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용 화 동
안 문 현
포장된 이차선도로 옆 절벽 사이로 세찬 물줄기를 쏟아 내는 폭포는 주위의 기암괴석과 어울려 절경이었다. 하얗게 흩어지며 쏟아지는 폭포의 물줄기를 할머니 보살 한 분이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었다. 할머니는 반세기도 더 전에 떠난 고향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스무 살 꽃다운 나이에 떠난 고향의 고불고불 정겹던 오솔길은 간곳없고 깨끗이 포장된 쭉 뻗은 아스팔트 길은 낯설기만 했다. 할머니는 낯선 포장도로를 따라 걷다가 젊은 시절 눈에 익을 폭포가 나타나자, 넋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할머니가 태어나서 자란 곳은 용화동이었다. 철원 갈말장터에서 용화동으로 가는 길은 토끼 길처럼 벼랑을 거쳐 산길로 이십 리나 이어져 삼팔선 근처에 있으면서도 6·25전쟁도 피해 간 외부와는 격리된 동리였다. 산에서 캔 무거운 쇳조각이 든 자루를 지고 폭포 옆으로 난 아슬아슬한 벼랑을 거쳐 이십 리를 걸어와 갈말장터 고물상에 팔아 생활하던 젊은 시절이 생각났다. 6~70년대 보릿고개가 있던 때라 식량이 모자라 온 나라 사람들이 끼니를 걱정하며 지낼 때, 용화동 주민들은 산에서 주워 온 쇠붙이를 팔아 끼니 걱정 없이 살아왔다. 마을 뒷산에 올라가면 포탄 파편 쇠붙이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노다지였다.
할머니의 이름은 노소희, 젊은 시절 아버지 어머니, 동생과 같이 용화동에서 살았다. 태어난 고향 용화동은 스무 살 꿈 많던 소희에게 모든 것을 앗아갔다. 소희는 고향에 한을 안고 떠났다. 50년 세월이 흘러 인생 황혼기에 접어들자, 그래도 태어나 자라던 고향이 그리워 죽기 전에 어머니의 무덤에 가 보고 싶고 첫사랑 김한영의 영혼이 깃들어 있는 마을 앞 호수도 보고 싶어 찾아온 것이었다.
소희가 태어난 용화동 마을 앞에는 저수지가 넓은 호수를 이루고 있어 사람들이 사는 집들은 호수 주위로 흩어져 마을을 이루었다. 마을에서 십여 리를 넘게 산길을 따라 내려가면 절벽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골짜기에 심산유곡에서부터 흘러내리는 물이 높은 절벽을 만나 쏟아져 내리는 삼부연 폭포는 보는 이 가슴을 탁 트이게 하며 장관을 이루었다. 수억 년 세월 동안 세찬 물줄기에 깎여 만들어진 세 개의 큰 구덩이가 솥처럼 생겼다고 하여 삼부연이라고 하며 위에서부터 노귀탕, 솥탕, 가마탕라는 이라고 했다. 이런 곳에 으레 전설이 있게 마련이어서 옛날, 이 폭포에서 살던 용 네 마리가 승천하면서 생긴 흔적이라고 했다. 세 마리의 용은 승천할 때 그중 한 마리의 용이 승천하지 못하여 화가 나서 비가 오지 못하게 하자 그 용의 심기를 달래기 위하여 주민들이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왔다고 한다. 근세까지 사람들은 가뭄이 들면 이 폭포 앞에 와서 기우제를 지내며 용이 되어 승천하지 못하고 이무기로 남아 있는 마지막 용의 심기를 달랬다. 삼부연 폭포의 전설에서 따와서 폭포 위 마을을 용화동이라고 불렀다.
철원군 갈말읍에서 용화동으로 가는 길은 산길을 따라 이십 리 토끼 길처럼 작은 오솔길로 이어지고 계곡을 끼고 있는 폭포 옆으로는 아슬아슬한 낭떠러지 절벽 길로 이어져 있었다. 사람들은 갈말장터에서 오솔길을 따라오다가 폭포 앞까지 와서 절벽으로 가로막혀 길이 끊어져 더 앞으로 나갈 수 없었다. 절벽으로 통하는 길을 찾지 못해 외부 사람들이 들어올 수 없는 용화동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 무릉도원이었다. 용화동은 삼팔선 근처에 있으면서도 지난 세월 그 치열했던 6·25전쟁도 피해 간 동네였다.
소희는 자라면서 호수 뒷산과 호수 앞 명성산에 산나물을 뜯으러 다녔다. 어느 날부터 용화동 뒷산 출입이 통제되었다. 용화동 뒷산 바위에는 석이버섯이 자라고 바위 옆 소나무 밑에는 지천으로 나는 송이버섯을 따러 갈 수 없게 되자 동네 사람들의 수입원이 막혔다. 마을 뒷산이 포탄 사격 타깃 장소가 된 것이었다. 새소리 바람 소리만 들리던 마을 위로 매일 수없이 많은 포탄이 공기를 가르며 날아가는 소리에 사람들의 일상생활은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잘못 조준된 포탄이 마을에 떨어지면 온 마을이 불타고 집은 무너지고 사람이 죽을 것 같아 걱정되었다. 동장 집으로 군부대에서 전화가 가설되어 포탄 사격이 있는 날은 연락이 왔다. 동장은 포탄 사격이 있는 날에는 마을 뒷산으로 들어가는 길에 붉은 깃발을 걸었다. 붉은 깃발을 건 날에는 어김없이 포탄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을 위로 대포알이 날아가며 공기를 가르는 찢어지는 것 같은 소리가 밤낮으로 들려와 밤에도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일선의 수십 개의 한국군 포병부대뿐만 아니라 미군까지도 같은 곳에서 포탄 사격훈련을 하니 거의 매일 포탄 사격이 있었다. 주민들은 밤낮 굉음을 내면서 날아 가는 포탄 소리에 불안해도 어디에다 하소연할 곳이 없었다. 밤중에 조명탄을 쏘면 불빛이 멀리까지 비춰 온 동네가 달밤처럼 밝았다. 몇 달이 지나자, 용화동 사람들은 차츰 포탄 소리에 적응되어 갔다.
가끔 포 사격이 없는 날이면 용화동은 옛날처럼 조용해 오랜 세월 새소리와 불어오는 바람 소리만 들리는 조용하던 동네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어느 날 동장이 갈말장터 고물상 앞에 온갖 쇠붙이를 쌓아 놓은 것을 보았다. 그러면서 8인치 자주포나 155 미리 거대한 포탄이나 105 미리 포탄이 터지면 잘게 쪼개진 쇠붙이 파편이 되어 사방으로 흩어지는데 마을 뒷산 포 사격 타깃 장에는 하루에도 수백 발씩 퍼붓는 포탄의 쇠붙이를 주워서 팔 수 있을 것 같아 고물상 주인에게 물었다.
“포탄 쇠붙이도 수집합니까?”
“포탄 쇠붙이는 다른 쇠보다 질이 좋아 더 비싸게 삽니다.”
동장은 포탄 파편이 마을의 새로운 수입원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포 사령부에 전화를 걸었다.
