일고 느낀 바 있어
진교는 당시에 진중에서 맹세하길, 지난 조정 태후궁은 범치 말라 했네.
세상을 바꾸어도 옛 주인 잊지 못했고, 어진 풍조 천 년토록 사람들 감동시키네.
自悼
一部形骸始受天、聰明才智本全然。如何暴棄終樗散、白首悲嗟夲暮年。
스스로 슬퍼하며
이 한 몸 하늘로부터 부여받았으니, 총명과 재주가 온전해져야 하리.
가죽나무처럼 버려져서, 초야에서 늙다가 죽어감이 슬퍼지네.
次郭靜甫惠韻
곽정보의 ‘혜’자 운에 차운하며
1.
明珠擲地遠聲聞、爲謝吾兄厚意勤。盥手披來如奉玉、臨風吟罷靄生雲。
曾遊筆苑窺主陣、誰向騷壇撼岳軍。白首詩狂成痼疾、願承鎸誨襲淸芬。
구슬은 땅에 버려져도 멀리서 알게 되니, 형의 중후하고 근실함에 감사하오.
세수하고 구슬을 받들 듯 모시오니, 바람을 맞아 노을과 구름 피오르네.
문단에서 교유할 때 주축이 되었고, 시단에서 출중한 재주 발휘하였네.
노인이 될 때까지 시 짓는 게 습성이 되어, 원컨대 자상하게 가르쳐주길 바라오.
2.
抱疾長年百不聞、卻緣■■枉招勤。強扶衰骨攜靑杖、爲問間居款白雲。
出蚌已看成兩穀、過橋誰詑擁三軍。重來可做聯牀話、雞桼將承一抹芬。
질병 껴안고 신음하며 지내느라, 좋은 인연이 부지런함 이루었다네.
연약한 육신 이끌어 지팡이 짚고, 흰 구름 오가는 곳에 편히 지내는지 묻는다오.
조개가 이미 양곡을 이뤄, 다리 지나는데 삼군을 옹위해 가듯 하네.
다시 와서 책상을 마주하여 담소하고, 닭을 잡고 기장밥으로 대접하려네.
重三遊光風臺、示諸友
冠童三五䠌靑來、臺下溪流碧似苔。四十年來重感慨、登臨忘卻夕陽催。
두세 번 광풍대에서 노닐며 여러 벗에게 보여주며
관동 몇이 답청하러 오니, 누대 아래 흐르는 맑은 물은 이끼처럼 푸르네.
사십 년 이래 거듭 감개가 깊어지니, 오르고 보니 석양 무렵되고 말았네.
次
瞻慕風儀日若年、竆居無伴更蕭然。年來乞與寬心法、讀盡南華第一篇。
이어 지음
풍채와 거동 뵙길 매일 고대했는데, 외롭게 살며 조용히 지낸다네.
근래 관심법을 배워서, 남화경 첫 번째 편을 다 읽었네.
遣悶
長年竆巷掩柴扉、百疾驕侵奈命微。眼爲眵昏書強近、行因勃窣杖須依。
寒蟬歲晩鳴聲咽、老馬秋高齒食稀。爲底事來成底事、半生虛走悔前非。
弧矢年來氣不揚、誰知臧榖竟亡羊。長纓未繫單于首、夢踏斦連古戰場。
근심을 달래며
길이 궁벽한 시골에서 사립문 닫고 지내니, 온갖 질병 침투하여 명도 기구하다네.
눈도 흐릿하여 책을 눈 가까이 봐야 하니, 걸어 다닐 때는 지팡이에 의지해야 하네.
만년에 추위 두려운 매미처럼 목소리도 가늘고, 가을철 늙은 말처럼 이빨도 듬성하네.
작은 일도 자꾸만 일이 되는 법, 평생토록 이룬 게 없음이 한스럽네.
근래 기운이 더욱 쇠해져서, 그 누군들 곡식 저장하려다 양 잃음을 알리.
머리에 긴 갓끈도 매질 못하니, 꿈에 옛 전투장이 연이어 나타나네.
悶渴
老去長卿肺似銷、難將杯潦慰三膲。何當釀酒三千石、傾瀉胷中解沃焦。
조갈증을 염려하며
늙어갈수록 폐가 오그라드는 것 같고, 술을 마셔도 갈증을 해소치 못하네.
어이해야 쌀 삼천 석으로 술을 빚어, 가슴 속 엉킨 덩어리를 다 씻어내랴.
牆頭送酒
牆頭乞釀破嚴晨、獨臥熙熙滿腹春。老去聲名無苟慕、秋來芋栗不全貧。
詩枯每借月爲地、境僻常呼雲作鄰。聊與親朋謀結社、不妨淸世樂間民
담장 어귀에서 술을 마시며
새벽 무렵에 담장 가에서 술을 빌려, 이 봄에 홀로 즐겁게 벌컥벌컥 들이킨다네.
늙어가니 세상 명예 부럽지 않고, 토란과 좁쌀 추수하니 살림도 넉넉해졌네.
시상이 메마르면 달을 땅으로 삼아 시 짓고, 궁벽한 곳이라서 항상 구름과 이웃하네.
친한 벗들과 모임 갖고자 하니, 태평 시절 주민들 사이에 지내어도 방해되질 않네.
寄懷
소회를 표현하며
1.
學劒不成書不成、欲從方外學長生。年來祕法傳無路、卻向山中伴耦耕。
검술도 책을 익혀도 뜻을 못 이루고, 방외 학문 찾아 장생술 익히려네.
근래 비법을 전해 받을 길이 없으니, 산중을 찾아 농사나 지으려네.
2.
方園十丈足栖遲、此外紛紛不可期。境自幽深非遠世、身多蟣蝨豈談時。
모난 정원 열 자여서 쉬기에 족하고, 이외에 분분히 더 무엇을 바라리.
