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글쓰기 >
새해 아침, 낯선 풍경을 맞이하다
2025.1. 더불어
2025년, 새해 첫날 해가 뜨기 전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일찍 일어나 수영장으로 향했다.
평소 다니던 평림수영장이 휴무라 수영장 개장을 하는 죽림수영장으로 오랜만에 가게 되었다.
새벽의 추위와 어둠을 헤치며 수영장으로 가보니 이미 수영장에는 나보다 더 일찍 오신 분들이
각자의 속도대로 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나도 오랜만에 오는 수영장이라 조금은 낯설면서도 새로운 기분으로 수영을 즐겼다.
평림에서 같은 반 수영을 하시다가 죽림수영장으로 옮기신 분들과도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오래 보아서 얼굴이 익은 어머님들과도 인사를 나눴다.
그렇게 50분간의 수영시간을 마칠 무렵, 비상벨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직원분이 오작동인지 보고 오겠다고 소리의 원인을 찾기 위해 자리를 비우셨다.
때마침 나도 오늘 수영은 그만하려고 했기에 샤워실로 향했다. 샤워를 마칠 무렵,
사람들이 하나 둘씩 샤워실로 몰려오기 시작했다.
탈의실 청소를 하시는 분이 들어와서 빨리 대피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도 나는 설마 불이 났겠어하는 반신반의의 마음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그렇게 옷을 다 입을 무렵이 되자, 직원분이 놀라며 큰소리로 지하에서부터 연기가 올라오기 시작한다고 했다.
그제서 이게 현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신발을 겨우 찾아 신고 탈의실 문을 나서려고 할 때 갑자기 모든 전기가 다 차단되었고
깜깜한 암흑이 되고 말았다.
재빨리 휴대전화를 꺼내서 후레쉬 버튼을 누르고 2층에서 1층의 출입구를 향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매캐한 연기가 입을 막은 옷 사이로 들어와 목과 눈을 따갑게 했다.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계단의 난간에 의지해서 잡고 내려오기 시작했고
2층에서 1층의 코너에서 벽에 막혀서 방향감각을 잃고 말았다.
그때는 앞은 보이지 않고 매캐한 연기에 목이 너무 따가워서 내가 길을 찾아나갈 수 있을까하는
의심이 들기도 하면서 무서움이 덜컥 들었다.
그래도 여기서 포기하면 안 된다고 마음을 먹고 더듬거리며 1층 계단을 찾아서 나아갔다.
2층에서 1층으로 가는 계단이 그렇게 길게 느껴진 적은 처음이었다.
차가운 바깥공기가 들이마셔지자 살았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제서 야 두 다리가 덜덜 떨린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새해 아침 놀란 남편과 함께 병원 응급실에 가서 이미 구급차에 실려 온 재해를 입 은 분들과 함께
몸에 이상이 없는지 진료를 받고 수액을 맞았다.
나는 다른 분들보다는 일찍 나온 편이라 큰 이상은 없었는데 연세가 많거나 뒤늦게 나오게 되신 분들은
화상을 당하시거나 폐에 이상이 생겨 큰 병원으로 이동하시기도 했다.
나는 병원처치를 마치고 다행히 안락한 우리 집으로 돌아가서 쉴 수 있게 되었다.
새해 아침,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우선은 내가 위급한 상황에서 그 상황을 인지하고 대비를 위해 행동으로 옮겨야하는데
안일하게 대처를 늦게 했다는 것이 후회가 되었다.
그리고 평소에 화재가 발생했을 때 젖은 수건으로 코와 입을 막고 낮은 자세를 취하며
빠르게 대피해야하는 상식적인 것들을 실전에서는 우왕좌왕하면서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설사 그것이 오작동일지라도 우선은 신속하게 매뉴얼대로 따라야 한다는 것도
깊이 깨닫게 되었다.
새해가 되고 덕담을 서로 나누는 아침
나는 내게 다가올 앞날이 행복하기만을 바라기보다는 그저 무탈하게 평범한 일상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깨닫게 되었고, 그저 그렇게 올해를 보낼 수 있다면
정말 감사할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화재사고를 접한 지인들에게 안부를 묻는 연락이 왔고,
어떤 이는 내게 필요한 것을 사주기도 하고, 맛있는 것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큰일을 겪어보니 내 곁에 있는 나를 걱정해주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존재를
새삼 느낄 수 있어서 한편으로는 챙김을 받는 그 순간들이 참 좋았고, 너무 감사했다.
새해 아침의 풍경이 내가 바라는 풍경은 아니었지만 낯선 그 풍경들을 겪게 되면서
이 일이 꼭 내게 앞으로는 더 조심하라는 그리고 지금에 감사하라는 신호처럼 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