“포탄 사격이 없는 날, 마을 사람들이 뒷산에 올라가 포탄 파편을 주워서 팔면 안 됩니까.”
“포탄 파편도 군사물자인데 민간인은 취급은 곤란한데요.”
“어차피 포탄 쇠붙이는 흩어지고 땅속에 묻어 수십 년 수백 년 후이면 삭아서 없어질 것이 아닙니까? 군대에서 수거 해갈 것도 아니고 버려질 것인데 동네 사람들이 포 사격이 없는 날 올라가서 주워서 팔면 생활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상부에 보고하여 허락받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저녁때가 되어 동장 집 전화벨이 울렸다. 포 사령부에서 온 전화였다.
“군에서는 버려지는 것이라 민간인이 수거해 파는 것은 상관없지만, 만약에 불발탄이 있으면 폭발할 위험이 있어 허락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포탄 쇠붙이를 줍다가 사고를 당하거나 또 불발탄이 터져 사고를 당해도 마을에서 책임지고 군부대에 책임을 묻지 않겠습니다.”
그래도 군부대에서는 사고 위험 때문에 공식적으로 허락할 수 없다고 했다. 동장은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했다. 마을 사람들은 동장의 이야기를 듣고 포 사격 연습으로 하루에도 수백 발씩 매일 쏘아 포탄 쇠붙이가 수없이 흩어져 있는 것을 주워 오기만 하면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고, 불발탄이 있으면 줍지 않고 그대로 두면 터질 일이 없어 안전한데, 포 사격이 없는 날 올라가 주워서 팔기로 했다.
포 사격이 있는 날은 마을 사람들의 안전을 위하여 포 사령부에서 동장에게 전화가 오면 동장은 커다란 붉은 깃발을 산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걸고, 포 사격이 없는 날에는 흰 깃발을 걸었다. 용화동 사람들은 흰 깃발이 걸리면 뒷산으로 향했다.
마을 사람들은 다래끼와 자루를 들고 산으로 올라갔다. 마을 뒷산이 포 사격 타깃 장이 되고부터 뒷산으로 통하는 길에 붉은 깃발이 걸려 사격이 있을 때나 흰 깃발이 걸려 사격이 없는 날이나 이때까지는 올라갈 수 없었다. 마을에서 바라보면 온산이 푸른 나무는 사라지고 허옇게 깎인 모습만 보였는데, 올라와 보니 수백 년 바위틈에서 자라 분재처럼 예쁘던 나무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검은 바위 위에 거뭇거뭇 돋아나서 약초처럼 따와서 먹던 석이버섯이 나던 바위는 부서지고 깨어져 흰색으로 변해 있고 포탄에 맞아 부서진 돌가루가 온통 쌓여 있었다. 폭발하여 파편이 되어 날아간 쇠붙이들은 작은 콩알만 한 것에서부터 손바닥만큼 큰 것이 여기저기 흩어져 노천 광산 같았다. 파편이 된 쇠붙이는 온산에 흩어져 있어 눈에 보이는 것만 주워도 잠깐 동안 메고 간 다래끼에 가득 채울 수 있었다.
주워 온 쇠붙이를 지고 가서 갈말장터 고물상에 팔았다. 상상보다 많은 돈을 받아 쌀도 사고 생필품을 살 수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생각 못 했던 수입원이었다. 한번 주워 오고 포병부대에서 며칠 포 사격을 하고 난 다음 산에 올라가 노다지로 흩어져 있는 포탄 파편 쇳조각을 주워 와 시장에 지고 가서 팔았다. 거의 매일 포탄 사격으로 쇠붙이를 쏟아부어 산 위에 지천으로 쇠붙이가 흩어져 있었다. 포탄 파편 쇠붙이는 용화동 사람들에게 농사보다 몇 곱이나 많은 주요 수입원이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더 많은 쇠붙이를 모으기 위해 흙 속에 묻힌 쇠붙이까지 찾기 시작했다. 군대에서 지뢰탐지기로 매설된 지뢰를 찾는 것을 보고 지뢰탐지기 만드는 법을 배웠다. 갈말장터에 땅 밑 쇠붙이를 찾기 위해 지뢰탐지기를 만들 수 있는 재료를 파는 가게가 생겼다. 용화동 사람들은 탐지기 재료를 사 와서 민간용 지뢰탐지기를 만들었다. 나무막대에 연결하여 모양은 어설프지만, 군용 탐지기 못지않게 성능이 좋았다. 이제 사람들은 땅 위에 흩어진 포탄 쇠붙이뿐만 아니라 흙 속에 묻힌 포탄 파편도 찾을 수 있어 더 많은 수익을 올렸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도록 무릉도원처럼 고요하던 용화동은 머리 위로 포탄 날아가는 소리와 포탄 터지는 소리가 동네의 수입원이 되어 온 나라가 보릿고개로 힘들 때 끼니를 거르는 사람이 없어 생활에 여유 있는 동네가 되었다.
전쟁이 일어나면 제일 먼저 포병부대에서 대포로 적진지를 공격하여 적을 거의 전멸시켜 놓고 보병이 진격한다. 처음부터 보병이 소총으로 적과 맞붙어 전투하면 많은 사상자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전쟁은 포병의 대포와 공군의 비행기가 폭탄을 투하여 적진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적을 거의 전멸 시켜놓고 육군이 쳐들어간다. 공군은 적 진지 위에까지 날아가서 폭탄을 투하하기 때문에 한 대에 수천억 원이 넘는 비행기와 많은 비용을 들여 길러놓은 조종사를 잃을 위험이 있지만, 포병은 그런 위험 없이 적진 후방 수십 리 밖에서 포탄으로 적진지를 초토화시킨다. 포병의 포탄이 정확히 적진지에 명중하자면 정확한 제원이 필요하다. 포병부대에서는 땅 위의 좌표를 정확히 알아야 포탄 사격이 가능하다. 각 포병부대에는 포진지와 적 진지 좌표 작업을 하는 측지병들이 있다. 한국의 포병은 미국의 포병제도를 따라 1개 포대에 6문의 대포가 있고 3개 포대가 합쳐서 1개 부대가 되니 1개 포병부대의 대포는 18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포대에 측지병이 3명씩 있어 1개 포병부대에 측지병이 9명에다 부대 본부에 측지병이 6병이 있어 모두 15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본부포대 측지병은 각 포대 측지를 지원하기도 한다. 측지병들은 대포가 방열 되는 진지 좌표와 포탄이 떨어지는 적 진지 타깃 좌표를 구하는 작업을 한다. 그 좌표가 각 포대 사격지휘본부(FDC)로 넘어가 대포의 방위각인 편각과 거리를 맞추는 고저인 사각이 정해지고 거리에 따라 포탄의 화약인 장약을 넣어 발사하여 적진을 정확히 포격한다. 105밀리 포탄 한 발의 살상 반경이 이백 미터나 되어 목표 지점 이십 미터 내에만 포탄이 투하되면 유효사가 된다. 이런 작업을 위해 측지병은 좌표를 계산해 제원을 산출해 내는 필수 요원이었다. 측지병들은 정확한 제원을 내기 위해 측지통제점(SCP)을 기준점을 잡아 거리를 재고 각 지점에 빨간 깃발이 달리 표간을 세우고 방향틀로 방위각을 재어 고등학교 수학책에 나오는 싸인, 코싸인, 탄텐트와 같은 삼각함수를 이용하여 수십 리 떨어진 목표 지점의 좌표를 직접 가지 않고 센티미터 단위까지 정확히 계산하여 사격지휘 본부로 넘긴다. 그러면 산 넘어 강 건너 수십 리 밖에서 쏘는 포탄은 적 진지인 타깃에 정확히 적중하여 적을 섬멸한다.