사는 곳 으슥해도 세상 멀리한 것 아니니, 이 몸에 병이 잦아 시절 논할 수 없네.
3.
憂耕每作田夫話、問字時爲童子師。終歲紫門無客到、土牀長臥任成癡。
밭 갈기 걱정하면서 농부와 담소하고, 때로 글자 물으러 오는 아이들 스승도 되네.
일 년 내내 찾아오는 이 없으니, 나무 덩이처럼 누워 지내 어리숙하게 되었네.
大雪
큰 눈이 내려
1.
銀海翻空釀晩陰、蒼茫世界玉千岑。松雲隔斷僧踨滅、泂壑崢嶸鶴影沈。
風打驚鴻述故澤、月明栖鵲失前林。朝來豆粥聊溫腹、莫向橋邊作苦吟。
저물녘 어둑한 하늘에 은빛 바다 펼쳐지니, 아득한 봉마다 구슬이 덮였네.
소나무 구름 있는 곳 스님 발자국 눈에 덮였고, 조용한 골짜기 학도 모습 가려졌네.
바람 불자 놀란 기러기 연못에 깃들고, 달빛 아래 쉬던 까치는 앞 숲을 찾지 못하네.
아침이 되어 콩죽 끓여 따뜻하게 먹고, 다리 곁으로 가서 괴롭게 시 읊을 필요 없네.
2.
昨夜天門戰海龍、敗鱗殘甲落橫縱。漁翁罷釣述前路、野鶴尋巢失舊松。
지난 밤중 하늘에서 해룡이 싸워, 긁힌 비늘과 등 갑옷이 종횡으로 떨어지네.
낚시 마친 어부 집 찾아 돌아오고, 둥지 찾아가던 학은 둥지 튼 소나무 못 찾네.
3.
大地化爲銀境界、群山秀出王芙蓉。洛陽誰復尋寒士、正合蝸廬著病慵。
온 땅이 은빛 세계로 변했고, 빼어난 뭇 산이 옥구슬 연꽃으로 변했다네.
한빈한 선비가 다시 낙양을 찾아가리. 병든 몸 달팽이처럼 오두막에 들이박혀 산다네.
泡母吟
濟濟簪纓守閤門、穆陵松檜暮雲昏。都街只有泡家母、猶識先朝雨露恩。
포모음
인재들이 대궐문 지키고 있고, 늘씬한 소나무와 회나무가 저문 구름 가운데 서있네.
도시 거리에는 모가 어미가 있어, 선대 조정의 우로 같은 은덕을 잊지 않고 있네.
金大邱[九鼎]以書抵問、因書以示意
十年多病臥牛衣、細量從前萬事非。素志已知當老惜、殘骸那復著肌肥。
山居僻陋交遊斷、人世存亡故舊稀。爲謝不遺情意在、好音珍重到荊扉。
대구 김구원이 서찰을 보내 안부를 묻기에 내 마음을 써서 전하며
일 년 내내 병이 많아 자리에 누워지내니, 지난 일 헤아려보니 일마다 그릇되었네.
평소의 뜻 어김을 이미 나이 들어 애석해하니, 마른 이 육신 다시 살이 오르려나.
깊은 산골에 사니 교유도 끊어지고, 벗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겠네.
감사한 마음 모두 담아 썼으니, 좋은 소식으로 보전하여 전해지시길.
偶吟
世事紛紛心已灰、柴門十日不曾開。適來適去吾何預、一聽夭翁處分來。
우연히 읊음
세상사 분분하여 마음이 타들어 가서, 열흘 동안 사립문을 열지 않았네.
적당히 오가는 것을 바랐는데, 늙은이가 한 번 듣고 처분하러 오시네.
寓高山寺
何處行裝定所安、一庵逕柱翠雲端。山連兜率危巒矗、樓壓新羅舊界寬。
興舊晴歲春色晩、鳳停初旭曉光寒。居僧不識吾人苦、錯擬雲山自在着。
고산사에 우거하며
행장 풀고 편히 쉴 곳 찾았는데, 푸른 구름 가의 작은 암자가 세워져있네.
위험한 산이 겹겹이 쌓여있고, 신라 때 지어진 누대는 넓고 트였네.
늦봄에 옛일 생각나는데, 찬 빛 감도는 새벽에 봉이 머무는 곳 태양이 오르네.
수도승은 우리의 괴로움 알지 못하고, 구름과 산이 마주 붙어있다고 착각하네.
急雨旋晴
소나기 내린 뒤 그침
1.
驕陽當午欲焚燒、忽聽轟䨓殷碧霽。古壑噓雲藏後嶽、畏風拖雨過前郊。
炎蒸漢卒驅靈壁、禾黍殷民慶會朝。獨倚茅簷成小睡、一輪明月影蕭蕭。
정오 무렵 교만한 태양이 작열하더니, 푸른 하늘에 갑자기 우레 천둥소리 들렸네.
골짜기의 구름은 뒷산의 모습을 감췄고, 앞 교외에 바람 타고 소낙비 우두둑 내리네.
무더위는 신령한 절벽으로 몰려가고, 백성들 농사 잘 지어 조정 향해 경사를 표하리.
홀로 오두막에서 잠시 잠이 들었는데, 처량한 빛 둥근 달이 두둥실 떠올랐네.
2.
雲歛長空雨腳收、披㯲虛閣縱雙眸。杯盂海上三千里、几案江南六十州。
天地無情人易老、乘除有數我何尤。何時杖屨尋前路、歸趁田園未晩秋。
공중에 구름 걷히고 빗줄기 그치자, 빈 누대에 올라 이리저리 둘러보네.
삼천 리 바다 위에서 술을 마시니, 강남 육십 고을이 안석과 책상일세.
