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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17일 종중 이사회의를 유성 장대동 실비식당에서 열었습니다.
회의 주제는
1. 진영공파 족보 발간에 대한 토의
2. 종중산 32번지 묘지 정리 건 토의
3. 한식제 모시는 36世 圭哲(규철) 할아버지와 圭奉(규봉)에 대한 토의
아래는 대화 내용을 글로 남긴 내용.
【2017년 06월 17일 이사진 회의 내용】
참석자 : 재희 (회장), 용희 (총무), 상귀 (재무), 재훈(종손), 그리고 이사진
장소 : 유성장대동 실비식당
재희 : 상속자 41명 인가?
상귀 : 45명
재희 : 그 사람들 개개인한테 이렇게 그 일대일로 상대해 가지고 그걸 이제 일 대 일 매매 하는 형식으로다가 하는 방법밖에 없는데 그걸 하려면 아마 시간 어떻게 보면 몇 년이 걸릴 수도 있어요. 그래서 그런 방법으로 하는 게 좋은 건지 아니면 그냥 그냥 현 상태로 이렇게 놔뒀다가 예를 들어서 그게 수용이 돼 가지고 토지공사에서 할 때 그때 이제 우리 종종 거라는 판결문을 받아놓은 게 있기 때문에 그거 가지고 우리가 이제 개개인들한테 물론 이제 보상이 나오면 연락은 가겠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우리가 이제 재판에서 우리 경주이씨 거라는 걸 받아놓은 그 판결문이 있기 때문에 그거 가지고 만약에 본인들이 그걸 인정을 안 한다면 그때 이제 그 이유의 저 뭐야 법원에 그걸 하는 게 나은 건지 어떤 방법이 좋은 건지 이걸 한번 또 오늘 얘기를 해줬으면 좋겠어요.
석희 : 제가 언뜻 옛날에 들어보니까요. 그게 경주이씨 건 인정한다.
단지 당신들 대표성을 인정 못하겠다. 당신들이 그거 아니에요. 그게 법원 판결 선결이지
재희 ; 이게 원래 논밭은 정종에서 이게 특별자치법에 의해 가지고 안 돼.
예를 들어서 임야나 대지 같으면 이게 종중으로 벌써 바꿔놨을 건데 이 논밭은 그 종중 명의로 이름이 안 된다고 그래서 지금 못하고 있는 건데 하여튼 그런 상황인데 그냥 어떻게 보면 이게 뭐 수용이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대로 놔뒀다가 나중에 보상이 나오면 그때 이제 법적으로 만약에 그 개개인들이 그 뭐야 나온 걸 종중 한테 못 주겠다 하면 그때 이제 법으로 하는 게 좋은 건지 아니면 미리 시간이 걸려도 이걸 미리 해놓는 게 좋은 건지 한번
석희 : 근데 그게 안전만 하다면요 그때까지 기다리겠지만 그게 안전한 건 사실인가요?.
그분들한테 괜히 넘어가는 건 아닐까요?
상귀 : 넘어간 게 아니고 내가 법률구조공단을 엊그저께 법원 앞에 있는 걸 갖다 왔는데요.
거기서 하는 얘기가 지금 판결문까지 다 보여주고서 이걸 그렇게 하는 대로 보고 등기를 하라고 한다니까 이게 등기 못 낸다.
그래서 개인 종종 등기 못 낸 거 그 사람들 알더라고 한다고 그러더니 알고 그다음에 이것은 그래서 개인적으로 먼저 저를 명예신탁 해갖고 해지를 해 갖고 한다 하니까 이것도 종종 등기에 재판을 했기 때문에 거기서 적기 때문에 안 된다.
전답은 종종으로는 그냥 등기를 해 안 되고 거기서 하는 방법은 이것은 가압류 신탁 해놓으니까 우리 명예 신탁 배제해 놨지 가압류 신탁 그거 해놓고서 보상이 되든지 그때가 되면 그게 틀린다네.
그게 전답이나 그 없어진댜. 그게 수용이 되면은 그때 가서는 가압류 신청을 저기다 걸어놓는 게 종중에다 걸어갖고서 이 돈을 찾으라는 게 공탁을 해서 그것도 한번 그냥 없다고 하더라고 다른 방법은 없지 여기 법률 공단을 갔다 왔어요.
재희 : 그러니까 우리가 등기상으로는 지금 가압류까지는 해놨다고 해놨으니까 뭐 그 개개인 앞으로 그 명단이 있어도 절대 그건 뭐 안 되는 그런 상황까지 돼 있으니까 그러면 이거는 보상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걸로 이렇게 그렇게 결론을 냅시다.
석희 : 그런데 그분들도 우리 경주이씨 아니에요
재희 : 아니요 아니 아니 아니 무슨 변호사 사무실 가서 얘기하는데 무슨
그다음에 또 한 가지는 아까도 그 얘기를 했는데 그 족보 관계 족보가 원래 만드는 데는 내가 생각하기에도 옛날 그냥 우리 반바지 입고 나락 걷을 때 그 양반이 와서 이렇게 조사한 걸로 내가 기억을 하는데 굉장히 이렇게 오래됐어 오래됐는데 그렇지
경희 : 재기라는 분이에요. 재기
재희 : 근데 지금 족보를 아마 보시는 사람은 지금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거기에 보면 지금 저기 제일 우리 항렬로 제일 낮은 준호 아들 저
경희 : 준성이까지 나왔어요.
재희 : 준걸이 아들 둘이 나와 있더라고 우리 현재 족보에 그러니까 지금 만든다고 해도 더 이상 뭐 넣을 뭐가 없을 것 같아. 그 딸들도 보니까 우리 딸내미도 보니까 다 들어가 있는데 그 아마 우리 熙자 밑으로는 딸들까지 다 거기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아. 그래서 그건 급한 건 아니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데 여러분들 의견은 어떤지
석희 : 거기 경주이씨 대동회 있잖아요. 서울에 중앙 하수에 거기서 만들면 이게 우리가 안 들어갈 수가 없어요. 지금 거기서 만들자고 하면 우리가 또 우리도 집안 만 빠질수도 없지요.
재희 : 아니 우리는 우리끼리 하는 게 나아.
상귀 : 법적으로 설명할게. 그거에 대해서는 대종보는 우리서 만든 거기 때문에 우리는 못 들어가서 빠졌어요. 빠져 있고 지금 만드는 게 家乘譜입니다.
***家乘譜 : 한 가계의 혈통과 역사를 후손에게 전하기 위해 만든 기록(족보)
가승보인데 지금 조건 만든 지가 87년도 7월 얼마 돼 저기 인쇄가 돼 있더라고 그러니까 30년이 넘었습니다. 이제 30년이 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30년 熙시가 됐든 鍾자가 됐든 在자 어쨌든 간에 30년 후로 해서 나는 하나도 못 올라갔어요.
지금요 저기 30년 중이기 때문에 족보는 만들고 안 만들고는 되게 하는데 지금 어디든지 가승보로 만드는데 저 족보를 그 맞는다면 만들고 안 맞는다 안 맞는다고 그건 결정되는데 만들어야 될 작정이고 그래갖고 빠진 사람들이 많이 있을 거야.
그쪽으로 만드는지 이 옥산 옆에 세미 옆에 우리 최대 골에 한파가 있는데 거기서 이제 그걸 같이 동업을 안 하기 때문에 가성보을 만들었는데 우리 폐만 최소골패만 저 저기 올라가는 거예요.
