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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 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하나님과 호흡 맞추는 한나의 기도>의 줄거리 :
사무엘 출생의 배경이 소개됩니다. 그런데 한나와 브닌나가 등장을 합니다. 둘을 비교하라고 하시는 겁니다. 브닌나는 여러 명의 자녀를 그냥 잘도 낳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을 견디며 기도함으로써 사무엘을 낳습니다. 이 기도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하나님과 호흡을 맞추기 위한 기도입니다. 즉 사무엘로 상징되는 하늘에서 이루어진 뜻이, 땅에서도 척척 이루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호흡 맞추는 한나의 기도
(사무엘상 1:1~28)
4. 엘가나가 제사를 드리는 날에는 제물의 분깃을 그의 아내 브닌나와 그의 모든 자녀에게 주고
5.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
6.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
7. 매년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매 브닌나가 그를 격분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
8. 그의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냐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 하니라
9. 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신 후에 한나가 일어나니 그 때에 제사장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설주 곁 의자에 앉아 있었더라
10.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11.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12.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13.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
14.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하니
15.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16.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기 때문이니이다 하는지라
본문은 사사 시대를 끝내고 왕정 시대로 넘어가는 이스라엘 역사상 아주 위대한 사역을 담당하는 사무엘의 출생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나가 실로에 있는 성막에 가서 기도하는 장면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엘리는 그 기도를 듣고 한나에게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라고 말했고, 이 말을 들은 한나는 얼굴에 근심 빛이 없어집니다. 그리고 이후 사무엘이 출생하자 한나는 맹세한 대로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리는 준비를 합니다. 이러한 내용 중심으로 <하나님과 호흡 맞추는 한나의 기도>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합니다.
왜 하나님과 호흡을 맞춰야 될까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어떤 뜻을 세우십니다. 그럴 때 하나님과 호흡이 맞아야 이 땅에서 그 뜻을 내 말과 행동으로 이루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호흡이 척척 맞지 않으면 아무리 하나님이 땅에 대한 뜻과 계획을 세우셨더라도 자꾸 어긋나게 됩니다. 이와 관련하여 한나의 기도는 하나님과 호흡 맞추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가르쳐주십니다.
이때는 사사 시대의 마지막 무렵으로써, 사무엘이 등장하면서 사사 시대는 마무리됩니다. 사사기의 마지막 21장 25절에서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사 시대가 끝나고 왕이 다스리는 왕정 시대로 바뀝니다. 그 일을 감당하는 자가 사무엘입니다. 이러한 사무엘의 출생과 관련하여 본문을 살펴봅니다.
우리가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 주목해야 할 부분은 6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라고 했습니다. 한나가 임신하지 못한 것은 여호와께서 막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깊은 의도성을 느낄 수 있다는 것으로부터 본문의 이해를 출발해 보겠습니다.
먼저 한나의 기도에 따라오는 오해를 제거해 봅니다. ‘한나가 간절히 기도해서 사무엘이 태어났다’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예수님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에 대하여 전혀 모르거나, 이론적으로 알고 있는 것을 실제 삶에서 한 번도 적용해 본 적이 없는 것입니다. 한나가 기도해서 사무엘이 태어났다고 본다면 불교의 신이나 힌두교의 신이나 이슬람의 신이나 모든 종교의 신이 다 똑같다고 여기는 종교심이지 믿음이 아닙니다.
