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임마누엘의 성탄 - 주님과 함께 하십니까? / 2025년 12월 25일 성탄절
본문 / 마태복음 1:18-25
나는 지금 주님과 함께 하고 있을까요? 하나님은 사랑하는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며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기 백성과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과연 나는 주님과 함께 하고 있습니까? 주님이 이 타락한 세상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은 나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인데 말입니다.
지금 주님과 함께 하고 있지 않다면 성탄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내가 주님과 함께 한다고 하여도 주님이 나와 함께 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함께 할 수 겠습니까? 이 성탄을 통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원하시는 임마누엘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확인하시고 반드시 임마누엘을 이루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이 열 두살에 되었을 때 마리아와 요셉은 예수님과 함께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들은 절기를 지킨 후에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당연히 예수님이 무리와 함께 하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당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무리와 함께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여전히 예수살렘 성전에 계셨습니다.
뒤늦게 예수님이 함께 하고 있지 않는 다는 것을 인식한 마리아와 요셉은 돌아온 길을 거슬러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찾기 위해 애를 쓴 마리아와 요셉에게 이런 말씀을 전합니다. 아들은 아버지 집에 있다고 말입니다.
지금 세상은 성탄으로 떠들썩합니다.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 신랑과 신부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는 수많은 장사꾼들과 하객들이 사고 팔고 먹고 마시는 데에 환장한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왜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의 상을 뒤엎으시고 채찍으로 때리며 내쫓으셨습니까? 내 아버지의 집을 도둑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하셨습니다.
이 시대의 성탄은 귀신을 숭배하는 것과 같습니다. 차린 제물은 죽은 조상이 아닌 사람들의 입으로 들어가고 그 정성은 귀신에게 돌아가듯세상의 성탄은 주님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입니다. 육체의 정욕과 탐심으로 타락한 자아를 섬기기 위한 우상숭배에 불과합니다. 마귀적인 것이며 귀신을 위한 잔치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은 세상만이 아닙니다. 이 시대의 교회와 성도들도 그렇습니다. 교회와 성도들도 하나님이 함께 할 수 없는 자들이 된 것입니다. 세상이 되었습니다. 어둠이 된 것입니다 바울은 빛과 어둠이 어찌 일치가 되며 하나님과 우상이 어떻게 함께 할 수 있느냐 묻습니다.
더러운 것은 거룩한 것과 함께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더러운 것과 함께 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그 더러움이 그대로 있으면 절대로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에 그 더러움을 씻어내 주시고 거룩하게 하셔서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옛 것은 지나가고 새 것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의 더러운을 십자가에서 다 대속해 주신 그 십자가의 은헤를 믿음으로 회개하고 거듭날 때 그 믿음으로 인하여 더러운 죄가 씻겨지고 의롭다함을 받는 것입니다. 마침내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의 은혜를 믿을 때 말입니다, 회개하고 거듭날 때 말입니다. 오직 십자가의 은혜를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이런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서 저는 말씀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꿈인지 몰랐습니다. 저는 너무 간절했습니다. 제가 간절하게 사람들에게 전하는 내용은 매일 큐티에서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나는 누구입니까?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이것은 너무 중요한 질문입니다. 안타까운 심정으로 전하는 제 자신을 볼 때에 비로소 꿈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주님을 찾았고 함께 하지 않는 다는 것을 확인하자 다시 돌아갔습니다. 주님을 찾아 돌아간 것입니다. 알아서 오겠지 귀찮아 하고 그냥 가지 않았습니다. 지금 내 인생 길에 주님이 함께 하고 있는가? 나는 삶에서 주님과 동행하고 있는가? 내 마음과 영에서 주님과 함께 하고 있는가? 임마누엘의 성탄을 맞아 던지시는 주님의 물음입니다.
나는 주님의 이 물음에 무엇이라 답할 수 있습니까? 시편 기자는 증언합니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펴 나를 찾는 자가 있는가 살펴보셨지만 하나도 없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예루살렘 성에서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 성 안에 있던 하나님의 백성들은 사실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교회에 오셨을 때에는 어떻습니까? 너희가 입술로는 하나님을 경외하지만 그러나 너희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이 시대의 교회와 성도들은 어떻겠습니까? 나는 어떻습니까? 더 심해지지 않았겠습니까? 겉으로는 하나님 하나님 입으로 주님 주님 하지만 정말 그 마음과 영에서도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까? 나의 삶에서 주님이 진짜 주인이십니까?
우리가 사는 집으로 비유하자면 주님이 계셔야 할 곳은 주인이 사는 방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손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나의 생명을 창조하고 인생을 허락하신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을 손님으로 대접하고 작은 방에 모셨다면 과연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겠습니까? 어떤 주인이 손님방에 거하겠습니까? 주님을 가장 귀한 곳에 모시지 않은 것은 패역입니다. 주님은 이 시대를 음란하고 패역한 세대라하고 하셨습니다.