많지는 않아. 그래 갖고 왔는데 이게 먼저 그 전적 그러니까 경주이씨 윗 代祖 저기부터 나고 다 넣고 한 뒤 480얼마가 나오더라고 저기로 먼저 식으로 만드는데 만들고 회상사 족보 만드는데 거기 가서 물어봤어요. 알아봤더니 그렇게 나오고 그 저기를 빼놓고 만드는 거는 그러니까 옥살미패나 저기를 새미래패를 빼놓고 만드는 거 저기 100부를 주문할 경우 얘기하는 겁니다.
그게 한 200 정도가 저기 가 되더라고
석희 : 그것도 저기 뭐야 옥살미 그쪽하고 이렇게 동시에 만들어야
재희 : 아니지 그쪽은 우리는 우리 자체적으로만 하면 되지 우리가 실제 그 모든 걸 족보 정상적으로 하려면 당연히 그 뭐야 중앙회에 가서도 이렇게 등록을 하고 해야 되는데 중앙회까지 실제 우리 족보 만드는 것 자체가 그게 아니잖아 뭐야.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우리 족보 만드는 데다가 거기에 이제 추가로 태어난 사람들 있잖아.
내가 아까 얘기했잖아 준호 아들 두 명까지는 보니까 막내가 들어가 있더라고 그러니까 고 전이라든지 아마 이후에 태원한 사람도 이 거의 이제 다 20대가 됐을 거야. 그러면 그 사람들 결과적으로는 기존에다가 명단만 추가해놓은 거야. 지금 이게 새로 만드는 게 아니라
경희 : 지금이요 족보를 새로 만들고 어떻게 하든 간에 옛날에 했던 그 자료가 컴퓨터 자료가 있으면은 거기다 말씀하신 대로 추가를 하면 되는데 지금 그 자료가 없을 거란 말이야.
그래 가지고 내가 그 회상사 족보 담당자 사무관하고 전화를 통화를 해 보니까 족보 만드는 게 지금 뭐 준성이 하고 준걸이 까지 나와 있는데 그 밑으로 다가 지금 뭐 몇 명 안 될 거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데 몇 명이 되고 안 되고 뭐 자손이 있고 없고 그거는 따져봐야 아는 거고 그래서 그 족보를 만드는 게 어려운 건 아니에요. 요즘에.
족보 만드는 게 옛날같이 일일이 쫓아다니면서 호적초본 호적등본 떼어 가지고 제적등본 띠고 해서 그렇게 만드는 게 어려운 게 아니고 만들려고 마음만 먹으면은 여기 앉아 있는 우리가 수고만 하면은 다들 만드는 데는 크게 지장은 없어요.
연락처만 되면은 그 가족관계 증명서라는 게 있습니다.
사람이 결혼을 하면은 세대주가 발생이 돼요.
결혼하면은 딱 여자하고 딱 합쳐가지고 그러면 그 세대주에 따라서 가족관계 증명서 한 통씩만 떼어가지고 쭉 집게 해가지고 분류해 가지고 갖다주기만 하면 그냥 족부 만드는 데는 쉬워요.
저게 우리가 관여할 게 별로 없어요.
재희 : 우리가 자료를 줘야 만드는 거지 왜 관여할 게 없어
경희 : 그러니까 지금 회장님 말씀하시는 대로다가 밑에 몇 명이 태원하고 그걸 따지기 전에 지금 벌써 보면은 나는 자식 자손들이 뭐야 밑에 자식이 없는 걸로 돼 있고 결혼을 안 하는 걸로 다 지금 족보에 올라가 있지만은 그동안에 이제 결혼을 했고 또 여기 같은 경우는 또 밑에 자식들 결혼해 가지고 또 밑에 그 손자까지 있고 그러니까 벌써 2대가 벌써 내려가고 그랬기 때문에 지금 30년이니까 만들어야 돼요.
만들어야 되는데 지금 저 상귀 아저씨가 그거를 재무께서 좀 이렇게 좀 추진을 했는데 대충 얘기를 들어보니까 그 족보를 지금 현재 있는 족보에서 우리 진영 공파만 족보를 만드는데 그러면 아까 얘기한 대로 옥살미패하고 저쪽 새미래패 외삼패를 떼어버릴 거냐 그러면
재희 : 내 생각은 지금 있는 건 저기 장포공파 부터 있던가 거기서부터는 그냥 놔두고 그 저기 뭐야 장원 할아버지 거기서부터
경희 : 진영 진영 그러니까 터골도 빠지는 겨 터골 저쪽에 희영 할아버지 자손들도 빠지고
상귀 : 집길 할아버지도 빠지고
재희 : 그렇지. 우리가 이제 명색이 진영공 하니까 그 형 경영도 빠지는 거네.
기존 있는 건 그대로 넣어 놓고 그 밑에다 진영파 자손들만 추가로 더 삽입하는 걸로
경희 : 밑에 세 분 더 넣는데, 이제 아까 그 돈 얘기를 하셨는데 내가 생각할 때는 돈 갖고 족보를 가지고서 이렇게 하는 거는 뭐 크게 뭐 돈은 그게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아요.
나중에 그거 해가지고 족보 팔을 때 팔아야 돼. 저거는 그냥 주면 안 돼 그래가지고 나중에 족보 줄 때 한 2만 원씩 받고 그러면 그거 다 충당이 되니까 족보는 만들어야 됩니다.
지금 제가 3년 전인가 한번 종중 총회에서 족보 얘기 하니까 웬 놈의 족보 만드냐고 그랬지.
근데 지금 딱 30년 되니까 이제 다시 또 족보 얘기 나오잖아.
만희 : 원래 저는 그 주기가 25년에서 30년이라고 하더라고 그러니까 시기적으로는 됐어요.
재희 : 경영 할아버지 거기는 그냥 기존 있는 거 그대로 그냥 하는 거고 그 다음에 진영 할아버지 그 자손들은 세부적으로 그것도 나이가 우리가 원래는 20세였는데 지금 19세기 선거가 19세 이상 하는 걸로 이렇게 무조건 나이
경희 : 아니 아니야 그게 아니라니까요. 형님 아까 얘기했잖아요.
가족관계 증명서만 갖고서 넣으면은 지금 그 만드는 시점에 태어난 애까지 다 들어가는 거라니까.
재희 : 아니 애까지 다 나와서 거기 뭐 그게 꼭
경희 : 아니에요. 족보는 그렇게 해야 되는 거예요. 인원수가 왜 그거를 그거를 왜 저 18살 선거권 있는 애들 그 밑으로 잘라버리려고 그래요. 걔네들도 우리 자손이고 다 일가인데
재희 : 그다음에 또 20년이나 30년 돼서 또 만들어
*** 여기서 재희의 주장은 선거권 있는 사람들만 족보에 올리자고 하는거고
경희의 주장은 가족관계증명서 상 출생기록이 있는 사람은 모두 족보에 올려야 한 다는 의견임
참석자
그게 아니라 사람은 다 올려야 되는 형식이 있는 거예요.
올리는 거예요. 마음대로 이렇게 하는 게 아니라
하여튼 만원이 원하면 그렇게 하는 거고
경희 : 근데 중요한 거는 회상사에서 족보를 이제 만들기는 하는데 우리가 자료를 줘야 돼 당연하지 그렇지 자료를 주는데 재무 상귀 아저씨 혼자서 저걸 자료를 다 취합하기는 힘들어.
그럴려면은 지금 여기 나와 있는 사람들 있어요. 이 종종 총회에 나오는 이사진이라고 해서 나오는 사람들 이 사람들이 수고를 해서 자기 집 안 거 자기가 책임져 가지고 가족관계 증명서 다 띄워서 이렇게 딱 제출해야 돼.