사무엘은 한나의 간절한 기도 때문에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사무엘의 어머니인 한나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은 이미 사무엘의 출생을 뜻하고 계획하셨습니다. 반대로 사무엘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전혀 없었다고 가정해 봅니다. 그런데 한나가 간절하게 기도하는 것을 보시고는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성령님과 의논하시면서 ‘한나가 간절하게 기도하는구나. 보좌가 흔들릴 정도다. 내가 귀찮아서라도 한나의 기도를 들어줘야겠다. 한나에게 아들을 줄 계획은 없었으나 이제 계획을 세워야겠다.’라고 하셨을까요? 사무엘은 이렇게 해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사무엘은 이미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이 세상에 태어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사람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뜻하지 않으셨던 일을 새삼스럽게 뜻하시는 경우는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뜻하시는 바를 내 기도로 바꿀 수도 없습니다. 다만 그 반대의 경우는 있을 수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 안에서 이루어진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땅에서 우리가 하나님과 호흡을 맞추지 못해서 그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는 수두룩합니다. 그러나 말씀드렸듯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 안에 없는 일이, 땅에서 내가 뜻하고 소원하고 기도하였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경우는 절대로 없습니다.
땅에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이미 세워놓으신 뜻을 받아내서 이루는 것뿐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땅에 있는 나의 뜻을 받아서 이루시는 법은 없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20절을 보면 “한나가 임신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사무엘의 이름에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라는 뜻이 있다는 것이 특이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구절에서 착시 현상을 일으킵니다. 결과적으로 한나가 간절하게 구했던 것은 하나님이 이 세상에 태어나도록 이미 계획하신 사무엘을 구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없던 아들에 대해 간절한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새삼스럽게 계획을 세우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말씀드렸듯이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이 세상에 태어날 것을 계획하셨습니다. 그런데 의도적으로 한나가 임신하지 못하게 하셨고, 적수인 브닌나의 격동을 통해 고통을 겪게 하시고 괴로움 속에 빠지게 몰아붙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이유는 한나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나를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십니다. 어떻게 하나님과 호흡을 맞출 것인가, 어떻게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뜻을 땅에서 이루어 낼 것인가에 대한 대답을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이미 태어나도록 계획하신 사무엘에 대해 한나가 기도하도록 밀어붙이십니다. 그리고 한나는 그 의도를 따라 하나님께 기도하는 중에 마음이 바뀌게 됩니다. 기도를 시작할 때 한나에게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것은 자기 배가 아파서 낳게 될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한나는 기도하는 중에 마음이 바뀝니다. 태어나기는커녕 아직 뱃속에 없는 아기를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서원을 합니다.
한나의 서원은 참 특이합니다. 아브라함 같은 경우는 바라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이 스스로 오셔서 아들을 낳으리라는 약속을 해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러한 약속을 자꾸 귓등으로 흘리며 하나님만을 바라보는데, 하나님께서는 반복하여 아들을 낳으리라는 약속을 주십니다. 그리고 약속하신 때로부터 25년 만에 이삭이 태어났습니다. 그렇게 태어난 이삭이 잘 자라 청년이 되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반면 한나의 경우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를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맹세를 합니다. 아들을 품에 안고 싶어서 기도를 시작했는데, 기도 중에 마음이 바뀌어서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들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한나의 마음이 바뀌고 나서야 하나님께서는 애초에 하늘에서 세워두신 계획대로 아기를 잉태하게 하십니다. 드디어 하늘에서 이루어진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무엇일까요?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이미 하늘에서 이루어 놓으신 뜻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이루어진 뜻이 어떻게 땅에서 이루어지는가를 한나의 기도를 통해 보여주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한나의 기도에 담긴 과정과 의미를 바로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한나처럼 하늘에서 하나님이 이미 이루어 놓으신 뜻을 구하여, 그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본문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메시지이고 호소입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사무엘로 상징되는 하늘에서 이루어진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가를 봅니다.
먼저 우리 마음은 땅에서 숨이 막혀야 합니다. 여러분도 마음에서 숨이 막히는 경험을 해보셨을 것입니다. 마음이 갑갑하고 답답해서 질식할 것 같을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떤 계기를 통해 문제가 해결되면 ‘아이고! 한숨 돌렸다. 숨통이 트인다. 이제 살 것 같다.’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면 왜 마음이 답답하고 갑갑하고 무거웠던 것일까요? 그러다가 숨통이 트이고 한숨 돌렸다는 말을 하게 되는 걸까요? 이러한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는 마음이 숨을 쉬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마음이 호흡을 한다는 의미를 비유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 있습니다.
