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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니 김밥
고창 하늘이 높고 맑았다. 멀리 황금빛 벼가 찬란하고 고추잠자리가 하늘을 뒤덮었다. 길가에는 코스모스가 노랑 암술과 수술에 빨강, 분홍, 하얀색 꽃잎을 활짝 펼쳤다. 바람에 군무(群舞)를 이루었다. 초등학교 정면에 걸린 현수막은 가로수에 단단하게 묶여 펄럭였다. ‘88서울올림픽 개최’라는 글과 함께 오륜기와 호돌이가 그려져 있다. 동우는 학교를 지나 작은 공원에서 송이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동생은 책상에 앉아 꼼꼼히 숙제하고 있다. 의자 높이보다 짧은 다리가 책상 밑에서 살랑살랑 흔들거렸다. 책상은 가슴에 닿을 만큼 높아 턱과 팔이 얹혀 있다.
“아따~ 다리 떨지 말아야. 엄니 말 못 들었냐? 복 달아나야.”
동우는 동생에게 타이르듯 말했다. 동하가 고개를 돌려 형을 바라보았다. 한쪽 눈을 가리며 반겼다. 하지만 멍든 눈을 다 가릴 수는 없었다.
“형아. 왔어야.”
“눈팅이 왜 그랴? 어째 개리냐.”
동생의 팔을 얼굴에서 떨쳐낸 동우는 동생의 얼굴을 살피기 시작했다. 왼쪽 눈두덩이 부어올랐고 시퍼렇게 멍들었다. 동하는 눈을 깜빡거리는 게 힘들어서인지 다시 손으로 상처가 난 부위를 비벼댔다.
“워메~~뭔 일이댜? 어떤 싸가지 없는 자슥이 내 동상 눈팅이 봐부럿다냐?”
동우는 다시 한번 동생의 팔을 잡고 눈동자와 눈두덩이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가린 눈이 보이자 동생은 울먹였다. 걱정스럽고 짜증스러운 말투로 거세게 물었다.
”어떤 좃만한 자슥이…… 나가 작살 내불랑께~. 워떤 놈이여?”
“……우앙~.”
형의 격앙된 모습에 여리여리한 동하는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동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현덕이라는 형이 때렸어야.”
“그랴? 어째 울고 지랄이여. 울지마야! 나가 혼구녕 내줄 랑께.”
“핵교서 나오는디 나를 때리고 말혔어, 형한테 전하라고 했당께. 다음에 보자고 했어야.”
“뭣이여?”
며칠 전 동우와 같은 반인 송이와 여자애들이 고무줄놀이를 하고 있었다. 현덕이가 고무줄을 끊고 가는 바람에 싸움이 붙었다. 동우가 송이 편에서 그만 괴롭히고 사과하라고 했지만, 왜 끼어드냐며 따지는 현덕이와 남자애들 때문에 실랑이가 길어졌다. 현덕이가 송이에게 손찌검하자 동우는 참지 못하고 현덕의 머리를 휘어잡았다. 학교 앞 오락실에서 50원 넣고, ‘쌍용’이라는 게임에 캐릭터 동작대로 무릎으로 머리를 올려 쳤다. 현덕은 코피를 흘렸고 거기에서 싸움은 끝났었다. 그리고 오늘 동하가 눈두덩이를 맞은 것이다.
입술을 굳게 깨물고 냉장고에서 몇 개 없는 하얀 달걀 중, 하나를 꺼내 동생의 눈 주위를 문질렀다.
“쓰려야.”
동하는 달걀을 뺏어 제 손으로 눈 주위를 살살 굴렸다. 동우는 멍든 동생의 모습에 미간은 더더욱 좁혀졌다.
“금시 나사지니께 걱정하지 말어. 싸게 그 잡놈한테 가자잉!”
학교에서 점심시간 동안 농구 한다고 집에 가는 동생이 맞은 걸 몰랐다. 동생을 데리고 옆 동네, 현덕이가 사는 군부대 관사로 갔다. 군 관사였지만 민간 경비가 지키고 있었다. 파란 새마을 운동 모자를 쓴 경비가 정문 관리실에서 담배를 물고 신문을 보는 사이 몰래 들어갔다. 때마침 현덕은 관사 놀이터에서 또래 애들과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상대가 서너 명 더 있어서 그런지 동우는 근처에 있던 짱돌을 들었다.
“아야. 이 개새끼야!”
놀이터를 뱅뱅 돌며 자전거를 타던 현덕이가 멈췄다. 같이 있던 아이들도 따라 멈췄다.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자전거에서 내리면서 내팽개쳤다. 다른 학교 애들도 같이 자전거에서 내려왔다. 그래서 그런지 그 뒷배를 믿고 당당히 팔짱을 끼었다. 하지만 현덕의 눈이 커지고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동우가 짱돌을 들고 있는 걸 본 것이다. 친구들도 현덕의 곁에서 한두 걸음 떨어졌다.
“내 동상 면상을 조사부렸냐잉?”
잠시 말을 않고 있다 동우를 경계하는 눈빛으로 더듬거리며 답했다.
“전, 전학을 온 지 일 년 동안 맞, 맞은 게 처음이거든, 그런데 시빗거리가 없어서 때렸다. 호로새끼야!”
형을 따라간 동하는 눈두덩이에 하얀 달걀을 문지르다 멈췄다. 동우를 올려다보고 질문했다.
“호로새끼?”
“빠직!”
동생의 질문을 뒤로한 채 동우는 재빨리 짱돌을 현덕이 앞 땅바닥에 내리꽂으며 동시에 주먹을 날렸다. 현덕은 짱돌만 보며 피하다가 코에 정면으로 맞아 고꾸라졌다. 며칠 전처럼 코피가 쏟아졌다. 관사 아이들이 꼼짝 못 하고 쓰러진 현덕이를 일으켜 세우려 했다.
“아따 이 개새끼야. 호로새끼라고? 내 동상 조사부고 뭐라 해싼다냐? 니는 니 애미가 있어도 아그들 괴롭히고 지랄 염병하고 자빠졌냐?”