** 회상사 : 대전시내에서 족보전문으로 만드는 회사 이름
재희 : 우리 임원들은 각 鍾字 할아버지 자손들 이렇게 오 형제 그분들 자손들로 이렇게 형성이 돼 있기 때문에 거기 이제 무슨 연락하면 예를 들어서 무슨 행사 있으면 다 그 사람한테만 연락하면 밑에는 다 그렇게 연락하는 걸로
경희 : 그런데, 지금 여기서 딱 끊고 맺어야 할 게 뭐냐 하면은
이 자리에서 그 종환 할아버지 자손 부터 저쪽에 규홍 할아버지 익희네까지 해 가지고 그걸 누가 할 건지 딱딱 지금 지정을 해가지고서 그걸 책임지고 꼭 그 자기 바운더리 집안 내에 해당되는 세대주를 전부 다 그 가족관계 증명서를 띄워서 자기가 딱 책임지고 이 종회에다가 제출할 수 있게끔 그걸 지금 지정을 해줘야 된다. 이 얘기요
재희 : 그러면 그 조건은 그렇게 하는 걸로 이제 일단은 결정을 한 거야.
그런데 우리가 이걸 총회에서 안 해도 되겠어요 아니면 여기서 그냥 결정해도 돼
참석자 : 종종 중요한데 그쪽 주소도 어디 있는지 모르고 막 그 큰 집 지어 하나도 큰 집이 그러면 이 시간대에는 시가 할 거 아니야 전화도 안받어
경희 : 그 누가 해 그렇게 힘들다고 아니 그러면 제일 가까운 거기서 안 하면
거기 의성이만 있는 게 아니라 야 재봉이도 있고 그랬잖아 똑똑한 애들 있잖아.
걔네들한테 얘기해서 해오라고 그러면 되지
상귀 : 지금은 옛날에 뭐 호적 등분하고 중립 등분 이렇게 되는데 이게 복잡해졌더라고 그게 뭐가 없어 아들 관계 등록번호 뛰는데 이 기준을 나를 두고 있었냐 누구한테 하느냐 여기서
경희 : 아니에요 가족관계 증명서가 옛날 호적등본하고 틀려가지고 희한하게 잘 돼 있는 게 뭐냐 하면은 세대주 아까 얘기했잖아요. 결혼한 사람은 무조건 가족관계 증명서 등 등록이 딱 돼요.
그럼 거기 옛날 내가 내 자식이 하나가 있는데 내 자식을 결혼을 안 했어 그러면 내 가족관계 증명서에 자식이 등록이 돼 있지만 내 자식이 결혼해서 이쪽 여자하고 다시 결혼했다고 그러면은 여기도 가족관계 증명서 하나가 또 발생이 돼.
재희 : 그러니까 그게 그게 잘못됐다는 얘기야. 옛날에 등기부 등본 뜨면 예를 들어서 경희 하면 그 밑에 그냥 줄줄이 다 나오잖아. 근데 그게 지금은 안 돼 나 지금은 안 돼 지금 얘기한 대로
난 한번밖에 안 나와.
경희 : 아니 그러니까 세대주별로 뛰면 된다 이거예요. 지금 현재 만약에 이렇게 살고 있는데 이분이 내 누가 하나 돌아가셨다고 그러면 나는 살아있잖아.
그러면 내 세대주로 뛰면 되는 거고 내 자식 결혼했다고 그러면 걔도 세대주로 또 뛰면 되는 거야. 세대주
상귀 : 가만히 있어 봐. 그게 복잡하다. 이게 내가 내 호주로 데어도 내 며느리는 안 나와 안 나와 아들 앞에 떼야 나오지 내가 세대주로 가족 등의 증명을 띠면은 며느리가 안 나와.
경희 : 그러니까 며느리 걸 띠려면은 그 며느리 세대주 걸 또 떼야 된다는 얘기야.
그러니까 그게 어려운 게 아니란 얘기야.
재희 : 뭐가 여러 장 뛰니까 어렵지 왜 안 어려워?
경희 : 회장님이 다 뛰는 거 아니잖아
재희 : 글쎄 옛날 같으면 호적등본 하나 띠면 다 나오잖아. 근데 그게 지금은 없어져 가지고 복잡해졌다는 얘기야.
참석자 ; 맞아. 그 얘기는 맞아 야
이어 서 가서 내가 뛸 수도 없어. 그쪽 가서
재희 : 저기 네 얘기할게요. 저기 지금 어차피 하는 걸로 했고 제일 먼저 이제 종원 할아버지 거기는 이제 여기 홍이 형 뭐 재영이 여기 저 용이 이렇게 있으니까 그거 이제 그쪽에서 이제 알아서 하는 거고 그다음에 그 종태는 그럼 나하고 저 오춘하고 하면 되는 거고
종무 송림은 광희하고 경희하고 만희하고 이렇게 짝져서 하면 되고 그다음에 저 종완은 저기 저쪽에 서 저기도 꽤 많더라고 그다음에 이제 종길 은 재신이
경희 : 재신네는 재신이가 하고 재웅이 쪽은 재웅이가 하고 세울말 쪽은 재웅이가 하고
재희 : 그 다음에 저기 그 종대 규홍 할아버지 거기 저 종대는 익희하고 혁희
경희 : 그러니까 이제 거기는 익희하고 건희하고 황희가 있어.
그런데 내가 볼 때는 건희한테 연락을 해 가지고서 건희한테 그쪽에 다 떼어달라고 그러면은 건희가 그건 빨리 손을 쓸 것 같고 그다음에 이제 이쪽에 복우 할아버지 그 자손이 지금 그 혁희 아냐 혁희는 이제 혁희 웅이하고 그쪽만 뛰면 되니까 그건 간단한 거고 그다음에 이제 문제가 저 복한이 아저씨 있죠 상린이 연락이 안 되잖아요.
재희 : 글쎄 거기 이제 종학 할아버지 아들이 이제 복환이 인데 그쪽에 거기도 뭐 아들이 현희 이렇게 있는데 거기도 연락이 한 번도 한 적이 없어
경희 : 저기 한테 하면 될 거예요. 건희한테
재신 : 내가 현이 전화 번호 알아
재희 : 아 지금 5명 다 얘기했어 하여튼 그러면 이렇게 각 鍾字 할아버지 자손들이 여기 다 모여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걸로 그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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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희 : 그다음에 또 한 가지는 게 이게 좀 복잡한 건데 우리 그 저 뭐 저 죽동에 그 임야가 한 만 5천 평 이렇게 되는데 거의 묘가 우리 입구 32번지에 거의 집중돼 있어요.
물론 저 음주도 많이 있지만 그래서 일부 의견이 옛날부터 그 이제 뭐 뭐 계단식으로 해가지고 이렇게 화장해서 넣는 얘기는 했었는데 그걸 이제 이 실제 여지껏 진행을 못 했어요.
그리고 거기에 또 지금 묘가 아마 제일 많은 게 물론 진영 할아버지부터 뭐 규철 그냥 다 거기에 있는데 그분들 그 묘를 우리가 뭐 허가를 내서 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우리가 이제 뭐 비공식적으로 해야 되는 건데 기존 있는 묘를 파묘해가지고 결과적으로 이제 이 화장을 해서 이렇게 해야 되는데 기존 거기에 묘 쓴 분들이 이제 그걸 또 어느 정도 동의를 해야 우리가 하는 거지 그냥 뭐 우리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거기가 보니까 제일 최근에 한 것이 이제 그 5촌 할아버지 할머니 그다음에 종환 할아버지 정우 할아버지 이렇게 거기 그 안에 가 있어 그리고 무슨 남씨 이제 묘 또 하나 그 소나무 있는 데 있고 그런데 그걸 이제 전부 다 파묘를 해가지고 이 화장을 해서 이렇게 하려면 이렇게 해야 되는데 그게 이것은 우리가 정해서는 우리 의견을 이렇게 집약해 가지고 총회 때 내가 볼 때는 이건 확실히 동의를 얻어서 해야 돼.