한나가 기도하기 위해 성막에 왔을 때 성소로 들어가는 입구가 열려있고 지성소의 휘장이 보였을 것입니다. 그 지성소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넣어둔 법궤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성소의 모습을 보면서 한나는 집에서 기도할 때와는 다른 감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울면서 기도를 하는데 입은 움직이는데 음성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이때 제사장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설주 곁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한나가 성막의 열린 문을 향하여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입만 벙긋대고 음성이 들리지 않자 술에 취했다고 생각하여 야단을 칩니다.
여기서 15절을 보면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라고 대답합니다. 여기서 심정을 통한다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심정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네페쉬(נֶפֶשׁ)는 ‘목구멍, 숨, 혼’을 뜻하고, 통한다고 번역된 샤파크(שָׁפַך)는 ‘쏟아붓다’라는 뜻입니다. 창세기 2장 7절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생령이 되었다는 것은 숨 쉬는 존재가 되었다는 뜻으로써, 여기서도 네페쉬가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넣으시자 호흡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의미를 염두에 두자면 한나가 심정을 통했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숨을 쏟아부었다는 뜻입니다.
한나의 마음은 호흡을 할 수 없어 질식할 것 같은 상태였습니다. 그러한 상태에 있다가 여호와 하나님의 성막 앞에 나와서 숨을 내뱉으며 비로소 호흡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해녀들이 바닷속에 들어갔다가 숨을 쉬러 올라오는 것과 같습니다. 해녀들은 평균 1분 30초에서 2분 정도를 바닷속에서 작업을 하다가 수면으로 올라와 가쁜 숨을 내뱉습니다. 한나가 심정을 통했다고 말한 것이 바로 이러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마음이 질식할 것 같은 상태에 있다가 하나님께로 숨을 내뱉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하나님으로 인해서 한숨 돌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심정이 통한다는 표현을 통해 한나의 마음 상태가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호흡을 맞추려면 먼저 내 마음이 세상에 대해서 질식할 것 같은 상태여야 합니다. 마음은 채움을 위하여 좋음을 흡입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사람마다 좋음으로 여겨서 흡입하고자 하는 대상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 대상이 돈이라면 돈을 흡입하고자 하는데, 돈을 벌 수가 없다면 마음의 숨이 막히게 됩니다. 돈이 안 벌리는 상태가 내 마음을 질식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쩌다 돈이 좀 들어오면 ‘숨통이 트였다. 한숨 돌렸다.’라고 말합니다.
마음은 항상 제일 좋아하는 대상을 호흡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그 좋아하는 대상에 대한 일이 바람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마음의 숨이 막힙니다. 영화에서 악당들이 주인공을 고문할 때 머리에 비닐봉지를 씌웁니다. 숨을 쉬려고 할 때마다 봉지가 코와 입에 달라붙습니다. 마음의 호흡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가 이와 같습니다. 예를 들어 ‘건강이 최고다, 자녀의 형통이 최고다, 돈이 최고다’라고 말합니다. 비어 있는 마음을 채우기 위해 이러한 대상들을 바랍니다. 그런데 이처럼 최고로 여기는 것들이 바라는 대로 되지 않을 때 마음은 비닐봉지를 씌워놓은 것처럼 숨이 콱 막힙니다. 숨을 쉬려면 비닐봉지에 구멍을 내든지 찢든지 해서 숨통을 틔워야만 합니다.