동우는 현덕이가 타던 자전거를 향해 다시 짱돌을 들어 던졌다. 관사 아이들은 머리를 감싸고 맞을까 몸을 숙였다. 짱돌이 바퀴를 지탱하고 있던 살들을 찌그러트렸다. 분이 안 풀렸는지 현덕이의 자전거 타이어를 들어 패대기쳤다. 그리고 뒤돌아서서 누워버린 현덕이와 무리를 향해 경고했다.
“새겨들 들으라고! 한 번 더 그라믄 느그들 대글빡을 확 뽀사버릴랑께!”
관사 아이들은 움찔했다. 현덕은 코피를 계속 흘렸다. 일어나지 못하고 한 친구에게 기대어 있었다. 눈이 감겨 정신이 돌아오지 않은 것 같았다. 며칠 전 무릎으로 맞은 것보다 작금의 주먹이 더 큰 충격을 준 모양이었다. 친구들은 동우 형제가 분풀이하고 돌아가자 현덕을 깨우려 흔들었다. 형제는 관사로 나오는 길에 형제는 경비와 마주쳤다.
“이리 와봐라잉!”
경비가 애들 싸움을 늦게 관망하다 심각하다 싶은지 오다가 동우를 잡으려 했다. 그러나 워낙 빠른 몸놀림에 놓치고 말았다.
“흐미, 허벌나게 빠른 거. 앞으로는 오지 마야. 담에 잽혀불면 확 잡아다가 족쳐버린다잉.”
“아따. 아재여. 울 동네 짝으로 관사 아그들 지나가지 말라 하쇼. 지도 아재맹키로 가만있지 않을 것잉께.”
“웜마? 느자구웂는 것들. 저것을 잡아다가 뼉다구를 확 쪼사 갈겨부러? 야이~새끼야. 호로새끼가 아니고서는 그따구로 말하는 거시기는 없어야!”
당돌하게 말하고 관사 아파트에서 빠져나왔다. 그런데 따라오던 동생이 없었다. 동하는 경비가 형에게 신경 쓰는 사이에 몰래 빠져나가려다 호로새끼라는 말을 듣고 항의하듯 경비 앞에 서 있었다. 멀리 줄행랑을 친 동우는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호로새끼가 뭔디요?”
따지듯이 항의하자 경비가 동하의 뒷덜미를 붙잡았다. 눈높이를 맞추며 천천히 말했다.
“이놈 보게나. 어디서 처맞고는……. 쯧쯧. 너 저 아그 동상이제?”
형에게 욕을 퍼부었던 경비가 갑자기 차분히 말했다. 살짝 미소를 지으며 민방위 모자를 벗어 허리춤에 넣고 동하의 눈높이에 맞춰 반 무릎을 꿇었다. 경비의 긴 머리가 얼굴 반을 덮었다. 사냥감을 어떻게 요리할까 생각하는 늑대 같았다. 동하는 겁에 질렸다.
“근디요. 놓아라.”
“니 애미애비 이름이 뭐여? 말하믄 놔줄랑께.”
“아부지는 돌아가셨구요. 엄니 이름은 이자 선자 영자 인디요. 난 잘못 없어라.”
“뭣 하는 분이여?”
“학습지 교사요.”
“아따~ 내 동상 놓아라.”
심문이 오가는 사이 동우가 동생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러자 경비는 남은 손으로 동우의 허리춤을 잡고 형제에게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말했다.
“호로새끼는 말이여. 아비 없는, 느그들 같은 놈들을 말하는 거여 알겄냐?”
그때 놀이터 아이들이 경비아저씨를 애타게 불렀다.
“경비 아저씨! 친구가 못 일어나요!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아요.”
현덕이를 병원에 데리고 가는 게 먼저라고 판단한 듯했다. 눈을 부라리며 형제에게 말했다.
“꼼짝달싹 말고 있으랑께. 썩을 것들.”
경비는 형제를 놓아주고 쓰러진 현덕을 향해 달려갔다. 형제는 늑대 소굴에서 탈출하듯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쳤다. 집에 돌아와 숨을 헐떡이며 현관문을 잠그고 거실에 주저앉았다.
“이거 엄니한테 말하믄 걱정 하니께 말하지마야.”
“엄니 이름하고 뭐 하는지도 물어도 봤는데 어쩐당가?”
“걱정하지 말어. 엄니가 알아도 그때 혼구녕 나는 건 나여. 방에 가 있어라잉.”
동우는 숨을 고르고 소파에 누워 눈만 멀뚱거렸고 동하는 방에 들어가 책상에 올라가 앉아만 있었다.
저녁이 되자 동우는 쌀통이 빈 걸 확인하고 라면을 끓였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달걀과 김치 외에 먹을 만한 반찬이 없었다. 김치와 젓가락을 식탁에 놓았다. 방에서 가정 학습지를 보며 공부하던 동하가 라면 냄새 때문인지 방을 나와 식탁 의자에 올라앉았다. 자연스럽게 식탁에 놓인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몇 번 젓가락으로 식탁을 톡톡거렸다. 동우는 냄비를 식탁 한 가운데 두었다.
“먹어.”
“오늘도 엄니 늦는 당가?”
“몰라야. 싸게 먹어라잉.”
아주 잠깐 침묵이 흘렀다. 마치 누가 먼저 라면을 먹나 젓가락을 들고 신경전을 펼쳤다. 동하가 눈웃음을 지으며 약간의 긴장감을 깼다.
“헤헤~. 달걀은 내 눈팅이에 쓰려고 아꼈는가?”
“몇 개 웂당께. 그냥 먹어야.”
한 냄비에 형제의 머리가 부딪칠 정도로 가까웠다. 둘은 먼저라고 할 거 없이 라면을 허겁지겁 흡입했다. 금방 면발이 사라지자 서로 냄비를 잡고 국물을 먹으려고 했지만, 동우는 멍든 동생에게 양보했다. 동우가 설거지하는 사이 동생은 방에 들어가 가정 학습지를 풀었다. 반찬 그릇까지 씻고 식탁을 닦은 동우는 소파에서 가을소풍을 간다는 가정통신문을 가방에서 꺼냈다. 보낸 날짜가 일주일 전이었다.
“에휴~. 오늘도 엄니 못 보내. 아니여. 안 보는 게 좋겄지.”