3사단 72 포병부대 측지병 김한영 상병은 포 사격 제원을 내기 위해 타깃 제원 작업에 들어갔다. 봄철에 있을 사격훈련을 위해 가을철부터 작업에 들어갔는데 주둔지에서 백여리 떨어진 용화동 뒷산 타깃 제원을 내기 위해서는 매일 다닐 수 없어 측지병 십여 명은 용화동에서 민가를 빌려 생활하며 제원 작업을 하고 있었다. 측지병들은 아침을 먹고 점심으로 비상식량인 건빵을 가지고 가상 OP로 정해진 명성산과 궁예봉과 주위 산의 각 봉우리에 올라가 타깃과 각 지점을 삼각형으로 묶어 각을 재어 와야 한다. 타깃은 적진지라 들어가 작업하지 않고 포탄을 투하할 지점을 정하여 바위나 능선이 갈라진 곳을 사전에 이름을 붙여서 확인해 두어야 한다. 같은 지점이라도 보는 곳의 위치에 따라 다르게 보이므로 가상된 적 집결 지점을 익혀 두어야 한다. 방향틀 속으로 바라본 바위 이름을 탑 바위, 맥아더코 바위, 거북바위,… 라하고 능선이 갈라진 지점은 가랑이 바위, 그 밑에 있는 바위는 O알 바위,… 이렇게 명칭을 붙여 대포 탄이 떨어질 적 진지 중심을 잡은 곳의 타깃인 산 전체의 각 지역의 제원을 정확하게 계산하여 두어야 사격할 때 정확한 지점에 포탄을 명중시킬 수 있다. 훈련 중에 검열관들이 적의 출현 위치를 제시해 주면 먼저 계산하여 놓은 제원에 의하여 수십 리 밖에 있는 대포 진지 제원과 포 사격 제원이 나오면 그 제원에 따라 사격지휘 본부에서 각 포반에 명령을 내리려 포탄을 목표한 지점에 정확히 투하한다. 포탄이 목표한 지점을 벗어나면 OP의 관측장교가 사격지휘 본부로 무전으로 연락하여 정확한 지점으로 포탄을 유도하여 적진지를 초토화시킨다.
김한영 상병은 명선산 측지 통제점에 표간을 세우는 일을 맡아 아침 일찍 식사하고 혼자서 명성산을 향했다. 산을 오를 때는 각 지점마다 핸드 무전기를 가지고 가지만, 마침 무전기 한 대가 고장이 나서 그냥 표간에 깃발을 들고 올라갔다. 삼각 측량이라 두 지점에서 방향틀로 정확하게 각을 재면 나머지 한 지점을 잴 필요 없이 각이 나온다. 그래서 김한영 상병은 각을 재는 기계인 방향틀도 없이 표간에 붉은 깃발만 들고 산을 올랐다. 작업은 오전 열한 시부터 시작해서 오후 두시면 끝나고 하산하면 된다. 김한영 상병은 희고 붉게 칠해진 표간을 들고 산을 오르고 있었다. 가을철이라 산에는 다래도 익어있고 오미자의 빨간 열매가 맺혀 있었다. 서리를 맞아 새들새들 익은 다래를 따서 입안에 넣으니 달곰한 맛이 났다. 빨갛게 잘 익어 탱글탱글한 오미자는 신맛, 단맛, 쓴맛, 매운맛, 짠맛 다섯 가지 맛이 난다고 해서 오미자라고 하는데 입안의 미각을 키우고 몸에 활력을 키우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산 입구에서는 단풍이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지만, 중턱에 이르자 단풍이 절정이고 산 정상이 가까워지자, 나무는 없고 억새꽃이 바람에 나부끼었다. 산을 오르기 시작하여 두 시간만에 산 정상에 오른 김한영 일병은 명선산 측지통제점(SCP) ╁자 교차점 위에 빨간 깃발을 단 표간을 세워 놓았다. 바람에 넘어가지 않게 표간 보조대를 사용하여 세워 놓은 표간을 보고 멀리 궁예봉과 여우봉과 795고지등 높은 산봉우리에서 올라간 다른 측지병이 여러 번 각을 재고 있을 것이다. 무전기가 없어 작업 상황이 어떻게 되는지도 몰라 오후 두 시까지는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산꼭대기에서 세 시간이나 혼자 있어야 하는 김한영 상병은 지루했지만, 다른 봉우리에 올라간 병사들과 연락을 취할 방법이 없어 가지고 온 건빵으로 점심을 때우며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도 없는 산봉우리 억세 숲에 누워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았다. 철책선 가까운 지역이라 날아가는 비행기도 없는 공허한 가을 하늘에는 흰 구름이 한가롭게 흘러가고 있었다.
오후 두시면 작업이 끝나는데 연락이 되지 않으니 20분을 더 표간을 세워 두었다. 만약에 어느 산봉우리에서 작업이 늦어져 계속 각을 재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재원이 0점 1만 틀려도 포 사격 시에 포탄은 목표한 지점에서 빗나갈 것이라, 측지병들은 정확한 제원을 위해서 신경을 곤두세워 작업했다. 오후 두 시 20분이 되어 김한영 상병은 포간을 뽑아 들고 하산하기 시작했다. 돌아가서 오늘 밤에는 램프 불 밑에서 재원을 점검하고 계산해야 한다. 전자계산기가 없을 때라 모든 계산은 주판과 연필을 사용해서 필산으로 해야 했다. 고등학교 수학 교과서에 뒤 페이지에 나오는 삼각함수표와 대수표는 한두 페이지지만, 삼각함수표만 하여도 두툼한 책이 한 권이고 로그함수 책도 두툼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책을 이용해서 삼각함수를 찾고 대수와 역 대수를 찾아 계산해야 한다. 한영은 표간을 들고 명성산 가파른 계곡을 내려오다가 산자락에서 발을 헛디디어서 미끄러져 구르고 말았다. 오른쪽 발을 다쳐 움직일 수가 없었다. 무전기도 없고 근처에 사람도 없어 암담했다. 겨우 일어서서 표간을 지팡이 삼아 움직여 보았으나 쉽지 않았다. 한 시간을 넘게 기다렸다. 산자락이지만 워낙 깊은 산중이라 사람이 다니지 않았다. 그때 산 아래 멀리 밭에서 처녀가 고추를 따고 있었다. 한영은 큰소리로 도움을 청했다.
“저, 발을 다쳤어요. 도와주세요.”