하나님과 호흡을 맞추기 위해서는 이 세상에서 가장 먼저, 가장 많이, 가장 길게 좋아하는 대상에 대한 바람이 막혀서 마음이 숨을 쉬지 못하는 질식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을 숨통으로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마음의 질식 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세상에서 숨통을 찾고자 합니다. 술을 마신다든지, 친구를 불러서 노래방에 간다든지, 젊은 사람들은 클럽에 가서 춤을 춘다든지, 취미에 몰입을 합니다. 이렇게 해서 기분 전환을 하는 이유는 숨통을 틔우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가장 먼저, 가장 많이, 가장 길게 좋아하는 것이 마음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숨을 쉴 수 없기에 숨통을 틔우고자 하는 것입니다.
한나도 숨통을 틔워야만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한나는 여호와 앞에 나가서 숨을 쉬고자 했습니다. 한나는 아이가 없다는 이유에서 적수인 브닌나에게 끊임없는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남편인 엘가나가 한나를 사랑하여 위로하면, 브닌나는 분통이 터져서 한나를 더욱 괴롭혔습니다. 엘가나가 제사의 분깃을 한나와 브닌나와 그의 모든 자녀에게 주었다는 표현을 보면 브닌나에게는 다수의 자녀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브닌나는 언제나 자녀를 배경 삼아 한나를 경멸하고 모욕하고 도발했습니다.
한나는 날마다 브닌나의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브닌나에게 핍박을 받는 한나의 마음에서는 자녀가 제일 좋은 대상이 되었습니다. 브닌나에게 몰려서 어쩔 수 없어서라도 마음에서 자녀를 원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브닌나는 기도하지 않고도 여러 자녀를 두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무엘 하나를 태어나게 하시고자 적수인 브닌나에게 한나를 들들 볶게 하셔서 마음의 숨을 쉴 수 없게 하셨습니다. 브닌나의 핍박이 없었다면 한나는 자녀가 없어서 조금 슬펐을지라도 남편 엘가나의 사랑으로 마음의 숨통이 트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막으시고자 브닌나를 통해 날마다 한나를 들들 볶게 하셨던 것입니다.
결국 한나는 더는 견딜 수 없었고 이제 한나의 마음속에서는 자녀가 가장 크고 위대하고 소중한 존재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도 자녀를 가질 수가 없기에 한나의 마음은 마치 비닐봉지를 씌워놓은 것처럼 숨통이 막혀버린 상태가 된 것입니다. 이제 한나는 어떻게든 숨통을 터야 했습니다. 그런데 한나가 선택한 방법은 세상 사람들처럼 술을 먹거나, 친구를 찾거나, 여가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나는 하나님의 성막을 찾아가서 하나님으로 숨통을 틔고자 했습니다.
다시 15절을 보면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라고 했습니다. 이 부분을 풀어보자면 ‘내가 질식할 것 같은 상태였기에 하나님으로 마음의 숨통을 틔었습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나에게는 세상에서 마음의 숨을 내뱉고 들이쉴 수 있는 대상이 없었습니다. 마음에서 좋음으로 여겨지는 대상은 자녀인데 정작 자녀가 주어지지 않았기에 숨이 막혔습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하나님으로 숨통을 틔고자 했던 것입니다.
적수인 브닌나는 한나를 지독하게 핍박했을 것입니다. ‘아이도 하나 못 나는 게 어디서 감히 남편의 사랑을 받겠다고 꼬리를 치느냐! 너 같이 돼먹지 못한 것은 나가 죽어야 한다! 아이도 못 낳는 너는 사람의 자격이 없다!’라는 식으로 모욕했을 것입니다. 요즘 같았으면 아이가 없는 것은 흠도 아니고, 신앙적 기준으로도 아이가 없으면 없는 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될 뿐입니다. 다만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적수인 브닌나로 하여금 한나를 몰아붙이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나는 죽을 지경이 되어서 하나님 앞에 나왔습니다. ‘그래, 나는 자녀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있다.’라는 심정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룻기에서 나오미의 경우를 보았습니다. 한나는 나오미에 비하자면 남편도 있고 재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나의 마음에서 남편이나 재산은 아무 의미가 없었습니다. 남편으로도 재산으로도 마음의 질식 상태를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나는 ‘나는 자녀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일어나야 하는 일입니다. 돈 때문에 질식할 것 같은 상황에서 ‘나는 돈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있다.’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형통이 없다. 나는 외모가 없다. 나는 능력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나 또한 이러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호흡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으로 호흡하게 되자 대역전 현상이 나타납니다.