동생과 달리 숙제를 안 했다. 엄마인 선영이가 풀라고 한 가정 학습지는 쌓여갔다. TV를 겼다. 사회자 허참이 진행하는 가족오락관 프로그램을 보았다. 남녀 게임 대결을 통해 나오는 웃음소리가 거실 전체에 퍼졌다. 동우는 TV에서 나오는 소리가 시끄러워도 시나브로 잠이 들었다. 동하는 오줌이 마려워 방에서 나왔다.
“형아. 드가서 자야.”
깰 것 같지 않았다. 어깨를 흔들다 말고 자기들 방에 있던 담요를 덮어 주었다. 화장실에 들른 후, TV를 끄고 방에 들어가 장롱에서 큰 이불을 끌어 내렸다. 위에 있던 베개들도 한꺼번에 떨어졌다. 이불을 펴서 형의 자리를 비우고 반듯하게 누웠다.
“엄니 얼굴 까먹겄네. 근디 나땜시 형아가 혼쭐날 거 같은디 어쩐당가.”
이불을 머리 위로 덮고 꼼지락거리다 잠이 들었다.
거실 벽에 거린 시계가 밤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현관문 잠금이 열쇠로 풀리는 소리가 났다. 문이 열리자 선영이 반쯤 휘어진 허리와 처진 어깨로 들어왔다. 동우를 보자 허리를 폈다.
“흐미, 허리야. 니~미 차 시트를 언제 고칠까잉.”
가정 학습지가 가득한 가방을 테이블에 놓고 겉옷을 벗었다. 유니폼이 드러났고 명찰에는 고창교육지점장이라는 직함이 새겨져 있었다. 동우를 흔들어 깨웠다.
“어여 들어가 자라잉.”
“알았어라.”
눈을 비비며 일어나 동우는 화장실로 가는 엄마를 보았다. 그사이 동생이 자는 방으로 들어가 옆에 누웠다. 씻고 나온 선영은 거실 티테이블에 놓인 가정통신문을 발견했다.
“동우야!”
“야, 엄니.”
동생 옆에 누워서 천정만 바라보던 동우가 대답했다.
“내일 소풍 가냐?”
“야. 그라고…….”
“흐미!”
갑작스럽게 통증이 왔는지 허리를 잡은 채 선영은 큰아들의 말을 끊었다.
“알았응께. 어서 자야.”
엄마의 신음에 말을 잊지 못했던 동우는 눈을 뜬 채로 깜빡거리기만 했다. 몸을 들썩이다가 동생처럼 이불을 머리 위까지 올렸다.
“어휴~~~.”
이불 속 긴 한숨이었다. 엄마가 안방에 들어가 잠든 이후에도 동우는 잠을 설쳤다.
다음 날 아침, 동우는 기지개를 켰다. 천천히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화장실에서 얼굴을 씻고 나오는 동생을 보고 말했다.
“눈팅이는 어때야?”
“괜찮아야. 엄니가 쪽지하고 도시락 싸 놨당께.”
“아직도 퍼렇네잉.”
동우는 식탁 위에 구리색 도시락이 놓여 있는 걸 보았다. 식탁에 다가갔다. 도시락 뚜껑을 열기 전 동우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고 눈동자는 반짝거렸다. 하지만 열고 난 후 환한 표정에 입술은 삐죽 나오고 눈빛은 사라졌다.
“김밥이 아니네잉.”
도시락에는 밥이 깔려 있고 한쪽에는 김치가 잘게 썰려 있다. 밥 위에 계란 후라이가 얹혔다. 도시락을 닫고 쪽지를 보았다.
‘도시락 챙겨 가라. 소풍 간다고 얘기 안 하면 어쩌냐.’
“시방 핵교에 난로도 없는디……. 뭔 누렁 도시락이여라.”
푸념 섞인 목소리였다. 안내문에는 소풍이 끝난 후, 다음 주부터 난로를 설치하고 갈탄을 피우는 계획도 포함되어 있었다. 선영이 김밥 대신 싸 준 김치 도시락이 마치 작년에 난로 곁에 친구들이 두었던 도시락과 비슷했다.
“형아. 감이여. 엄니가 깎았어야.”
동우에게 감을 내밀었다. 멍이 거의 가라앉은 동하는 어제 일을 깨끗하게 잊은 것 같았다.
“알았다. 다 씨쳤냐? ”
“응, 형아.”
“소풍 가까운 데로 가냐?”
“응. 모양성(牟陽城)에 있다가 집으로 곧장 보내준댜.”
“잘 됐네잉. 중간에 짱깨집에서 자장면 사 먹어라잉. 난 늦어야.”
“돈 없제? 내랑 점심도 같이 안 먹은지 오래 됐어야.”
“미안하다. 돈은 없제.”
동하가 제 지갑에서 엄마가 주신 용돈을 꺼냈다. 그리고 밝게 웃는 표정으로 말했다.
“내 돈 줄게. 오늘 점심 먹을 돈밖에 없지만, 과자하고 사이다 사 먹어야. 엄니가 내 낯짝 보고 오후에 병원가자고 하셨어. 내는 엄니랑 같이 먹는당께. 하하.”
형한테 자랑하듯 말하는 동하였다. 동생의 준 돈을 제 호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좋겠다잉. 꼭 갚을게. 어제 일은 쪼그맨치도 말하지 말아야.”
“알았당께.”
“내가 보여줄 게 있는디, 볼랑가?”
감을 다 먹은 동우는 장롱 안 깊이 숨겨 놓았던 운동화를 꺼냈다. 미국 농구 황태자 마이클 조던이 광고한 농구화였다.
“어디서 샀는가? 이것 땜시 돈을 다 썼부렸냐?”
미간을 좁히고 입술을 쭉 내민 동하는 제 지갑을 탁탁 쳤다. 동우는 그것도 모르고 농구화를 신었다. 그 순간만큼은 신나 보였다.
“나가 나이키 판매점에 몇 번이고 갔제. 어찌 맴에 들던지. 농구공 모양의 단추를 누르면 쉭쉭 거리고 바람도 넣을 수 있어야. ”
동생에게 자랑하듯 농구화에 바람을 넣었다. 농구화가 부풀어 올랐다. 금세 표정이 바뀐 동아는 형에게 바짝 붙었다.
“신고 잡다. 형아.”
“안돼. 너한테 커야.”