천지는 무정하고 사람은 쉬이 늙고, 모든 게 운수에 달린 것이니 어이하랴.
그 언제나 지팡이에 나막신 끌고, 이 가을 다 가기 전에 전원으로 돌아가려나.
移寓鳳山書堂
宿鳥投林已夕暉、前村煙火掩柴扉。遊人不識年華晩、入望田園久未歸。
봉산서당으로 옮긴 뒤
석양이 되자, 새들도 숲으로 찾아들고, 앞마을의 연기가 사립문을 감도네.
나그네 뒤늦은 시절의 꽃 핀 것 보느라, 전원으로 나가 아직 돌아오질 않았네.
送信元長老還山
老禪今日事工休、扶錫還尋故寺秋。莫道山人無住著、白雲歸路使人愁。
원장로가 산으로 들어간다기에 소식을 전하며
오랜 절에 오늘 공사가 없다고 하니, 가을에 지팡이 짚고 고찰 찾아간다네.
산속에 머물 곳 없다고 말하지 마시길. 흰 구름 맴도는 곳 보니 근심이 인다네.
雨
氣機乘化雨暘隨、旣無語言寧有私。雨者爲雲雲者雨、孰居無事孰隆施。
비
기가 승화하여 비가 오는 법이니, 말없이 이행되는 사감이 없다네.
비가 구름도 되고 구름이 비도 되니, 누군들 무사하고 누군들 잘되랴.
憶孫兒
龜鸞久不宇、時序氣番遷。桃李淸明節、蒹龍白露天。
盈盈如目見、耿耿只心煎。何日氛炎盡、提攜在眼前。
손자를 그리워하며
거북과 난새는 오래 머물지 않나니, 시대와 기후가 변천해 간다네.
청명절의 복숭아 오얏꽃 피었는데, 이슬 내리는 시절에 겸룡이 등장하네.
이처럼 그리워하면서 만나질 못하니, 마음만 졸이는 신세일세.
조금 날씨가 서늘해지면, 데려와서 눈앞에서 옹알대는 재롱을 보리라.
幽栖洞書堂
搖落江湖八月秋、飄蓬南北此來遊。空山涔寂閉書閣、暮兩蕭條藏客樓。
賴有野僧供白飯、爲要鄕舊共寒裯。疎檽入夜秋聲緊、已覺輕寒襲獘裘。
서동서당에 머물면서
쓸쓸한 팔월 가을 맞은 강과 산천에, 남북으로 떠돌다가 이곳을 찾았네.
적적한 빈 산의 서재문 닫혔는데, 저녁이 되자 누대에 길손이 찾아들었네.
스님과 함께 밥을 먹으며, 고향 친구처럼 함께 추위 견디며 밤 지새우네.
깊은 밤이 되자 낙엽 지는 소리 들리고, 쌀쌀한 기운이 낡은 갖옷에 스며드네.
謝權訓道雞黍作話
舊知要我草堂遊、步步徑尋石逕幽。喬木曾聞知所擇、白眉今見出諸流。
滿塘風月生涯富、一架詩書意味脩。雞黍穩成終夕話、旅懷除卻十分愁。
권후도가 닭을 잡고 기장밥을 해주며 담소해 준 것을 사례하며
벗이 나를 초당으로 불러 함께 놀면서, 조용한 돌길을 찾아 걷었네.
교목은 택함을 받아야 한다고 들었으니, 백미인 그대는 무리 가운데 출중하다네.
연못 가득한 바람과 달처럼 생애 풍족하니, 서가 가득한 시서는 의미를 더하네.
닭 잡고 기장밥 먹고 밤 내내 이야기하며, 회포와 근심을 모두 떨쳐 내버렸소.
別權措大兩侍
好攜元季作朋遊、一畝儒宮洞府幽。繡障前臨平野闊、玉溪傍繞小塘流。
秋生古壑楓光早、塵靜寒窓竹影脩。數夜細論鄕井舊、此時分手不須愁。
조대 권양시와 헤어지며
평소 좋은 벗으로 교유하였고, 아담한 서원은 그윽하고 조용하도다.
넓은 들판 비단처럼 펼쳐졌고, 작은 연못 빙 둘러 구슬 같은 물 흘러가네.
가을의 골짜기에 이른 단풍 물들었고, 차가운 창가엔 대나무 곱게 자라네.
고향 친구들이 밤 내내 토론하고, 이제 손을 맞잡고 헤어진다네.
小雨
秋陰作曀雨霏霏、山院無人晝掩扉。竊廩公堂無已僭、故園秋晩可言歸。
가랑비
음산한 가을에 가랑비 솔솔 내리니, 찾는 이 없는 절간 사리문을 닫네.
공당에는 아무도 찾는 이 없으니, 늦가을 맞은 옛 정원을 찾아갈만 하다네.
自笑
我貴人貴之、貴貴非貴吾。我賤人賤之、賤賤非賤吾。
賤非吾所預、貴非吾所須。得失付趙孟、乃與天爲徒。
스스로 웃으며
내가 남을 귀하게 여기면 남도 그러하니, 귀한 이를 귀히 여김도 내 본분 아닐세.
내가 남을 천히 대하면 남도 그러하니, 천한 이를 천히 여김도 내 본분 아닐세.
천함도 내가 예측하지 못한 것, 귀함도 내가 미리 예측치 못한 것일세.
득과 실을 조맹에게 넘겨, 하늘의 분부대로 따라가리.
自遣
스스로 마음을 달래며
人生處兩間、得失誰使之。生亦有使之、死亦有使之。
憂亦有使之、樂亦有使之。竆亦有使之、達亦有使之。
乘流以逝之、得坎而上之。行止不由我、與奪其如台。
紛紛外物事、付與大宇師。
인생이 두 곳 사이에 처해서, 득과 실을 어이하리.