그리고 그리고 또 한 가지는 그 인자 그걸 하더라도 우리가 명색이 그 진영공파 할아버지인데 진영 할아버지 그 묘까지 이렇게 해야 되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 그냥 그 할아버지묘는 그냥 그대로 놔두든지 아니면 더 확장해서 좀 오히려 우리가 더 좀 보기 좋게 해놓는 그런 방법을 오히려 광고하는 게 낫지 않을까 똑같이 화장해가지고 이렇게 비석 하나 세운다는 것보다는 그래도 우리가 어디 뭐 다 진영공파 할아버지라고 하고 있는데 그런 것도 그렇고 그래서 이건 하여튼 이런 의견이 있다는 걸 얘기를 드리고 그다음에 그걸 하면서 우리 그 저기 배밭 그걸 일부 이제 밀어가지고 그냥 지금 뭐 보면 차 댈 데도 없고 그래서 어차피 배에 아무 쓸모도 없는 거 내가 볼 때는 그냥 배 내고 조금만 뭐 이렇게 이쪽 공사할 때 조금만 뭐 포크레인으로 파면 뭐 그냥 비슷하게 차 세워도 되는 거니까 그런 식으로 해서 이게 이제 계단식으로 할 때 그쪽은 같이 하는 걸로 이렇게 했으면 이런 생각이에요.
그래서 이건 뭐 우리 여기서 다 좋다고 해도 이건 어차피 총회 해서 얘기를 해가지고 그다음에 그 건너에 이제 석우 할아버지도 있고 그 밑에 이제 장원 집현 할아버지도 있는데 근데 이런 그 묘를 우리가 이제 전부 다 이쪽으로 같이 할 건지 그쪽은 좀 떨어져 있으니까 그냥 놔둘 건지 이런 것도 하여튼 여기서 그런 걸 얘기를 하고 그는 총회 때 이건 결정하는 걸로 이렇게
만희 : 제가 의견만 말씀드릴게요. 제가 지금 우리 뭐야 이제 앞으로 이제 자꾸 이제 돌아가시는 분들 연세 많으시니까 돌아가시는 분도 계시고 그러잖아요.
근데 보면은 전에 한 번 모임을 할 때 가묘를 써놓은 부분도 있고 지금 보면은 만 5천 평 그 이하에서 보면 그 묘를 쓸 자리가 별로 없어요.
70개 가지고 60~70개 정도 지금 산재돼 있는데 지금 보면은 중구난방이란 말이에요.
이리저리 막 묘지 크기도 사이즈도 크고 작고 중구난방인데 제가 보기에는 이 매장은 앞으로 안 돼요. 우리 그 종산의 지리적인 조건으로 볼 때 매장 같은 경우에는 동네 속을 통과해야 되는 입장이 돼 있고 또한 그 납골당은 좀 난해한 문제가 말씀하시는 거 보면 거기 습해 가지고 어떤 벌레라든가 해충이라든가 뱀이라든가, 이제 그런 부분은 거기는 어떻게 이제 보면은 거기다 흙을 채워 가지고 그런 저기는 없을 거예요.
그런데 이제 납골당을 막 저 가지고 이렇게 들어가고 하면은 그런 부분은 좀 안 좋은 모양이더라고. 그런 부분을 다 보완해 가지고 그냥 평장으로 해버리면은 평장으로 해버리면은 국립묘지식으로 그런 식으로다가 계단을 해가지고 밀어가지고 해 놓으면은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제가 의견으로 전에도 한번 말씀드렸습니다.
지금 매장을 할 수가 없다니까 아까 금방 내가 전자 얘기했듯이 앞으로 매장은 절대 안 돼요.
참석자 : 가서 봐. 시방 지금 앞으로 모이자를 쓸 자리도 없고 그러니까 여러 사람이 다 쓰기 좋게 하기 위해서 하는 거
석희 : 근데 앞으로 앞으로는 모르겠지만 밑에 최소한 종자 할아버지까지는 그대로 내공에 두셔야죠.. 그럼 정자 아버지까지 다 화장해버리고 깨끗하게 다 없애버리면 뭐 하는 거예요 우리가 왜 여기 있어요?
참석자 : 그러니까 앞으로 미래를 얘기하는 거지
참석자 : 지금 이때 저기 뭐야? 아니 십자 현자 할아버지 지금 너
참석자 :지금 묘가 지금 있는 상태하고 지금 화장해서 납골당 정리하는 거하고 차이점은 뭐가 있냐 이거요.
석희 :지금 묘는 건드는 게 아니에요.
용희 : 아니 그 젊은 사람이 이렇게 나이 먹은 사람 흉내 내는 저기 내 내가 지금 다들 아니 다른 만희 : 다른 종중은 지금 다 앞서가고 있어요. 해결하려고 하고 있는 거야 아니면 다수 우리 집안이 다 지금 저기 할 수가 없지
재희 : 다들 무엇인가 그런데 이제 그 뒤쪽에 이렇게 산재해 있는 묘를 굳이 우리가 그 뭐야 화장해서 이쪽에다 갖다 뭐 이렇게 하란 소리는 못 해 지금
만희 : 기존에 있는 그 부분을 제가 면적을 따져보니까 한 500평 정도 돼요.
그 길을 중심으로 해가지고 지금 형님이 말씀하셨듯 배밭 밑으로는 배밭이 한 400평 정도 돼 그래 우리 지역 구상의 그 면적으로 볼 때 한 130평 정도 정도가 우리 저기 32번지 이마에 물렸어요.
그래요. 예 자 그러면 길을 중심으로 해 가지고 위에 부분을 공원화를 만드는 거야.
거기는 내가 볼 때는 산림만 훼손 안 하면 돼요. 산림 훼손 안 하고 거기를 한 450에서 500평 정도를 그 규격화해가지고 그 평장식으로다가 간다면은 제가 볼 때는 110개 정도가 지금 쓸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제 개인적으로
그 정도 이렇게 이제 거기에 이제 얼마큼 이제 여기 공간을 주느냐에 따라서 이제 다르겠지만 그러고 그 밑으로는 그거 130평 되는 그 부분 있잖아요.
그 부분은 130평에서 한 200평 가까이 되는데 그 부분을 주차장으로다가 이렇게 조성을 해 놓으면은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아까 저쪽 그 친구 얘기하듯이 뭐 무식하다고 그러는데 요즘에 이 우리 종종뿐만 아니고 다른 종종을 보면은 다른 종종에서 종종 그 모임에 그 연로하신 분들이 전부 다 나이가 80 이상 되신 분들이 많아요.
그분들도 생각이 깨어 있어 다 이런 식으로 가고 있어요.
석희 : 아니 조선 왕정이 지금 왜 있어? 다 밀어버리지
만희 : 아니 그러면은 지금 아까도 얘기했듯이 자꾸 이제 돌아가시는 분 생기고 그러는데 가묘를 지금 전에도 얘기했듯이 어느 저기 뭐야 가 저기 재봉이네 그쪽에는 가게를 6개인가 7개 해놨어
물론 이제 여러 가지 여러 가지 난해한 점이 있어요.
그러니까 이 부분은 아까 회장님이 말씀했듯이 일단은 총회를 해서 하는 방향으로 하세요.
