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라는 한 폭의 추상화 읽기(1) - 문덕수 「꽃과 언어」, 김철교 「당신으로 가득한」, 월간시문학,2022.10.

[김철교]

시(詩)라는 한 폭의 추상화 읽기 (1)

- 언어와 사랑의 정체

매월 다른 시인의 시 한 편을 깊게 읽고, 나의 시 한 편을 떠 올려보는 글을 연재할 수 있게 되었다.
작품의 출처는, 다른 시인의 시는 시문학 창간 50주년 기념 사화집 『한국 문학의 100년을 열다』에 게재된 시 중에 1편, 나의 시는 2021년에 발간된 시선집 『내가 그리는 그림』에 있는 시와, 그 후 잡지들에 기고한 시 중에서 1편을 선정한다.
아무리 쉽게 쓴 시도, 아무리 사실적으로 그린 그림이라 하더라도, 수용자에 따라 받아들여 해석하는 이미지는 각기 다르다. 내가 모든 시와 모든 그림은 ‘추상화’라고 우길 수 있는 이유라 하겠다.
이번 글에는 인간 삶의 중핵인 언어와 사랑에 대한 짧은 생각을 담았다.

1. 문덕수 「꽃과 언어」 읽기

언어는

꽃잎에 닿자 한 마리 나비가

된다.

언어는

소리와 뜻이 찢긴 깃발처럼

펄럭이다가

쓰러진다

꽃의 둘레에서

밀물처럼 밀려오는 언어가

불꽃처럼 타다간

꺼져도,

어떤 언어는

꽃잎을 스치자 한 마리 꿀벌이

된다

- 문덕수 「꽃과 언어」 전문

나는 ‘꽃잎’을 보면, ‘꽃잎’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사춘기 시절 좋아했던 소녀 얼굴이 생각난다. 나의 작은 농장 심재원(心齋園)에서 부용꽃을 보면, 신윤복의 <미인도>가 떠 오른다. 시인이 어느 대상을 만났을 때, 어떤 소리를 들었을 때, 자신의 처지와 장소와 시간에 따라 각기 다른 이미지를 떠올린다. 예술가의 특권은 언어와 색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나뭇잎을 그릴 때 무슨 색을 쓰든 용인된다. ‘꽃잎’을 누구의 얼굴로 묘사해도 틀린다고 말할 수 없다.

이 시에서, 화자가 사물(꽃)을 보자 혹은 ‘꽃잎’이라는 소리를 듣자, ‘나비’라는 이미지, ‘꿀벌’이라는 이미지가 떠 오른다. ‘언어 = 기표(記表) + 기의(記意)’라고 언어학자들의 주장을 원용(援用)한다면, ‘꽃잎’은 기표가 되고, ‘나비’와 ‘꿀벌’은 기의가 된다. ‘실재(實在)’를 대변하는 ‘언어’는 찾기가 불가능하다. ‘기표와 기의의 관계, 즉 의미작용(意味作用)에는 필연성이 없고 자의적’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사물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언어 찾기에 골몰하나 결국 비슷한 시어 밖에 떠 올리지 못하고 시를 쓸 때가 너무 많다.

이 시에서, 화자는 “언어는/ 소리와 뜻이 찢긴 깃발처럼/ 펄럭이다가/ 쓰러진다.” “꽃의 둘레에서/ 밀물처럼 밀려오는 언어가/ 불꽃처럼 타다간/ 꺼져도,” 결국은 시 한 편을 완성할 때는 ‘시인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시어로 자리를 잡게 된다. 그러나 시인을 떠나 수용자에게 이를 때, 다른 이미지로, 다른 기의(記意)로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다. 시인의 기호는 떠돌이 신세가 될 수 밖에 없다.

이 시는 시인의 언어 사용에 대한 고민을 형상화하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시인의 언어, 화가의 색(色) 사용은, 어려운 만큼 다양하고 오묘한 세계를 펼쳐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한다.

2. 김철교 「당신으로 가득한」 읽기

하루 또 하루를 갑니다

저 멀리 아득한 길이 끝나는 쯤

잘 알 수는 없어도

그러나 가야 할 산이기에, 거기서

당신을 만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갑니다

황톳빛 자갈길을

힘찬 발걸음으로 갑니다

길가 야생화 풀숲 아침에는

방울방울 가득한 이슬들이

아름다운 무지개 세상을 열고

당신의 웃는 모습을 그려 줍니다

갑자기 지나가는 트럭이 일으키는

뙤약볕 먼지 속에서도

당신의 모습, 거기 아른거려

길이 잠시 안 보이는 듯 비틀대는 걸음도

피곤치가 않습니다

온몸 온마음 온영혼에

꽉 차 있는 당신

폭풍우 가득한 깜깜한 밤에도

항상 꺼지지 않는 불 밝혀 앞서가는

등불이십니다

- 김철교, 「당신으로 가득한」 전문.

사랑이란 무엇일까? 인간 존재 이유가 아닐까? 사랑은 카멜레온 같아서 항상 변하기 쉽고 또 사람마다 각기 다른 것이 아닐까. ‘사랑’이라는 실재(本質)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인간에 대한 사랑은 물론 신에 대한 사랑도 마찬가지다. 내 처지에 따라 색깔과 느낌이 다르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등불이 꺼지면 살아 있어도 죽은 것과 같다.

내가 이 시를 쓴 것은 어떤 여인을 불같이 사랑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기회가 되어 사랑을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까지 지평을 넓혀 보았다. 사람에 대한 사랑은 잔잔한 이야기로 남았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언제나 가슴 한가운데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어 나의 삶을 인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