사는 것도 그러하고, 죽는 것도 그러하다네.
근심스러워도 그렇고, 즐거워도 그렇다네.
궁하게 살아도 그렇고, 달해도 역시 그렇다네.
오르고 흘러 가버리니, 구덩이를 얻어야 그친다네.
행동거지도 나로 말미암는 것이고, 주고받음도 나로 말미암는 것.
분분한 물외의 일을, 대우주 스승께서 주는 것이라오.
高山寺移寓敍懷
山庵秋日晩、扶杖欲何之。落鴈求梁急、寒猿失木悲。
羈孤無處著、落隻有誰持。求我枯魚肆、莊生已自和。
고산사로 이거한 감회를 표현하며
산 암자에 가을이 깊어가는데, 지팡이 짚고 어디로 가려나.
날던 기러기들 머물 곳 찾기 급하고, 원숭이는 의지할 나무 잃고 슬퍼하네.
나그네로 머물 곳 없으니, 홀로 외로워 누구를 의지하려나.
내가 마른 고기를 구하니, 장생이 이미 조화롭다네.
仲秋夜、與曹汝盆友仁、聯衾敘話
與君今夜喜同茵、正値中秋月色新。道舊不堪懷落莫、談時惟覺膽輪囷。
飄蕭鬢髮嗟吾老、瀟灑琴歌見子眞。世事十分披遣盡、西風那復受埃塵。
중추의 밤에 여익 조우인과 동숙하면서 담소 나누며
그대와 오늘 밤 한 이불 덮고 자는데, 중추절 가을 달빛도 밝다네.
우정과 도리가 시들었다 낙심 마시길, 시대를 논하면 가슴이 먹먹하네.
휜 머릿결 날리며 함께 늙었으나, 그대의 청아한 거문고 연주와 노래는 일품일세.
세상을 남김없이 함께 토론하니, 서풍불 때 어떻게 세상 티끌 받아들이랴.
輓李仁伯
昔者從遊荷不遣、衰遲長恨阻音儀。才猷早被爲人慕、時命其如不我期。
詩禮過庭傳舊業、琴書怡老送生涯。十年耿耿相思意、都付南阡片幅詞。
이인백의 죽음을 슬퍼하며
예전에 노닐면서 우정을 더했고, 노쇠해지면서 소식이 막혀 한스러웠네.
그대 재주는 일찍부터 널리 알려졌고, 시운이 그럴 줄 모두 몰랐다네.
집안에서 유업으로 시례를 익혔고, 거문고 연주와 독서로 노년까지 보냈다네.
십 년 동안 서로 그리워했더니, 남쪽 언덕 무덤을 향해 한 편 제문을 지어 올린다네.
輓郭進士季珍[瓔]
父而葬子理難和、披復來書暗涕洟。江海倒流誰可障、草萊論事此非時。
龍泉古獄埋寃氣、駿步長程輟遠期。莫向斯人評得失、一生肝膽有遺辭。
진사 곽계진[영]의 죽음을 슬퍼하며
아비로서 자식 장례치름은 참 난감한 이치, 부고를 받아들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네.
강과 바다가 거꾸로 흘러 요동쳤고, 이친 논하자면 참으로 어긋난 일일세.
용천과 옛 옥에 원통한 기운이 묻혔고, 먼 길 가야 할 준마가 걸음 멈추고 말았네.
이 사람의 득실을 평가하지 마시길, 일생 지낸 정의를 제문에 담아 보낸다오.
雨中書懷
物不得平何足鳴、長年病肺臥前楹。曾嫌老杜誇三賦、不效長卿改小名。
愁緖多端添夜雨、獘衾無寐到天明。半生數墨將何補、一劒聊憑萬里城。
비 오는 가운데 심회를 표현하며
만물이 불평하면 어찌 울리랴. 오래오래 폐병 앓아 자리에 누웠네.
두보가 부를 세 편 지은 것 싫어했고, 장경이 소명을 고친 것 닮지 않았네.
많은 근심이 가을비에 섞이고, 찬 이불 덮고 잠 못 이뤄 새벽이 되었네.
반평생 공부한들 어디에 쓰랴만, 한 자루 검에 의지해 만 리의 성을 지키려네.
庭有山菊盛開、偶吟
山人山菊稱山居、不要金錢繞四除。待得小軒秋釀熟、掇黃浮白興何如。
뜰에 산 국화가 활짝 피어 우연히 읊음
산에서 나와 국화가 함께 사니, 금은보화 필요가 없다네.
작은 정자에 가을 국화주 익었으니, 노란 꽃잎 술에 둥둥 띄우면 좋으리.
王昭君
以戎治戎是這圖、明妃須與嫁單于。可憐老史毛延壽、爲國深謀柱被誅。
왕소군
경계함으로써 경계하고자 그린 그림, 명비가 선우에게 시집을 갔다네.
가련하게 늙은 화가 모연수는, 나라 위해 도모하다가 죽임을 당했다네.
奉次省吾堂[李介立]壽其慈堂
襄陽李上舍、誠孝冠今時。喜懼情逾迫、岡陵祝豈遲。
應添春箅遠、長奉鶴齡垂。擬待蟠桃結、萱堂捧玉巵。
성오당 이개립이 그의 모친 수연을 연 것을 축하하며 받들어 차운하며
양양의 이상사는, 지극한 효자로 당대에 으뜸일세.
항상 조심히 모시면서 정은 두텁고, 세월이 더디게 감을 축원하였지.
봄 시절 느리게 가길 바라면서, 길이 모친을 모시고자 하였네.
복숭아 열매 익어가길 기약하면서, 옥 술잔에 바치길 바란다네.