용희 : 지금 족보 관계도 그렇고 여기서 관리 저기 정비하는 것도 그렇고 이것도 총회에서 총회에서 일괄 또 우리가 모르면 더 좋은 또 아이디어가 있는지도 모르니까 그 총회에서 이렇게 결정합시다. 지금 하고자 지금 우리가 진행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 문제가 있다는 것만 알고 계시고 총회에서
상귀 : 그러면 총회는 연말 정기총회에서 결정 사항을 따른다고 나 같은 경우는 이번 저기 그렇게 미룰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 얘기 조사비 하는 것은 우리 아버지 아버지는 내가 저 고 최고 문제 되는 게 희영 할아버지 거기 터골패 애들이 따라주냐 따냐 이게 문제지 다른 것 같은 문제가 없습니다. 절대
만희 : 금전적인 문제는 제가 알기로는 한 기에 15만 원에서 20만 원 정도로 경비가 소요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나머지는 이제 조경 조경하는 문제가 남아 있고
용희 : 조경서부터 이제 기당 비용이 들어가잖아요.
경희 : 산소 문제는 뭐 알바알바 하지 말고 일단 산소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여기 보면 이제 가령 여기 영광석제나 같은 데 그런 데다가 견적을 의뢰하면은 걔네들이 그 지적 떼어가지고 어떻게 할 건지 설계를 해서 그러면 이제 그냥 화장해서 갖다 묻는 게 아니라 비석까지 세워야 될 거 아니야 비석 세우고 거기다가 또 평판 하나 갖다 놔야 될 거고 그러면 그것까지 다 한꺼번에 견적을 다 받아가지고 그러면 총 공사비가 나올 거라고
재희 : 저기 영광 거기서 우리 저기 합동 재 지내는 상석 거기서 왔어
** 족보와 종중산소 정리건은 종중총회에 안건으로 처리 하기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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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 : 지난 총회 때 저쪽 탐나 돌구이에서 할 때 그 봄 시제 지낼 때 시제 지낼 때 시제하고 봄에 한식 때하고 가을 시제 때 이렇게 우리가 모시는 분이 틀려요.
가을 시제는 32대 33 34까지 이렇게 모시고 그다음에 봄 한식 때는 35 진영 할아버지하고 36 규철 할아버지까지 계속 지냈는데 그래 가지고 올해 저 회장님이 규병 할아버지를 거기다 넣자 해가지고서 이제 규봉 할아버지까지 해가지고서 지방을 써가지고 그걸 한 걸로 알고 있어요.
그래서 제가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까 이 종중에서 이 해 내려오는 그 자체가 우리 종중의 역사인데 한마디로 옛날에 그 진영 할아버지하고 규철 할아버지 두 분만 모셔 가지고 그 한식제를 지냈던 거를 갑자기 규봉 그 할아버지까지 넣어 가지고서 이렇게 죄를 지내자고 한 거에 대해서는 이게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뭔가 이게 좀 아구가 안 맞는 것 같아 가지고 근데 그걸 지금 우리가 바꿨단 말이에요.
옛날 어르신들이 하던 걸 갖다가 두 분만 모셔 가지고서 지내던 거를 지금 올해 한식 때부터 이걸 이걸 바꿔가지고 이렇게 했단 말입니다.
근데 그게 그게 이유가 있는 건지
재희 : 아니 이건 지난번 총회 때가 언제 그 얘기가 돼 가지고 한 건데 예 우리는 쉽게 얘기하면 이 큰아들만 지내고 친아들은 안 지내는 꼴로 이렇게 한 거야.
알았어.
경희 : 근데 그게 이유가 있을 거 아니냐는 얘기야. 내 얘기는 지금 여기 지금 종손께서도 오시고 그랬지만은 종선이 지금 이제 이 나이가 연로하신데 그런 상황을 다 알고 계실 거고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한 6개월 동안 이게 무슨 이게 역사 우리 역사적으로다가 뭔가 있을 거다.
왜 물론 할아버지가 세 분이 있는데 뭐 규은 할아버지 저쪽으로다가 출가를 가셔가지고 빠지고서 이제 세 분이 있는데 그러면은 아니 둘째하고 셋째 분이 계시는데 왜 여태까지 우리 위에 저 조 선조님들은 그 제를 지낼 때 왜 진영 할아버지하고 규철 할아버지 두 분만 놓고서 계속 지내러 왔는데
재희 : 이게 저기 그 규철 할아버지하고 진영은 그 한식 때도 雨字 할아버지가 다 없어지기 때문에 그 양반들이 그거 지내는 거지 그전에는 안 지냈잖아 그 5대인가 그 차이로 다 이렇게까지 올라가잖아 그게 그래서 그 규철 할아버지도 한식 한 지 얼마 안 됐어 얼마 안 됐고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지난번 그 저 이사회 때가 총회 때가 하여튼 그 얘기가 같은 진영 할아버지 아들인데 굳이 큰아들만 지내고 둘째 셋째는 안 지내면 나중에는 계속 그럼 그 밑으로 갈 수는 없고 어떡할거고
경희 : 그러면 이제 근데 그러면 재희 회장님께서는 그 생각을 안 해보셨어요 왜 의문점을 안 가지셨냐고 진영 할아버지하고 규철 할아버지만 두 분만 왜 모셔 가지고서 지금까지 한식 때 그 제사를 지냈는지 왜 그럴까 하고 생각을 안 해보셨냐고
재희 : 안 한 것보다도 이제 그게 이 같은 진영 할아버지 자손이기 때문에 이걸 빼낸다는 게 잘못됐다는 얘기지 뭐 그 뭐 옛날
경희 : 그러면 위에 아까 내가 역사라고 그랬잖아요 그러면 종손 저기 지금 나이가 연로하신데 종손 지금 이분 말고 그 위에 또 그전에 이제 뭐 살아 계셨던 분들이 있다고 저쪽에 저 창희 형님 돌아가신 창희 형님이나 아버님 지금 그 상자 모자 아저씨나 다 그분들 계실 때도 그렇게 했을 텐데 왜 그 이유가 뭐냐 나는 그게 굉장히 의심 궁금증이 생기더라 이 얘기야.
석희 : 그건 제가 말씀드릴게요. 그건 5대가 되면 자동으로 시제로 올라가요.
5대가 되면 그러니까 5대 선이 없다. 끊어지면
경희 : 아니 그게 그걸 따지는 게 아니라니까 5대고 이거 6대고 따지는 게 아니라 지금 그걸 따지는 게 아니에요. 따지는 게 아니고 지금
재희 : 우리 그전에 한식을 규철 할아버지 얼마 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마 내가 볼 때는 거의 방안 제사 지냈을 거
경희 : 그런데 지난 총회 때 그 지금 저 우리 저 종손께서 우리 여기에 참석하신 게 몇 년 전에 가을에 그 시제 지낼 때 그때 날씨가 안 좋아가지고 종종 회관에서 그때 지낼 때 그때 한 번 참석하시고 지금 내가 처음 참석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지난 총회 때
상귀 : 지금 경희 얘기를 쉽게 얘기해서 圭字 할아버지가 사형제 있다가 하나 터골로 양자 가고 지금 삼형제가 있는데 왜 저기 규철 할아버지 혼자 지내야겠느냐 그거 물어보고 저기 그 석우 할아버지 밑에 자손을 가서 그 집길 할아버지니 우리 형제 지역에서 다 지내줄 거 아니고 거기 집길 할아버지를 지내주는 얘기야.
그래야 규철 할아버지 할아버지들 형제 지간이니까 다 지내준다.
형님 말대로 그 규철 할아버지 형제들 지간이니까 다 지내준다 그러면 희영 할아버지 저기 뭐야 진영이 할아버지 상대도 지신을 줘야 되는 거 아니여 그 연결을
경희 : 그런데
재희 : 아니지 진영 우리는 그 진영공파 잖아. 그 위에 경영이야 우리하고 무슨 상관이여 그 아니 거기다 그쪽 그 자손들이 다 있는데
경희 : 저기 회장님 말이여 제가 얘기하는 제가 궁금한 점이 그거예요.
