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규 "검찰 출석한 盧 '시계는 뺍시다, 쪽팔리잖아' 말해"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중앙포토
2009년 대검찰청 중수부장을 지내며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를 지휘했던 이인규(64‧사법연수원 14기) 변호사의 회고록을 중앙일보가 사전 입수했다. 이 변호사는 회고록에서 노 전 대통령 수사과정에서 벌어진 비화(秘話)를 털어놨다.
이 변호사는 17일 발매되는 회고록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누가 노무현을 죽였나』에서 노 전 대통령이 2009년 4월 30일 대검 중수부에 출석했을 때의 일을 자세히 묘사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 변호사에게 “이 부장! 시계는 뺍시다, 쪽팔리잖아”라고 말했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이 고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받은 명품시계를 얘기하는 것이었다.
이 변호사는 회고록에서 “당황했다.…사전에 보낸 질문지에 명품 시계 수수 부분이 들어있지 않아, 검찰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한 말인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은 검찰에서 “아내가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시가 2억500만원 상당의 남녀 명품 시계 한 쌍을 받은 것은 사실이나, 내 회갑일인 2006년 9월 27일 청와대 관저가 아니라 퇴임 후 봉하마을 사저에서 형 노건평의 처로부터 받았다. 나는 그 사실을 몰랐으며, (2009년) 4월 22일 KBS 9시 뉴스 보도 후 아내로부터 들어 비로소 알게 됐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우병우 당시 중수1과장이 회갑선물과 똑같은 시계 사진을 노 전 대통령에게 보여 주자, 노 전 대통령은 “본 적이 없어 모르겠습니다”라고 답변했다. 이 변호사는 회고록에서 “이 때 뒤에 앉아있던 문재인 변호사가 앞으로 나와 사진을 보며 ‘시계가 이렇게 생겼군요’라고 말한 것이 기억난다. 노 전 대통령이 궁색한 변명으로 궁지에 몰리는 상황에서 문 변호사의 뜬금없는 행동에 실소가 나왔다”고 적었다.
노 전 대통령, 박연차에 “감옥가면 통방합시다”
우 과장이 시계를 제출해달라고 하자, 노 전 대통령은 못마땅한 목소리로 “처(권양숙)가 이 사건 수사가 시작된 후 겁이 났던지 밖에 내다 버렸다고 합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후 박연차 회장과 연루된 의혹을 조사한 후 오후 11시쯤 우 과장이 박연차 회장과 대질조사 계획을 밝히자, 노 전 대통령은 완강히 거부했다고 한다. 결국 대질 조사는 무산됐지만 인사를 하는 선에서 정리가 돼, 박 회장이 조사실에 들어왔다.
이 변호사는 당시 상황도 회고록에서 소개했다. “박 회장은 뒷짐을 진 상태로 걸어오면서 원망섞인 목소리로 노 전 대통령에게 말했다. ‘대통령님! 우짤라고 이러십니까!’ 그러자 노 전 대통령은 ‘박 회장! 고생이 많습니다. 저도 감옥 가게 생겼어요. 감옥가면 통방합시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 변호사는 ‘논두렁 시계’ 사건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2009년 5월 13일 SBS 뉴스에서 노 전 대통령이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회갑선물로 받은 2억원짜리 명품시계에 대해 “집사람이 봉하마을 논두렁에 내다 버렸다”고 진술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러자 홍만표 당시 대검 수사기획관이 기자들로부터 확인 요청이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한다. 이 변호사는 “봉하마을 논두렁이라는 표현이 문제였으나 어차피 봉하마을 사저 밖에 논이 있기 때문에, ‘밖에 내다 버렸다고 진술했다’고 굳이 정정해줄 경우 시계 수수 사실만 확인시키고 오히려 더 희화화 될 것 같아 어떠한 확인도 해줄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이 변호사는 결론적으로 ‘논두렁 시계’로 알려진 고급 시계에 대해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실제 받은 것이라고 적었다. “피아제 남녀 시계 세트 2개(시가 2억550만원)를 받은 사실은 다툼이 없고, 노 전 대통령 재임 중(2006년 9월경)에 뇌물로 전달됐다고 봐야한다”고 결론지었다.