詠梅
手種雙梅近獘牀、年年花發滿園香。如今物與人俱老、相對春風暗自偒。
매화를 읊음
침상 가에 두 그루 매화 심었더니, 해마다 꽃이 피어 향기 가득하네.
이제 매화도 나도 늙었으니, 봄바람 쐬며 마주 보며 애석해하네.
無題
長夏濳藏問幾旬、出門何處喚交親。牆頭竹立觀君子、榻上風來喜故人。
守靜守閒能得壽、無營無欲是安神。開懷別有忘憂地、白酒淸吟老此身。
무제
긴 여름날 그 몇 날이겠으며, 문을 나선들 어디서 친한 이를 찾으리.
담장 머리의 군자 같은 대나무를 보니, 책상으로 바람 불어와 벗처럼 기쁘네.
조용하게 지내면 오래 사는 법이니, 하지도 않고 욕심 버리면 신명을 편히 한다네.
마음을 열어 별도로 근심을 잊나니, 막걸리 마시며 시 읊으며 이 몸은 늙어가려네.
自遣
浪跡從前未暖茵、學行迷舊况求新。讀書未破五千卷、取禾寧收三百囷。
痛哭不須悲歧路、狂歌聊復任吾眞。飄然散髮看東海、首受元規一點塵。
스스로 심회를 표현하며
부질없는 발자취는 좋은 은덕 밟지 못했고, 옛 학문도 못 따르는데 새 것을 구하랴.
책도 오천 권도 독파하지 못했는데, 삼 백 균을 채울 수 있으랴.
통곡하며 갈림길에서 슬퍼하니, 미친 듯 노래하며 나의 참됨을 회복하려 했네.
표연히 산발하여 동해를 바라보니, 먼저 한 점 티끌이 드러나네.
白馬江懷古
백마강회고
恃險何能久、濟王家已郊。蒼巖想花落、碧水認香銷。
舊事隨風浪、幽寃入雪濤。江流如許淡、胡不洗前朝。
험준한데 오랜 세월 견뎠고, 백제의 왕가는 이미 터전만 남았네.
푸른 언덕에서 투신한 삼천 궁녀 그리우니, 푸른 물은 그들 향기 머금었네.
옛일이 바람결에 상기되고, 그윽한 원혼은 눈보라 속에 맴도네.
이처럼 맑은 강물이, 어이하여 백제의 흔적을 다 씯어내지 못할까.
茵草扇
인초선
拔取靑鸞尾、裁成白鶴翊。三庚驅虐暑、塵榻更淸泠。
푸른 난새 꼬리도 뽑고, 흰 학의 깃으로도 마름질했네.
삼복에 더위가 기승을 부리지만, 평상 밑으로는 시원한 바람이 이네.
輓省吾堂
성오당의 죽음을 슬퍼하며
地靈南服挺斯人、雅望咸推瑞世麟。瀟灑襟懷霜比潔、端嚴操屨玉無磷。
妙齡采藻登賢士、末路分符惠遠民。危險備嘗行世道、卷懷甘與養天眞。
詩書更設河汾教、簞食長存陋巷春。皓首存心惟道義、靑氊遺業是淸貧。
老星忽報晴文晦、處士俄觀大化巡。案上琴書塵寂寞、庭前梅竹月酸辛。
後生無路從竆業、小子何由得問津。愚魯早承垂末眷、離違長恨阻淸塵。
丁寧謦欬猶存目、歷拜門屛似隔晨。棄疾未堪隨遠紼、謹將哀䛶獨沾巾。
위험에 대비하여 세상에서 도를 행했고, 회포를 거두고 천진을 보존하였네.
물가에 터 잡고 후학에게 글 가르쳤고, 소박한 살림살이로 안분자족하였네.
백수가 되도록 도의를 마음에 지녔고, 조상이 물려준 청빈을 가업으로 삼았네.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부고가 전해지니, 처사로서 홀연히 저 세상으로 가셨다네.
책상 위의 거문고와 책은 그대로이고, 뜰 앞의 매화 대나무는 해마다 영글어가네.
후생들을 이제 배울 데를 잃었고, 이 소자도 자문을 구할 데 없다오.
우둔한 나는 일찍이 말석에서 배웠고, 길이 떠나시니 자상한 가르침 못 받겠네.
아직도 쟁쟁하신 목소리와 얼굴이 남았으니, 새벽에 문과 병풍에서 엎드려 절합니다.
병을 이기지 못하고 멀리 떠나셨으니, 삼가 제문 지어 올리며 눈물 뿌립니다.
남쪽 지방 인걸지령 따라 태어나, 아담한 명망은 세상에 드문 이로 칭송받았네.
깨끗한 내심은 서리처럼 맑았고, 바르고 곧은 지조는 구슬처럼 빛났네.
어린 나이에 어진 선비로 발탁되어, 말로에 분부 따라 먼 곳 주민에게 은덕 미쳤네.
臨津感事
나루터에서 지난 일을 떠올리며
紅賊逼城、䴡王播越、駐駕臨津。顧矎山河、謂元松壽李穡曰、如此風景、卿等正宜聯句。
홍건적이 성을 핍박할 때 고려 왕이 파천하여 어가가 강가에 이르러 산하를 돌아보며 원송수 이색을 보고 이르기를, “이와 같은 풍경을 경들이 시를 지음이 마땅하도다.”라고 하였다.
千里間關古國移、風塵不是浪吟時。擧目山河爲賊窟、君王何暇勸題詩。
천 리 관문에서 고국을 떠나니, 풍진 속에 슬픈 맘으로 시를 읊네.
눈에 들어오는 온 산하가 도둑의 소굴이니, 군왕께서 그 언제 시 짓길 권하시랴.