“그래도~.”
“안되야.”
“엄니한테 꼰지른다.”
"아따~징헌 놈. 알았당께.”
동하는 형보다 훨씬 키가 작고 신발 수치도 차이 났지만, 동우는 어쩔 수 없이 동생 앞에서 신발을 벗었다. 동하의 작은 발이 농구화에 깊숙이 들어갔다.
“오메, 큰 장화를 신어 부렸네. 푹신하다 형아. 바람도 넣다 빼봐야.”
동우는 동생이 신은 상태로 농구화 바람을 넣었다가 빼기를 한두 번 반복 했다. 환하게 표정이 바뀐 동하는 농구화를 벗고도 한참을 바라보았다.
“신기하네잉. 나도 사고 잡다.”
동생이 신을 벗자마자 바로 자기 쪽으로 농구화를 가져가 신었다. 형제는 등교할 채비를 마치고 집을 나왔다.
“아그들한테 자랑할 거여. 대신 엄니한테 말하면 안 돼야.”
“알았당께. 나만 믿으라고.”
“싸웠다는 것도, 알겄냐?”
“엉, 멍든 건 부딪혔다고 말해부렸어.”
“잘혔네.”
학교 가는 중간에 송이가 나타났다. 언제부턴가 송이가 형제의 등굣길에 기다리다가 같이 가기 시작했다. 보라색 뿔테 안경을 쓴 예쁜 소녀였다.
“동우야 같이 가잖게. 기다려야.”
뒤를 돌아보며 손을 들고 반기는 동생과는 달리 동우는 못 본 채 빨리 걸었다.
“누나. 밥 먹었는가?”
“그랴~. 어메? 니 눈팅이 왜 그냐?”
송이는 동하의 뺨을 두 손으로 만지며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자 동하는 송이의 양손 등에 제 손을 포갰다.
“어제 학교에서 맞았는디 형이 복수해 줬어야.”
“때린 놈이 누군디?”
“현덕이 형이라고.”
“으미~, 그놈 맞아도 싼 놈이여.”
송이는 동하의 머리를 가지런히 쓰다듬었다.
“헤헤헤.”
송이와 동하는 동우를 따라잡으려 빨리 걸었다. 말없이 걸어가는 동우였다. 늦은 속도로 일부러 따라잡혔다. 그러더니 뒤돌아 싱긋 미소를 지었다. 어떤 꿍꿍이짓 하려는지 커다란 양옥집 대문에 가까이 갔을 때였다.
“띵동~.”
“누구여라?”
동우가 그 집 대문 초인종을 눌렀다. 초인종 스피커에서 아줌마 목소리가 나왔다. 아줌마가 나타나기 전까지 공원 돌담 담쟁이덩굴 쪽으로 달려가 뒤에 숨었다. 그동안 가방 안 도시락이 수저와 부딪쳐 달그락거렸다. 초인종을 누른 걸 본 송이는 동하의 손을 잡았다. 빨리 동우를 따라갈 수 없으니 옆 골목으로 빠져 손수레가 세워진 곳에 숨었다. 양옥집 대문이 열리며 새까만 파마머리에 빨간 조끼를 걸치고 검은 파자마를 입은 아줌마가 나왔다.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두리번거리다 동네가 떠나도록 소리 질렀다.
“으미~. 씨발 것들. 어떤 놈인지 몰러도 잡히기만 혀봐야. 다리 몽댕이를 콱 꺾어 잘근잘근 씹어 먹을랑께. 그래야 내 속창이 개안하겠어야!”
아줌마는 대문을 세게 닫으며 들어갔다. 공원에 숨은 동우는 등과 가방 밑에서 뭔가를 느끼고 제 손을 댔다. 김칫국물이 묻어나왔다. 열어보니 국물이 번잡하게 묻어 있고 냄새가 진동했다. 도시락을 쌌던 신문지는 젖었고 검은 봉지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워메, 어쨌으까잉~.”
도시락이 든 검은 봉지를 뺐다. 담쟁이덩굴 밑에 쌓인 낙엽을 헤치고 도시락을 숨겼다.
“갖고 가면 뭐하는디. 애들이 얒잡아 볼거구먼, 신발은 겁나 비싼 농구화인데 김밥이 아니면 있으나 마나 하잖여.”
돌담에서 나와 동하와 송이를 만났다. 둘은 씩씩거리며 동우를 째려봤다.
“갑자기 그라고 내빼면 어쩌냐. 아줌한테 걸리믄 죽는당께.”
송이의 레이저 눈빛과 함께 톡 쏘는 말을 했다. 동우는 송이의 잔소리를 들어도 미소를 놓지 않았다. 동하는 형의 가방 끝을 붙잡았다.
“형아. 장난질 그만 해야.”
“그래도 재밌지 않았는가?”
송이가 예상외로 동우를 두둔했다. 동하는 눈을 흘겼다.
“아따. 누나도 그라믄 천벌 받아야. 내 손 잡으랑께. 내는 혼자 내빼지 못하니께 또 눌러싸면 잡혀야.”
동하가 당돌하게 송이 누나에게 꾸지람을 줬지만, 송이는 맑고 약간 높은 음정의 목소리의 동하에게 작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학교에 다다랐을 때 관사 아파트 아이들이 학교로 들어가고 있었다. 동우는 현덕이를 볼 수 없었다.
“현덕이 이 새끼는 벌써 핵교에 있는가.”
학교에 온 후 동하랑 헤어질 때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떤 잡것이 놀리면 말혀. 내가 혼내 줄랑께.”
“아따, 걱정하지 마야. 형이 복수했다고 하면 다들 꼼짝 못 한당께.”
“……그랴.”
동우는 관사에서 현덕이와 있었던 싸움을 말하는 게 동생에게 좋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현덕을 보기 위해 옆 반으로 갔다. 아이들이 바글바글 많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 현덕이의 반에서 나오는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다.
“현덕이 병원에 갔다고 하던디. 잘 되았지. 오늘 같은 날 안 본께 좋다야. 근디 그놈 걱정하는 겨? 아이고야.”