궁금한 점이 회장님이 회장하면서 한 게 아니고 홍이 형님 할 때도 그렇게 했잖아.
왜 그렇게 했다고 생각하세요?
홍희 : 아니 그런데 우리도 지금 지금 얘기대로 그때 하자는 대로는 했지 했는데 이제 동생이 지금 얘기가 그렇게 해내는 것이 그 따님도 그 말하자면 그 같이 넣어야 돼.
동생 것도 넣어야 되잖아.
경희 : 아니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근데 중요한 게 중요한 게 우리가 여기서 이거를 이쪽으로 포함시켜서 해 가지고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나는 궁금한 게 의심스러운 게 의문스러운 게 뭐냐면은 왜 진영 할아버지 자손 중에서 규철 할아버지 한 분만 딱 거기다 포함시켜서 두 분만 모셔놓고서 35세 36세를 모셔놓고서 제사를 지냈는데 왜 그랬나 왜 그랬나 그게 궁금하지 않아요?
홍희 :아니 그러면 그 사람은 우리가 지금 동생 얘기처럼 그 사람은 그냥 끝까지 그 사람만 모시고 다른 사람은 안모시나?
경희 : 그러면은 저쪽에 있어요. 그러면 규철 할아버지 계시고 규봉 할아버지 계시고 규홍 할아버지가 계세요.
규홍 할아버지네는 지금 저 익희네 그 위에 올라가면 묘 동그랗게 해가지고 익힌 네가 거기다 다 모셔놓고 있다.
재희 : 거기서 그때는 지냈다고 그래가지고 거기는
경희 : 아니야 그게 아니라니까 회장님
용희 : 간단하게 얘기하면 뭘 길게 얘기해 그러면
경희 : 그러니까 내 얘기는 나는 그래서 종손 오늘 오셨으니까 종손은 알 거 아니야 그 옛날에 왜
재훈 : 우리건 우리만 해당해야지 다른 사람 양자가 뭐 한 사람들은 다 빼야 여기 참기도 못하게 해야 해도 무슨 소리인지 알지 왜냐할 것 같으면 우리에게 해당되는 사람은 우리 폭이 우리 큰 폭이 그다음에 둘째 포기는 승희네는 다 이번에 해당돼서 땅까지 줘서 보내버렸어.
터굴로 양자를 시켜버렸어. 그리고 세째 포기가 누구냐?
그거는 관희네 폭이여 관희 폭 밑에 폭이 송림 누구야 광희네 폭이여, 다섯 채 포기 대전 시내 상한인가 상한이 있지 그 다섯 그거만 우리 둘째 폭이 많고 다섯 사람만 상대니까 다른 사람들은 양자 한 사람은 여기 해당 되지 않고 우리한테 산에도 들어오지도 못하게 해야 뭐든 못 하게 해야지 그럼 안 그래 자기네 산도 아니니까 왜냐까는 우리가 땅까지 줘서 양자를 보냈으니까 이걸 알아야하고 그래 그것도 앞으로 말을 잘하는데 내가 또 전화 할게 왜냐하면 팔대 내기로 이제 제 팔대 종손인데 앞으로 이제 앞에 의성 신디 그 두 삼촌은 그냥 두고 앞으로 일을 하려면 이 짝이 우리 고조 할아버지 증조 할아버지 이자를 큼직하게 하는 600평이나 700이 다듬어 갖고 신이 달로 해갖고서 우리 손 손대로 이렇게 우리 몇손 안 되니까 차례를 이렇게 쓰게끔 이렇게 마련돼야지.
무조건 지금 납골당도 안 나 허가가 못 나 안 나 납골당도 낙홀당이 제일 편하고 좋은데 낙홀당이 크게 해 갖고서는 한 입에 하나씩만 하면 평생 됐다니까 금초도 않고 힘도 안 좋은데 그것을 못 하게 되어 허가가 안 나서 그러니까 멍을 쓰는데 모을 쓰고서 자기 빚을 지게 해 놓고서 자기 그게 좀 해놓고 그러지 않을 것 같으면 자기 돈을 개인 돈으로 해서 해놓고서 칭징다리고 큰 집 작은 집 이렇게 이렇게 짐승 다 해서 거기 한 5 5 600평 다을 수 있을 게 있잖아 말하면 평상신씨 앞으로 600평 딱 지으면 우리가 앞으로 몇십 년간 될 데가 없어 그리고 앞으로는 우리가 종종 돈 이만큼 뭐하면 청양이나 안 하려면 무한 데 갖다 싸 산이 몇 백 원밖에 안 가 그렇게 해서 더 몇 장만 사놓을 것 같으면 오래 만들면 이용하고
경희 : 아니 그 묘는 우리가 이제 딱 아직 결정이 안 났으니까 놔두고 그 아까 내가 얘기한 그 시제 지낼 때 규철 할아버지 거만 딱 놓고 지낸 이유를 알려달라니까 그 얘기를
재희 : 아니 저 저 준호 아버지가 얘기하는 얘기는 들었는데 우리가 그래도 명색이 진영공파 우리 자손 우리 종종 아녀? 지금 진영공파 그러면 진영공파가 아들이 넷인데 참 셋인데 넷이구나 넷인데 규은 셋째는 터골로 양자 갔기 때문에 이 양반은 원래 뺐잖아. 지금 저기 희영 할아버지 그쪽으로 양자 갔기 때문에 셋째예요.
아니 圭字 얘기하는 거야. 그 저기 그다음에 이제 그래서 그 진영 할아버지가 그 사형제인데 하나는 터골로 양자 갔기 때문에 거기는 이제 어차피 진영 할아버지하고는 사촌 간이니가 그 실제 상관없다 이거야.
그러니까 거기는 뺐잖아. 지금 근데 이제 규철 거기가 여기 규철 할아버지 저 종자 오형제 자손이라고 여기가 근데 그 규봉 할아버지나 규홍이나 이게 진영 아들이거든.
그래서 지난번 그 얘기도 이게 규철 할아버지만 한식 차례하니까 그러면 동생들은 뭐냐 해가지고 같이 넣자고 해 가지고 넣은 거예요.
이게 그렇게 그리고 또 예를 들어서 규철 할아버지가 오형제인데 그다음에 이제 둘째 종길 할아버지가 그 규봉 그 할아버지가 아들이 없어 가지고 저기 양자를 간 거라고 그러니까 종환 종길 종태 종무 종환인데 종길 그 할아버지가 그 저기 규철 동생 규봉한테 양자를 간 거예요.
보니까 어떻게 보면 다 진영이라고 진영 아들이여 그런데
경희 : 근데 그럼 이제 재희 형님하고 홍이 형님 그 이전에서부터 계속 그렇게 두 분만 해가지고서 제사를 지냈는데 예
재희 : 지낸 거 내가 볼 때는 규철은 한식 차리 한 지 얼마 안 됐어 내가 아마
경희 : 아니 얼마 되든 안 되든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여 그 위에서 한 사람들이
재희 : 그가 아니라 이게 우리 족보상으로 봤을 때 아들이 3형제인데 큰아들만 지낸다는 건 말이 아니잖아
경희 : 그런데 족보상이고 어쩌고 다 형제는 맞아요. 그런데
재희 : 그러면 나중에 이제 종자로 내려오면 그럼 제일 큰 종환 할아버지만 그 저기 시제 지내고 종태 할아버지는
경희 :왜 종환 할아버지를 얘기를 해요. 지금
재희 : 아니 만약에 다음 세대로 가면 그렇게 할 거냐 이거지
경희 : 저는 지금 그 위에 그게 이상하다는 얘기지 이상한 게
재희 : 이상한게 없어 뭐가 있어? 아니 지금 얘기는 그 땅을 그전에 이렇게 뛰어서 줬다는 거 그 얘기 아니여
만희 : 그 얘기는 그 얘기의 핵심은 그전에 지금 말씀하셨듯이 일부 재산을 가지고 이렇게 저기 했는데 떼어줬는데 지금 와가지고 여기서 이렇게 참석하면 안 된다.