처녀는 산 쪽을 쳐다보며 망설였다. 희고 붉은 색이 칠해진 막대기를 들고 군복을 입고 있는 군인을 보고 동네에 훈련을 나온 병사인 줄은 알았다. 일주일 전부터 이웃 혼자 사는 할머니 집에 10여 명의 군인들이 합숙하며 측량 기구를 들고 다니는 것을 보아왔기 때문이었다. 소희는 병사가 있는 쪽으로 가 보았다. 다리를 다쳐 움직이지 못했다.
“어쩌다가 다쳤어요. 다른 군인들은 다 어디에 갔어요.”
“혼자서 산을 올라 측지 깃발을 세웠어요. 산을 다 내려오다가 미끄러져 언덕에서 떨어졌습니다.”
소희는 병사의 발을 보았다. 오른쪽 발이 부어올라 있었다. 소희는 병사를 부축하여 마을로 내려와 군인들이 합숙하고 있는 집까지 왔다. 먼저 온 병사들이 나와 놀라며 어떻게 된 일이냐고 말했다.
“감사합니다. 아가씨 아니었더라면 아무도 없는 산속에서 밤을 새울 뻔했네요.”
다친 발의 뼈는 이상이 없이 잡친 것이라 의무대로 후송되어 치료할 정도는 아니었다. 찬물에 넣고 며칠 동안 안정하면 될 것 같아 이튿날부터 측지 작업 참석하지 않고 집에서 청소와 정리를 하며 야외 실측작업에 제외되어, 작업하여 온 제원을 삼각함수 책과 로그함수 책을 찾아가며 계산일에만 참여했다. 낮으로 대원들은 방향틀과 표간과 노트와 무전기를 들고 모두 정해진 산 정상으로 작업 나가고 김한영 상병 혼자서만 집에 남아 있었다.
처녀는 발을 다친 병사가 궁금하여 병사들이 생활하는 집 앞을 지나가다가 들려 보았다. 병사는 혼자서 집안 청소를 하고 있었다.
“군인 아저씨 다친 발 괜찮아요.”
한영은 처녀를 알아보고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어제는 고마웠습니다. 아가씨 아니었더라면 산속에서 밤을 새울 뻔했습니다.”
“다행이네요. 많이 다쳤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는데….”
“저는 김한영입니다. 아가씨 이름은 무엇입니까.”
“저는 노소희 예요. 이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어요.”
소희는 날마다 김한영 상병을 찾아가 만났다. 갈 때마다 집에서 삶아놓은 감자나 고구마를 가져다주었다. 며칠이 지나자 소희는 한영이 예의 바르고 친절해서 마음에 들었다. 한영은 소희가 고향에 있는 여동생 수영과 같이 생각되었다. 그렇게 일주일을 매일 만나자 소희는 한영을 오빠라고 불렀다. 소희는 여섯 살 된 늦둥이 어린 동생이 있지만, 맏딸이라 오빠가 없는데 오빠라고 부르니 진짜 오빠가 생긴 것 같아 기뻤다.
소희와 한영은 호숫가를 거닐며 짙어가는 가을 정취를 즐겼다. 나무들은 붉고 노란색으로 물들어 갔다. 낮이 되면 다른 병사들은 산으로 측지 제원 작업을 나가고 한영은 혼자 남아 소희와 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만나는 날이 쌓일수록 소희는 한영이 늠름해서 멋있고 믿음직한 남자로 보였다. 세상과 떨어진 용화동 산골에서 또래들이 없어 늘 외톨이로 자라온 소희는 한영을 만나고부터 열아홉 살 처녀 가슴에 사랑의 불씨가 살아났다. 밤이 되면 한영과 같이 용화동을 벗어나 넓은 세상으로 가는 꿈을 꾸기도 했다. 한영도 남자들만 있는 군대 생활에 소희를 알고부터 가슴속에 소희가 자리 잡아갔다. 날이 새고 동료들이 방향틀과 표간을 들고 산으로 떠나고 나면 온 동네와 호수가 소희와 둘만의 것처럼 느껴졌다. 만나며 세상 이야기 다 하며 즐거워했다.
“오빠, 대학교에 다니다가 왔다는데 제대하면 학교에 다시 다녀야 하잖아요.”
“2학년 마치고 군대에 왔어. 제대하면 2년 동안 대학에 더 다녀야 돼.”
“오빠는 좋겠다.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며 예쁜 여대생들과 데이트하고.”
“아니 나는 소희가 이 세상에서 제일 예뻐. 대학 졸업하고 소희 데리러 올께.”
“정말, 나도 오빠가 이 세상에서 제일 좋다.”
호수가 단풍나무 밑에서 두 사람은 살며시 끌어안았다.
“소희 사랑해.”
“나도 오빠 사랑해.”
한영을 쳐다보던 소희는 살며시 눈을 감았다. 한영과 소희는 진한 입맞춤을 했다. 노란 단풍잎이 떨어져 바람 타고 살랑살랑 날아와 소희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황홀한 입맞춤에서 깨어나 한영은 소희 머리에 앉은 노란 단풍을 보고 말했다.
“소희 머리 위에 노란 나비가 내려앉았네.”
한영은 소희의 머리 위에 있는 노란 단풍잎을 집어 소희에게 주며 말했다.
“우리 첫 키스를 축복했나 봐요.”
“우리 매일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소희는 한영의 사랑한다는 말을 들으니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이 기뻤다. 한영은 날마다 소희와 만나 온 세상 이야기를 다하며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보름이 지나자 측지반 선임 최 하사도 눈치를 채게 되었다.
“김 상병 다리 다 낫았으니 오늘부터 OP 제원 작업을 나가자”
“아직 다리가 아파요. 며칠만 더 쉴게요. 그 대신 작업해 온 계산은 제가 적극 참여 하잖아요.”
“그래 3일만 더 쉬고 대원들과 같이 산 위로 현장 작업에 나간다. 그리고 순진한 시골 처녀 가슴에 상처는 남기지 마라.‘
한영은 최 하사가 소희와의 관계를 알고 있어 속으로 뜨끔 하면서도 소희와 데이트를 더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것이 고마웠다.
“예, 감사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날도 소희는 한영이 합숙하는 집으로 갔다. 집주인 할머니가 갈말리 시장에 가고 아무도 없었다. 소희는 군인들이 생활하는 방안까지 들어와 보기는 처음이었다. 방안에는 총도 있고 실탄 상자도 있고 일반 전투 부대와는 달리 같은 모양의 여러 권의 두꺼운 책이 있고 주판과 노트 필기류가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부엌에는 김치통과 쌀통 간단한 반찬통이 있었다.
“아, 오빠가 이런 곳에서 생활하는구나. 밥은 누가 해요.”
“대원중에 계급이 낮은 졸병들이 해.”
“오빠가 졸병 아니예요?”
“나는 졸병도 고참도 아닌 중간이야.”
소희는 군인들의 총과 실탄보다도 똑같은 모양의 여러 권의 책이 신기했다. 두꺼운 책을 펼치자, 숫자만 잔뜩 씌어있었다.