그 반 아이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화장실로 갔다. 그 말을 듣고 미동 없던 동우의 가방끈을 잡은 송이는 자기들 반으로 끌고 함께 들어갔다. 그제야 동우는 자신의 자리에 가서 앉았다. 지용이의 옆자리였다. 지용이는 동우와 가장 친하다.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짝지어 공부했기에 송이도 다른 소녀와 짝이었다. 지용은 공부도 잘하고 인사성도 밝아 선생님에게 사랑받는 아이였지만 동우는 말썽꾸러기로 찍혀 있었다. 그 둘 사이가 가까운 게 마음에 들지 않은 다른 반 선생님들이 많았다. 지용에게 동아랑 놀지 말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담임 선생님은 지용에게 어떤 충고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 잘 지낸다고 칭찬했다.
소풍 가려고 출발하기 전, 현덕이네 담임 선생님과 동우 담임 선생님이 서로 귀엣말했다. 그 모습을 쳐다보던 동우는 선생님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자 고개 돌려 피했다.
담임 선생님은 팔뚝에 파란색 스카프를 매도록 했다. 각반마다 선생님들의 선두로 험난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학교에서 모양성을 거쳐 전불(前佛)길로 오르는 건 어른들에게는 산책이라 할 정도였지만 아이들에겐 그렇지 않았다. 특히 지용이에게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협심증을 앓고 있어서다. 동우는 자기 동생만큼이나 체력이 약한 지용의 손을 잡고 대열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함께 걸었다. 선생님은 가끔 뒤돌아보며 동우와 지용이를 보면서 선두에서 반 아이들을 이끌었다. 모양성 외곽을 따라 돌아가는 길은 경사가 심했다.
“쉬다 가게.”
"알았다. 근디 나 김밥 없어야."
작년에도 같은 반이었던 지용은 씩 웃으며 자신의 도시락 가방을 툭툭쳤다.
“걱정 말어. 많이 싸 왔응께.”
“긍가? 잘 됐다.”
“네 엄니는 바쁘냐?”
동우는 잠시 말이 없었다. 지용은 숨을 고르며 기다려주었다.
“아침에 늦게 인나면 온종일 못 봐야.”
“소풍 가는 건 아셨는가?”
빈 가방을 들썩이며 지용을 보았다.
“그런 거 같혀. 도시락을 싸 주셨는디 김밥이 아닌께 오다가 숨겼제.”
“워메, 썩을 놈. 뭐가 어때서 그랴? 내 니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동우는 신고 있는 농구화를 한 발짝 앞으로 내밀었다.
“이 신발을 신고 김치 물이 철철 흘러넘치는 도시락을 꺼내면 되겄냐? 쪽팔리지.”
“워메, 신발 살라고 점심도 굶고 그랬던 거냐? 신발만 쌈박하네.”
그때였다. 담임 선생님이 반 아이들 행진을 멈추고 두 아이에게 왔다.
“늦게 오면 어떡하니. 빨리 따라와.”
“야. 알겠어라.”
“그런데 동우야. 현덕이 어떻게 됐는지 아냐?”
담임 선생님의 질문에 고개를 숙인 동우였다. 담임 선생님은 씩 웃으며 동우의 좁아진 어깨를 토닥거렸다.
“어서 가자.”
담임 선생님이 다시 다른 학생들을 앞질러 선두에 섰다.
“뭔 일인디? 현덕이 사정을 묻는다냐?”
“나가 현덕이 패부렸어. 그 새끼가 내 동상을 때려서 눈팅이가 밤탱이 됐어야.”
“긍가? 근디 병원 갈 정도면. 큰일 난 거 아녀?”
“…….”
소풍의 최종 목적지는 김기서 강학당(金麒瑞 講學堂)이었다. 동우는 도착할 때까지 지용을 부축하며 대화가 오갔지만, 현덕이에 관해서는 말이 없었다. 짐을 풀고 인원수를 확인하는 일이 끝났다. 선생님들은 반원끼리 장기자랑 준비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자율적으로 쉬게 하려는 의도가 있어 보였다. 지용은 담임 선생님이 괜찮냐고 말을 하며 양호 선생님께 데려갔다. 아이들 여럿이 장기자랑을 준비하는 중에 동우는 흑염소 무리 옆에 혼자 있었다. 수풀에 앉아서 농구화만 만지작거리며 묻은 흙을 털어냈다. 암컷이 새끼 두 마리를 먹을 만한 풀이 있는 동우 쪽으로 밀어 넣었다. 저리 가라는 듯 동우를 노려보았다.
“맴생이 새끼 뭘 꼬라부냐.”
흑염소 무리를 벗어나 아름드리나무에 양호 선생님과 함께 앉아있는 지용에게 가려고 일어설 참이었다.
“으악! 비암이다.”
한 소녀가 산기슭에서 비명을 질렀다. 아이들이 그쪽으로 모여들었다. 동우도 빠르게 달려갔다. 선생님들은 강학당 마루에서 회의하다 부지런히 달려오는 중이었다. 알록달록한 색이 분명한 뱀이었다. 아이들은 경계하며 뱀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뱀이 똬리를 틀고 혀를 날름거렸다.
“다들 뒤로 물르랑께, 내가 잡을 거니께.”
무리에서 괴짜라고 소문난 아이가 나타나 긴 작대기를 들고 뱀의 머리에 갖다 댔다. 뱀이 작대기에 반응했는지 위협적으로 괴짜에게 입을 벌려 송곳니를 드러냈다. 독침이 묻어 나왔다. 괴짜는 놀라 냅다 뱀을 후려쳤다. 뱀이 송이를 향해 날아갔다.
“어마앗!”
송이가 자지러졌다. 동우는 본능적으로 송이 앞에 섰다. 뱀이 동우 앞에 떨어졌다. 농구화를 신은 발로 뱀의 대가리를 걷어찼다. 뱀이 휘청거리며 반대쪽 풀숲으로 나가떨어졌다. 그러나 죽지 않고 비실비실 동우의 반대쪽 아이들에게 기어갔다.
“워메. 워메. 온다! 온다!”
뱀이 가는 풀숲에 있던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뒤늦게 달려온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뱀으로부터 완전히 물러나게 했다. 어디서 구했는지 비료 포대와 집게로 뱀을 잡아넣었다. 일이 마무리되자 아이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고맙넹잉. 동우야.”