왜 성도들은 임마누엘로 오신 주님과 함께 하지 못합니까? 대속의 은헤는 받고자 하지만 자신의 주인 됨은 포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값없이 주시는 은혜로구원은 받고 싶지만 여전히 자신의 육체의 정욕과 탐심을 섬기며 세상에서 주인 노릇은 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성도들이 은혜를 헛되이 받고 마는 것입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지만 택함을 입은 자는 적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현실이 아니겠습니까?
주님은 죄인들과 함께 하고 싶어 그 죄를 자신이 짊어 지시고 자신의 몸을 대속물로 십자가에 내어주셨지만 사람들은 내 죄는 다 주님이 가져가 대속했으니 나는 이제 용서받았어 회개했어 구원받았다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주님이 십자가에서 대속해주신 내 죄가 뭔지나 알고 있습니까? 뭘 용서받고 회개한 것일까요? 어디에서 구원을 받은 것일까요? 여전히 자신이 인생의 주인입니다. 여전히 자신을 위해 사는 자가 입니다. 육체의 정욕과 탐심을 위해 삽니다.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는 받았다고 하지만 그 믿음은 없습니다. 주인으로 타락한 육적자아를 십자가에 부인하지 않는 것입니다. 부인하기가 싫은 것입니다.
그래서 주여 주여 하지만 주님과 함께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마음과 영에 주인으로 모시지 못합니다. 내가 죽고 내 안에 주님이 주인으로 사셔야 하는데 말입니다. 십자가의 은혜와 그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 무엇입니까? 십자가의 대속의 피로 나를 사셔서 진짜 나의 주인되신 주님의 뜻을 받드는 순종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소개할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 증언합니다. 종은 주인의 뜻을 받듭니다. 주인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어떻습니까? 그리스도의 종이 아닙니다. 자기 뜻과 고집과 생각과 감정과 자존심과 욕망을 버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은혜 따로 믿음 따로입니다. 말과 행동이 따로인 겁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입으로 주여 주여 한다고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한다고 말입니니다. 누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인가 물으시고 누구든지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으로 오신 주님과 임마누엘을 이루지 못한다면 구원은 없습니다. 주님의 뜻을 받들지 않으면 주님과 함께 하지 못합니다.임마누엘은 없습니다. 내 죄를 즉 나의 주인 됨을 고집하는 그 교만한 죄악을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을 박지 않으면 주님의 뜻에 순종하지 못합니다. 나와 임마누엘이 되기 위해 오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나와 함께 하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말 우리는 귀가 따갑게 들었습니다.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임마누엘의 길과 그 믿음에 대하여 말입니다. 그런데 구슬이 서말이면 뭐합니까? 마귀도 예수님이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압니다. 그렇다고 마귀가 믿고 순종합니까? 구슬도 꿰어야 보배가 됩니다. 아무리 진리의 말씀에 대한 지식이 있고 큰 은혜를 받아도 순종하지 않으면 믿음이 되지 못합니다. 말씀의 구슬을 보배로 꿰는 것이 무엇입니까?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의 은혜와 믿음입니다. 그것이 능력입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지 않겠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에 좌절하였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는데 약속의 땅에 가면 뭐하겠습니까? 모세는 압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는다면 이스라엘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주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과의 함께 하심에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까지 찾아오셨는데 말입니다. 그 거룩한 분이 죄인처럼 되셨는데 말입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은 감히 우리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제가 지금은 많이 자유해졌지만 결혼 초에는 결벽증이 좀 있었습니다. 청소를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모릅니다. 방바닥에 먼지나 머리카락이 떨어진 것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시골 사람들이 청결합니까? 짐승들은 똥밭에서 뒹글고 파리는 득실거리고 냄새는 역겹습니다. 제가 비위가 약합니다. 심방을 가면 음식을 먹는 게 큰 고난이었습니다. 안 먹을 수는 없고 먹자니 비위에 거슬리고 말입니다. 정말 한 분은 너무 큰 고난을 주는 분도 있었습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위생이었습니다. 여기에서 그것을 감당할 만은 분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듭니다. 시꺼멓고 찌그러진 냄비에 있는 이상한 비주얼의 저 음식이 나를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더러운 것은 내 마음에 있지 않은가? 과연 거룩하신 하나님은 내 안에 거하실 수 있을까? 하나님이 역겨워 도저히 나와 함께 할 수 없는 것은 아닌가? 내 안에 계실 수 없는 것은 아닌가? 지금 이 위선도 나의 더러움이 아닌가?