숨이 막혀 죽을 때마다 하나님으로 숨통을 열어 하나님을 호흡합니다. ‘내게 하나님은 있다.’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돈과 승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숨이 막혀서 술로 숨통을 열던 사람이 있습니다. 날마다 술로 숨통을 열다 보니 나중에는 술 자체가 좋아집니다. 술에 중독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한나는 이와 마찬가지로 자녀가 없음으로 인해 브닌나가 격발하고 도발하고 모욕하고 경멸하는 짓눌림 속에서 겨우겨우 ‘내게 자녀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있다.’라는 심정으로 숨통을 열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술로 숨통을 여는 사람이 술 자체를 좋아하게 되듯이 점점 하나님이 좋아지게 된 것입니다. 좋아서 술을 먹더라도 삶에 괴로움은 여전히 있습니다. 다만 술이 좋기에 자발적으로 술 먹는 시간을 마련합니다. 한나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가 없는 상태에서 괴로움이 지속되는 동안에도 하나님이 좋아지면서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드리고 싶어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은 마음이 담긴 것입니다. 설령 하나님께 십억을 드린다고 해도 마음이 담겨있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께는 십억도 필요 없고 어떠한 세상 것도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마음이 제일 소중하기에 마음이 담겨야 의미가 있습니다. 한나에게 이 세상에서 마음이 가장 많이 담긴 대상은 자녀였습니다. 비록 태어나지도 않았지만 한나는 자녀라는 존재에게 마음이 가장 많이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브닌나로 인해 질식할 것 같은 상황에서 하나님으로 숨통을 틔우다 보니 어느덧 하나님이 좋아집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드리고 싶은데 자기의 마음에 가장 많이 담고 있는 대상이 자녀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한나의 심정을 풀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 저는 자녀 없음으로 인해 브닌나에게 숨도 못 쉴 것 같은 괴로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없었으면 저는 진즉에 마음이 질식해서 죽었을 것입니다. 제가 하나님으로 숨통을 틔우다 보니 이상하게도 하나님께 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내게 가장 소중한 것, 내 마음이 가장 많이 가 있는 보물을 드리고 싶습니다.’라고 여기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6장 21절에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처럼 한나의 마음이 가장 많이 가서 보물로 여겨지는 대상은 바로 자녀였습니다. 그렇기에 한나는 자기에게 있는 보물을 드리는 심정으로 기도합니다. ‘내 마음의 보물은 자녀입니다. 태어나지도 않은 자녀에게 내 마음이 다 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혹시 자녀를 태어나게 해주신다면 이 자녀를 드리겠습니다.’라고 기도하는 시점까지 도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드디어 하늘에서 정하신 뜻인 사무엘을 태어나게 하십니다.