“무슨 책이 이래요. 한글은 한자도 없고 숫자만 쓰여 있는 책을 어떻게 읽어요.”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않는 소희는 삼각함수와 로그함수를 설명해도 알 수 없었다.
“읽는 책이 아니고 계산하는 책이야.”
한영은 책을 펼쳐 보고 있는 소희 뒤로 가서 살며시 끌어 않았다. 소희는 책을 덮고 한영의 목을 끌어안았다. 둘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진한 입맞춤을 했다. 그러면서 한영은 한 손으로 소희 치마를 들쳤다. 소희는 반사적으로 손을 밀어내면서도 입맞춤을 계속했다. 소희는 신음을 내며서 스르르 무너져 내렸다. 한영도 따라서 소희 위에 겹쳐 졌다.
얼마간의 둘만의 황홀한 시간이 흘러갔다. 정신을 차린 소희는 그제야 처녀성을 잃은 것을 걱정하며 말했다.
“오빠, 난 몰라. 이제 어떻게 해?”
“소희, 걱정 마. 우리 평생 옆에서 서로 바라보며 같이 살자.”
“오빠 말 믿어도 돼? 약속했어. 제대하고 서울 가서 여대생 사귀면 난 꽉 죽어버릴 거야.”
“맹세할게. 평생 소희만 바로 보고 살겠다고.”
가을철이라 동네 꼬마들이 산비탈로 알밤과 도토리를 주우러 갔다. 여섯 살 난 소희 동생 삼룡도 또래들을 따라서 갔다. 소희 아버지는 소희를 낳고 13년 만에 태어난 늦둥이 아들을 삼부연 폭포에서 승천한 삼룡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삼룡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삼룡은 동네 아이들과 알밤을 줍고 도토리도 주었다. 양쪽 주머니 가득 알밤과 도토리를 주워 오다가 커다란 솔방울처럼 생긴 장난감을 하나 주었다. 흙에 싸여 녹 쓸어 있어 흙을 닦아내니 우둘투둘 거북 등껍질처럼 생겨 제법 무게가 있고 장난감으로는 안성맞춤이었다. 아이들은 모두 삼룡이가 주운 장난감을 부러워하며 한 번씩 만져 보았다. 옆에 있던 친구가 주운 알밤을 다 줄 터니 장난감과 바꾸자고 했다. 삼룡은 알밤이 주머니에 가득 있어 바꾸어 주지 않았다. 아이들은 장난감으로 돌팔매 놀이를 하며 서로 던져 보았다. 그러다가 삼룡이는 개울가에 가서 장난감 꼭지 부분에 끼인 녹을 닦아내었다. 녹이 잘 닦여지지 않자 작은 조약돌로 문질러 물에 씻어 가며 닦아내었다. 한참 닦는데 장난감 꼭지 부분에서 파란 불줄기 번쩍였다. 삼룡은 신기하여 장난감을 들려다 보고 있었다.
“꽝”
엄청난 소리는 용화동 동네에 다 들리도록 큰 폭발 소리와 함께 삼룡의 몸은 산산조각이 나서 이리저리 튀고 개울가 주위는 온통 피가 흩어져 있었다. 둑 위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은 모두 뒤로 자빠졌으나 피 나는 아이는 없었다. 아이들은 일어나 삼룡이가 있던 자리로 달려갔다. 사방 피가 틔어 있고 흩어진 살점 속에서 삼룡이의 심장이 그때까지 팔딱팔딱 뛰고 있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삼룡이 어머니 청산 댁과 아버지와 누나 소희는 이 엄청난 비극 앞에 어쩔 줄 모르고 “삼룡아, 삼룡아” 부르며 통곡하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어린 삼룡이의 흩어진 시신을 거두어 양지바른 산비탈에 묻었다. 전쟁도 피해 간 동네에서 일어난 이 큰 불행에 사람들은 한동안 삼룡 이야기뿐이었다. 삼룡의 아버진 노성호와 어머니 청산 댁과 누나 소희는 삼룡을 잃고 넋이 나가 말이 없었다. 식사 때가 되면 동네에 놀러 갔다가 쪼르르 달려 올 것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식구들에게 온갖 재롱을 부리던 삼룡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김한영 상병은 가끔 소희를 만나서 걱정했다. 소희는 한영을 만나도 전처럼 행복에 겨워하지 않고 우울했다. 소희 아버지는 늦둥이 아들이 태어나자, 대를 이을 자식이라고 좋아했는데 아들이 죽자, 술만 마시며 일도 나가지 않았다. 한동안 몸져누웠던 청산 댁은 자식이 죽어도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 입에 거미줄을 칠 수 없다며 마을 뒷산 입구에 흰 깃발이 걸리면 포탄 파편 쇳조각을 주우러 뒷산으로 올라갔다.
겨울이 되면 용화동 마을 앞의 호수는 꽁꽁 얼어 호수 위로 사람들이 다닐 수 있었다. 마을에서 삼부연 폭포를 거처 갈말장터에 가려면 무거운 포탄 쇳조각을 지고 호수 주위 가파른 벼랑으로 빙 둘러 동구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호수를 가로질러 얼음 위로 가면 평탄한 일직선 지름길이었다. 겨울에는 물이 얼어 호수는 용화동 주민의 길이 되었다. 하얀 눈에 덮인 호수 위 일직선으로 길게 길이 나 있어 호수는 주위의 경치와 어울려 장관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포탄 파편 쇠붙이를 지고 가고 동네에서 유일하게 숯 굽는 임 서방은 싸리에 엮은 숯 둥치를 두 개씩이나 포개지고 호수 위 얼음길을 지나 삼부연 폭포 옆 아슬아슬한 절벽 벼랑을 거쳐 갈말장터로 나가 팔아서 쌀과 일용품을 사 와서 생활했다.
훈련 나와 있는 측지병들은 매일 호수 위 길로 다녔다. 방향틀과 표간과 무전기를 들고 아침 아홉 시면 마을을 출발해 눈 쌓인 명성산과 궁예산 주위의 천 미터도 넘는 산으로 올라갔다. 오후가 되면 산에서 내려와 호수 길을 걸어 할머니 댁 합숙소로 돌아왔다. 춥고 긴 겨울이 지나가고 있었다.
소희는 한영을 만나 눈 쌓인 호주 주위를 나란히 걸으며 이야기해도 전처럼 행복해 하지 않았다. 소희는 동생 삼룡의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죽음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춥던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다가오고 있었다. 눈 속에서 노란 복수초가 피어나고 양지바른 산비탈에 버들강아지가 부풀어 올라 얼음 녹은 물이 졸졸 소리를 내며 흘러내렸다. 호수의 얼음도 양지바른 편 가장자리가 녹아 풀리고 있으나 눈 덮인 호주 위 길은 일직선으로 길게 나 있었다.