陰竹縣
음죽현
麗王次陰竹糧絶。判閣門事許猷獻米二斗。
고려왕이 음죽에서 양식이 떨어지자 판각문사 허유가 쌀 두 말을 바친 시에 차운하다
一失金湯騁四方、蒙塵行色更凄凉。可憐千里東韓主、獨賴乾餱數斗囊。
한 번 금탕을 잃고 사방으로 유리하며, 몽진하는 행색이 다시 처량하도다.
가련하게도 천 리 길 동한의 주상이, 홀로 마른 식량 두 말 의지해 산다네.
古城遺址。
옛성 남은 터에서
以下小自遊山時丙戌。
이하는 소백산을 유람할 때 병술년에 지은 시이다.
風雨三韓經幾年、古城遺址冪寒煙。如今聖代都無事、落日樵歌滿峽天。
삼한에 비바람 몰아친 지 몇 해인데, 옛 성의 남은 터에 찬 연기 서렸네.
지금 같은 성세에 모두 편안하고, 석양빛에 나뭇꾼들 노래소리 골짜기 가득 들리네.
草庵寺鄭湖陰韻
蒼苔碧檜掩禪門、仙去白雲臺獨存。忽聽湖陰滄海句、天風吹我上崑崙。
斜日扶笻倚寺門、雲臺石澗古今存。問僧何處淸眞界、山頂煙霞指石崙。
초암사에서 정호음의 운에 따라 지음
푸른 이끼와 회나무가 절간 문을 가리고, 누대에 흰 구름 한가히 오가네.
갑자가 호음의 창해구 시가 떠오르고, 하늘가 바람이 곤륜산에서 불어오네.
해가 지는데 지팡이 짚고 절을 찾아드니, 운대와 석간은 예전 그대로일세.
스님에게 진계가 어디냐고 물어보았더니, 산 정상 연하 핀 돌산을 가르키네.
草庵卽景
晩倚長風入碧蘿、白雲深處有禪家。高軒散步看天末、鳥外斜陽送落霞。
초암사의 경치를 보고
바람결 따라 푸른 등걸로 들어가니, 흰 구름 무성한 곳에 절집이 있네.
하늘가 높은 누대에서 산보하니, 석양빛 타고 나는 새는 노을을 전송하네.
淸和朔午發草庵
竹外巖花老、雲邊鳥道幽。遊人貪水石、行見綠陰休。
청화절 초하루 정오에 초암사를 떠나며
대나무 곁에 바윗가 꽃이 피었고, 구름 솟은 둘레의 절벽 길 으슥하네.
나그네는 냇물과 암석을 감상하고, 숲의 그늘에서 쉰다네.
胎峯路
寒溪白石三千洞、暖日嬌雲幾萬峯。無限勝觀吟不盡、峽天斜日又飛笻。
태봉 길에서
찬 개울가 차돌 바위 깔린 삼천동인데, 따뜻한 태양과 고운 구름이 산에 어울렸네.
무한한 경관을 시로 다 읊지 못하니, 해 기우는 골짜기를 지팡이 짚고 걸어가네.
歡喜臺望見西北高山
彌高蒼翠揷中天、厚重元來自不遷。始信樂山須有樂、傍人且莫說雲湮。
환희대에서 서북쪽 높은 산을 둘러보며
높고 푸른 산이 하늘에 쭝긋이 솟았는데, 그 모습 중후하여 오랜 세월 버텼네.
참으로 산을 좋아하면 절로 즐겁나니, 곁의 사람들은 구름과 연기 논하지 마오.
宿山臺庵
磬響天風外、泉韾北斗邊。夜深淸徹骨、遊子脫塵緣。
산대암에서 묵으며
하늘 멀리 경쇠 소리 들려오고, 북두칠성 가에서 샘물 소리 들려오네.
깊은 밤 되자 온 몸이 상쾌해지니, 이 나그네는 세속 인연 벗어났다네.
山臺庵引古句
白雲高處住寒笻、日落千山送晩鐘。瀟灑寺門塵不到、茶煙輕颺落花風。
산대암에서 옛 시구를 인용하여
흰 구름 높은 곳에 지팡이 짚고 섰으니, 해가 지는 산에 절간 종소리 들려오네.
깨끗한 절에는 세상 잡념 이르지 못하고, 차 달이는 연기 따라 꽃잎 흩날리네.
贈上伽絶粒僧淨圭
刳木松泉走、懸崖板崖高。僧閒無一事、揮塵碧雲雷。
湌砂丹在䆴、燃竹綠生煙。石室生涯淡、雲松鶴共眠。
상가 절립승 정규에게 주며
나무들이 시샘하듯 송천에서 자라고, 높은 언덕에 나뭇가지 달렸네.
스님은 한가하여 일이 없고, 푸른 구름 흘러가며 세상 먼지 날려버리네.
모래 벌에 단구가 남아 있으니, 대나무 태워 푸른 연기 솟아오르네.
석실의 삶이 담박하니, 구름과 소나무가 함께 잠들었네.
花陰臺
閒將萬里眼、晴日上高臺。花遥細如線、望山僧獨來。
화음대
한가해서 만 리 밖을 내다보니, 태양은 환하게 높은 누대에 오르네.
실처럼 가녀린 꽃이 어여쁘고, 저 멀리 산의 스님이 홀로 걷어 오시네.
山臺峯
斗起危峯霽漢間、風磨萬古未能刪。凌空壁立千千仞、移與中心一㩘看。
擈空翠壁平如掌、錦帳糚春面面圍。落日晩風飛細雨、萬香吹露濕荷衣。
산대봉
위험한 봉우리 은하수 사이로 솟았고, 만고에 바람 몰아쳐도 다 깎아내리진 못했네.
하늘 찌르듯이 천 길 공중에 우뚝 솟았고, 중심을 옮겨 한 번 자세히 보네.
푸른 절벽에 붙어 손바닥처럼 평평하니, 봄철엔 비단 장식으로 겹겹이 둘렀구나.