18절을 보면 “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라고 했습니다. 한나의 얼굴에 근심 빛이 사라진 것은 비로소 한나가 하나님과 호흡을 맞추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한나의 마음을 몰아붙이실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내가 하늘에서 이룬 뜻을 너를 통해 땅에서 이룰 때가 되었다. 네가 드디어 나와 호흡을 맞추게 되었다.’라고 승인을 해주신 것입니다. 이로부터 한나는 얼굴에서 근심 빛이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과 호흡을 맞출 수 있을까요? 이것을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는 것은 세상에서 좋다고 하는 것은 어떤 것에 대해서도 질식하라는 의미입니다. 내가 예수님과 함께 세상에 대해 죽었기에 어떤 것도 빨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돈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한나처럼 자녀가 최고이고, 어떤 사람은 회사에서 성과와 승진이 최고이고, 어떤 사람은 취미가 최고입니다. 이처럼 각자 최고로 좋아하는 것들이 다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는 어떤 것을 좋아하든지, 많이 좋아하든 적게 좋아하든, 모든 좋아하는 것들을 마음에서 호흡할 수 없도록 질식시키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세상에 대해서 비닐봉지를 씌우는 것과 같습니다. 돈을 바라면 마음의 숨통이 막힙니다. 건강을 바라면 마음의 숨통이 막힙니다. 자녀의 형통을 바라면 마음의 숨통이 막힙니다.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의미가 이와 같습니다. 그런데 마음은 숨을 쉬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부활하시며 위로 숨통을 내셨습니다. 이제 내 숨통이 승천하신 예수님을 따라서 위에 계신 하나님 앞에서 숨을 내쉽니다. 이처럼 하나님으로 한숨 돌리게 하는 사건이 십자가 사건입니다.
우리가 사는 동안에 십자가를 기억하면 세상에 대한 나의 숨통은 막힙니다. 질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님을 따라 마음이 하늘로 갑니다. 마치 엘가나가 한나를 성막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온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내 마음을 하늘로 데려가십니다. 그리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앞에서 심정을 통하게 하십니다. 이처럼 나의 숨이 트이게 되는 상황을 매일 반복하게 해주시는 것이 바로 십자가 생활화의 은혜입니다.
사도행전 3장을 보면 베드로의 설교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19절을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새롭게 되는 날이란 새로움의 날이라는 뜻입니다. 새로움으로 번역된 헬라어 아나프시크시스(ἀναψύξεως)로써 유쾌해짐을 뜻합니다. 이 말의 원형인 아나프시코(ἀναψύχω)를 보면 아나(ἀνα)는 ‘위를 향하여’라는 뜻이고, 프시코(ψύχω)는 ‘숨을 쉬다’라는 뜻입니다. 예수를 믿음이란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빗나가 세상 것을 좋아하던 우리가 회개하여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고 그리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예수님을 믿으면 마음이 새롭게 숨을 쉬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예수님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면, 세상 좋은 것에 대하여 숨이 막힌 상태였다가 하나님으로 숨을 쉬면서 하나님이 좋아지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좋아지면 무엇인가를 하나님께 드리고 싶어집니다. 내가 지금 상대하고 있는 대상들, 내가 좋아했던 모든 것들을 다 하나님의 주인 되심 안으로 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내가 말하고 행동해서 나타나는 모든 결과가 드림의 대상입니다. 마치 한나가 사무엘을 낳은 것처럼 내가 소중하게 여겼던 모든 것들이 결과로 나타날 때 그 모든 것을 진심으로 하나님께 다 드리고 싶어 합니다.
이처럼 마음이 예수님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서 하나님으로 숨을 쉼으로써, 이 세상에서 나의 말과 행동을 통해 나타나는 모든 결과물을 다 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나타나는 일이 있습니다. 이제부터 하나님과 내가 호흡이 척척 맞아가면서 하늘에서 이루어진 뜻들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내가 바라는 세상 것들에 대해 숨이 콱 막혀서, 예수님 따라 하늘로 올라가 하나님 앞으로 가지 않으면 숨을 쉴 수 없는 하나님 호흡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호흡자가 되어서 하나님으로 숨통 틔기가 반복되며 하나님을 좋아하고, 이 땅에서 내 몸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들은 어떤 것이라도 하나님께 다 드리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하늘과 땅에서 호흡이 척척 맞아 들어가는 삶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과 호흡을 맞춰 하늘에서 이루어진 뜻을 땅에서 이루는 일에 여생을 바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기 위해 더욱더 철저하게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세상에 대하여 질식하는 자라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이 세상의 취미나 이 세상의 다른 것으로는 숨통이 트이는 일이 완전히 근절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