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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명의 유래(由來)
부포리 부포마을의 지명은 옛날부터 감티, 부개, 부포로 불리어져 왔는데 "감티"는 통영에서 70리, 진주에서 70리 되는 지점이 이곳으로서 옛날 사천, 진주, 지리산지역의 산적과 통영, 마산, 부산등지의 산적이 서로 만나 감투싸움을 한 고개로서 감티(재)라 부르게 되어으며 "부개"는 천황산 줄기가 지아비 부(夫), 클개(날개) 포(浦)자 모양을 하고 있다 하여 이곳을 지나던 원님이 지어준 지명을로 부개라 하였다 한다. 그리고 "부포"는 일제시 행정구역 개편으로 부포리로 하였다가 광복후 분동이 되면서 부포(夫浦)와 내부포(內夫浦)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마을의 형성(形成)
마을이 생긴 연대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으나 구전(口傳)에 의하면 지금부터 약 500여년전에 수원백씨(水原白氏)가 이곳에 정착하여 살기 시작하면서 수원백씨(水原白氏)가 임란때 입촌하였고 그후에 밀양박씨(密陽朴氏), 전주최씨(全州崔氏), 평택임씨(平澤林氏)등 지금은 10여 성씨가 마을을 형성하여 살고 있다.
◎ 마을의 지세(地勢)
부포마을은 고성에서 사천∼진주방면 국도의 갑문에 위치한 감티고개 마을로 뒤에는 천황산(天皇山), 앞은 선당산 자락에 자리잡은 마을로 군내에서 높은 지대로 겨울에 춥기로 전라도 운봉(雲峯) 다음가는 마을로 알려져 있으며 농토가 비옥하지 못하고 수원도 좋지 못한 지대이다.
◎주민(住民)
마을 주민은 76가구에 206명(남자:95명, 여자:111명)이 살고 있으며 거주민의 성씨는 수원백씨(水原白氏), 수원백씨(水原白氏), 밀양박씨(密陽朴氏), 평택임씨(平澤林氏), 파주염씨(坡州廉氏), 함안이씨(咸安李氏), 진양정씨(晋陽鄭氏), 김해김씨(金海金氏), 전주최씨(全州崔氏)등 제씨가 살고 있다.
◎주민의 생업(生業)
주민의 생업은 농업을 주업으로 하면서 축산과 밤, 감 등 과수도 하고 있으며 일부 농가에서 인삼을 특용작물로 재배하는 농가도 있다.
◎교육(敎育)
부포마을의 교육기관은 초등교육은 상리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으며 중·고등교육은 상리중학교와 고성 등지의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교육을 받고 있다.
◎재실(齋室)과 비(碑)
◇수원백씨(水原白氏)
문중에서 임진왜란때 삼대가 공을 세우고 전사한 공(公)에 대하여 조정에서"삼총사"란 시호를 내린 재실인 쌍충재(雙忠齋)와 추모비가 있다. ◇창녕조씨(昌寧曺氏) 문중에 조선초기 판서벼슬을 한 공(公)의 무덤과 비석, 장군석이 전해지고있다.
◎지명 일화(地名 逸話)
◇전어골
옛날에 이곳에 전어가 살았다 하여 전어골이라 한다.
◇벌밭골
벌이 많아 사람의 접근이 없었다 하여 벌밭골이라 한다.
◇피밭골
선당산(仙堂山) 아래 독메에 명당이 있었는데 임란때 왜적이 기운을 꺽기 위해 불을 피우고 쇠말뚝을 이곳에 박자 용마가 나와 이산 저산으로 뛰면서 피를 토하고 죽었다 하여 피밭골이라 전하고 있다.
▣내부포(內夫浦)
◎동명의 유래(由來)
내부포 마을은 일제시 행정구역 개편으로 부포리(夫浦里) 법정리로 되었다가 광복후 분동되면서 부포와 내부포로 행정구역이 변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마을의 형성(形成)
내부포마을의 형성 연대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으나 구전에 의하면 지금부터 약 500여년 전에 창녕조씨(昌寧曺氏)가 이곳에 정착하여 살기 시작하면서 그후에 수원백씨(水原白氏)가 입촌하여 골땀, 안땀 장성거리의 산재 마을로 되어 있다가 1980년도에 취락구조 개선으로 새마을이 하나 형성되어 4개의 산재마을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마을의 지세(地勢)
내부포마을은 천황산(天皇山) 자락에 자리잡은 4개의 산재 마을로 고성읍에서 진주방면 국도의 약 10㎞ 지점에 위치하여 삼산면과 영현면을 관통하는 군도가 4거리를 형성하고 있다. 이곳에 1960년도에 5일 시장(시장일 5일과 10일)으로 재래시장이 개설되어 쌀을 위시한 농산물의 시장이 25년간 계속되다가 폐지되었으며 지금은 이곳을 "장성거리"라 부르고 있다. 경지는 마을 주변에 비교적 넓은 들판을 가지고 있으며 수원도 풍부한 편이다.
◎주민(住民)
마을 주민은 84가구에 207명(남자:108명, 여자:99명)이 살고 있으며 거주민의 성씨는 수원백씨(水原白氏),함안이씨(咸安李氏), 남평문씨(南平文氏), 전주이씨(全州李氏), 창원황씨(昌原黃氏), 남원양씨(南原梁氏),창녕조씨(昌寧曺氏), 평강채씨(平康蔡氏), 청송심씨(靑松沈氏), 인동장씨(仁同張氏), 진양하씨(晋陽河氏), 진양강씨(晋陽姜氏)등 10여 성씨가 살고 있다.
◎주민의 생업(生業)
주민의 생업은 농업을 주업으로 하면서 축산과 밤, 감 등 과수도 겸하고 있으며 죽세품(竹細品) 가공을 하는 농가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