뒤에 있던 송이는 옆으로 다가와 동우의 팔을 안았다. 송이 가슴이 동우의 팔에 닿았다. 동우는 천천히 송이의 손을 떼어냈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걸 감추려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송이는 빨갛게 달구어진 동우의 귀를 보았다. 괜히 자신의 볼도 달아오르자 여자애들 쪽으로 뛰어갔다.
“밥먹자 동우야.”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다. 아름드리나무에 혼자 앉아서 소란을 지켜보았던 지용이는 동우가 오자 도시락 뚜껑을 주고 김밥을 나누었다. 참치 살코기가 한 가운데 살색으로 구심점을 잡았다. 곱게 채를 썬 당근, 쫀득한 맛살, 팬에 한두 번 정도 구워낸 햄, 사각으로 잘 썰어 낸 단무지, 참기름으로 버무려 만든 시금치, 노란 지단이 잘 어우러졌다. 맛소금과 참기름으로 간을 한 쌀밥이 외곽을 받쳤다. 맨 가에는 참기름에 반들거리는 김이 주변을 둘러쌌다. 거기에 참깨가 흩뿌려졌다.
“오메. 요런 김밥은 처음 보네잉. 참지름 냄새두 꼬숩고잉. 울 엄니도 이런 거 만들 수 있을랑가 모르겄다.”
“엄니가 참치 넣은 김밥이라고 하데. 근디 젓가락이 내 것만 있어야. 손으로 먹어도 돼.”
“아니여. 손이 더럽당께.”
곁에 있던 나뭇가지를 꺾어 껍질을 벗기고 젓가락으로 삼았다. 김밥이 입에 맞는지 오물오물 씹고는 다시 하나를 빠르게 집었다.
“맛있네잉.”
“워메, 나무젓가락도 아니고 진짜 나뭇가지로 먹냐.”
둘 사이의 대화를 잘 모르는 송이가 살갑게 무르며 다가왔다. 조금 전에 서로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했던 건 까맣게 잊은 듯 대꾸했다.
“이게 뭐시 어때서?”
“이걸로 먹어야.”
송이는 나무젓가락을 동우에게 주었다. 고맙다는 말도 없이 받았다. 송이는 애틋한 미소로 동우 옆에 앉았다. 동우의 신발이 송이 눈에 들어왔다.
“농구화네잉. 비싼 거 아녀?”
“자랑할 기분이 아니랑께.”
“왜야?”
지용이가 대뜸 끼어들었다.
“아따. 엄니가 준 돈으로 점심 안 사 먹고 신발 샀다고, 안 허냐.”
동우는 지용의 어깨를 팔로 두르고 말하지 말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 말을 듣고도 송이는 동우에게 웃으며 말했다.
“오늘 비암때문에 놀랐어야. 그 괴짜 새끼 주딩이만 살았제 완전 삐비 껍따기드만. 다시 한번 고맙당게. 자 사이다~. 톡쏘는 게 시원하고 맛있어야.”
송이는 파란색 별이 그려진 병을 건넸다. 또 말없이 받아서 가방에 넣는 동우였다.
“안 마시고 그냥 넣어 버리네. 시방 내 성의를 무시허냐?”
“아니랑께. 동상 주려고 그래야.”
장기자랑과 보물찾기, 그림그리기 등으로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동우는 가끔씩 농구화만 맥없이 바라보았다. 소풍이 끝나고 모양성을 지나서 시내에 들어왔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일찌감치 하교시켰다. 지용이는 그의 부모님이 데려가고 동우는 송이와 함께 집으로 향했다. 아무 말이 없어도 서로 눈을 가끔 마주치다가 서로 고개를 돌리며 걸었다. 어느새 공원에 도착할 때였다.
“먼저 가라잉. 친구랑 여기서 만나기로 했응께.”
“누구여? 어떤 아그여?”
“아따. 친구들과 농구 하기로 약속했어야.”
“긍가? 같이 있으면 안 되는가?”
“니 피아노 학원 가야제.”
“내 거기 가는 건 어찌 알았당가?”
“어서 가야.”
송이는 미소를 한가득 얼굴에 달았다. 손을 흔들며 먼저 학원으로 가는 걸음이 가벼워 보였다.
“알았어야. 농구 잘혀고 와야.”
송이가 사라질 때까지 공원 벤치에 앉아 지켜보았다. 주변에는 산책하러 나온 사람들이 여럿 있었고 또래 아이들도 하나둘 농구장에 모였다. 두리번거리며 지나가는 사람이 없는 틈에 담쟁이덩굴 아래에 숨겨 놓았던 도시락을 꺼냈다. 김치 물이 흘러 동우의 손에 묻었다. 뚜껑을 열어 상태를 확인했다. 도시락이 기울어져 있었는지 모든 내용물이 한쪽으로 쏠려 있었고 노랗게 탄 후라이 한쪽 부분에 김치 물이 빨갛게 번져 있었다.
“으미~.”
힘없이 집에 도착한 동우는 동생이 책상에 앉아 학습지를 풀고 있는 걸 보았다. 벽걸이 시계는 오후 네 시를 가리켰다. 식탁엔 라면 봉지가 뜯겨 있고 사리가 절반 정도 부서져 있었다.
“동하야.”
“응, 왔는가? 형아.”
“눈팅이 아직 덜 낳았네잉.”
고개를 돌리며 형을 바라보는 동하의 멍이 줄어들긴 했으나 전보다 더 짙은 검은색이 되었다.
“엄니는?”
“엄니? 오후에 온다고 하셨는디, 전화로 바쁜 일이 생겼다며 못 온다했어야. 돈이 웂어서 라면 부스러기 먹는디 수프는 맵고 면은 비려서 얼마 못 먹겄어야. 징허게 배고프당께. 돈 웂다고 말도 못허고…….”
해맑은 표정이었지만, 동하는 배를 쓸어내리고 있었다. 동우는 동생의 머리를 살며시 감쌌다. 동하는 그래도 다시 웃었다.
“헤헤.”
“미안혀. 라면이라도 끓여 먹지 그랬냐?”
“아따. 못해야.”
“꼬르륵~.”
배에서 소리가 나자 동하는 배를 움켜잡았다. 또래 아이들보다 키가 작아 가스레인지에 물을 끓일 수 없었다. 한 번은 간이 목욕 의자를 받치고 올라가 끓는 냄비를 들다 손 화상을 입을 뻔했다. 그 후로 가스레인지에 물을 올려놓지 않았다.