삼월 초순 어느 날 김한영 상병은 가장 높은 곳 명성산 봉우리에서 작업하라는 측지 최 하사의 명을 받았다. 다른 병사들과 같이 작업을 하려면 적어도 한 시간 이상 빨리 출발하여 산으로 올라가야 했다. 한영은 방향틀을 매고 혼자서 일찍 출발했다. 그래야 산에 도착하여 서로의 표간에 달려 팔랑이는 빨간 깃발을 방향틀 렌즈로 확인하면서 같은 시간에 작업할 수 있었다. 한영은 평소와 같이 호수 위 눈길에 들어섰다. 겨우내 딱딱하던 눈이 녹아서 밟을 때마다 발자국이 났다. 늘 다니던 호수길이라 별걱정 없이 걸어가는데 호수 중앙에 들어서자 발을 뗄 때마다 “우직직, 우지직” 얼음 깨어지는 소리가 났다. 한영은 되돌아올 수 없어 조심스럽게 한 발짝씩 앞으로 내어 디디었다. 조심하며 발걸음을 옮겨도 얼음 깨어지는 소리는 계속 들렸다. 정신이 아득해졌다.이러다 어름이 깨어지면 수십 미터도 넘는 얼음 밑 호수 속으로 가라앉고 말 것이 아닌가?
작년 여름 비무장지대(DMZ) 안에 들어가 측량하다가 지뢰밭에 잘못 들어갔을 때의 생각이 났다. 그때 측량하러 들어갈 때는 보지 못했는데 들어가서 지뢰 매설 지역이라고 쓰인 간판과 함께 해골이 그려진 그림을 발견했다. 순간 발을 움직일 수 없어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동료들이 수십 미터 밖에 있었지만,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잘못 도우러 들어왔다가는 같이 지뢰를 밟아 죽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한 자리에 얼어붙어 발을 떼지 못하고 서 있던 한영은 주위를 살피다가 나무를 밴 그루터기를 발견했다. 누군가 시계 청소를 위해 나무를 베었으면 지뢰탐지기를 이용하여 들어와서 나무를 베었으리라. 한영은 한발 떼고 나무 그루터기를 찾고 또 한 발 띠고 나무 그루터기를 찾아 지뢰매설 지역을 벗어났던 생각이 났다. 그때는 살아날 길도 있고 주위에 동료들도 지켜보고 있었지만, 지금은 나무 그루터기처럼 의지할 곳도 옆에서 바라보는 동료는 물론 주민들도 없었다.
한영은 소희가 생각났다. 태어나고 처음 사랑하며 서로의 순결과 동정을 바친 여인이었다. 제대하고 학교로 돌아가 졸업하고 취직하면 소희와 결혼해 행복하게 살아갈 꿈을 꾸어 왔는데 얼음이 깨어지면 모든 것이 허사가 되고 말 것이었다. 한영은 온갖 생각을 하며 조심조심 얼음 위를 걷고 있었다. 차라리 눈이 없이 맨 얼음판이었다면 얼음에 금이 나거나 갈라지는 곳을 피하면서 걸으면 될 것 같은데, 발밑은 온통 하얀 눈이 쌓여 얼음의 상태는 보이지 않고 “우지직, 우지직”하는 소리만 저승사자가 다가오는 발소리같이 공포스럽게 들려왔다. 아직 쌀쌀한 날씨인데도 온몸에 식은땀이 났다. 소희는 지금쯤 무얼 하고 있을까? 소희의 얼굴을 보고 싶다. 지금 소희가 멀리서 바라보고 있다고 해도 늘 다니던 호수 위 길을 한 발 한 발 무게의 중심을 최대한으로 줄이며 걸어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 지난 가을 다친 다리가 또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때였다.
“우지직, 탁,”
한영은 방향틀을 든 체 얼음이 깨어지며 호수 속에 빠졌다. 순간 죽는다는 생각보다 방향틀을 잃으면 큰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에 빠진 한영는 방향틀을 힘껏 물 밖 얼음 위로 던지면서 그 반동에 의하여 몸은 물속으로 깊이 들어갔다. 한영은 온 힘을 다하여 물 위로 솟구쳐 올랐으나 머리가 얼음에 부딪쳤다. 넓은 물속은 온통 얼음으로 덮여 있었다. 이리저리 허우적거리며 빠졌던 얼음구멍을 찾으려고 헤맸으나 허사였다. 호수 속 하늘은 얼음으로 덮여 있어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한영은 숨을 못 쉬어 답답하고 점점 지쳐 갔다. 그 순간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소희였다. 지금쯤 소희는 내가 제대하고 대학 졸업하는 이삼 년만 기다리면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 꿈을 꾸고 있겠지. 소희야 네 꿈을 이루어 주지 못해 미안하다. 너는 내가 이렇게 죽어가는 줄도 모르고 오늘 저녁도 나를 만나러 합숙소 근처를 서성이겠구나. 그리고 부모 형제 생각이 났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학에 입학했다고 그렇게 좋아하시던 어머니 아버지 여동생을 이제 다시는 보지 못하고 강원도 깊은 산속 용화동 호수 속에서 죽어 가는 이 순간의 나를 식구들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겠지. 어머니 아버지께 세상에서 마지막, 그동안 낳아주고 길러주고 학교에 보내주어 고마웠다는, 그리고 사랑한다는 편지 한 장 남기지 못하고 죽어간 자식을 보고 얼마나 통곡 하실까? 한영은 숨이 답답하여 점점 의식을 잃어 가며 마지막으로 소희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소희야 너를 만나 행복했고 즐거웠다.”
합숙소 대원들은 한영이 출발한 지 한 시간 후에 각자가 작업할 산 정상의 위치를 확인하고 방향틀과 표간 무전기를 들고 출발했다. 호숫가에 와서 최 하사는 호수 주변의 얼음이 녹아 있는 것을 보고 대원들에게 말했다.
“봄이 되어 얼음이 녹아 있으니 멀더라도 호수 주위를 돌아서 가자.”
그때 박 병장이 말했다.
“저기 호수 복판 눈 위에 무언가 떨어져 있어요, 방향틀 같기도 하고요.”
“무어 방향틀! 그럼 김 상병이….”
최 하사는 순간 사고가 일어났음을 직감했다. 몸무게가 가장 가벼운 이 병장을 보고 말했다.
“이 병장 조심해서 들어가 확인해, 김 상병이 어떻게 된 것 아닌가?”
이 병장은 들어가니 얼음이 깨어져 있고 방향틀만 밖으로 떨어져 있었다. 김 상병이 얼음이 깨어져 물속으로 빠진 것이 틀림없었다.
훈련 작업은 중단되고 부대로 연락했다. 부대장과 인사참모가 짚 차를 타고 달려왔다.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호수 주위에 부대에서 텐트를 가져와 치고 사고 대책 본부가 차려져 인사참모가 대책 본부장이 되어 사건 수습을 지휘했다. 김한영 상병의 집에 연락되었다. 그리고 공병대 폭파병과 해군 잠수부가 동원되었다. 이튿날 아침 김한영 상병의 아버지가 도착하였다. 김 상병의 아버지는 상황을 설명 듣고 넋이 나가 있었다. 이어 공병대 폭파병이 와서 얼음을 폭파하고 뒤늦게 도착한 해군 잠수병들은 고무보트를 타고 들어가 호수 속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호수 속은 흐르는 물이 아니라 해군의 잠수부가 투입되고 반 시간도 안 되어 김 상병 시신을 건져 올렸다. 김 상병의 아버지 김우철은 물에서 건져 올린 아들의 시신을 보자 기절하여 쓰러졌다. 군용 구급차가 김 상병의 시신을 싣고 떠나고 사건처리를 위하여 동원되었던 공병대도 잠수부도 뒤따라 떠났다. 김 상병의 아버지 김우철은 인사참모가 짚차를 태워 떠나자 남아 있던 병사들이 텐트를 철거하여 떠났다.
