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사는 삶은
잘 행위하고 잘 체험하는 삶입니다.
행위를 잘하려면 활기차게 움직여야 하고 정신이 명료해야 합니다. 잘 체험하려면 몸의 감각 작용이 원만해야 합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할수록 활기차고 명료한 움직임이 수월합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할수록 몸의 감각 작용이 원만합니다.
잘 사는 삶은,
자연스러운 마음으로 행위하고 체험하는 삶입니다.
마음을 자연스럽게 하려면 몸이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몸에 걸림, 몸을 불편하게 하는 요소가 없을수록 몸은 자연스러워집니다.
걸림 없는 몸으로 태어나는 것은 행운입니다.
걸림 없는 몸을 계속 유지하기가 쉬운 일은 아닙니다. 걸림이 있더라도 지금 자신 몸 있는 그대로를 오롯이 포용할 수 있으면 됩니다. 불편한 몸에 투덜거리는 마음 없이, 몸 있는 그대로를 감사히 받아들이면 됩니다.
잘 죽는 죽음이란,
죽기 직전까지 쌩쌩하게 살다가 죽는 것입니다.
죽기 직전까지 스스로의 힘으로 움직이다가 바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잘 죽는 죽음이란,
자연스럽게 죽는 것입니다. 죽음을 거부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죽으려면 마음이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마음을 부자연스럽게 하는 요소가 없으면 마음은 자연스럽게 자연스러워집니다. 마음속 맺힘이나 고집이나 집착이 없으면 마음은 자연스럽습니다.
너도나도 ‘행복, 행복’하며 쫓아다니고 있지만 온전하게 행복을 얻은 사람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삶의 행복이란 발이 닳도록 쫓아다닌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행복은 자연스럽게 ‘찾아드는’ 것입니다. 우리네 몸이 온전해지고 마음을 순화하면 삶이 온유해집니다. 삶이 조화로워집니다. 이때 행복은 굴러들어 옵니다. 그것도 넝쿨 체 들어옵니다.
너도나도 잘 살고 잘 죽기를 원하지만, 잘 살고 잘 죽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몸과 마음이 온전하면 잘 살아집니다. 우리네 몸과 마음이 온전하면 잘 죽어집니다.
몸과 마음이 온전하면 삶도 죽음도 자연스러워집니다.
신(신성, 깨달음, 해탈)은 까마득한 저 어딘가에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의 숨결은 내 안에 있습니다. 지성과 감성 안에 있습니다. 의지와 열정 안에 있습니다. 육체 안에 있습니다. 이 모두를 적절하고 조화롭게 활용하면 내면의 신이 드러납니다.
신은 마음의 중심을 잡고 중용과 함께하는 창조적인 삶을 살 때, 내 안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신의 숨결과 함께하는 사람은 삶이 자연스럽습니다. 자연스러운 마음으로 삶을 살아갑니다. 온유한 마음으로 삶을 포용합니다.
햇살은 어딘가를 비치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드리워진 커튼을 걷어내기만 하면 그곳에 햇살은 있습니다.
바람을 쫓는다고 바람을 잡을 수는 없습니다. 문을 열고 밖에 나가기만 하면, 창을 열기만 하면 바람은 그곳에 있습니다. 쫓아가지 않아도 바람의 시원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신의 숨결은 햇살과 바람 같습니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