“엄니한테 뭔 일이 있는 거 아니겄지?”
내심 걱정되는 동우의 표정이었다. 동생이 준 용돈을 쓰지 않고 되돌려 주었다.
“뭔디 돈을 돌려줘야?”
“쓸 일이 없었어.”
“그라믄. 짜장면 시켜 먹게.”
“아니야. 볶음밥 해 먹자고.”
동하는 싫은 표정이었지만 농구화를 보고는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그러게 하게.”
“니도 신발 사고 잡제?”
받은 돈을 제 지갑에 넣다가 흠칫했다.
“아니어야. 내도 아껴서 다른 거 살 거구만.”
“그게 뭔디?”
“아직 몰라야.”
“아서라. 나 지금 후회가 막심하구먼. 엄니가 전화로 따로 말하는 것 없었냐?”
“화난 목소리였당께. 신발 들킨 거 아녀?”
“아니겄제. 근디 핵교에서 전화 온 건 없었고?”
“없어야.”
도시락을 꺼내든 동우는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넣고 후라이를 따로 꺼내 놓았다. 밥과 김치를 프라이팬에 부었다. 싱크대 아래에 있던 참기름을 넣고 고추장을 조금 넣어 볶았다. 구수한 참기름 냄새와 김치가 어우러졌다. 김이 모락모락 나자 계란 후라이를 섞었다. 동하는 자동으로 식탁에 올라앉았다.
“먹자. 동하야.”
계란 후라이가 으깨져 버무려진 김치볶음밥이 식탁에 놓였다.
“어째 이리 적어야?”
“내는 조금 먹을 거여. 친구들이 김밥 많이 줬어.”
“좋겠다잉. 다음엔 엄니가 싸준 김밥 먹을 수 있을까?”
“글씨. 몰라야. 볶음밥 먹은 거 엄니한테 비밀이여. 소풍 가서 먹었다고 할랑께.”
“아따. 알았어야.”
동하는 큰 숟가락으로 푹 떠서 작은 입을 동그랗게 벌리며 쑤셔 넣으며 금방 먹어 치웠다. 동우는 송이가 준 음료수를 꺼내 컵에 따라 동생에게 건넸다. 동하는 두 손으로 받고 음료수를 홀짝홀짝 마셨다. 설거지를 하려 할 때였다. 현관문이 바로 열리더니 선영이가 나타났다. 볼이 빨갛게 상기된 얼굴이었고 눈은 매서웠다.
“엄마…… 왔어라.”
형제는 갑자기 나타난 엄마를 바라보았다. 방안에 싸늘한 기운이 꽉 들어찼다. 설거지를 시작할 수 없었다.
“졸졸졸졸~~~.”
싱크대 수도꼭지에서 물소리만 났다. 남은 사이다를 마시던 동하도 엄마를 보자 조용히 컵을 내려놓았다. 트림을 참으려는지 볼이 불룩했다가 입술을 살짝 벌려 속에서 나온 입안 공기를 뺐다. 선영의 살벌한 분위기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이마에 핏줄이 퍼렇게 올라왔다. 동우의 손을 잡아채고 소파에 끌고 와 앉히려 했다.
“앙거!”
“우짜 그러신대요?”
손에 물기가 있는 채로 서 있었다.
“앙그라고 했다잉!”
“신발땜시 그라요?”
현관에 농구화가 벗겨진 채였다. 선영의 눈을 피해 소파에 앉았다. 선영은 다짜고짜 추궁하기 시작했다. 신발은 안중에 없어 보였다.
“어제 관사에 사는 현덕이라는 아그와 싸웠냐?”
동우는 엄마의 화난 모습에 고개를 숙였다.
“싸웠어라.”
“퍽”
선영은 동우의 머리에 알밤을 매겼다. 아프다는 말을 못 하고 머리를 비벼댔다. 평소 학교에서 싸워도 이렇게까지 화를 내며 자식들에게 손찌검하지 않았던 선영이었다.
“시상에. 또 싸웠냐? 엄마가 낯짝을 못 들겄다.”
형제가 소풍 가는 날 오후에 선영은 동료 가정학습 선생님들과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오후부터 계획되었던 일정을 미루고 막내와 병원에 가기로 했으나 갈 수 없었다. 사무실에서 어떤 부모가 가정 학습지 다섯 과목을 모두 취소했다. 회원인 현덕의 어머니가 민원을 넣은 것이다. 동우가 제 자식을 때리고 자전거를 망가트렸으며 돌로 위협했다는 내용이었다. 집에 있던 동하에게 오늘 못 간다고 전화했다. 전주에 있는 지역 본사로 불려가 문책 회의에서 주의 처분을 받았다.
“학습지 지점장이라는 사람이 자식 교육을 똑바로 안 하시네.”
“사별한 과부예요. 이해해 주세요.”
문책 회의에서 나오며 입술을 깨물고 눈물을 삼켰다. 본사에서 나와 병원에 있는 현덕의 가정에 방문하여 병원비를 물어주며 사과했다. 현덕의 어머니는 학교에 알리고 부모와 상의했다며 주의만 주라고 당부했다. 학교 밖에서 일어난 애들 싸움에 학교 내에서 처벌받을 일이 아니라고 했다. 그때 선영은 현덕이가 동하를 때린 일은 모르는 것 같았다.
“어떻게 아셨어라?”
“…… 그건 알 것 없고 어찌 그러냐. 학교에서 싸우는 게 모자라 밖에서도 친구 때리고 다니면 되냐잉? 속 터진다아. 자전거 부수고 돌로 위협도 했다는디, 사실이여? 현덕의 코빡이 뽀사져 병원 갔당께.”
노여움에 가득 찬 선영 앞에서 동우는 바로 실토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로는 동우의 목소리에 억울함이 배어있었다.
“친구 아니어라. 송이를 괴롭혀서 때린 건 내 잘못인디, 그것 가지고 염병할 놈이 동상을 때렸어라. 그라고 우리한테 호로새끼라 했어라!”
“…….”