석양 무렵 부는 바람을 따라 가랑비 뿌리고, 이슬에 젖은 향기가 옷에 스며드네.
石崙
巖臨嶺海平分地、門厭東南半壁天。半世風襟無處著、石崙今日盪無邊。
俯視塵寰接杳冥、山高無客叩雲局。我今暫借胡牀寢、半夜鐘聲入骨淸。
험한 바위
넓은 바위가 바다에 임해 있어, 동남으로 눌러 반 공중에 펼쳐졌네.
반평생 마음 둘 곳 없이 지내다가, 오늘 석륜에 오니 한없이 넓은 세상 펼쳐졌네.
인간 세상 굽어보니 아득하고 어둑하고, 높은 산에 길손 없고 구름만 날아드네.
이제 잠시 침상에 의지해 잠드니, 밤중에 들려오는 경쇠 소리 온몸을 상큼케 하네.
鳳頭巖
聞樂何時儀舜韶、鳴岐幾日覽周德。爾來千載無所歸、化作蒼巖住雲壑。
봉두암
그 언제 순임금의 음악을 들을는지, 경관 좋은 산에서 두루 돌아보는 즐거움 누렸네.
천년 동안 돌아갈 곳이 없었는데, 푸른 바위 둘린 구름 골짜기에 살려네.
答郭靜叔
雨裏峯巒更絶奇、此間誰辦謫仙詩。賴有風襟除未盡、短毫聊答洞仙譏。
곽정숙에게 화답하며
비 내리는 중에 산봉우리 더욱 배어나니, 이 사이 누가 신선의 시를 분별하리.
바람 불어도 흉금 다 씻어내지 못했는데, 짧게 화답해서 산속 신선이라 놀림 받겠네.
次晦庵聞磬韻
西臺花發東臺雨、北澗雲從南澗風。擁褐孤僧長坐睡、一山風雨獨如聾。
雲侵客榻荷衣冷、雨過松巒嶽氣寒。若使人人長對此、高山誰信隔塵寰。
회암이 경쇠 소리를 들은 운에 차운하며
서대에 꽃 피고 동대엔 비 내리고, 북쪽 냇가 구름 피오르고 남쪽 물가엔 바람 부네.
옷 적삼 걷은 스님은 오래 앉아서 조는데, 온 산에 비바람 몰아쳐도 귀먹은 듯.
구름이 나그네 책상에 스며들어 옷이 차갑고, 소나무 산에 비 내려 산 기운 차갑네.
사람들이 오래 여기서 지낸다면, 높은 산이 세상과 동떨어진 곳임을 누가 믿으리.
次晦庵示同志韻
我思白山遊、蕙路攜同聲。行吟水石間、頓覺心骨淸。
探勝不憚勞、到處披蓁荊。冠者曾點徒、高山衡嶽幷。
同行五六日、各言肝膽傾。伽庵對鶴形、石寺聞猿驚。
學仙從此始、更向蓬山征。
회암이 동지들에게 보여준 시에 차운하며
내 소백산 유람할 제, 꽃길에서 함께 탄성을 질렀네.
수석 사이에서 걸으며 시 읊었더니, 문득 심신이 상쾌해지네.
탐승을 수고롭다 않고, 가는 곳마다 가시나무 우거졌네.
관동과 증점의 무리이니, 높은 산이 옥처럼 가려져있네.
함께 오육일 동행하여, 각자 자기의 마음을 털어놓았네.
석가암에서 학의 모습 보았고, 부석사에서 놀란 원숭이 울음 소리 들었네.
이제 신선술 배웠나니, 다시 봉래산 향해 올라가네.
贈石寺僧鏡圓
眼入不二門、修眞今幾春。須知八窓淨、白日看冲雲。
부석사 스님 경원에게 주며
두 문에 들어가지 않고, 수도한 지 몇 해나 되었나.
여덟 창이 모두 조용하니, 대낮에 눈이 내리네.
次晦庵韻
賞山在得意、行吟非所事。千峯新霽時、須識靜觀理。
十里踏山竹、兩腋生淸風。乘此欲安適、去去登瀛蓬。
회암의 운에 차운하며
산을 감상하는 의미를 두고, 걸으며 시 읊음을 일삼지 않았네.
봉우리에 구름 걷힐 때, 조용히 이치를 깨닫는다네.
십 리 산 대나무길 걸으니, 양 겨드랑이에 맑은 바람이 이네.
하늘을 날아 어디로 갈거나. 훨훨 날아 영주섬에 가려네.
國望峯
國望危峯揷碧是、紅雲何處玉京春。葵忱自是無竆達、獨上高臺望美人。
국망봉
우뚝한 국망봉 푸른 하늘에 솟았고, 옥경의 봄을 맞은 붉은 구름 피어오르네.
해바라기처럼 무한히 즐겁고, 홀로 누대에 올라 미인을 그리워하네.
國望臺
登高觀賞此無前、萬里乾坤一望邊。擧自那知天下小、宣尼曾上泰山巓。
국망봉
높이 올라 감상하니 전과 비교가 안 되고, 만 리의 천지가 모두 들어오네.
이제야 천하가 작음을 알겠으니, 공자님도 일찍이 태산에 올라 말씀하셨네.
次郭靜叔韻
上碧峯傾白酒、嶺雲飛巖花發。放高歌動仙舞、留蕙路送落日。
과정숙의 운에 차운하며
푸른 봉에 올라 백주 마시니, 구름 지나가고 꽃은 곱게 피었네.
고성으로 노래하여 신선을 춤추게 하고, 꽃길에서 석양을 전송하네.
新態巖
天低雲盡碧山幽、湖海胷襟一石頭。舊習疎狂除未得、晩風斜日獨淹留。
신태암
나직이 깔린 구름과 깊숙한 푸른 산, 바윗가에서 흉금이 탁 트이네.