이인규 “노무현, ‘시계는 뺍시다 쪽팔리잖아’ 말해 당황”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사한 이인규 전 중수부장/주완중 기자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했던 이인규(65) 당시 대검 중수부장(현 변호사)이 회고록에서 당시 노 전 대통령을 변호했던 문재인 전 대통령이 변호인으로서 무능했으며 노 전 대통령을 사실상 방치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이 회고록에서 이인규 변호사는 “(당시) 문(재인) 변호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극단적 선택을 한 (2009년) 5월 23일까지 일주일 동안 아무런 변호 활동을 하지 않았고, 그의 곁을 지키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변호사가 쓴 회고록은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누가 노무현을 죽였나’라는 제목으로 오는 20일 시중에 배포될 예정이다.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이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누가 노무현을 죽였나'라는 제목의 회고록을 냈다. /조갑제닷컴
이 변호사는 2003년 서울중앙지검 형사9부장으로 SK분식회계 사건 등을 수사해 ‘재계의 저승사자’로 불렸으며, 이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된 2002년 대선 당시 대기업들의 불법 대선 자금 제공 사건을 수사했다. 이 변호사는 노무현 정부 시절 검사장으로 승진했고, 이어 이명박 정부 시절 대검 중수부장으로 노 전 대통령이 연루된 ‘박연차 게이트’ 수사를 맡았다. 그는 노 전 대통령 사망 직후 검찰을 떠나 한 로펌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지만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로펌 대표에게 “세상이 바뀌었으니 로펌을 나가 달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한다. 당시 로펌 대표가 이 변호사에게 “문재인 캠프 핵심 인사에게 들었는데 당신은 꼭 손을 보겠다고 합니다. 같이 죽자는 말이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에 이 변호사는 그해 8월 미국으로 떠났다가 2019년 여름 귀국했다.
이 변호사는 14년 만에 회고록을 낸 이유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온 국민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2023년 2월 21일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공소시효도 모두 완성되었다. 이제는 국민에게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의 진실을 알려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변호사는 2009년 당시 ‘문재인 변호사’에 대해 “수사 책임자인 나는 물론 수사팀 누구도 찾아오거나 연락을 해온 적 없다”면서 “의견서 한 장 제출한 적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검찰을 찾아와 검찰의 솔직한 입장을 묻고 증거 관계에 대한 대화를 통해 사실을 정리해 나갔더라면 노 전 대통령이 죽음으로 내몰리진 않았을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또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가 2006년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 시가 2억550만원에 해당하는 피아제 시계 2개 세트를 받은 것, 2007년 아들 노건호씨의 미국 주택 구입 자금 명목으로 140만 달러를 받은 것 등에 대해서는 “(사실 관계 인정에) 다툼이 없다”고 회고록에서 주장했다. 피아제 시계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은 “처(妻)가 밖에 내다버렸다”고 했다고 이 변호사는 밝혔다. 그는 또 노건호씨와 조카사위 연철호씨가 2008년 박 전 회장으로부터 500만 달러를 받은 데 대해서도 “뇌물로 봄이 상당하다”고 했다.
이 변호사는 권양숙 여사가 박 전 회장으로부터 받은 돈이 아들의 주택 구입 자금으로 사용됐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 노 전 대통령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고 밝혔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은 미국 주택 구입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자신의 거짓말이 드러나는 등 스스로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졌다’고 하소연할 만큼 궁지에 몰리고 있었다”면서 “주위를 둘러봐도 가까운 사람들 모두 등을 돌리고, 믿었던 친구이자 동지인 문재인 변호사마저 곁에 없었다”고 했다.
이 변호사는 2009년 4월 30일 노 전 대통령을 소환 조사했던 상황도 소개했다. 노 전 대통령이 조사 직전 대검 중수부장실에서 대화하면서 “이 부장! 시계는 뺍시다. 쪽팔리잖아”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변호사는 “당황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고 밝혔다. 당시 중수부장이던 이 변호사는 노 전 대통령이 박 전 회장과 대질을 거부했지만 조사를 마친 뒤 두 사람을 만나도록 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박 전 회장이 “대통령님! 우짤라고 이러십니까!”라고 하자, 노 전 대통령은 “저도 감옥 가게 생겼어요. 감옥 가면 통방합시다”라고 했다고 이 변호사는 주장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 과정은 CCTV로 녹화돼 영구 보존돼 있다고도 이 변호사가 밝혔다.
노무현 정부 당시 청와대 행정관을 지냈던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변호사에 대해 “그렇게 얘기할 사람이 그동안 왜 도망다녔느냐”며 “‘검찰 공화국’이 도래하니 복귀한 건가. 그 사람 말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문재인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출신인 윤건영 민주당 의원도 “말할 가치조차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