그 핵심은 그 말씀을 하시는 것 같더라고.
재희 : 아니 그러면 거기 뗘줬으면 귀철 할아버지는 또 그만큼 또 가졌을 거 아니여 그 진영 할아버지가 큰아들 이만큼 껴줬을 거고 둘째 이렇게 뛰어줬을 거 아니여 아니요.
경희 : 그러면 거기는 어디예요 그러면 형 저 형님은 지금 어디 어디 할아버지 쪽이에요
재희 : 규철이지 어디여 지금
아니 그러니까 지금 우리 현재를 생각해 보라고 진영 할아버지가 3형제인데 큰아들 이만큼 뛰어줬어 그다음에 둘째한테 뛰어줬을 거 아니여 또 막내한테 또 이만큼 뛰어줬어 이게 이제 뛰어줬다고 이걸 빼라는 얘기가 아니야 지금 그러면 그
경희 : 빼 라는 게 아니고 내가 빼라는 게 아니라 안 했던 걸 왜 갖다 했냐 내 형님이 그걸 만들었잖아요 지난 총회 때 총회 때에 만들었는데 내가 지방을 쓰면서도 이게 이게 뭔가 이게 이상하다
재희 : 아 이상할 거 하나도 없지 참 아니 형하고 동생하고 저 형제를 같이 지낸다는 것뿐이지 무슨 뭐 뭐가 이상한 거야
경희 : 그러면 그 위에서 그 회장님 하시기 전에 누가 하셨어요?
종중 총회 할 때 그 전에 지금 하시고 그전에 누가 회장 하셨냐고요.
아니 그전에 회장 누가 하셨냐고
재희 : 우리 그전에 회장은 준호가 했어. 준호가 했어
상귀 : 상식적으로 얘기할 것 같으면은 圭字 항렬이 한식철에 먹은 지가 한 10여 년 밖에 안돼.
안 되는데 왜 안 되냐 그래서 그 우리 5대 할아버지 중에서 이쪽으로 가 있고 나머지 종길 할아버지 여기 있지 않어
여기 아니 그런데 거기서는 다 하차를 규홍 할아버지하고 저기는 그 해당 폭에서 저기를 했어.
하다가 그쪽에서 그 자상하게 하고 여기 한식 하러 오는 사람이 우리 저기만 왔지 저 할아버지 뭐 규철 할아버지 폭만 왔지 나머지 폭은 안 왔어요.
안 왔기 때문에 거기서 제대로 안 하다가 우리 지내니까 같이 하는 거예요.
우리 圭字할아버지가 雨字 할아버지 하고 이렇게 끊어지면서 저 한식 차례에 올라갔습니다.
재희 : 그냥 雨字 할아버지가 없어지는 바람에
상귀 : 그전에는 그 전에는 자기 폭이 당연하게 지내다가 우리는 가끔 보이니까 지딴폭에서 오지 안 했어.
홍희 : 너무 너무 세밀하게 이거 다시 그거 자세히 또 한번 다 알아봐 봐. 여기서
경희 : 우리가 알아보는데 내 얘기는 내 얘기는 오늘 지금 여기 나오셨는데 종손이 연세가 이제 연로하시고 예 지금 벌써 재작년하고 올해하고 또 틀리시잖아요.
그러니까 이 우리 종중에 대한 역사는 제일 많이 알고 계신 분이 이분인데
상귀 : 그거는 그래 가지고 지금 경희 얘기는 규철할아버지가 장소니까 나 받아줘도 되지만,
규봉 할아버지나 규홍할버지 재을 갖고 나갔다 이거여. 저기 나갈 적이(분가할 적에)
경희 : 우리보다 더 똑똑한 분들이 윗분이더래요. 우리보다 더 많이 아시는 분들이 그래서 나는 올 총회에서 그거를 그 회장님이 그렇게 바꾸고 나서 이게 과연 왜 내가 저 종중 그 카페에다가도 그걸 올려놨었어요.
지금도 내가 안 지워놨고 그냥 놨는데 종종 카페에 보면은 한식 때 지방 쓰는 거기에 보면은 그게 나와 있었다고. 한식 때 지방을 누가 써 갖고 왔는데 한식때 지방을 그때 처음에
한식때 지방 누가 썼는데 그 전에
재희 : 옛날에 지방은 내가 다 썼어.
경희 : 그렇죠 그거는 그거는 한번 짚고 넘어가야 되지. 저게 난 지금 이상해.
저게 지난번에는 그렇게 넘어갔는데 저걸 난 지금 나는 지금 억울해 하기가 힘들다는 얘기지.
용희 : 아니 그것보다도 무슨 저기. 3층 슬금으로 이사를 갔는데 갔대 세종으로 이사를 갔는데 그 문을 들어가 보니까 짐은 다 안 뺐어.
한 3분의 2 빼고 3분의 1이 넘었더라고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이 어쩌고 저쩌고 그 사람은 좀 이상한 사람이여. 이 종교 그 뭐라고 그래 뭐 선교사 선교 쪽을 일을 봐
재희 : 그 남자는 저 기계창 다닌다고 그랬는데
용희 : 해서 60만 원을 50만 원가 하향 조정을 했잖아.
그리고 재계약 했단 말이야. 그 재계약이 내년 3월까지로 했다고, 그러면 6월까지는 저기 저 통장이 들어왔으니까 7, 8, 9, 10, 11, 12, 1, 2, 3 9개월 2개월 앞당겨서 간다는 얘기지
경희 : 다 받았어요?.
재희 : 계약 안 돼서 나가면 나갈 때까지 그 양반 그 보증금에서 빼야 해요.
용희 : 아 거기까지는 맞는데 이제 자기가 이제 복덕방에다 얘기를 해서 내놓고 갔지.
근데 그런 저런 거 때문에 만나서 얘기도 합시다.
그 얘기야 다음 주에 난 이사는 간 거야. 갔어. 세종으로 가는
상귀 : 2층 아니고 여기 하는 박 사장님한테 전화받고서 얘기하기 뭐 총무님 어떻할 거예요?
2층이 세가 8월이 만기 8월 25일이 만기거든.
이 만기인데 두 달 남은 거 12달 남았는데 지금 해가 저기 5천 원에 20만 원씩 내려면 그 세액 조정을 해야 됩니다.
조정을 얼마씩 하냐면 2500에 50만 원에 50만 원 하든지
용희 : 그래 지금 3층에 60에 썼거든 60에서 60에서 5 아 깎아주는 거랑
참석자 : 근데 그래 또 3층까지 비면 그거 2층
참석자 : 나는 아니 지금 얘기대로 똑같이 그렇게 하자고
참석자 : 먹어. 똑같이 하지 마
참석자 : 똑같이 해야지 똑같이 해야
참석자 : 맞아. 아니 싼데 지금 이제 더군다나 그거 하나만 그냥 안 나가도 데워 준다고 하지만 또 3층까지 비면
참석자 : 우선 저 사람들이 돈을 빼려면은 떡방에 얘기하든 할 거 아니여
참석자 : 뭐야 중간 중간에 나가는 거니까 그렇게 되면은 자기들이 이제 돈 빼려면 노트 떡방 얘기
참석자 : 젊은 사람들이 어떻게 아무 소용없어
참석자 : 계산서 그대로 들어 있잖아. 평상시 거기 있었다.