옛 습관을 아직 떨쳐버리지 못해, 석양에 바람 쐬며 홀로 서있네.
國望長句
來登國望最高頂、湖海萬里爭環囘。風襟月袍付浪吟、一杯酒盡相開懷。
景直高歌碧雲遇、士好慢舞長松摧。靜叔淸吟山鬼泣、鳴吉綺語巖花咍。
都將海嶽納胷次、此時此樂眞快哉。安得兩腋生羽翰、飛去海上登蓬萊。
新詩吟罷夕陽邊、山鳥一聲風外來。
국망봉에서 지은 긴 시
국망봉 최정상에 올라보니, 만 리의 호수가 다투듯 둘러있네.
풍월로 흉금을 씻고 시를 읊으니, 술 마시며 회포를 나누네.
푸른 구름 만나 노래 부르고, 가지 늘어진 소나무와 어울려 춤을 추네.
조용히 맑게 읊으니 산 귀신이 울고, 정다운 말로 담소하니 바위의 꽃이 답하네.
바다와 산을 모두 가슴에 가득 담아, 이보다 더 즐거울 때 있으랴.
두 어깨에 날개를 달아, 바다 위를 날아 봉래산에 가고파라.
석양 가에서 시 읊기 마치자, 산새 울음소리 바람타고 날아드네.
宿明珠庵
宿雲留石竇、新月挂峯光。暝入晴霽外、臨軒氣像兼。
명주암에서 묵으며
석굴에 구름이 머물고, 초승달 떠서 산봉우리에 환하네.
석양은 맑은 하늘 뒤로 지고, 누대에 오르니 기운이 상쾌해지네.
捧日庵贈箴上人
俗綠磨盡道胷空、雲衲生涯萬壑風。徒倚小窓閒對話、天台賢聖宛相逢。
봉일암에서 잠상인에게 주며
속세 인연 비워 가슴이 텅 비우고, 평생 구름과 골짜기 바람을 채웠다네.
작은 창에 의지해 한가로이 담소하니, 천태산 성현이 서로 만난 것 같네.
癡溪翁[郭公瀚靜叔大人]之遊小白、有贈行之作、追次其韻
치계 곽한정공의 숙대인이 소백산을 유람할 때 떠나며 지은 시가 있는데 그 시에 차운하며
晩把枯藜尋古峽、荷衣行色政超然。雲牋誰寄同聲語、錦水明邊一老仙。
석양 무렵 지팡이 의지해 골짜기로 접어드니, 짐조차 가볍고 산뜻하네.
구름 보며 함께 전송하였으니, 비단결 고운 물가에 신선 한 분 서있네.
下山時洞口卽景
霽色浮靑嶂、鳥聲度碧山。沿溪芳草路、誰記短笻還。
하산할 때 마을 입구에서 본 경치
푸른 산에 비가 그치자, 새 울음소리 푸른 산을 넘어 들리네.
냇가에 파릇파릇 자란 풀, 정겹게 바라보며 지팡이 짚고 돌아오네.
在雲院贈諸秀才
院庭寥落白雲移、聯袂騷客散步時。暮山佳氣本無盡、嬴得風襟幾許詩。
운원에서 여러 벗에게 주며
쓸쓸한 정원에 흰 구름 지나가고, 시인들 함께 산보한다네.
저무는 산의 좋은 풍광은 무진장인데, 저마다 가슴 속에 시를 가득 담았네.
輓裵都事[龍吉]
도사 배용길의 죽음을 슬퍼하며
昔者逢君日、春風錦水濱。迃愚憐我拙、疎蕩喜君醇。
月異生前後、年同歲丙辰。憫余曾抱病、聞子更攀鱗。
視草牀前客、觀風幕下賔。開心惟任放、出語動遭嗔。
魏闕辤榮久、慈厨視養純。萱花春不老、彩服舞長欣。
只道遐齡享、寧知迫禍臻。晨闡省有子、昏寢定無人。
一死何堪忍、三從奈末因。天乎終莫問、命矣更誰陳。
多愧沈綿久、無由哭拜親。幽明負良友、涕淚寫哀呻。
箇箇從前事、茫茫浩刼塵。秋天更寥落、琴斷獨傷神。
예전에 그대를 만났던 날, 봄바람 불고 비단결 고운 물 흘렀지.
우둔한 나를 용납하여 주었고, 소탈하게 막걸리 마시며 즐거웠네.
앞뒤로 달을 달리하여 태어났지만, 병진년 동갑내기였네.
내가 병이 잦음을 안타깝게 여겼고, 듣건대 그대는 벼슬을 했다고 하네.
그대는 침상 앞 나그네 되어, 막하의 손님들 보았으리.
마음을 열어 호탕했으며, 말을 할 때면 무리를 호통했네.
위나라 대궐에선 영화를 사양했고, 고향에서 순수함을 길렀네.
망우초는 봄에도 시들지 않고, 채색옷 입고 길이 춤추며 기뻐하였네.
오래오래 살기 바랐더니, 갑자기 화가 닥칠 줄 몰랐네.
어버이 침소를 돌보던 효자가, 이제는 그렇게 할 수 없다네.
한 번 죽음을 어이 참아내리. 삼종의 도리를 다 못하니 어이할꼬.
하늘에 따질 수도 없으니, 운명임을 어이하랴.
오래 병을 앓음이 부끄러우니, 절하며 통곡할 길이 없다네.
이승과 저승으로 벗이 갈라져서, 눈물 흘리며 울부짖는다네.
지난 일 하나하나 생각하니, 아득한 티끌이 되고 말았네.
가을은 이처럼 슬프고 아득하니, 거문고 줄 끊어져 신명이 상한다네.
(2023.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