소희는 한영이 물에 빠져 죽었다는 소문이 동네에 알려지자, 처음부터 끝까지 멀리서 바라보고 있었다. 생각 같아선 달려가서 한영의 시신을 끌어안고 통곡하고 싶지만, 군인들이 모여있는 낯선 환경이라 그렇게 하지 못했다. 소희는 온종일 호수 주위를 혼자서 거닐며 한영을 생각했다. 소희는 잎이 떨어지고 앙상한 단풍나무 밑에서 지난 가을 한영과 서로 사랑을 고백하며 첫 키스를 생각하며 나무를 끌어안고 목 놓아 울었다. 사랑한다며 영원히 함께 하자던 한영은 그렇게 소희를 남겨두고 혼자서 떠났다. 한영의 육신은 떠나도 그의 영혼은 용화동 호수에 남아 언제나 소희와 함께 할 것 같았다.
소희는 매일 용화동 마을 앞 호수 주위를 거닐며 한영을 생각했다. 그리고 짧은 삶을 살고 떠난 동생 삼룡과 술만 마시는 아버지와 상심한 어머니를 생각했다. 한영은 소희가 태어나고 처음 사랑을 했고 처녀성을 바친 남자였다. 그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내세가 있다면 한영은 소희가 오도록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여섯 살 동생 삼룡은 집안의 귀염둥이고 재롱둥이였는데 그런 동생이 산에서 주워 온 수류탄을 장난감인 줄 알고 가지고 놀다가 폭발하여 저세상으로 떠났다. 생각만 해도 너무 안타깝다. 봄이 가고 여름이 되어도 소희는 어디 마음 붙일 곳이 없었다. 사랑했던 남자 한영도 귀엽고 온 집안의 희망이었던 동생 삼룡도 모두 소희 곁을 떠나 이승에 없는 사람들이었다. 모든 것이 쓸쓸하고 세상에 재미있는 것이 없어 한영과 동생을 따라 용화동 깊은 호수에 몸을 날려 버릴까 하고 생각하다가 아버지 어머니를 생각했다. 아버지는 동생이 죽고 술로 세월을 보내고 있으나 어머니는 그런 가운데에도 그렇게 넋 놓고 있으면 세 식구는 굶어 죽는다며 조그만 망태기에 손수 만든 지뢰탐지기를 들고 뒷산 포 사격장에 포탄 파편 쇠붙이를 주워 와 이십 리도 넘는 갈말장터로 지고 가서 고물상에 팔아 쌀과 식료품을 사 왔다.
여름이 지나가고 또 가을이 왔다. 가을이 되어 빨갛고 노란 단풍잎을 바라보니 한영 생각에 가슴이 허전하고 못 견디게 외롭고 그리웠다. 마을 뒷산으로 통하는 길에는 어김없이 빨간 깃발이 걸리고 온종일 포탄 터지는 소리가 마을을 울리고 밤이 되면 하늘 높이 솟구치는 조명탄 불빛이 마을을 훤히 비췄다. 흰 깃발이 걸리면 마을 사람들은 다래끼나 자루를 메고 손수 만든 지뢰탐지기를 들고 산으로 향했다. 그날은 이웃 사람들은 다 돌아왔는데도 소희 어머니 청산 댁은 밤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소희와 소희 아버지뿐만 아니라 숯 굽는 임 서방과 마을 사람 몇이서 초롱불을 들고 뒷산으로 향했다. 매일 수없는 포탄을 맞아 바위가 부서져 돌이 되고 돌이 부서져 흰 가루가 되어 돌도 바위도 움직이고 넘어지는 모든 것이 불안한 지구상에서 제일 안정되지 않는 지역이었다. 언제 넘어질지 굴러 내릴지 모르는 바위 사이에서 마을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포탄 파편 쇳조각을 주워 모았다. 동네 사람들이 밤늦도록 찾아도 소희 어머니를 찾지 못하고 돌아왔다. 소희는 불안한 밤을 보내며 그 위험한 지역이지만, 작년 가을 한영처럼 다리를 다쳐 움직이지 못하고 깨어지고 부서진 어느 바위틈에서 밤을 새우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이튿날 새벽부터 마을 사람들은 산을 올라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늘 옆을 지나다니던 바위의 위치가 이상해 바위 밑을 들여다 보았다. 집채보다 더 큰 커다란 바위 밑 저 안에 깔린 여자 신발이 보였다. 그리고 신발 밑으로 피가 흘러내려 굳어 있었다. 바위틈 안쪽으로 불빛을 비춰 살펴보니 조명탄 캡슐 쇠붙이가 청산 댁 손끝에 잡혀 있었다.
용화동 뒷산은 6·25전쟁 후 수십 년을 포병훈련 포탄 사격 타깃이었다. 하루에도 수백 발의 포탄이 폭발하여 산의 거대한 바위들은 깨어지고 부서져 돌이 되고 남아 있는 바위들이 안정되지 않아 모두 뿌리째 흔들렸다. 청산 댁은 집채보다 큰 거대한 바위틈에 조명탄 캡슐이 박혀있는 것을 발견했다. 작은 쇳조각을 모으다가 포탄 모양의 큰 조명탄 캡슐은 아주 큰 수확이었다. 바위틈에 박혀있는 조명탄 캡슐을 보고 기어들어가 끌어내려고 손으로 잡는 순간 바위는 스르르 움직이면서 청산 댁 위를 덮친 것이었다.
사람들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그 엄청나게 큰 바위는 사람의 힘으로는 움직일 수 없고 공병대 폭파병이 온다 해도 깰 수도 없을 것 같았다. 동장은 소희의 아버지와 상의했다. 하는 수 없이 바위 앞에 돌을 쌓아 바위 밑에 있는 그대로 무덤을 만들자고 했다. 소희 아버지도 소희도 동장의 말을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포탄에 맞아 깨어진 돌을 바위 앞에 쌓아 무덤을 만들었다. 소희는 어머니 무덤 앞에서 절을 하며 통곡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돌아오고 점심때가 되자 포 사령부로부터 동장 집으로 전화가 왔다.
“오후부터 3일간 포 사격이 있으니 용화동 사람들은 사격장 근처에 가면 안 됩니다.”
