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4. 28
주일학교의 아이들이 과연 예배를 이해하는지 의아스럽다.
찬양시간에 입도 벙긋하지 않는 아이들..
옆 사람과 장난치며 이야기 하며 조금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아이들..
예배가 시작 되었다고 몇 번이나 강조하며 예배에 마음을 기울 일 것을 거듭해도
몇 초에 다시 반복하는 아이들.
물론 몇 아이는 그렇지 않지만..
수 차례에 걸쳐 예배에 하나님이 계심을 언급하고..
예배를 소홀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을 소홀히 여기는 무례함이라고 말해야 했다.
분명히 몇몇 아이들은 전혀 복음을 받아 들이지 않는 것 같다.
복음이 전해 질 때 몇몇 아이들의 모습은 복음에 대한 그들의 진실된 마음이 얼굴로 표현된다.
그런가 하면 몇몇 아이들은 아주 괴로운 표정을 보이기도 하며 장난기 어린 행동으로 훼방을 하기도 한다.
이런 일들은 우발적이나 단회적이 아니고 매주마다 볼 수 있는 일이다.
그들의 입술을 통하여 고백을 하도록 질문을 통하여 시도해 보면 아주 뚜렷하게 볼 수 있다.
분명히 복음에 대하여 표현을 하는 가 하면.. 수 십번을 반복했음에도 여전히 복음을 고백하지 못한다.
년령의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이가 어림에도 불구하고 복음에 대한 표현을 할 때 그 마음속에 감격과 기쁨을 함께 표현하는 가 하면
나이가 훨씬 많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마디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기도 한다.
오늘은 내가 복음을 다시 설명할 때 한 아이가 컹컹 거리며 목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예수님에 대한 십자가를 언급할 때 마다 기침을 억지로 컹컹 거리며 장난을 치는 것 같았는데 반 전체의 아이들이 느낄 만큼 그랬다.
아이들이 알아 챈 것을 알고는 화장실에 갔다 오겠다며 결국 자리를 피하여 나갔다.
그런가 하면 예수님에 대한 복음이 언급 될때면 차라리 얼굴을 책상에 대고 엎드리는 아이도 있다.
예수님은 어린아이가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천국이 이런자의 것이라고 하셨다.
이런자..즉 어린아이 같은 자의 의미이다. 어린아이의 복음에 대한 순수한 믿음과 반응을 의미한다고 본다.
어린아이의 이런 순수성이 그 아이에게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 보여서 안타까웠다.
사탄의 침략에 의한 참된 교육의 변질과 죄악의 세력에 오염된 문화와 사회 속에서 자라는 이 세대의 아이들...
과연 누가 이 아이들을 사탄의 손으로 부터 보호하고 지켜야 할까? 과연 부모님들은 이 심각한 문제를 감지는 하는 것일까?
예배의 처음 부터 끝까지 몸과 마음이 분리되어 몸만 있는 아이.. 그리고 처음 부터 끝까지 산만함 그 자체로 분위기를 조성하는 아이.
최선을 다해 말씀에 집중을 하게 하려고 노력하면서 아주 힘든 시간을 보내느라 좀 늦었다.
주일학교로 찾아와서 점심식사 줄이 거의 끝났다고 아이들을 빨리 보내라고 하며 아이를 데리고 나가는 한 어머니..
기도를 마치자 마자 식당으로 뛰는 아이들 뒤에 나에게 남겨진 것은 연필이며 책이며 마구 어지렵혀진 책상과 책상아래의 쓰레기이다.
많이 걱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