스스로 자신을 속인는 자들은 하나님과 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떠난 것도 알지 못합니다. 부족하고 더러운 죄인이 감히 거룩하신 하나님과 함께 하는 곳이 그 믿음의 자리가 십자가입니다. 나의 더러움과 부족함을 십자가에 못을 박는 그 자리입니다. 주님의 보혈로 씻어내는 은혜의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과 함께 하사는 임마누엘의 믿음에 소망을 품은 자들은 결코 십자가의 은혜와 믿음을 떠날 수 없습니다.
세상이 하나님 없는 성탄절에 흥분한 것처럼 교회와 성도들도 십자가에 없는 성탄이 되었습니다. 임누엘이 없는 성탄이 된 것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이 자신을 떠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없습니다. 임마누엘에 대한 믿음도 소망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려면 무엇을 사랑합니까?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정욕과 탐심으로 섬기는 육적자아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세상으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성탄절이 되면 제가 몇 년 전에 했던 한 예화가 생각납니다. 캐나다에서 목회하다 온 한 목사님이 직접 경험한 이야기입니다. 13평 아파트에 살 때 처음에 적응이 안되 힘들었습니다. 새벽에 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갈 생각을 하면 마음이 답답해집니다. 빨래를 널 곳도 없고 편히 푸시업을 할 만한 공간도 없습니다. 그 13평에 베트남에서 온 이민자들이 13명이 사는 겁니다. 부부를 중심으로 양가 부모님과 형제들까지 말입니다.
그 목사님이 이 집의 안방은 누구 살까? 궁금했다는 겁니다. 이 안방은 누가 사용합니까? 그 방은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 방은 그들의 조상 신을 모신 사당이었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그리고 번뜩였습니다. 저게 믿음이다.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그 어려운 상황에서 말입니다. 귀신도 저렇게 섬긴단 말인가?
나는 과연 만왕의 왕이신 유일하신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는가? 과연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사랑하는가? 내 마음의 가장 귀한 곳에 모시었는가? 내 삶의 주인의 자리에 영접하였는가? 하나님을 만홀이 여김을 받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습니까?
나의 교만한 자아를 부인하는 십자가의 은혜와 믿음이 없이는 누구도 하나님을 마음의 중심에 모시지 못합니다. 주님과 함께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며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않습니다.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어머니 품에 있는 젖 뗀 아니와 같이 하였습니다.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습니다.
어머니 품에 있는 젖 뗀 아이는 얼마나 평안할까요? 가장 행복하고 안전한 곳이 아닙니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결단코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입니다. 십자가에 나의 주인됨과 교만한 자아와 온갖 자아숭배를 부인할 때 주님 품에 안긴 어린 아이가 될 것입니다. 오직 주님과 함께 하는 주님만 의지하는 어린아이가 되는 것입니다.
탕자는 아버지와 함께 하는 것이 싫었습니다. 타락한 죄인들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을 자기 마음에 두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증언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어도 자기 마음대로 믿고 싶어 합니다. 내가 죽고 내 안에 주님이 사는 그 십자가를 만나야 그 죄에서 돌이키게 됩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임마누엘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게 됩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마귀의 미혹은 정말 강하고 교활합니다. 깨어 있지 못하면 미혹을 분별하지 못하고 넘어가고 맙니다. 환락과 도박의 도시인 미국의 라스베가스의 그 화려하고 으리으리한 도박장에는 시계와 창문이 없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오로지 도박에만 몰두하게 만든 것입니다.
지금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마귀의 미혹에 눈이 어두워져 어디로 가는지고 모르고 심판이 가까지 오는 것도 모른채 믿음과 인생이 다 털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영혼을 잃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을 세상에 다 빼앗기고 인생에 골몰하지만 결국 영원한 고통만 남는 것입니다. 쟁기를 자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 하십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나는 과연 누구인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임마누엘의 성탄을 맞아 주님과 함께 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주님은 나와 하나가 되기 위해 오섰습니다. 함께 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주님과 함께 할 때 성탄은 가장 기쁜 소식이며 가치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결국 주님과 함께 하는 하나가 되는 유일한 곳은 십자가입니다. 내 죄를 대속해 주신 그 십자가의 은혜를 믿음으로 나도 나를 날마다 십자가에 자신을 부인하며 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고 말입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십자가의 좁은 길은 찾는 이가 적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오실 때에 노아와 롯의 때와 같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주여 주여 하는 자들은 많아도 주님과 함께 하는 사람들은 적습니다. 십자가에 에 자신을 부인하여 주님의 뜻을 받드는 사람만이 주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지금 주님이 성탄을 맞이하는 이 시대와 교회를 보시며 무엇이라 말씀하실까요? 어떤 심정으로 보고 계실까요? 저는 이사야의 탄식이 떠오릅니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이 여기 멸리하고 물러갔도다"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주님과 함께 하는 것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이 세상에서 십자가의 은혜와 믿음으로 임마누엘의 역사를 이루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과 함께 하고 있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반드시 십자가의 은혜와 믿음으로 주님과 함께 구원을 이루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