동장은 산으로 통하는 길에 붉은 깃발을 내어 걸었다. 오후가 되자 포탄 사격이 시작되었다. 해가 지고 저녁이 되어도 포탄 사격은 계속되었다. 소희는 어머니의 무덤 위에 쏟아지는 포탄 소리에 밤새도록 귀를 막고 있었다. 어머니도 무덤 위에 밤낮으로 쏟아지는 포탄에 피할 곳도 없이 귀를 막고 있을 것만 같았다. 이튿날 아침이 되자 한꺼번에 수십 발의 포탄이 쏟아지는 거대한 폭음이 들렸다. 이때까지 잘 들어보지 못한 굉장한 폭음이었다. 포병부대에서 18문의 대포가 한꺼번에 쏘는 벼락사격인 TOT사격을 하고 있었다.
소희 아버지 노성호는 아들이 수류탄 사고로 죽고 일 년도 안 되어 아내가 먹고살기 위해 포탄 파편 쇠붙이를 주우러 갔다가 바위에 깔려 죽어 무덤도 그 자리에 만들어 놓아 포탄 소리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소희는 더 이상 용화동에 살 수 없었다. 용화동은 소희에게서 소중한 사람들을 모두 빼앗아 갔다. 평생을 함께할 한영도 어머니도 동생도 모두 앗아갔다. 이곳에 살다가는 자신도 미쳐버리지 않으면 마을 앞 호수에 뛰어들고 말 것 같았다.
소희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이곳에서는 포탄 소리 때문에 살 수 없어 다른 곳으로 떠나고 싶습니다.”
“다 큰 처녀가 연고지도 없이 떠나면 어떻게 사나? 나도 술로 세월을 허송하여 너에게 도움이 안 된다마는 아비와 같이 살자.”
“저도 이제는 스무 살이 되었느니 독립하고 싶습니다. 부연사에 만났던 여승이 한번 찾아오라고 했는데 찾아가겠습니다.”
“걱정된다만, 혼자서 절에서 생활할 수 있겠느냐?”
“배운 것도 가진 것도 기술도 없는데, 절에 들어가 생활해 보겠습니다.”
“그래 우리 집안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떠나려면 매사 주의하고….”
소영은 집안의 희망이었던 동생 삼룡은 수류탄 사고로 떠나고 평생을 약속했던 남자 김한영은 호수 얼음이 깨어져 물속으로 사라지고, 믿고 의지했던 어머니는 포탄 파편 쇠붙이를 주우러 갔다가 바위에 깔려 저승으로 떠났다. 일 년도 안 된 사이에 소희가 사랑하던 사람들이 모두 이승을 떠났다. 소희는 이 세상에서 희망이 사라져 하루하루가 답답하고 암울하기만 했다. 동생이 죽고 어머니가 죽자, 아버지는 매일 술로 세월을 보내고 있어 소희는 아버지를 모실 자신이 없었다. 내가 떠나면 아버지는 혼자이다.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고 살아가시리라 믿었다. 세상에서 격리된 용화동에서만 살아온 소희는 혼자서 용화동을 떠나서 살아갈 자신 없지만, 얼마 전에 삼부연 폭포 옆 부연사에서 만난 여승을 믿고 고향을 떠났다.
소희는 여승에게 용화동을 떠나야 하는 사정을 이야기하고 따라나섰다. 여승과 멀리 경상도 울진 지나 불영계곡 깊숙이 자리 잡은 비구니들이 사는 불영사에 도착했다. 이곳도 용화동처럼 깊은 산골에 있는 비구니들의 절이라 찾아오는 사람이 드물었다. 불영사에 온 소희는 공양간 일을 시작했다. 주지 스님은 소희에게 대보화 라는 법명을 지어 주었다. 소희는 대보화 보살이 되어 공양간에서 수십 년을 생활했다. 그동안 불영사를 거쳐 간 여스님들과 많은 신도들은 소희를 대보화 보살이라고 부르지 않고 보화 보살이라고 불렀다. 그렇게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낙엽 지는 가을 지나 눈 쌓인 겨울을 수없이 보내면서 젊던 소희도 점점 늙어갔다. 소희는 용화동을 떠나온 지도 50년이 넘어 젊은 소희의 모습은 간곳없고 백발이 성성한 늙은 할머니 보화 보살로 변해 있었다
50년 세월이 흘러도 소희의 마음속에 젊을 때 사랑하며 순결을 바친 김한영은 청년의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가끔 꿈속에서 한영이 대학을 졸업하고 보화 보살이 아닌 소희를 데리러 오는 꿈을 꾸기도 했다. 소희는 이승의 인연들이 생각날 때마다 부처님께 백팔배를 드리며 마음을 다잡아 왔다. 마음이 울적하고 동생 삼룡과 사랑하는 임, 한영의 모습이 떠올라 괴로울 때면 삼천 배를 올리며 온몸이 땀투성이가 된 채 속세의 인연을 잊으려고 애썼다. 그렇게 지내온지도 반세기가 지났다. 이제 이승에서 살날도 얼마 남지 않아 자라오며 짧은 기간이지만, 청춘 한때 희로애락이 깃들어 있는 고향 용화동에 가 보고 싶었다. 그동안 속세의 인연을 잊으려고 그렇게 노력하였지만, 이제는 부처님의 율법으로 자신을 속박하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태어난 용화동에 가서 자랄 때 추억을 더듬으며 한영의 영혼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호수와 어머님의 무덤과 동생과 삼룡의 영혼과도 만나 보고 싶었다. 용화동에 가면 아버지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다가 그 오래 세월을 아버지가 살아 계시지 않으라 생각되었다. 보화 보살은 기차와버스를 갈아타며 용화동으로 향했다.
용화동 가는 길이 너무나 변해 있었다. 먹고살기 위해서 포탄 파편 쇠붙이를 지고 삼부연 폭포 옆 아슬아슬한 절벽 벼랑을 기어 내려오던 지난날의 길은 간곳없고 2차선 아스팔트와 터널을 뚫어 쭉 뻗은 길은 도시의 길을 옮겨 놓은 것 같았다. 용화동은 너무나 변해 버려 소희가 젊은 날의 살던 곳이 아닌 딴 세상 같았지만, 길옆 삼부연 폭포와 마을 앞 호수는 50년 세월이 지나도그때 모양 그대로 남아 있었다. 보화 보살은 호수를 바라보니 한영이 모습이 떠올랐다. 한영의 영혼은 호수를 떠나지 않고 보화 보살이 아닌 소희가 돌아오기를 50년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오빠! 소희가 돌아왔어, 오빠 어디 있어?”
보화 보살은 나이도 잊은 채 호수를 향해 소리쳤다. 아무런 대답도 메아리도 없었다. 그때였다.
“우르르릉 쾅.”
50년이 지나도 대포 사격훈련으로 용화동 뒷산에서는 포탄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보화 보살은 뒷산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흰 깃발이 걸리는 날이면 어머니의 무덤을 찾아가야지하고 생각하지만, 어머니의 무덤이 그대로 있을지, 찾을 수는 있을지 걱정이었다. 동생 삼룡의 무덤도 숲과 넝쿨에 덮여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보화 보살은 태어나 살던 집으로 갔다. 아버지와 함께 집은 간곳없고 우거진 잡초 속에 집의 흔적인 주춧돌만 남아 있었다. 주춧돌 옆에 앉아 옛날을 생각하는 늙은 보화 보살의 두 볼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