한 500평 가고서 싱싱다리 해갖고
참석자 : 아까 회장님 얘기하던 총무님 그거 어떻게 좀 한번 해보세요 오늘 뭐 안에 있어요?
어디 저기 뭐야 그 보증금 까서 저거 한다는 얘기
참석자 : 거기 재혁이네
참석자 : 재혁이 내놨대. 아지가 지금
참석자 : 좀 기다리면 되는 거야.
참석자 : 아니 무조건 불안할 수가 없는 게 그래도 저기 뭐야 두 달에 한 달 내에도 이렇게 월세를 내야지.
그냥 무조건 저렇게 늘려놓으면 아마 내가 볼 때는 천만 원 넘을 것 같은데 10개월이다 1개월
경희 : 아까 그 얘기 저 봄에 그 시제 지내는 거 그 두 분만 모시고 하는 거 그거 결판 안 났잖아.
홍희 : 한번 더 알아봐 알아보고
경희 : 아니 지금 저, 옛날에 그렇게 했는데 왜 바꿨냐 이 얘기 아니야 지금
그러니까 왜 거기 그러니까 그러니까 하여튼 방식을 바꿨냐 이 얘기죠.
홍희 : 꼭 그 사람하고 꼭 계속 이렇게 내놔야 된다는 건 없잖아.
경희 : 아니,
저도 그렇게 생각을 하는데 그렇게 생각을 하는데 종손께서 옛날에 그렇게 해서 시제를 지냈는데 종손이 잘 어련이 알아서 한문도 잘 쓰셔 지금도 지금도 한문도 잘 쓰시고 그러는데 그거를 왜 이렇게 뒤집었냐 이거지
재희 : 시제는 지금 잘 지내고 있어. 그러니까 시제도 어떻게 보면 우리가 지낼 이유는 없어 옛날부터 지냈기 때문에 지내는 거지 그렇지
홍희 : 그래서 이제 말하자면 지금 동생 얘기는 옛날에 두 사람인데 왜 하나 더 넣냐 그 얘기잖아요.
경희 : 예 그거요.
재희 : 한식 한식
용희 : 하던 대로 안 하고 그렇게 했느냐
경희 : 그게 이유가 있을 거라는 얘기지 내 얘기는
용희 : 뭐냐 그 얘기야.
재영 : 그러니까 지금 똑바로 하지만 재신은 그쪽에서 하시지 아 왜 이쪽에서 모시고, 재산을 갖고 가는데 왜 뭐 하자 그 소리야 지금 준호 아버지가 돈 가져오라는 소리예요.
재웅 : 지금 할아버지께서 양자라는 게 그게 뭐 자손이 없는 집에 이렇게 보낼 수도 있는 거고, 내가 또 키울 능력이 안 되니까 보낼 수도 있고 그런 거예요.
그거는 그건 그 시대에 그분의 어떤 저것까지 판단 방법이기 때문에 이제 와서 양자 문제를 갖고
얘기하면는 안되는 거요
경희 : 내년부터는 다시 원위치 내년부터 다시 원위치 해, 하지 마.
위에서 하던 거 그대로 해 바꾸지 말고
홍희 : 자이제 그만해
재희 : 아니 그렇다고 저기 아무것도 모르고 지낸다고 그래가지고 우리가 뭐 상을 더 차리는 것도 아니고 글씨 한 잔 더 쓰는 거예요.
경희 : 아니야 형님 제사 지내는 게 엄청 중요한 거야. 위에서 하던 걸 왜 왜 바꿨냐?
난 지금 자꾸 그걸 따지는 거예요.
재희 : 바꾸는 게 아니라, 지금 안 하던 거를 하는 거라고
경희 : 통과를 시켰든 어떻게 했든 그걸 바꾼 거 아니야 이거 하던 걸 뒤집어버린 거 아니여 지금 우리가 우리가 아니고 지금 여기 지금 저 종손께서 그전에 하시던 걸 갖다가 왜 우리 때가 와가지고서 이렇게 싹 뒤집었냐 이 얘기야. 지금
재희 : 옛날에는 저기 중에 그 당시는 저 규철 할아버지는 한식 차례도 안 했어.
방안 제사를 지냈지
경희 ; 참 왜 자꾸 딴 소리 하시고 그래 지금도 그 얘기하시잖아 지금 종손께서 그래서 안 지냈다고 하잖아. 그걸 왜 자꾸 이제 바꿔요? 그래
내년부터 하지 마. 그거
재희 : 야 그게 내가 내가 하자고 그래도 그 그게 지금 봐봐. : 이상한 게 너는 저기
너네 집을 생각해 봐. 네가 제일 큰아들이면 큰아들한테 이만큼 줬을 거 아니여 그러면 니 동생들한테 줬을 거 아니여 그러면 뭐 큰아들도 다 주고 둘째 셋째
만희 : 다 됐는데 그 얘기가 아니고 재산을 예를 들어 가지고 이렇게 있는데 일부는 떼가지고 일부 갔어. 근데 남아 있는 재산을 가지고 지금 시간을 여기 지금 지내고 이 재산 관리를 하는 거 아니에요
경희 : 왜 자꾸 형제 그걸 얘기를 해 자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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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식 때 진영공 과 규철공 두분만 모시고 종손(재훈씨)이 방제사(방에서 지내는 제사)를 지냈는데
언제 부터인지 종산묘역에 제단을 설치한 후 부터
한식 제사를 종중에서 모신다고 하여 한식제를 종산에서 모셨는데
종손(재훈씨)과 종부(宗婦:종손의 아내) 가 한식제 때 밥그릇 수를 보고 " 다섯분을 모셔야 하는데 왜, 일곱그릇이 되었냐고
카페지기 한테 하소연을 하여 그 내막을 살펴보기로 하였다..
즉 우리가 진영 할아버지가 아들 세분(규철, 규봉, 규홍)을 두었고, 그 삼형제가 각기 출가하여 각자의 동네(입향)에서 가정을 꾸리고
사시다가 돌아 가시기전에 셨을 때 자신의 재산에서 位土畓(위토답, 흔히 우토답이라고 불렀음)을 후손에게 지정해 주고 조상님
제사를 모실것 을 장손에게 넘겨주고 생을 마감하셨다.
그 집안 장손은 각자의 부모님 제사를 지냈을 것이다.
① 규철공 가계는 그 위토답으로 장손인 재훈씨가 제사를 모셨고,
② 규봉공 가계는 장손인 故승희(재신)씨가 그 위토답으로 제사를 모셨을 것이다.
③ 규홍공 가계는 장손인 익희씨가 계속 자신의 고조할아버지 제사를 모시고 있다.
재훈씨 와 종부의 얘기는 규봉공 제사는 규봉공이 물려주신 위토답 보상비용이 종중자산에 포함되었기에 당연히 종중에서 제사를
모시지만 규봉공 제사는 같이 모시면 안 된다는 논리를 얘기하는 것이다. 규철공 장손으로서 당연히 맞는 얘기 이다.
이는 종중에서 일처리를 잘못 한 것 이다.
규철공 장손 얘기를 들어보고 결정을 해야 되자 않았나 하는 내용이다.
한식때는 圭字항렬은 각자의 집안에서 모셔야 한다는 논리이다.
훗날 가을 시제를 모실때는 같이 올려도 된다. (카페지기)
뒷 얘기는 종중 산소를 정리 하는데 터골패의 희영 할아버지 산소를 건드는데 동참을 할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하게 동의를 하면 된다고 결론을 지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