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 나간 김에 도서관에 들렀을 때 문에 붙은 포스터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쇳밥일지’. 공장에서 일하시는 분의 자서전인가 하며 스쳐 지나갔다. 얼마 뒤, 동생이 독후감 공모전 정보를 보내 주어, 써 봤자 어차피 떨어질 텐데 하면서도 대상 도서를 훑어보았다. ‘쇳밥일지’가 대상 도서에 있었고 나는 공장 일에 별 관심 없으니 읽기 힘들겠지 하며 그냥 지나쳤던 그 책을 읽어 보기로 하였다.
책 읽을 때 목차를 훑은 뒤 결말부터 확인한 후 책을 읽는 습관이 있어 뒷부분부터 읽었다. 예전에 공장에서 일하시다가 지금은 글 쓰시는 분이신가 보다 생각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은 도입부부터 나와는 많이 다른 삶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내 삶이 무난하지는 않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천현우 님의 ‘쇳밥일지’를 읽으며 그 생각을 좀 버리게 되었다.
학교 다닐 때 몇몇 애들이 가난하다고 놀렸던 기억 탓인지 나는 늘 나는 가난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빚만 만들지 말자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약간의 따돌림에 소심한 내 성향이 더해져 나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잠겨 살았고, 일하러 가면 아주 작은 실수에도 상사나 동료가 화를 낼까봐 벌벌 떨고 그러다 일을 관두곤 했다. 돈을 좀 모으면 쉬면서 다 쓰고 그러고서는 또 꾸역꾸역 일하고 돈 좀 모으면 또 쉬면서 다 쓰는 패턴이었다. 이런 스스로가 부끄럽기도 하고 어차피 다들 나를 신경도 안 쓸 텐데 하는 생각에 주기적으로 연락처를 바꿔 모든 인간관계를 정리하는 식으로 살아왔다.
그런 데다 몇몇 안 좋은 사건들이 겹쳐 사람 만나는 것, 밖에 나가는 걸 심하게 꺼리게 되었고 정도가 점점 심해져 사회생활이 불가능하던 차에 운 좋게도 경남도에서 진행하는 일본 취업 프로젝트에 참가하여 일본에 가서 4년 살다 향수병 때문에 돌아왔다. 버텨야지 버텨야지 했었는데 욱하는 마음에 모든 걸 정리하고 돌아왔다. 돌아오니 너무나 당연하게도랄까 밖에 나가는 것도 두려웠고 취업을 찾아보는 것도 두려웠다. 내가 해낼 수 없는 일들만 가득한 것 같고, 경쟁률도 다 높았다. 아르바이트 원서를 내도 읽는 곳조차 드물었다. 아르바이트는 두 군데 갔다가 한 군데는 반나절 하고 힘들어서 관두고, 한 군데는 며칠 하다 잘렸다. 그런데 ‘쇳밥일지’를 읽다 보니 지금 당장 뭐라도 해야만 할 것 같았다. 백수인 채로 인생을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다 보니 자괴감이 들다가 부럽기도 하다가 이래저래 묘한 감정들이 솟구쳤다. 정말 힘들게 사셨는데도 고비마다 긍정적으로 헤쳐 나오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대단하시다 싶으면서 그렇지 못한 내 스스로가 미워졌다가, 지금은 재능을 살려 글 쓰는 일도 하시고 책도 내시고 한 걸 보며 부러움도 느끼다가, 나는 뭘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나 싶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창원이 싫었다. 공업 도시가 지긋지긋했다. 아버지는 30년 가량 열처리 공장에서 일하셨고 나도 대학교 방학 때 자동차 안전벨트 공장에서 일했던 적이 있다. 돈 벌겠다며 첫날부터 잔업도 하고 주말 특근도 나갔다가 하청 직원만 출근하는 토요일에는 점심 반찬이 김, 김치, 기억나지 않는 반찬 하나, 멀건 국뿐으로 평일과는 다른 걸 보고서 씁쓸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하청 직원은 휴게실도 못 쓰게 했다던 부분을 읽으며 문득 또 그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늘 타지를 꿈꾸었지만 타지에 갔다가도 도로 내려오곤 했다. 타지에서 취직해서 방세 내면서 살아갈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내려와서는 일자리가 별로 없다며 창원 탓을 했다. 공업 도시라서가 아니라 내가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고 나름 나이가 많아 취업이 어려운 것이겠지만 나는 또 창원 탓을 한다. 그러면서도 ‘지금은 비록 돈을 벌러 떠나지만, 언젠가는 이들의 품속으로 다시 돌아오고야 말리라’라는 작가 분의 다짐에 공감이 되는 이유는 어쨌거나 내게도 여기가 고향이기 때문이리라.
부산에서 태어나고 마산에서 유년기를 보낸 뒤 이사 와 20년 넘게 살았지만 고향이라는 느낌이 없는 공업 도시. 그곳에서 나는 30대 초반까지 불러 주는 데 가서 일하고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강 열심히 살았다. 여기에서 자라지만 않았더라면 나는 좀 더 긍정적으로 자라고 이런저런 불행도 안 겪어도 됐을지도 모른다고, 창원에서 자란 게 내 불행의 근원이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늘 떠나고 싶었으나 능력이 없어서 돌아온 사람이었고 지금은 반년째 백수인 채로 지내고 있다.
창원시 독후감 공모전, 그리고 창원 이야기. 나는 책을 읽다 괴로워질 것 같다 생각하면서도 제목과 표지가 인상적인 ‘쇳밥일지’를 읽었다. 창원이라는 도시의 공장들에서 노동자로 살아온 천현우 님의 책은 읽기 전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술술 읽혔다. 재미있었다고 표현하지는 못하겠다. 좋은 일도 있었지만 마음이 아프고 괴로워지는 부분도 있는 타인의 인생사였기 때문이다.
괴로운 인생사를 훔쳐보는 가운데 유쾌했던 지점은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이었다. 사람, 삶, 사랑. 삶에는 사람과 사랑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인간관계를 다 끊으며 살아온 내 삶은 우울할 수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이미 끊어 버린 인연들은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읽는 내내 천현우 님의 삶을 응원하였다. 그리고 나도 앞으로의 내 삶을 긍정적으로 헤쳐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모든 노동자 분들의 안녕을 기원하였다.
오늘도 창원을 떠야 뭐라도 할 텐데 생각하며 밥만 축내고 있는 내가 이 책에 독후감을 쓸 자격이 있는 걸까 생각하며 써내려갔다. 대강 다 쓰고 나니 '인간을 길들이기 위해 즐겨 사용하는 실업이라는 공포'라는 프란츠 카프카의 어느 책에서 읽은 말이 문득 생각났다. 그 공포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일하고 싶지 않은 곳에서도, 일 때문에 아프면서도 일한다.
타인의 인생사를 낱낱이 훔쳐볼 수 있는 책은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조금씩은 윤색하여 자기 이야기를 드러내는 요즘 세상에서 천현우 님의 글은 글의 제재와는 상관없이 남다르게 다가온다. 흔치 않은 용접 노동자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서 남다른 게 아니라 윤색되지 않은 느낌의, 한 사람의 이야기라서 남다른 책, ‘쇳밥일지’. 잘 읽었습니다.
2023년 6월 23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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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글을 너무 잘쓰시네요~ 내가 심사위원 이었으면 1등으로 뽑았을텐데 아쉽네요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