선영은 첫째 앞에서 말도 없이 풀썩 주저앉았다. 일어날 기운마저도 없어 보였다. 소파에 앉았던 동우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고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동하도 엄마의 모습에 놀라 울음을 터트렸다.
“우아앙~.”
시퍼렇게 멍이 들었던 막내의 눈가에 붓기가 사라졌지만, 멍은 그대로였고 입가에 불그스레한 밥풀이 묻었고 김칫국물이 침과 눈물과 함께 턱밑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선영의 눈에 눈물이 핑 돌기 시작했다.
“동하야. 뭐땜시 그짓말혔냐. 니도 잘한 것 하나 없어야. 알겄냐?”
“잘못했어라. 엄니.”
“이리 온 나.”
동하는 주저 없이 엄마에게 달려갔다. 선영은 막내를 껴안았다.
“바빠서 싸게싸게 출근하느라 네 말만 믿은 어미도 잘못이다.“
울음을 보이지 않으려 했던 선영은 싱크대에 설거지하려고 놓은 도시락과 프라이팬을 보고 테이블에 잘게 볶아진 김치와 달걀부침의 흰자와 노른자 조각, 밥풀때기, 라면 부스러기도 보았다. 눈에 눈물이 넘치기 시작하자 자식들이 만들어낸 그것들은 흐물거렸다.
“워메, 우짜스까잉. 내 새끼들.”
두 아들을 토닥토닥하며 참았던 눈물을 마침내 토해냈다.
“미안허다. 그것도 모르고야. 어미가 잘못했다. 내 새끼들. 흑흑.”
동우도 엄마의 등을 어루만졌다.
“죄송해요~. 엄니.”
두 아들과 엄마는 펑펑 울었다. 한참을 그런 후 선영은 자식들을 데리고 마을 오일장 안에 있는 중국집에 데려가 탕수육과 자장면을 사주고 집으로 먼저 보냈다. 집으로 돌아오는 형제는 손을 맞잡고 집으로 들어와 피곤했는지 일찍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선영은 출근하기 전 형제를 급하게 형제 이름을 크게 부르며 깨웠다. 침대에 있던 두 형제는 바로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선영의 눈초리는 동우를 향했다.
“아따, 이 썩을 것. 이 신발 얼마짜리여? 점심값으로 대신 산 거제?”
“야, 엄니. 잘못했어라.”
형은 고개를 숙였고 동하는 자기에게 불똥이 튈까 싶은지 머리를 감쌌다.
“사고 잡으면 말해야! 안 사주디? 엄마 돈 많아야! 점심 굶지 말고. 아침 꼬박 챙겨 먹고야.”
속사포를 쏘듯 빠르게 말하고 잽싸게 현관문을 나갔던 선영이 다시 들어왔다. 형제는 놀라 엄마를 보았다. 두 아들을 향해 가쁜 숨을 내쉬며 말했다.
“도시락도 싸 놨응께 챙겨 가고. 동하는 오후에 병원가자잉.”
“알았어라.”
형제는 동시에 대답했다. 현관문이 닫히자 가슴을 쓸어내리며 마주 보았다.
“뭔 일이래? 엄니가 도시락을 다 싸주시고.”
동우는 도시락 뚜껑을 열고 내용물을 확인했다.
“김밥이네? 언제 만드셨데. 송이랑 지용이랑 먹어도 되겄다잉.”
“형아. 내도 김밥이다!”
30년 후, 동우는 고창경찰서장이 되었다. 송이는 동우의 아내였고 지용은 유명 의과대학교 교수였다. 동하는 민권변호사를 하고 있다. 고창은 정돈되고 깔끔한 읍(邑)으로 거듭났으나 분위기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었다. 초등학교의 위치도 여전했다. 가을이 짙어지는 어느 날 밤, 고창고등학교 한 학생이 가출했다며 찾아온 선생님이 있었다. 동창인 현덕이었다. 다행히 학생과 연락되어 사건이 종결되었고 둘은 경찰서 담벼락 담쟁이덩굴 앞 벤치에서 사담(私談)을 나누었다.
“네가 고등학교 선생님이라는 게 말이 되나?”
“네가 경찰관이라는 거는 맞고?”
“하하하하하.”
십수 년이 지났지만, 싸운 정도 정이라고 어제의 친구처럼 커피를 마시며 격 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초등학교 졸업 전에 전학 갔었지?”
“그랬지. 그 후로 못 봤잖아.”
동우가 타 준 맥심 커피를 마시며 현덕이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잘 지내고?”
“잘 지내지. 고등학교 선생님이잖아. 어렸을 적 아버지가 군인인 관계로 이사를 수십 번 했어. 고창에서는 일 년 넘게 가장 오래 살았지. 선생님 말씀 안 듣고 애들 많이 괴롭혔는데 그때 생각하면 하느님이 천벌을 내린 거야. 더 드센 고등학교 선생님을 하게끔 했으니.”
“그런가? 그렇게 말하면. 나도 천벌인 거지. 맨날 싸움만 하고 공부도 안 했었으니. 그런데 경찰이 되었네.”
“하하하하.”
“어머니는 잘 계셔?”
현덕은 문득 동우 어머니의 안부를 물었다. 어머니를 소개해준 적 없던 동우였다. 게다가 좋은 일이 아닌 경험에 어머니의 안부를 묻는 현덕이 의아했다.
“어렸을 적 말이야. 네 어머니께서 찾아오셨는데, 병원비 물어주고 가셨었지. 그때 네 동생 때린 걸 숨기고 있었거든. 그런데 다음 날 오전에 다시 병원에 찾아오셨어. 겁나서 자는 척하고 있었거든. 우리 엄마한테 지난 일들을 말씀하셔서 서로 알게 된 거야. 서로 미안하다며 오해를 푸셨지. 마지막에는 네 어머니께서 소풍도 못 간 내가 안쓰럽다고, 직접 만든 거라며 김밥을 놓고 가신 거야.”
“그래?”
“응, 가신 후에 먹어보니 정말 맛있었어.”
“나도 생각난다. 엄니 김밥.”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동우는 환한 미소로 어머니의 안부를 물었던 현덕에게 대답했다.
”엄니는 건강하셔.”
※ 우여곡절 끝에 완성했습니다. 도와주신 이명철 회장님, 조숙자 선생님, 최미경 선생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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